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22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자기들 중에서 몇 사람을 뽑아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뽑힌 사람들은 신자들 가운데서 지도자로 있던 바사바라고 불리는 유다와 실라였습니다.
23 그리고 이 사람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장로들이 안디옥과 시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모든 이방인 형제에게 문안드립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여러분에게 가서,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해서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리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몇 사람을 뽑아 사랑하는 형제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26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자기 목숨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쓴 편지의 내용이 사실임을 분명히 하려고 그들과 함께 유다와 실라를 보냅니다.
28 여러분에게 다음에 말하는 요구 사항 이외에 다른 어떠한 짐도 지우지 않는 것이 성령과 우리의 생각입니다.
29 우상에 바친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마십시오. 그리고 음란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만 지키면 잘 될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이방 그리스도인을 향한 주요 지침이 결정됐습니다. 더 이상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은 유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사실을 알리고자 대표자들을 안디옥 교회로 보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짐은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주신 율법 역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사람이 주는 거짓된 교훈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일생과 영생을 기쁘게 합니다. 혼란을 주는 세상의 짐은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복음의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혼란을 주는 세상의 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복음의 짐으로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줄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말씀대로 행할 때 일하시는 성령님
예루살렘 공의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요긴한 것들"(28절)외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짐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즉, 네 가지 금기 사항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교제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조치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지켜 행하면 "잘되리라"(29절)라고 축복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잘됨'은 만사형통이나 세상적인 성공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성도로 하여금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셔셔, 세상과 구별된 신앙적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행할 때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성장케 하시는 성령님을 사모함으로, 화목한 교제와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거룩한 생활이 구원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세상의 잘됨이 아닌 영혼의 잘됨을 위해 더 우선할 일은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 할 수록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큰 목소리로 뜨겁게 기도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있지만, 또 반대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해야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은 우리를 건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양성으로 포용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과 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안디옥 교회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다양성의 이름으로 포용할 수 없는 사람들과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복음에 대해 옳지 않은 시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본문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여기서 말하는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간 사람들 중 일부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교회 안에 다툼과 비방을 일으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주장 자체도 복음적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주장으로 인해 교회 안에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의 시각과 주장은 어느 권위있는 자의 지시나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지역 교회에 가서 가볍게 전함으로 교회 안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게 했던 것이지요.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기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선하고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일이 질서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라십니다.
둘째,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5-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예루살렘 공의회는 공식적으로 안디옥 교회로 믿음의 사람들을 파송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나바와 바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참 은혜롭습니다.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라고 칭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논쟁 거리를 던져주었던 그 “어떤 사람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말로는 누구나 복음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자기 자신보다 복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복음의 위대함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던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고집을 하나님의 권위 앞에, 복음 앞에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과 선입견, 이기심도 내려놓지 못하는데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과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귀한 일꾼들의 차이는 다른 것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더 열심을 낸다고, 더 많이 안다고, 더 많이 헌신한다고 귀한 일꾼이 아닌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내 생각과 고집을 기꺼이 내려놓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사랑을 늘 기억하고 살아가게 하여 주소서.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의 작은 것을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고 내려놓으며 주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k9o6Myz-hC4?si=Z1Jv4NPW77LeorDr
(사도행전 15장)
사도행전 15장은 ‘예루살렘 공의회 장’라고 불립니다. 그 공의회의 주제는 ‘주님을 영접한 이방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할례 문제’였습니다. 그 공의회의 의장이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유대인 그리스인들에게 더이상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최종판결을 내렸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더이상 오해하지 말라는 의미였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들이 혐오하는 일을 삼갈 것을 촉구한 것은 불필요하게 유대인들에게 오해를 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
사도행전 15장 22절에서 29절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의 후속 조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결정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공존하는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이 주로 모여 있는 교회였기에, 예루살렘 공의회의 이 결정은 이방 신자들과 유대 신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복음의 확장을 돕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약)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이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사도들과 장로들이 바울, 바나바와 함께 유다와 실라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혼란을 준 자들이 사도의 권위 없이 행동했음을 알리고, 안디옥 교회가 염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편지로 전달했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하라는 간단한 규정만을 지키면 된다고 명확히 했습니다. 이 편지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었으며,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중요한 깨우침은 교회가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함께 결정하고 화합하는 모습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우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은 규칙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교회가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주신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자격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초대 교회의 최대의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배웁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를 생각하고 배려하듯이, 일치와 화해를 위하여 배려하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주장하고 명령하기 보다 화평과 연합의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자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 은혜를 실천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만나 아침 묵상 > 신약5. 사도행전 묵상노트(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15장 36 – 41 다름으로 인한 갈등 (6) | 2024.09.12 |
---|---|
사도행전 15장 30 – 35 공동체를 사랑하라 (2) | 2024.09.11 |
사도행전 15장 12 – 21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14) | 2024.09.09 |
사도행전 15장 1 – 11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 (12) | 2024.09.08 |
사도행전 14장 19 – 28 박해 속에서 피어나는 복음의 열매 (10)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