오륜교회 주경훈 담임목사 주일설교/2025년 주일 설교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마가복음 11:1~11 ) 2025.4.13

smile 주 2025. 4. 22. 10:00

2025-4-13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fs204RMXcE8

 

ㅇ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요즘은 여행스타일과 원하는 일정을 입력하면 '챗지피티(ChatGPT)'가 알아서 스케줄을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만약 정말 가보고 싶은 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여행을 계획하시겠습니까? 식사부터 숙소까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의미 있는 여행이 되도록 계획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그린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낸 마지막 일주일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셨습니다. 마지막 일주일 또한,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행동하셨습니다.


ㅇ 고난주간을 보내며 기억해야 할 3가지

이 마지막 일주일을 '고난주일' 또는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며, '종려주일에 있었던 일을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다음의 3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1.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고난주간을 맞이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 말씀은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막11:1) 예수님의 공생애는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당시 이곳에는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그 주변에는 10만 명이 살았지만,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각지에서 온 순례자와 세계 곳곳에서 온 디아스포라 순례자까지 약 100만 명 정도가 몰려들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 자신을 알리시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막11:2) 만약 예수님께서 원하셨다면 조용히 성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방식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나귀를 구하는 방식에 주목해보길 원합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막11:3)
맞은편 마을에 가면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가 있을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자, 나귀의 주인도 나귀도 다 순종하게 됩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십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유다 지파에서 나올 통치자는 나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창49:10-11). 또한 스가랴는 '메시야'가 나귀 새끼를 타고 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9:9)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제자의 말에 따라 쓰임 받은 나귀와 그 주인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묶여 있던 나귀는 그 묶임으로부터 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 쓰임 받을 때, 죄와 죽음에 매어 있는 존재가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존재에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2. 종려나무가 아닌 십자가를 붙잡으라

사람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메시아'를 떠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피며." (막11:8) 사람들은 겉옷과 베어낸 나뭇가지를 길에 깔아 왕의 입성식을 준비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배를 표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승리'를 의미하는 종리나무를 길에 깔고, 종려나무를 흔들었습니다. 종려나무는 과거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독립을 얻어낸 '마카비 가문의 문양이기도 합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을 군사적·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마카비'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9-10) 급기야 사람들은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 구호는 왕에게 올려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예수님께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며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난 주간을 맞이할 때 가져야 할 두 번째 마음가짐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종려나무가 아닌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투영하여 만들어 낸 예수님은 허상일 뿐입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던 이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바람대로 행동하지 않자, '호산나'를 외쳤던 입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예수가 아닌, 진정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종려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라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겪게 될 미래도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19:41) 여기서 '우시며'라는 단어는 '소리를 내어 우는 울부짖음'을 의미합니다. 이 눈물은 무지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안타까움의 눈물입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눅19:42) 이스라엘은 지금 정치적인 독립을 원하고 있을 뿐, 하나님의 평화인 구원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적들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이스라엘의 성전은 완전히 무너지고 백성들은 학살당하게 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이때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은 심판이 오기 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 무지에 빠져 그 의미조차 깨닫지 못한 채,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그렇게 영적무지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의 눈물입니다. 자기 삶, 자기 방식, 자기 영광, 자기 일에 심취해, 고난 주간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눈물인 것입니다.


ㅇ고난주간을 대하는 자세

우리는 어떻게 고난주간을 보내야 할까요? 첫째, 예수님께 우리의 인생을 다시 맡기고 쓰임 받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원하는 성공이 아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하며, 영적으로 깨어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3가지를 기억하며 십자가 그 사랑을 붙잡고 고난주간을 보내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