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식의 보물창고/성경 요약

구약성경별 요약 2

smile 주 2023. 5. 6. 21:19
구약 성경 요약


창세기는 원역사(1-11)와 족장들의 역사(12-50)으로 구분할 수 있다. 원역사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이 기록되었고, 노아시대 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 그리고 민족들의 분산이 기록되어 있다. 족장들의 역사에는 그들의 신앙과 전기로 이루어졌으며 믿음의 조상인 아브리함과 이삭의 생애, 야곱의 험난한 고행의 생애, 그리고 요셉과 꿈이 이루어지는 생애로 이루어졌다.
창세기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거주하게 하셨지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이 온 세상에 덮이고 노아시대 대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셨다. 홍수 이후에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를 혼잡케 하셨으며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되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민의 역사를 만드셨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족장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정통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 이동시켜 번성하게 하셨고 그곳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에는 인간의 기원,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인류의 기원, 죄의 기원, 문화의 기원, 종교의 기원, 나라의 기원 등등 수많은 역사의 기원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 교리에서 창세기는 그 중심에 있어야 하며 창세기를 믿지 않는 믿음은 거짓이며 헛것이 된다.
창세기에는 생명, 속죄, 부활, 영생, 역사, 종말의 교리도 포함되어 있다. 창세기는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신학적 기술로 되어 있으며 특히 창조는 과학 이전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과학이기에 사람이 온전히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특히 인간의 과학으로는 창세기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창세기의 창조 원리는 무에서 창조였고, 완전한 창조였고 그곳에서는 진화가 없었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조화롭게 창조하셨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에서 이어져 온 이야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이야기를 거쳐 이집트에 온 이스라엘 자손들의 400년 후의 종살이 역사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준비시키시며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집트 땅에 10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이집트 사람에게나 이스라엘 사람에게나 또는 다음 세대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예정하셨던 곳으로 이끌어 내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9:5-6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 민족이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겠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제사장 나라라는 뜻은 하나님과 열국 사이를 다리 놓아 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열국 앞에 모범을 보이고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며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고 선교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사명이다.
그리고 십계명과 율법의 시행 세칙과 교훈, 성막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레위기는 구약의 핵심이며 오경의 중심이다. 성경 전체 중에서 보통은 레위기를 가장 먼저 기록된 책으로 보고 있다. 레위기는 율법서이다. 레위기 안에는 모형으로 하던 법은 이미 폐해버린 법이지만 윤리적인 내용은 폐할 수가 없기에 존속되는 법이다.
레위기 1~25장에는 제사와 제사장들에 관한 교훈, 부정하고 정한 것, 산모를 위한 법, 나병, 성병을 위한 법, 속죄일 규례, 피와 기름을 먹지 말라는 내용, 성윤리, 도덕,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죄악, 제사장들의 처신, 분깃,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목적과 정신, 성막과 제단을 관리하는 규례, 안식년, 희년, 토지 무르는 절차를 기록하고 있다.
26장에는 이 율법들을 지키면 복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27장에서는 부칙으로 돈으로 속전을 내는 규정을 말씀하고 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민수기는 백성의 수를 헤아려 기록했다는 뜻이며 다른 말로 인구조사를 했다는 의미이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훈련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민수기에서는 첫 번째 인구조사 및 진 편성법, 므라리 게르손 고핫 자손의 임무 부여, 나실인에 관한 법, 성막과 제단 봉헌식,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로 수르 광야-에담광야-작은 신광야-시내산-바란광야-가데스 바네아에서 큰 신광야로 가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또한,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하는 이야기, 바산왕 옥과 아모리왕 시혼을 무찌른 이야기,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사건, 모세와 아론의 실수 이야기, 두 번째 인구조사 이야기, 미디안과의 결투이야기, 광야 40년 노정기 결산 이야기, 레위 지파의 분깃과 살인자의 도피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뜻은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시고 겸손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가 시험하시기 위함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1:5에서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다고 나와 있는 것처럼 신명기는 모세가 율법을 설명하고 기록한 책이다.
신명기에는 광야 생활을 회고하는 내용과 율법(레위기)을 설명하는 내용 그리고 모압 땅에서 추가된 율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1~ 443: 광야 생활의 회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444~ 2868: 레위기를 다시 설명하는 내용이다.
29~ 34: 모압 땅에서 추가로 주신 율법을 설명하고 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그 언약들이 성취되어가는 책이다.
여호수아의 전체적인 내용은 여호수아의 지도자 취임, 여리고 성에 정탐꾼 파송, 가나안 중부 전투, 가나안 남부 전투, 가나안 북부 전투, 전쟁 결산, 토지 분배, 여호수아의 고별사로 이루어져 있다.


사사기는 구약시대 종교 암흑기(360)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사사기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또는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등의 말들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다. 사사기는 종교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사사 시대가 종교 암흑시대가 된 원인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 집권적인 지배구조가 아니라 지방 분권적 지배구조로 변경되어서 통치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방 분권이 되어 이스라엘의 힘이 분산되어 버렸으니 당연히 신앙적인 차원에서도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힘도 분산되어서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게 되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았던 선조들 즉 이스라엘의 어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셋째,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당연히 타락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 원인이 된 것이다.
넷째, 모세는 여호수아라는 불세출의 후계자를 세웠는데 여호수아는 자신의 후계자를 세우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었다.

룻기는 3000여년전 암울하고 어두운 사사시대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 당시 하나님의 징혜는 흉년이었다. 룻기의 주제는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라이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두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징계인 흉년을 피해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은 모압 여자인데 시어머니를 따라서 돌아오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던 효성 지극한 여인 룻과 삶의 한복판에서 율법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보아스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룻기 마지막 부분의 보아스 오벳 이새 다윗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그리고 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확인하게 된다.



사무엘 상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4명의 가족 이야기로 귀결될 수 있다. 사무엘 가정, 엘리 가정, 사울 가문, 다윗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어 사무엘이라는 일꾼을 만드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엘리 제사장 가문을 통해서 자식 교육을 잘못하여 가문이 멸절하는 것까지 하나님은 보여주셨다.
사울왕은 처음에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권력을 맛을 보며 타락하게 된 인물이었다. 그는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으며 청종하지도 않았다. 제사장의 일을 월권행위까지 했고, 질투와 욕심 때문에 악령까지 불러내는 그런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는 어린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은 어리석음도 보여주었고, 그런 다윗을 경계하고 죽이려다보니 나라를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윗은 사울왕의 잘못된 정치적 인생길에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은 사람이었다. 사울의 눈을 피해서 끝없는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그를 연단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사울 가문이 몰락하자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되는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었다.



사무엘하는 다윗왕의 등극으로 시작하여 인구조사에 대한 징계로 끝을 맺고 있다. 본서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어떻게 국가를 하나님의 공의로 통치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전체 왕이 아닌 유다 지파의 왕으로 시작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과도기 국가의 체제였고, 북쪽의 이스보셋왕과 남쪽의 다윗왕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남북 전쟁이 있었으며 북쪽 지파들 전체의 동의를 얻어 통일왕국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앙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공의로 다스렸던 훌륭한 왕이었다. 또한,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죄를 지었던 인간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겸손함도 보여주었다.
그는 아들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도피생활을 했지만 신하들의 대처로 부자간의 전쟁을 종식시켰고, 반란을 평정하고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열왕기라는 말은 왕들의 이야기가 나열된 책이라는 뜻이다. 열왕기상에는 다윗의 죽음과 그 왕위를 물려받는 솔로몬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본서의 주요 내용은 다윗의 노년과 아도니야의 반역, 솔로몬의 등극과 성전 건축과 봉헌, 그리고 왕궁 건축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또 솔로몬의 사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는 과정을 기록하였고, 남북 왕조의 임금들과 그들의 치리 모습과 타락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역사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타락한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모습이 실감나게 기록되어 있으며 각 왕조에 선지자들의 등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모습도 기록되었다. 그리고 악한 시대에는 반드시 주의 종들이 등장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징계를 내리는 모습도 기록되었다.



열왕기하에서는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멸망으로 달려가는 가운데 그들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 이어 엘리사 선지자를 보내시고 또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책망하기도 하시고 달래기도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언제나 타락의 결과만 만들어 냈다. 그리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탁을 끝내 거부했던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멸망했고, 남유다 역시 결국 바벨론 제국에 의해 망하게 되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열왕기하에서는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사역이 중점 소개되었고, 오므리 왕조의 몰락, 그리고 예후 왕조가 시작되는 장면이 기록되었다.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는 극악의 어둠과 악한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적도 나타내셨다.
열왕기하 끝에 요시아 왕이 일어나 종교개혁으로 다시 한 번 신앙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 같았지만 그 이후의 왕들이 타락하여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온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히브리 성경에는 역대상하서가 역대기 한 권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을 쓴 것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민족중흥을 위하여 역사를 가르치고 또 정상적인 제도를 회복하여 선택받은 민족의 영적인 삶을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역대상서는 아담에서 출발해서 사울 왕가의 몰락, 다윗왕의 이야기 그리고 솔로몬이 등극하는 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서는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기록을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다윗과 솔로몬의 타락에 대한 부분은 삭제하고 기록하였다.
본서에는 다른 사람의 기록을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사무엘의 글, 나단의 글, 갓의 글, 잇도의 묵시책, 이사야의 묵시책, 야살의 책에서 인용하였다.


히브리 성경에는 역대상하서가 역대기 한 권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을 쓴 것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민족중흥을 위하여 역사를 가르치고 또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술되었다. 또 정상적인 제도를 회복하여 선택받은 민족의 영적인 삶을 지도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역대하서는 솔로몬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유다 열왕들의 이야기와 바벨론포로를 거쳐서 고레스 왕의 칙령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정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본서에는 다른 사람의 기록을 인용한 부분이 있는데 사무엘의 글, 나단의 글, 갓의 글, 잇도의 묵시책, 이사야의 묵시책, 야살의 책에서 인용하였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서 율법에 익숙한 학사이자 제사장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행하고 가르치겠다는 사명을 가슴에 품고 제2차로 예루살렘에 귀환한다.
에스라는 1차 귀환자들보다 9년 늦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뒤 5년이 지나서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가 귀환하게 되었다. 1차 귀환자들의 인솔자는 스룹바벨이었고 그는 성벽을 만들어 예루살렘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차 귀환에서 에스라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귀환하였다.
에스라는 1차 귀환자들이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어 모든 이방 여자들을 추방시키게 된다. 성경에는 없지만 추방당한 여인들의 종족이 유다를 침공하여 전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 전쟁후에 느혜미야가 엉망이 된 예루살렘에 달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느헤미야와 함께 에스라가 성벽을 재건하게 된다.
에스라 1~6장은 그가 귀환하기 전으로 1차 귀환자들과 성전 재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에스라 7~10장은 에스라 자신의 귀환과 그의 개혁 운동 내용을 담고 있다.



느헤미야의 뜻은 위로하시는 여호와’, ‘여호와는 위로하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느헤미야의 직업은 포로로 잡혀간 페르시아왕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다. 그는 왕과 매우 친밀했으며 신임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포로된 사람이지만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삶이 보장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동포들을 생각해서 귀환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편안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귀환 공동체를 이끌기 위해 험난한 길을 택한 사람이었다. 또한 먼저 귀환했던 에스라의 개혁을 돕기 위해 돌아온 사람이었다.
느헤이미야 인품을 성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데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고, 신뢰받는 사람이었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심지가 견고했으며 검소하고 경건한 공직자의 표본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을 두고 쉬지 않았으며 일의 시시비비를 정확이 구분할 줄 알았고,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는 그런 청렴의 사라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은 1차 귀환자들이 돌아온 지 9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그대로 방치된 채 무너져 있었다. 또한 힘없는 백성들은 강도와 짐승들의 위협에 떨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울며 기도하는 가운데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얻어 예루살렘 총독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많은 방해세력과 내부 문제들을 지혜롭게 극복해가며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52일 만에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게 된다.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돌아와서 당시 먼저 귀환했던 에스라 제사장과 협력하여 유대인들의 절기인 초막절 기간 동안 성경통독 집회도 열었던 사람이었다.


에스더서는 포로 기간 중에 유대인들이 겪은 위기를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그 위기를 기회로 인도하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더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볼 수 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를 보여주신 것이다.
에스더가 왕후로 있었던 페르시아 왕조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레스 캄비세스2스메르디스 다리오히스타페스(다리우스) - 크레스크세스(아하수에로) - 아르타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 - 다리오3
여기에서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귀환을 명령했고, 다리우스 때는 학개와 스가랴가 활동했었다. 다리우스 이후 아하수에로 시대에 에스더가 왕후로 있었다. 그 이후 아닥사스다 때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귀환이 있었다.

욥기의 주제는 의인의 고난에 대한 문제이며 배경은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문학적 장르는 희극에 가까우며 작자 미상의 성경책이다. 또한 인물들의 대사가 어렵고 각각의 등장인물의 말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욥기의 기록된 연대는 약 4000여년 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1500년이 지난 바벨론 포로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찾아오게 된다. 욥이 당했던 고난은 네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재물을 잃어버린 고난, 자녀를 잃은 고난, 건강을 잃은 고난, 친구들로부터 정죄 받는 고난이 그것이다.
욥을 찾아온 세 명의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지만, 욥은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한다. 세 친구와 욥의 논쟁 후 엘리후라는 사람의 말이 이어지고,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등장하셔서 권능과 지혜에 대해 말씀하신다. 욥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내려주신다.
욥기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도 반드시 시험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욥기는 보여주고 있다.

시편은 제2 성전시대(스룹바벨 성전시대)의 찬송가였다. 시편을 다섯가지로 구분하여 나눌 수 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탄원시, 공동체나 개인이 부르는 찬양이 담긴 찬양시, 하나님의 왕권이나 이스라엘의 왕을 찬양하는 제왕시, 교훈과 지혜를 가르치는 지혜시,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배경으로 하는 예배시로 나눌 수 있다.
시편은 모두 5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1권은 1-41편까지, 2권은 42-72편까지, 3권은 73-89편까지, 4권은 90-106편까지, 5권은 107-150편까지 다섯권으로 세분할 수 있다.
시편은 모세에서 베벨론 포로 귀환까지 1000여년의 세월동안 지은 것으로 그중에 다윗의 시편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시편에 나타난 여려가지 시의 형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미스모르 : 순수시] [쉬르 : 노래 가사 문학시] [마스길 : 교훈과 명상시]
[믹담 : 풍자시] [테필라 : 기도와 간구시] [테힐라 : 찬양시]
시편을 기록한 기록자들과 그 편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다윗의 시 72] [아삽의 시 12] [고라자손의 시 10] [솔로몬의 시 2]
[모세, 헤만, 에단, 에스라의 시 각 1] [필자 미상의 시]

솔로몬이 남긴 책으로는 젊었을 때 기록된 아가서, 솔로몬이 중년이 되었을 때 지었던 잠언, 그리고 솔로몬이 타락한 이후 말년에 지은 책이 전도서이다. 이중 잠언은 솔로몬이 가장 지혜가 충만하고 지식적인 것들이 충만했을 때 지었던 책이다. 솔로몬 왕이 많은 여인으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잠언 3000을 말했는데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하였다. (잠언 251)
잠언이란 히브리어로 마샬이라고 하는데 풀이하면 솔로몬의 격언, 또는 솔로몬의 금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잠언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혜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잠언에서는 지혜가 사람처럼 잔치를 벌이고 우리를 초대하기도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과 지혜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면서 설명해 준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의뢰하는 것, 인간의 부족함과 약함을 아는 것, 정직한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 훈계와 징계받기를 즐겨하는 것, 입술의 말을 조심하는 것, 부지런한 삶의 자세를 갖는 것,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 어리석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잠언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지식과 근심함을 주기 위함이며, 학식과 모략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잠언을 읽는다면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가야 하며, 헛된 인생 살지 않도록 해야 하며, 참되고 의미 있게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전도서는 솔로몬의 말년 인생이 담긴 책이며 그의 철학적 소견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은 다 헛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중히 여기고 있는 부귀영화, 명예, 권세, 지혜와 지식이 다 사람을 번뇌하게 할 뿐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전도서는 회중의 스승의 말씀. , 솔로몬의 인생론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는 사람이 해 아래에서 가족이 화목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최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주장한다.
전도서의 핵심은 1장에 있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것이 아니다. 헛된 것은 불교적인 것으로 이는 성경의 핵심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모든 것을 누려보게 했고 그에게 인생에 대해 결론을 내게 했다. 그 결론이 1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장에 있다.
그러므로 전도서의 핵심은 하나님을 떠나서 추구하는 것이 헛된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선악간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도 알려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솔로몬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야말로 한 번뿐인 인생을 진실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아가’(:아름다울아 :노래가)라는 말은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아가서는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 사이에 이루어진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한 한편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아가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랑에는 그 어떤 장벽도 없으며 서로를 향한 온전한 정성과 배려, 헌신과 책임이 담겨 있다.
아가서를 과잉해석하는 목회자들이나 성경학자들이 있는데, 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해석을 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신부되는 교회를 이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히브리인들은 30살이 되기 전에 에스겔과 아가서를 읽지 못하게 한다. 특히 성적인 묘사가 있는 아가서는 서른이 넘어야 보는 책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이 있는 책을 성경으로 인정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신부되는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였기 때문에 넣었다고 한다.
솔로몬이 자기 여자가 이미 140명 있었는데, 140명으로 만족했다면 또다시 술람미 여자를 안 찾았을 것이고, 141번째로 술람미라는 여자를 만나서 그와 행복을 나누고 만족했다면 천명까지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여자를 구하고 이런 여자를 찾아서 노래로 표현한 것이 아가서라는 것이다.
아가서의 장르는 오페라에 가깝다 <궁중음악> 솔로몬의 노래가 천여편에 이르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아가서이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에로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녀 사이의 사랑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사야라는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로 태어나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선지자로 부름받아 예루살렘 중심의 사역을 이루었다.
이사야 당시에 국내외 정세는 한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던 시기였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의 정복 전쟁으로 나라가 위태했으며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던 시기였다. 또한, 아하스왕의 친앗수르 정책으로 인해 아람·북이스라엘 동맹군의 침공을 받으나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될 때였다.
그 당시에 애굽은 팔레스틴 주변 국가들을 규합하여 동맹을 맺고 반앗수르 정책을 펴나갈 때였고, 이때 히스기야 왕이 동맹에 가입하게 된 때였다. 그리고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멸망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간신히 구원을 받게 된 시대였다.
이사야는 이러한 정치·종교적 배경에서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악한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과 회개를 전제로 한 구원을 선포하였다. 그는 왕의 막강한 권력에도 올곧은 마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외쳤고,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와 믿음의 소유자였다. 또한, 다윗 왕조에 대한 믿음도 있었으며 자신의 소명에 대해 굳센 의지도 있었다. 그는 유다의 죄악을 고발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택한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계를 경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의지할 때 그분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으라고 전하였다. 그는 메시아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으며 열방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사야의 외침을 이스라엘에 전했지만 궁극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사야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비운의 종이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왕 13년부터 예루살렘의 멸망까지 약 40년 이상 사역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역을 했으나 그의 말을 듣고 인정했던 사람은 없었다.
남유다의 멸망이 눈앞에 와있는 상황에서 예레미야의 핵심적인 예언은 국가의 깃발을 내리고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바벨론에 가서 훈련받고 돌아와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은 변경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예레미야는 힘없는 백성들이 당할 처참한 상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지도자들을 설득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그의 말을 제대로 들었던 왕은 없었다. 끝까지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부했던 남유다의 시드기야 왕은 결국 예루살렘에 비참한 최후를 가져왔고, 남유다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예레미야는 사랑하는 조국의 아픔을 부둥켜안고 밤을 새워 울고 또 울어야 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이 올 때 항복하여 섬기라고 권했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고 때가 되면 새 언약을 세우실 때가 온다고 예언했다. 그는 또한 열방과 바벨론도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를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로 매도했다.
본서는 예레미야의 구전 메시지를 비서 바록이 기록했다.





예레미야 애가는 BC 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초토화되었을 때, 그 장면을 목격한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이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삶에는 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었다. 그는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도시가 폐허가 되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힘없는 노인들과 아이들, 여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라가 망하는 처참한 모습을 보며 창자가 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죽어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노인들의 탄식 소리만 가득한 예루살렘으 바라보며 그는 계속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예레미야 애가는 두문시 형식으로 쓰여진 노래이다. 인류역사상 예레미야 애가와 같이 이렇게 절절하고 애절한 애가는 없었다. 그는 애굽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거리의 참상을 목격했다. 또한,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것도 보았다. 왕이나 귀족들은 잡혀가고 도시의 청장년은 죽어버린 것도 보았다.
거리에서 장난치던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며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 손에 기르던 자녀를 잡아서 먹고 있었다. 그런 참상을 바라보고 눈물 흘리며 써 내려갔던 한탄의 노래가 예레미야 애가이다.
명절이 되면 유대인은 성경을 읽는다. 유대력 49일에 온 국민이 애가서를 읽는다. 또 유월절에는 아가서를 읽는다. 초막절에는 토라를 읽고, 부림절에는 에스더를 읽고 오순절에는 룻기를 읽는다. 그런데 기독교 명절인 성탄절, 추수감사절, 맥추절, 부활절에 우리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 가르침도 없다. 유대인처럼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다.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과 기술자들과 함께 BC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왔다.(2차포로) 그는 제사장 가문의 선지자였고 포로생활 5년째 해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에스겔서에서는 에스겔이 소명 받는 장면,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말씀하는 장면, 유대인들의 죄악상, 영혼을 사냥하는 거짓 선지자, 이방 나라에 들에 대한 심판 예언,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에 대한 말씀 등을 볼 수 있다.
에스겔 40~48장까지는 성경의 난제에 속하는데 이 부분을 이루어질 수도 있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부분이라고 보고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에스겔은 여러 가지 행동으로 예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별한 경험과 함께 소명을 받았다. 그는 신비하고 장엄하고 두려운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며 하나님의 진노하심도 보았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아내를 불러가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 즉 유대인들의 겪는 아픔을 에스겔이 겪어보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라는 계시를 알려 주신 것이었다.


다니엘은 B.C.605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의 꿈과 몽조를 해석함으로써 크게 높임을 받고 뛰어난 지혜와 실력으로 바벨론과 페르시아 두 제국에서 가장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다니엘서는 1-6장은 신 바벨로니아와 메대 페르시아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7-12장은 계시와 교훈으로 신 바벨로니아 때에 받은 이상과 메대 페르시아 때에 받은 이상을 담고 있다.
다니엘서는 종말론에 대한 것을 목적으로 기록한 책이 아닌데도 잘못 해석하거나 과잉해석으로 성경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호세아 시대는 북왕국 여로보암2세 이후로 최고의 번영기였다. 경제적으로 윤택했던 시대였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멀리 살았다. 또한, 물질적으로 풍부했던 시대였지만 영적으로 위험한 시대였으며 회개가 없었고 타락만 있었던 시대였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아모스 선지자와 비슷한 시기, 혹은 좀 더 후에 활동했던 선지자였다. 그는 북왕국 마지막 예언자였다. 동시대의 아모스 선지자는 책망과 질책을 하였지만, 호세아는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했던 선지자였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는 기막힌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서 그 시대 북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호세아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백성들을 설득하여 돌아오라 했으나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서를 통해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호세아서의 주제와 표어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알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호세아 선지자의 외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게 되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 선지자는 임박한 환란과 그에 따른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범죄하여 스스로 재앙을 부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요엘 역시, 죄에서 돌아선 자들은 구원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통치 아래에서 살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요엘 선지자는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신상에 대해 아는 것의 거의 없다. 요엘서는 작은 책이지만 어려운 이유는 이 책 안에는 비유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 예언자의 패턴과 요지는 이렇게 되어 있다. 먼저 죄를 책망하고, 권면하고, 위로하며 소망의 비젼을 제시한다. 그러나 요엘서는 죄를 책망하는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죄에 대하여 징계를 받은 후에 권면과 위로와 소망의 비젼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남유다의 작은 성읍 드고아 출신으로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였다. 아모스는 특별히 사회의 기득권층이었던 부자들과 국가관리들, 제사장들을 향해, 그들이 사회를 정의롭게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에 대해 그 죄악을 강하게 지적하였다.
아모스가 살아가고 있었던 여로보암 시대의 상황은 암울함이 아닌 활기가 있었던 시대였다. 정치 외교 안보가 잘 되어 있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또한 부자들의 사치가 극에 달했던 시대였다.
당시 사람들은 사치와 물질적 향락에 빠져 있었고, 은을 받고 의인을 팔았으며 한 사람의 가치가 신발 한 켤레 값과 같았던 시대였다. 모든 것을 가늠하는 척도가 오직 돈이었으며 나실인을 끌어다가 술을 마시게 할정도로 타락했다. 또 예언자들의 입을 막고 예언하지 못하게 했고, 권력자들이 여름 궁전, 겨울 궁전을 지어 호화롭게 살았던 시대였다.
그들은 상아 궁전을 지어 놓고 사치하고 타락했으며 여자들도 술을 퍼마시고 놀아났다. 상아 침대에서 늦잠 자고, 기지개 켜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대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서 마셔댔다. 온갖 귀한 향수를 몸에 뿌리고, 우유에 목욕하고, 공법을 쓸개같이 정의를 인진같이 쓰게 하였다. 에바는 크게 세겔은 작게 하여 부당 이득을 취했고 안식일이 다가오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런 타락한 시대에 주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절기를 미워하고, 성희도 미워하고, 번제도 미워하고 화목제도 미워하고 노랫소리도 미워하고, 비파소리도 미워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도덕성 회복이었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게 하는 이것이다.”


오바댜서는 언제라는 시제가 없으며 6하 원칙에 따라 세세하게 기록되지 않았다. 오바댜라는 말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자, 여호와를 공경하는 자라는 뜻이다. 오바댜서는 하나님께서 에돔에 대하여 말씀하신 묵시이다.
에돔은 형제 나라인 유다가 멸망하는 것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틈에 바벨론과 동맹을 맺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 유다를 조롱하는 죄를 지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에돔 민족은 교만한 자, 방관자, 핍박자라는 판결을 받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오바댜서에서는 여호와께 만국을 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또한 도덕적인 문제도 심판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오바댜서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은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도 일깨워주고 있으며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회복할 것이라는 말씀도 해 주셨다. 또한 의인에게는 보상을 악인에게는 징계로 보응 하신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요나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정확하지 않다. 당시는 선지자들이 와서 외쳐도 회개를 안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으며 대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사장 나라를 못하니 하나님이 선지자 요나를 부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요나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그에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외치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도망을 가게 된다.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폭풍으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3일 만에 나오는데 그럼에도 요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깊은 진심을 모르고 있었다.
요나서 3장을 살펴보면 니느웨는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3일이나 걸리는 매우 큰 성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 곳을 요나는 하루 동안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게 된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그런 불성실한 전달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된다.
요나서 전체를 통해 이방인조차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으며 요나의 민족주의적인 마음을 대조적으로 볼 수 있다.

미가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의 선지자로 모레셋 사람이다. 미가는 이사야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것을 강조하며 경제정의를 부르짖은 선지자로 사람들을 향해 들으라 자세히 들으라고 외치며 예루살렘의 부유층과 사마리아의 부유층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미가는 삯을 위하여 교훈하는 제사장이나 돈을 위하여 점치는 선지자, 혹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및 재판장들을 책망하였다.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참 목자가 없다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진짜 목자는 시골 작은 동네에서 나온다고 외쳤다. 그 부분이 바로 52절을 통해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나훔이라는 말은 위로한다라는 뜻이다. 나훔서에서는 나훔 예언자가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를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위로가 된다는 뜻이다.
요나의 멸망 선언을 듣고 회개했던 니느웨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예전의 잔인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때, 나훔 선지자가 심판 예언을 외친다.
나훔서에서는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그들의 압제 가운데 고난당하던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담겨 있다.


하박국은 예레미야와 동시대를 사역했던 선지자였다. 하박국은 자신 앞의 현실을 보고 당혹해하며 자신이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신다고 말하며 하나님께 질문하였다. 하박국은 악인들이 의인을 삼키고 있는데도 잠잠하시는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굴절되고 있으며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해진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바벨론) 사람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은 의인을 삼키는 그 바벨론의 멸망도 멀지 않다고 하셨다.
이후 하박국은 이에 대해 악인이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라고 다시 질문한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정한 때가 있으며 바벨론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한편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신다. 이후 하박국의 기도 내용이 있으며 하박국은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스바냐는 하박국 예레미야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사역자였다. 스바냐(츠파냐후)라는 뜻은 여호와는 숨겨주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스기야의 현손, 즉 왕족이었던 스바냐는 우주적인 심판을 예언하였다. 스바냐서는 성경에서 제일 무서운 책이기 때문에 설교하시는 분이 거의 없다.
스바냐의 예언은 먼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선언에서 시작되어 점차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고 멸절하실 날이 온다고 했다. 그때에 하나님은 모이기를 힘쓰는 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 여호와를 찾는 자, 겸손과 공의를 구하는 자를 숨겨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지나고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조서가 선포되자 많은 유대인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귀환공동체는 의욕적으로 성전 재건을 시작하지만 닥쳐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 앞에 곧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성전 재건은 16년 동안 중단되었다. 이때 학개 선지자가 다시 성전 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백성들을 설득하였다.
학개 선지자는 어릴 때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갔다가 돌아온 민족의 어른이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성전 건축공사가 중단된 것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 같다고 떠들어댔다. 또 어떤 이들은 지도자들의 무능한 탓이라고도 했다.
학개 선지자는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은 지금도 함께 하시고 있으며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때가 오히려 늦었고 지연되고 있다고 질책하였다. 그러므로 흉년이 들고 재앙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건축하고 있는 전이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정성을 다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하라고 격려했다.


스가랴의 이름은 여호와는 기억하신다. 기억하시는 여호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스가랴는 학개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으며 학개는 민족의 어른이었지만 스가랴는 젊은 선지자였다. 그는 젊은 날에 소명을 받았고 참담한 현실 앞에서 예루살렘의 과거와 현지와 미래를 보면서 비젼을 바라보았다.
스가랴가 본 이상은 그 당시 참담했던 예루살렘이 중건될 것과 메시야가 와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것을 보았다 . 또한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하여 감람산에 재림하실 것을 미리 내다 보았다.
스가랴 선지자도 학개와 같이 성전 건축을 게을리하는 백성들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말에 감동된 백성들은 다시 성전 재건 작업을 시작하였고, 두 달 후에 그 기초를 완성하게 되었다. 스가랴서는 백성들에게 책망하고 꾸중하는 부분이 없다.


말라기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뒤에 나타났던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였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형식주의에 빠져있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번폐스러운 일로 생각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정성도 존경도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다 도적질하였고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았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귀환 공동체에 만연한 이러한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셨으나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말대꾸를 했다. 그들은 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경과 불신앙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나 이스라엘을 회개하지 않았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아갔지만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과 완악한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실을 말씀하셨으나 이스라엘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말씀하시고 400여년 동안 침묵하셨다.
 

 

 

출처 : 일만감사 블로그에서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im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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