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예루살렘 회의가 열리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에서 안디옥으로 와서 이방인 형제들에게 “모세가 가르친 풍습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2 이 사건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과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3 바울과 그 일행은 교회의 전송을 받아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가면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4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자,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일하신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5 그런데 바리새파에 속해 있다가 신자가 된 사람들 중에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6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의논하러 모였습니다.
7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얼마 전에 여러분들 중에서 나를 선택하시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그들도 이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신 것을 여러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8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과 똑같이 그들에게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하셨습니다.
9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나 모두 질 수 없었던 짐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지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십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사도들은 1차 전도 여행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이방인에게도 나타남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할례'의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나타내기 위해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로 이방인에게 선교를 하고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인들 사이에 큰 의견 차이가 일어나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의견이 부딪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우리를 한 몸 된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중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만나
내 생각과 다르기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다
이방인의 할례에 관한 문제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립니다. 이.는 교회가 세워지고 확장되어 가는 시점에 매우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일, 즉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던 사건을 회상시킵니다(행 10:24-28).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동일하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함에도 할례와 율법을 가지고 다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동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할례 의무가 이방의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기준으로 구원받을 자를 구분한 적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겪었던 세계적인 팬데믹이 그것입니다. 이전에는 국제적인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해도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 것이지요. 단시간에 전 세계로 전염병이 퍼지며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도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을 파송했던 안디옥 교회는 이전에 없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도 폭넓게 복음이 전해지며 이방인 개종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 것이었지요. 본문의 내용을 통해 이러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약에 언급된 모세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며 교회 안에 새로운 문제를 불러 일으킨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교회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4절에 보면 이들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즉, 안디옥 교회를 혼란하게 했던 그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합의된 내용도 아닌 것을 가지고 교회에 논쟁 거리를 던진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던진 화두를 통해 교회 안에서는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행 15:2)”이 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이었지요.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마주할 때, 그것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본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에 제기한 문제는 안디옥 교회 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말을 들으니 아무리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전한 복음의 은혜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유대인인 자신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의견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부분은 둘 중에 누가 옳은가가 아닙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는 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사단은 헬라어로 디아볼레라고 합니다. 스페인어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디아블로라는 표현이 된 것이지요. 이 단어는 “사이에 무언가를 던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를 던지는 것이 무엇일까요? 서로 간에 비방할 거리를 던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의 속성을 잘 담은 표현입니다. 사단은 안디옥 교회에 서로 간에 다투고 변론할 거리를 던진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다툼과 변론을 계속했다면 안디옥 교회는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참 지혜롭게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자신들끼리 다툼과 변론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뜻하지 않은 문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것들 때문에 누군가와 변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변론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결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론함으로 해결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문제 없이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가 우리 인생을 어렵게 하도록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목숨 값으로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짓누르는 문제를 마주할 때, 그것이 진짜 문제인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그 문제의 본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문제에 지배되는 삶이 아니라, 문제를 딛고 일어서는 복된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문제를 딛고 일어서는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신 귀한 삶을 살아가며 많은 문제들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을 마주하는 상황 가운데서 그 문제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자들로 살아갈 힘을 주옵소서. 우리를 에워싸는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SIJpBNkZCNA?si=Q3Vuc7B2GZXIIj_W
(오늘 본문의 배경)
사도행전 15장 1절에서 11절은 초대 교회의 첫 번째 공의회인 예루살렘 회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유대 율법, 특히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회의는 주후 49년경 예루살렘에서 열렸으며,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중요한 교리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약)
유대에서 온 몇몇 사람들은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큰 논쟁을 벌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이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신 사건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도 할례 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구원이 인간의 노력이나 율법 준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초대 교회가 겪었던 이방인과 유대인 신자들 간의 갈등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 속에서 형식과 본질을 혼동하는 문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본질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는 이를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주신 자비로운 하나님 아버지! 은혜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행위로 돌아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해 주셨사오니 저희가 주님의 보혈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옵소서.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나, 사람에게 멍에를 메게 하지 않게 하시옵고 또한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는 언행을 삼갈 수 있도록 지혜와 명철을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르게, 그리고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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