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25. 예레미야애가 묵상노트(완료)

예레미야애가 3장 1 – 18 이웃의 고통과 함께 하는 성도

smile 주 2024. 1. 5. 05:21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자기 백성을 치시는 여호와

1 <고난의 뜻> 나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진노의 매를 맞아 고난당하는 사람이다.

2 주께서 나를 어둠 속으로 데려가시고

3 하루 종일 손을 드시어 나를 치고 또 치셨다.

4 내 살과 살갗을 약하게 하시고 내 뼈를 꺾으셨다.

5 슬픔과 아픔으로 나를 에워싸시고

6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나를 어둠 속에 앉히셨다.

7 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가두시고 무거운 사슬로 매셨다.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청했으나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9 돌로 내 앞길을 막으시고 내 삶의 길을 어렵게 만드셨다.

10 주께서는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같으시며 숨어서 기다리는 사자와 같으시다.

11 나를 그릇된 길로 이끄시고 갈기갈기 찢으셔서, 쓸쓸한 곳에 내버려 두시며

12 나를 과녁으로 삼아 활을 당기신다.

13 주께서 화살통의 화살로 내 심장을 맞추셨으니

14 내가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들은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며 나를 놀려 댄다.

15 주께서 나를 쓴 것으로 배 불리시고 고통으로 채우셨다.

16 주께서 자갈로 내 이를 부수시고 나를 재 속에 밀어 넣으셨다.

17 이제는 내게 평안이 없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잊어 버렸다.

18 나는 이제는 힘이 다 빠졌다. 여호와께서 도와주시리라는 희망도 사라졌다”라고 말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고통에 함께하는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통해 남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박해했습니다. 반면, 느부갓네살왕은 바벨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예언한 예레미야에게 극진한 대우를 해 주며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39:11-40:6). 예레미야는 재난을 피하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백성을 비웃고 비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가 받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했습니다(1). 하나님이 백성 전체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세우셨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이웃의 고통과 죄악의 문제를 자신의 아픔처럼 끌어안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예레미야가 다가올 재난을 알고도 피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준비하지 않은 자의 최후

남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심판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에 참혹하게 찢긴 자, 노련한 사냥꾼이 쏘는 화살에 급소를 꿰뚫린 자와 같이 파멸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부한 자가 맞이하게 될 최후입니다. 심판의 날은 도둑같이 임할 것입니다( 16:15). 그때에는 복음을 멸시한 대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이미 늦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가 처했던 심판을 통해 우리에게 한시바삐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만나

오늘 내가 남유다의 최후에 대한 말씀을 보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순종하면 대체로 좋은 것 받을 것이 기대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예레미야는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직면합니다.

1절의지파, 을 의미하는 단어의 번역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서려 있는 엄격함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따라온 예레미야가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위와 법에 기초하여 남국 유다를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예레미야는 고난과 어려움, 환란을 목격합니다. 보고 싶어 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인도에 순종했는데, 눈에 고난이 보입니다. 빛이 아니라 어둠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했다고 좋은 것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의사라면 환자를 만날 것이고, 유능한 상담가일수록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내담자를 도울 것입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종일 길을 가는데, 장면이 자꾸 뒤집힙니다.

생명의 길일 것 같았는데 사망의 길이 되고, 기회가 주어진 줄 알았는데 기회가 선택되지 않습니다. 몸살이 납니다.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뼈마디가 쑤십니다. 담즙과 수고의 집에서 삽니다.

집에 들어오면 쉼과 평안함이 있어야 하는데, 쓴 기가 올라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집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집입니다. 혹독한 한파가 몰려온 어느 겨울밤에 정전으로 추위와 어둠 가득한 집이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 어둡습니다.

이 집을 살펴보니 감옥입니다. 나갈 수 없습니다. 놋 사슬은 점점 더 무거워집니다.

인도 따라 하나님 손잡고 왔는데 감옥에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있던 바울과 실라가 생각납니다.

도우라 해서 도우러 왔고 도왔는데, 때리더니 깊은 옥에 가둡니다.

감옥에서 나가고 싶어 외치지만 듣는 자 없습니다. 들을 자도 없습니다.

방음이 잘 되는 감옥이군요. 자세히 보니 보통 감옥이 아닙니다.

다듬은 돌로 쌓아 올린 철옹성 감옥입니다. 길이 좁고 담이 높아 탈옥은 꿈조차 꾸기 어렵습니다.

도망쳐도 살기 어렵습니다. 곰과 사자가 간수이기 때문입니다.

나갈 수도 없지만 나가면 찢길 것입니다. 나갈 수도 없지만, 나가면 죽습니다.

찢겨 죽습니다. 나가 봐야, 공감하고 반겨줄 사람도 없습니다. 함정에 빠진 사냥감이 된 느낌입니다. 이제는 화살을 맞고 죽을 일만 남았네요. 그런데 화살이 날아와 신장에 박힙니다.

즉사하지는 않지만 치명적입니다. 함정 안에서 화살 맞은 사냥감 같은 나를 보고, 동족이 웃습니다. 노래합니다. 내 양식은 쑥입니다. 그나마도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부릅니다. 이가 부러지고 재에 덮입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스트레스로 치아가 깨집니다.

쓰레기 더미 안에 있는 전기밥솥 꼴이 우습습니다. 쓸모없어 환영하는 이 없습니다.

나는 버림받았습니다. 영혼에는 평안이 없고 주변에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망했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하나님께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은 감옥이 되고 함정이 되며 내가 조롱거리 사냥감이 되었다면 어떤 기분이 드시겠습니까?

왜 예레미야가 감옥에 있게 되었을까요? 죄인들에 둘러싸였기 때문입니다.

왜 함정에서 화살을 맞게 되었을까요? 사냥꾼들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에게 복음을, 사냥꾼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니 감옥과 함정이 그의 거처가 되었군요.

혹시 지금 계신 곳이 감옥과 함정 같으실까요? 그러시다면 순종하지 않는 자기 백성에게 둘러싸이셨던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레미야를 떠올려 보십시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 사랑하는 종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느껴보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셨는데, 기대하지 못한 고난을 만나셨습니까? 고통스러우십니까? 그렇다면, 고통의 실체와 고통의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느끼고 평가해 보십시오. 피하지 말고 하나님을 힘입어 직면해 보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o23e7L2e9_E?si=YYSdezjxWsvWD60m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선지자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치심으로 자신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뼈를 꺾으셨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시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활을 당기시고 이스라엘로 과녁을 삼으셨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심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조롱 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날 때 이방인에게 수치와 조롱 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행하시어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조약돌로 이를 꺾으셨으며 재로 덮으셨다고 애곡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극심한 괴로움과 고통의 상황에 처하였음을 진술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부한 자가 맞이하게 될 최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과녁으로 삼으셨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제 유다를 그분의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심판하시기를 작정하셨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에서는 더 이상 평강도 복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는 날 자체가 저주이며 고통인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기회를 놓쳐버린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 버렸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직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긍휼하심을 베푸실 때에 바르게 행하여 그분의 뜻을 살피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루살렘이 망하게 된 것과 유다 백성이 고통받게 된 것이 예레미아의 잘못과 죄 때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아 선지자는 유다의 죄를 자기의 죄로 인식하고 민족의 죄악을 나의 죄로 고백하며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면서 주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또한 이러한 어려움 당하게 된 아주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속에 묻어있는 죄악의 습성들을 온전히 제거하게 하시고, 정금같이 단련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민족의 죄악을 품고 기도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시옵소서. 기도의 통로가 막히지 않게 날마다 깨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