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2. 마가복음 묵상노트

마가복음 11장 1 - 11 겸손의 왕,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입성

smile 주 2025. 4. 13. 07:05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다
1 <예루살렘에 들어가심>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근처, 곧 올리브 산 가까이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두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너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가면, 지금까지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이리로 가지고 오너라.

3 누가 너희에게 왜 이러십니까?’라고 물으면,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곧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4 제자들이 마을로 들어가서 길 쪽으로 있는 문에 묶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나귀를 풀었습니다.

5 서 있던 사람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나귀를 풀다니,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6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허락해 주었습니다.

7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겉옷을 나귀 위에 얹었고, 예수님께서 거기에 앉으셨습니다.

8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펴서 길 위에 펼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꺾은 나뭇가지를 펼쳤습니다.

9 예수님 앞에서 걸어가던 사람들과 뒤에서 따라가던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복이 있다!”

10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복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성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둘러보신 후, 날이 이미 저물었기 때문에 열두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로 돌아가셨습니다.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https://youtu.be/GUeNivaKeyA?si=lWTWZFt_4qYiT0XR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죄와 사망에 매여 있던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십자가와 부활 사건만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내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지 않고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내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자신을 돌아봐야 돼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믿음과 따름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내 삶을 맞추고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일까요?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제자 두 명을 보내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새끼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게 하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그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예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자 만왕의 왕이심에도 화려한 마차나 멋진 말을 타지 않으셨습니다. 작고 초라한 새끼 나귀를 타고 성전에 들어가셨어요. 자신을 지극히 낮추신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섬김 받는 것을 큰 자랑이자 기쁨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이런 허영심은 반드시 교만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멸시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여기세요. 여러분, 우리는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세상 사람들을 본받아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돼요. 빌립보서 2 3절의 말씀처럼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사람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예수님을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칭송했습니다. 본문 8절과 9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여기서 호산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줄 메시야로 여기며 힘껏 찬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에 예수님이 힘없이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가시자 이 군중들은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고 조롱하기까지 했어요. 이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은 평화와 번영을 누렸겠지만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정한 구원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또 그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때로 우리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아니 이미 가장 좋은 선물인 영생과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상황과 느끼는 감정에 상관없이 예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장 높은 왕이심에도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겸손의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허영과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게 하옵소서. 때로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이끄시는 길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겸손의 왕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벳바게와 베다니라는 마을을 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마을로 보내셔서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새끼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새끼 나귀를 데리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었고 예수님은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셨음에도 화려한 마차나 큰 말이 아닌 작고 초라한 나귀를 타고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낮추신 예수님의 모습은 스스로 한껏 높이는 세상의 군왕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나의 겸손 지수를 점수를 매기면 몇 점인 것 같습니까?

권력을 쥐면 겸손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을 열망하는 목적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많은 사람이 '호산나'를 외치며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가시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여 예수님을 저주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을 높였던 이유는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실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 자는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만 주님을 열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해방이나 경제적인 도움같이 일시적인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구원을 베푸십니다. 죄로 인한 영원한 형벌로부터 건지시며 영생을 주시는 구원입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주님의 구원을 열망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참된 성도가 주님을 열망하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

마가복음 11장 1-11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직전,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해당하며, 지리적으로는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를 출발하여 예루살렘 성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성경적으로는 구약 성경 스가랴 9장 9절의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겸손한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요약)

마가복음 11장 1-11절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 1-3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벳바게 마을로 가서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시며,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 4-6절: 제자들은 말씀대로 나귀를 발견하고 가져오자,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반응하여 허락합니다.
  • 7-8절: 제자들이 나귀에 옷을 얹고 예수님을 태우자,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환영합니다.
  • 9-10절: 앞서 가고 뒤따르던 무리는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복이 있으라”고 외치며, 다윗의 나라가 오는 것을 찬송합니다.
  • 11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 성전에 들어가시어 둘러보시고, 날이 저물자 베다니로 나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오늘 말씀은 겸손과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모습은 세상의 권력과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인 겸손과 평화를 보여줍니다. 또한, 제자들이 즉각적으로 순종한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신뢰하며 행동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더불어, 사람들의 찬송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할 이유를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낮아지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진정한 영광은 겸손 속에 있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오늘의 기도)

겸손히 나귀를 타고 오신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겸손히 오셨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순종과 찬양의 삶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께서 쓰시겠다는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히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전하며 겸손히 행하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더 깊은 묵상을 위하여 :  사순절 절기 ) 

1. 사순절 주요 절기 일정 (2025년 기준)

  •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2025 3 5(수요일)
  • 종려주일(Palm Sunday)2025 4 13(주일)
  • 고난주간(Holy Week)2025 4 14() ~ 419()
  •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2025 4 17(목요일)
  • 성 금요일(Good Friday)2025 4 18(금요일)
  • 성 토요일(Holy Saturday)2025 4 19(토요일)
  • 부활절(Easter Sunday)2025 4 20(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