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성실하신 하나님
19 주님, 제 고난과 제 괴로움을 기억해 주십시오. 쓰라림과 고통을 기억해 주십시오.
20 제가 모든 것을 기억하므로 제 마음이 몹시 슬픕니다.
21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22 여호와의 사랑은 한결같고, 여호와의 자비는 끝이 없다.
23 주의 사랑과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진실과 참되심이 크도다.
24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산의 전부이시니 내게 희망이 있다”라고 하였다.
25 여호와께서는 주께 희망을 두는 사람과 주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선하시다.
26 조용히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
27 사람이 젊을 때에 자기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
28 주께서 힘든 일을 맡기셨으므로 홀로 앉아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
29 겸손하게 입을 땅에 대야 한다. 혹시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30 때리려는 사람에게 뺨을 대주고, 사람들이 더러운 말을 할지라도 묵묵히 참고 들어야 한다.
31 주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신다.
32 혹 우리를 슬픔에 빠지게 하시더라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33 주님은 백성을 심판하거나 슬프게 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신다.
34 이 땅의 모든 갇힌 사람이 주의 발아래 밟히지나 않을까,
35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억눌림을 당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36 재판을 받는 사람이 억울한 판결을 받지 않을까를 염려하신다.
37 주께서 명령하지 않으시면 그 누가 말로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38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일어난다.
39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죄값으로 받는 벌을 어찌 불평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영원한 소망을 붙들어라
선지자 예레미야는 깊은 절망 속에서 한 가지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20-22절).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즐겨 하지 않으시고 인자가 가득하고 진실하십니다(출 34:6).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아는 자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결코 언약을 저버리지 않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새 언약을 붙드는 자는 영원한 절망 속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리라
예레미야는 심판의 재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때를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난의 자리에 있는 자는 얼굴을 바닥에 붙여 겸손히 자기의 죄를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하고 힘 있는 자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남유다 백성이 당한 고난과 치욕은 온전히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창조 질서를 파괴한 인간이 공의의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성도들을 영원한 축복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는 자는 평강과 은혜를 풍성히 누릴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나는 내가 낮은 위치에 있을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비록 지금 고난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말씀 묵상으로 오늘도 훈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슬프다’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로 ‘에카’입니다.
‘어디에’를 뜻하는 ‘에’와 ‘이처럼’을 뜻하는 ‘카’가 만나, ‘이런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 손잡고 가던 길 끝에 감옥과 함정에 들어선 예레미야가 기도합니다.
“기억해 주세요.” “제 고난과 번뇌와 쑥과 담즙을 기억해 주세요.
저는 기억합니다. 기억하고 움츠립니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발견합니다.
기다릴 여지를 발견합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습니다.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비와, 끝나지 않는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견딥니다.
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크고 놀랍습니다.”
예레미야는 기도를 통해 함정과 감옥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낼 근거를 발견합니다.
눈을 감으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떠오릅니다.
감옥과 함정은 잠시 잠깐이지만, 그분의 인자와 긍휼은 영원합니다. 깨닫고 나니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이 저의 기업입니다. 당신이 제 기다림의 근거입니다.” 아멘.
노래가 나옵니다. “선하신 하나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선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갈구하는 자에게 선하신 하나님!
좋다, 기다리자, 잠잠하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도록!
난 아직 젊다. 멍에야 오너라! 두렵지 않다. 주님 주신 멍에를 메었으니
홀로 잠잠히 견딘다. 바닥에 엎드린다. 하늘을 뒤로하고 땅에 붙는다. 땅을 바라듯 ….
오른쪽 아래턱 뺨을 맞고는 다른 쪽도 돌려댄다. 수치로 배부르다.”
시인은 감옥과 함정 안에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죄수인 듯, 털 깎는 자 앞에 서 있는 어린양처럼. 그분의 인자와 긍휼을 생각하니, 현재의 고난이 곧 끝납니다.
근심하게 하시나, 근심보다 그분의 인자가 더 큽니다. 일부러 고생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대신 받는 고난이었습니다.
온 땅에 있는 갇힌 자들을 위한 부서짐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공의가 펼쳐지는 일이었습니다.
대표 인생이 어그러진 재판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 듯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보시는 듯한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의의 고난이었고 구원을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고난이 사명이었음을, 감옥과 함정이 사명이 수행될 장소였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하나님 손잡고 온 길이 사명의 길로 보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이었습니다.
해로워 보였지만 지극히 선한 구원의 일이 그분 명령 따라 수행됩니다. 결국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 때문에 고난이, 죄 때문에 멍에가, 죄 때문에 감옥과 함정이, 살아계신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레미야의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통 안에서 장차 임할 그리스도의 고난을 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사명의 자리가 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해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분의 제자로 그분의 뒤를 따르다 보니, 함정과 같은, 감옥과 같은 곳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와 달리, 고난의 원형(原型)인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기에, 고난의 이유를 알기에, 오늘도 고백하고 노래합니다. “오늘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분의 멍에를 메고 살아갑니다.” 추운 겨울 주님의 고난을 생각합니다. 그분의 성육신과 다시 오심을 생각합니다. 그분 제자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는 하루가 되도록 도우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V_1ySO9KhZY?si=hfOJ6sCGX6azuu0r
(오늘 본문 요약)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신들이 당한 고통을 기억하여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오히려 소망을 갖게 됨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의 무궁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진멸되지 아니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예레미야는 소망이 아침마다 새로움은 주의 성실하심이 큼이라고 고백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기다리고 구하는 자에게 선을 베푸심을 노래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구원을 베풀 것이니 소망 가운데 주의 구원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는 예레미야의 진술은 하나님께서 환난을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멍에를 풀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님을 밝히며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모든 화와 복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옴을 밝힘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죄로 벌을 받으므로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벌 심판을 받는 것이 그들 자신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현실의 고난에만 집중하던 예레미야가 그 시선을 하나님께 옮기는 순간 소망을 발견합니다. 예루살렘의 참상에 슬퍼하느라 잊었던 하나님의 끝없는 인자와 긍휼을 기억한 것입니다. 죄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근거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라는 희망의 고백을 드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실을 넘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합니다.
(오늘의 기도)
현실의 고난에만 집중하고 있던 예레미야가 그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기는 순간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고, 소망을 발견하고 ‘주님의 사랑은 끝이 없고, 주님의 긍휼 하심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 하심이 큽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그 가볍디 가벼운 우리의 삶을 바라보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도 봅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신 주의 성실하심을 찬양하게 하시옵소서. 주의 자비와 긍휼 하심이 언제나 나를 향해 열려 있음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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