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4. 요한복음 묵상노트(완료)

요한복음 10장 16 – 21 올바른 신앙의 자세와 틀

smile 주 2024. 5. 17. 06:17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예수님의 권세

16 내게는 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인도해야 한다.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한 목자 아래서 한 무리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나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18 아무도 내게서 목숨을 빼앗을 사람이 없고, 다만 내 스스로 생명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세도 있고, 그것을 다시 찾을 권세도 있다. 나는 이 계명을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19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 또다시 편이 갈리게 되었습니다.

20 이들 중 많은 사람이 그가 귀신이 들렸다”고 하거나 그가 미쳤다. 너희가 왜 그 사람의 말을 듣느냐?”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21 그러나 이것은 귀신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귀신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강요가 아닌 자발적 순종과 헌신

예수님은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도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유대인을 넘어 모든 족속이 예수님의 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것은 강요에 의한 일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목숨을 힘으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우리를 위해 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을 드릴 때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셨던 것처럼 나도 주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헌금을 드리거나 봉사를 할 때 마음가짐이 어떻습니까?

주님을 위한 헌신이 희생이 아닌 특권이라는 고백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잘못된 신앙의 틀

예수님이 자신이 양의 문이자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자 주변에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권세와 다시 얻을 권세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서로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려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귀신들린 사람이 시각 장애인을 고칠 수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신앙의 틀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주는 잘못된 신앙의 틀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나의 생각 중에 성경적으로 고칠 틀은 무엇입니까?

성경적인 신앙의 틀을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선한 목자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멘! 본 구절은 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자신의 양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신 예수님은 곧이어 또 다른 대상을 언급하십니다. 그들은 16절 상반절 말씀에 보니까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입니다. 예수님은 특정 그룹을 다른 양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은 하나의 장소입니다. [이 우리]입니다. 이 우리는 예수님이 지키시는 양의 우리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다해 지키고 인도하시는 양의 우리 안에 있느냐, 없느냐로 그룹을 분류하십니다. 결국, 이들은 유대인이 배척했던 이방인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이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었다고 믿었던 이방인들을 향해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16절 말씀 중반 이하에 보면 [이들 역시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기록하십니다.

 

예수님은 2가지 사실을 선포하십니다.

첫째로, 지금 당장 내 양의 우리 안에 있지 않은 이방인들 역시 나의 양이다!

둘째로, 내가 그들 역시 반드시 인도하겠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16절 하반절 말씀에서 직접 선포하십니다.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멘! 이방인도 목자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역시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결국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메시야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한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가고 오는 모든 세대와 모든 지역의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인도하시지 못할 영혼은 없고, 예수님이 다스리시지 못할 이 세상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어떠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영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주변 사람들을 나의 왜곡된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어. 저 사람은 절대 예수 믿을 사람이 아니야, 저 사람 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까 절대 교회 올 사람이 아니야.’ 등등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할 내가 오히려 교회로 들어오는 그들을 막고 있지 않습니까? 시험에 든 자를 회복시켜야 할 내가 오히려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원 못하실 영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정죄하고 판단하는 그 사람도 구원하기 원하시고 능히 하실 수 있는 메시야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큐티하는 우리 모두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상처받는 영혼들이 회복되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를 듣고 유대인들이 격분합니다. 오늘의 본문 19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유대인은 구원을 자신들만의 고유한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그들이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그들의 분노는 예수님을 향한 저주가 됩니다. 오늘의 본문 20절 말씀에서 예수님이 귀신 들려 미쳤다고 입에 담을 수 없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왜곡된 선민사상으로 유대인들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혹시, 내 안에 영적인 우월감이 있다면, 아니 다른 사람을 향한 정죄감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 속히 회개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의 왜곡된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오직 선한 목자 예수님만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경험으로 다른 영혼을 판단하지 말고 한 영혼을 주님 품으로 이끌기 원하시는 주의 심장을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cV_iX3iortM?si=xHlI8rsK8T0e17EB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 밖의 다른 양들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면 한 무리가 되어 구원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시는 것은 다시 얻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습니다. 이 명령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며     이 계명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받았다고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 간에 서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 편에서는 귀신이 들렸거나 미쳤다고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귀신 들린 자가 어떻게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자를 고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피공로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습니다. 우리 밖에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한 것임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거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옳은 일을 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아 떠나시는 선하신 목자 예수님! 그 옛날 선한 목자들이 양 떼를 푸른 초장에 인도하며, 그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서 그들을 보호했던 것처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을 채워 주시고,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영혼 구원 사역에 기꺼이 함께 동참하며, 주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