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1. 열왕기상 묵상노트(완료)

열왕기상 1장 1 - 10 하나님의 사명을 따르라

smile 주 2023. 8. 8. 06:26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하다

1  다윗 왕은 이제 나이가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신하들이 이불을 많이 덮어 줘도 그의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

2 그래서 신하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젊은 여자를 데려다가 왕의 시중을 들게 하겠습니다. 그 여자가 왕의 품에 누우면, 왕의 몸이 따뜻해질 것입니다.”

3 신하들은 이스라엘 온 땅을 누비면서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찾아서 왕에게 데려왔습니다.

4 아비삭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 여자는 왕의 시중을 들고 왕을 섬겼으나, 다윗 왕은 그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5 다윗에게는 아도니야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학깃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를 높이며나는 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전차와 말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호위하는 병사 오십 명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6 그런데도 다윗 왕은왜 왕처럼 행세하고 다니느냐?”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해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압살롬 바로 밑의 동생이었으며, 매우 잘생겼습니다.

7 아도니야는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의논했습니다. 그들은 아도니야를 도왔습니다.

8 그러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예언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 왕을 특별히 경호하는 사람들은 아도니야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9 아도니야는 양과 소와 살진 송아지를 잡아 엔로겔 샘 가까이에 있는 소헬렛 바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형제들, 곧 다윗 왕의 다른 아들들을 초대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과 장로들도 초대했습니다.

10 그러나 예언자 나단과 브나야와 자기 아버지의 특별 경호대와 자기 동생 솔로몬은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각 때에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사명

다윗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다윗은 스스로 이불을 덮지 못할 정도로 노쇠했습니다. 이때 다윗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사방 영토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데려와 다윗과 같이 있게 했습니다.다윗의 건강을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시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연약해진 틈을 타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를 높이며 왕의 자리를 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시기는 다윗 이후의 다음세대를 세워야 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인생의 각 때에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하루가 됩시다.

 

교만의 틈을 타 파고드는 죄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반란을 준비합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자신의 권력과 사람을 모읍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을 위한 병거와 기병, 그리고 호위병 50명을 준비합니다. 그러고는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 양과 소, 살찐 송아지로 잔치를 준비합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편으로 삼고자 하는 동생과 신하 된 모든 유다 사람을 초청합니다. 아도니야의 교만과 욕심은 다윗을 통해 하나로 통일된 이스라엘을 다시 분열로 이끕니다. 교만은 분열을 낳습니다. 교만은 죄이며, 그 끝에 분열을 불러옵니다. 반면 겸손은 공동체를 화목하게 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하나 되게하는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만나 말씀 묵상을 통해서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인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야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인간이 교만해지지 않는다고 역설합니다. 여러분! 이제 다윗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1절을 보세요. “다윗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다윗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다윗을 받들어 모시도록 하기 위해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다윗에게로 데리고 옵니다. 이 소식을 다윗의 아들 중 한 명인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듣고는 내가 왕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구요. 아버지 다윗의 의중도 확인하지 않고요.그만큼 아도니야가 교만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교만의 속성, 특징이 무엇일까요?

첫째, 지나친 자기 확신도 교만의 증거입니다.

아버지 다윗이 노쇠하자 아도니야가 스스로를 높입니다. 이제 내가 왕이라고 선언해 버립니다.자신감이 넘칩니다. 6절 상반절을 보면 아도니야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여기서 용모라는 것은 단순히 외모, 생김새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용모라는 것은 아도니야의 능력까지 아우르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다윗도 아도니야를 말로 섭섭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무랄 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아도니야가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기 확신에 갇혀버립니다. 자기 확신에 갇히면 내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에 대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질 풀과 같다고,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안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천하의 다윗도 나이가 들면서 자기 몸 하나 따뜻하게 하지를 못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어리석은 것이 자기 확신입니다. 내 능력에 대한 확신, 내 미래를 내가 만들어간다는 확신, 자기 확신이 곧 교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확신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안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오.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기 확신을 내어버리고, 하나님만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유력한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도 교만의 증거입니다.

아도니야가 내가 왕이 되리라고 선언한 이후에 유력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7절을 보면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모의에 동조합니다. 스루야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비아달은 종교 분야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런 두 사람을 얻었을 때 아도니야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이제 왕이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만큼 스루야와 아도니야를 믿고 의지했던 겁니다. 그런데 정작 누가 아도니야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아도니야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도니야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아도니야의 모의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력한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시면 소용없습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길을 여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유력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그런데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그러므로 유력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일을 이루시고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자기 확신이라는 교만의 함정에서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유력한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는 교만한 습성도 내어버리고,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nrTdhu_-8nI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다윗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다윗은 스스로 이불을 덮지 못할 정도로 노쇠했습니다. 이때 다윗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사방 영토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데려와 다윗과 같이 있게 했습니다. 다윗의 건강을 위함이었습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반란을 준비합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자신의 권력과 사람을 모읍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을 위한 병거와 기병, 그리고 호위병 50명을 준비합니다. 그러고는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 양과 소, 살찐 송아지로 잔치를 준비합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의 편으로 삼고자 하는 동생과 신하 된 모든 유다 사람을 초청합니다. 아도니야의 교만과 욕심은 다윗을 통해 하나로 통일된 이스라엘을 다시 분열로 이끕니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 지금 내 인생의 시점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 내 능력을 자랑하거나, 자주 교만하게 될 때는 언제입니까?

- 오늘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감당했던 역할을 다음 사람이 잘 감당하도록 준비해 주는 것입니다. 위대한 다윗도 후임 왕을 선임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 아도니야가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은혜로 이어지도록 자신을 낮추고 믿음의 사람들을 키워가는 선한 역할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한 평생을 잘 달려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말년에 자신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한평생 지켜왔던 복음의 명예를 실추케 하는 일들이 적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다음 사람이 그 일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교만은 죄이며, 그 끝에 분열을 불러옵니다. 반면 겸손은 공동체를 화목하게 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다윗의 가계도)

 

 

(아도니야의 주변)  

아도니야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이복동생 다말을 추행하였다가 다말의 친 오라비이자 다윗의 셋째아들 압살롬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둘째 아들은 다니엘이라고도 불린 길르압인데 그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는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조용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셋째아들 압살롬도 이제 없기에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실질적으로 장자와 다름없으며,왕위 계승 서열 1순위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자신을 위해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할 만큼 힘을 가지고 있었고, 준수한 용모에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인 영역에서 다윗의 충신 군대장관 요압과 종교적인 영역에서 영향력 있는 제사장 아비아달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요압은 다윗 시대에 든든한 군대장관이었고, 충성스러운 신하였습니다. 훌륭한 통솔력과 지혜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복수심과 정의감으로 인해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아브넬과 압살롬을 죽이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솔로몬에게 이런 요압을 경계 하도록 조언하였습니다.

또한 다윗 시대에 대표적인 제사장은 사독과 아비아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명인 아비아달의 지지도 이끌어 내었습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아도니야의 왕위 계승은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고, 아도니야도 자신이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에도 솔로몬을 제외한 다른 아들은 이미 아도니야를 지지하였고, 많은 신하들은 아도니야 편에 섰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권력욕에 빠져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 아도니야의 편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아직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솔로몬을 지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윗이 밧세바를 범함으로 하나님께 범죄 하였을 때 다윗을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면서 구성한 30명의 용사가운데 포함되어 있던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등의 사람들이 솔로몬의 편에 섰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인생을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자기 확신이라는 교만의 함정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뵙는 순간이 가까워져 오면 올수록 더욱 주님을 깊이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만을 높이는 겸손한 주님의 자녀들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