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다
1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당한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도들을 빼고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습니다.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묻어 주고 그를 생각하며 통곡하였습니다.
3 한편,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남자든 여자든 닥치는 대로 끌어 내어 감옥에 넣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스데반이 순교한 바로 그날, 예루살렘에 있던 성도들은 고통스러운 박해를 받았고,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핍박을 피해 흩어졌던 사람들을통해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b)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성도들이 낙심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명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어려움이 도리어 선한 역사를 이룬 것을 본 적은 언제입니까?
나의 삶에서 성도의 사역을 확장해 나갈 영역은 어디입니까?
박해자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경건한 성도들이 스데반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하고 그를 위해 애도했습니다. 당시에 공회의 재판으로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을 위해 우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사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잔혹하게 교회를 핍박하고 잔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데반을 이어 이방에 복음을 전할 그릇으로 사울을 택하셨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유대주의자였습니다. 믿음이 없고 복음에 강하게 적대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사울과 같은 변화를 기대하며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강한 대적 앞에서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변화를 기대하며 신앙을 가지도록 기도해 줄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스데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큰 핍박을 몰고 옵니다. 앞서 국소적이던 핍박이 광범위하게 퍼지죠. 율법에 헌신한 젊은 랍비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제부터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는 왜곡된 종교적 신념에 전부를 겁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을 공격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죠.
이처럼 신앙이 왜곡되면 공허한 신념만 남게 됩니다. 내용보다 형식, 안보다 밖을 더 중시하게 되죠. 교회가 종교적 신념만 남게 되면, 종교기관이지 더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거룩함으로 세상을 설득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세속화되지 않도록, 늘 깨어 경계해야합니다. 부흥 일변도를 달리던 예수 공동체가 순식간에 존립의 커다란 위기를 맞습니다. 핍박은 사도들을 제외한 성도들을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온 땅으로 흩어버립니다.
핍박의 타깃은 스데반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가 헬라파 유대인이었기에 핍박은 일차적으로 헬라파 유대인들을 겨눕니다.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그저 폭력으로 밀어붙이면 단숨에 예수 운동이 와해될 줄로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분명 핍박이 성도들을 흩었지만, 사실 ‘스데반의 죽음, 그 죽음이 몰고온 핍박, 그리고 그 핍박으로 인한 흩어짐’ 이 모든 일은 성령의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1절 후반부를 보겠습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 동사 “흩어지니라”는 ‘흩어 뿌리다’라는 뜻의 헬라어 ‘디아스페이로’의 수동태입니다. 다시 말해 ‘흩어 뿌려졌다’는 말이죠. ‘뿌리다’의 문법적 주어는 “핍박” 또는 ‘핍박을 일으킨 종교권력자들’입니다. 하지만 이 동사가 내포하는 암시 주어는 다름 아닌 ‘성령’입니다. 이렇게 동사의 암시 주어가 신적인 존재일 경우, 그 것을 ‘신적수동’(Divine Passive)이라고 부릅니다.
누가복음 8장 ‘씨뿌리는 비유’에서 농부가 한 줌의 씨를 쥐고 바람에 흩뿌려 밭 전체에 씨가 골고루 안착하듯, 성령께서 복음의 씨앗을 품은 성도들을 유대, 사마리 아,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 심지어 저 남부 북아프리카 구레네까지 흩으십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자리가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신앙의 태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모두가 꿈꾸고 바라는 현실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지금의 현실이 자신이 기대하는 현실이 아니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실로 받아들이며 상황과 무관하게 남다른 기대감을 갖고 마주합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응당 후자의 관점에서 삶의 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려고 내게 허락하시고 마련하신 현실이다! 나는 원치 않은 현실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 현실로 뿌려졌다!
생명의 복음을 싹 띄우도록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보내셨다!” 바로 이렇게 “보냄 받은 자”라는 사명의식이 있어야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믿음으로 이해하고 또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죠.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책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세상 속에 툭~ 던져진 존재”로 정의하면서, “도대체 누가, 왜 나를 던졌는가”에는 전혀 답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알 필요도 없다 하죠. 그냥 던져졌으니 각자 알아서 살라는 무책임한 정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왜 우리를 지금의 현실에 던졌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결코 ‘억울하게, 재수 없게, 실수로 던져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목적을 가지시고 정확히 의도와 목적으로 “지금/오늘/여기”에 우리를 뿌리셨습니다. 핍박자 사울은 대제사장의 적극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교회를 잔멸하는 일에 더욱 헌신합니다. 예루살렘 내에 헬라파 유대 성도들을 잡아 남녀를 불문하고 옥에 가두었고,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 스데반의 장례가 치러집니다.
예루살렘교회에 핍박과 슬픔이 뒤덮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진 제자들은 가는 곳 마다 생명의 말씀을 뿌립니다. 이처럼 핍박이 오히려 복음의 씨앗이 예루살렘 담장을 넘게하는 바람이 된 것, 오늘 하루도 성령이 뿌리신 삶의 자리에서 어떠한 상황도 우리가 마주하며 능히 복음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거룩한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예수 생명의 복음을 품고 살아감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신앙의 목적이 겉의 화려함이 아닌 내면의 거룩함에 있게 하옵소서. 주어진 현실을 올바로 해석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 보냄 받은 오늘의 현실을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youtu.be/NN8hQeQ88WU?si=AruoAUWt3UkBA7jI
(오늘 본문의 배경)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3절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초기 교회가 박해를 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 역사에서 첫 번째 순교 사건으로 기록되며, 이로 인해 큰 박해가 시작되었으며, 이 박해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지며 복음이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이 박해는 사울(후에 바울)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훗날 그가 회심하여 복음 전파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가 큰 박해를 받아 흩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을 잡아 가두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어 감옥에 넣었습니다. 이로 인해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이러한 박해가 오히려 복음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박해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흩어졌지만, 이는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사울의 박해는 후에 그가 변화되어 복음의 위대한 사도가 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의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복음이 확산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오지만, 그 속에서도 주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초기 교회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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