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처절한 심경을 토로하는 다윗의 시
1 <고통을 겪는 사람의 기도-다윗의 시. 지휘자를 따라 “새벽의 암사슴”이란 곡조에 맞춰 부른 노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구원해 주시지 않고, 멀리 떨어져 계십니까? 너무 멀리 계셔서 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2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온종일 불러도 대답이 없으십니다. 내가 밤에도 소리 높여 외쳐 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으십니다.
3 주님은 거룩한 분이시며,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4 우리 조상들이 주를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믿고 의지하니 주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5 그들이 주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자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굳게 믿었던 그들을 주님은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멸시하고 조롱합니다.
7 나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깔보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8 “여호와를 의지하니 그가 구원해 줄 거야. 도와 달라고 부탁해 보지. 그가 너를 사랑하시니 아마 너를 구출해 줄 거야.”
9 주님은 내 어머니를 통해 나를 낳게 하셨을 때부터, 내가 젖 먹는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주님을 의지하게 하셨습니다.
10 태어나던 날부터 나는 주님의 것이었으며, 주님은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때부터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하나님의 응답을 포기하지 말라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밤낮으로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하나님을 붙들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다고 느낄 때 가장 큰 고통에 잠기며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의뢰하여 부르짖는 자에게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십니다(5절). 여기서 '수치를 당하다'로 쓰인 히브리어 단어는 '실망하다', '낙담하다’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는 신실한 응답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때에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느낀 적은 언제입니까?
오랫동안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조롱에도 하나님만 의지하라
시인은 자신이 벌레와 같이 되어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의탁하는 자가 당하는 고난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벌레와 같은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자가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는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조롱에도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멸시에 굴하지 않고 우리의 하나님 되신 여호와를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성도가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과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샬롬!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인생을 평안과 기쁨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실 때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가지 말씀이라는 뜻인 가상칠언이 바로 그것인데요.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 바로 네 번째 말씀일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아람어 문장이 그대로 적혀 있고 해석까지 나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합니다.
육체적 고난이 너무 극심해서 참지 못하여 이런 말씀을 했다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이 그만큼 고통스러웠음을 뜻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인 시편 22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시편 22편 1절 말씀을 인용하셨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깊은 고통의 심연 속에서 ‘나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자신을 버리고, 돕지 않으시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끙끙 앓는 정도의 신음이 아니라 사자가 부르짖는듯한 강렬한 신음을 내뱉고 있음에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서도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밤낮없이 부르짖음에도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절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시인의 고백은 이러한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자신을 돕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기도하고 부르짖었을 때 그들을 건지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지심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신뢰합니다. 라는 고백인 것이지요. 심지어 시인은 지금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그는 자신을 향하여 사람이 아니라 벌레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7절 말씀.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모두의 비웃음을 당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며, 의지의 대상임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 말씀을 십자가 상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끔찍한 고난 끝에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하나님’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고난의 현장, 수치의 자리에서 말씀을 붙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주시고 새 생명을 허락하실 것을 믿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고난을 대처하는 방법,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 신비적인 묵상의 방법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말씀뿐입니다.예수님께서 이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말씀만이 진리이며,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대안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어떠한 대용품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오직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세상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끊임없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종용합니다. 나의 노력으로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말씀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이시오. 통치자이심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cazqazg1cOI?si=b2semoqNDlJ9tHPQ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음을 느끼면서 어찌 버리셨느냐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절규에도 거의 그대로 나타나는 이 구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자의 극심한 고통과 좌절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입니다(1-4). 다윗은 사람들의 극심한 훼방과 조롱을 받고 있지만 다윗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아니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5-10). 다윗이 고백하기를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맡긴 바 되었고, 자신이 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이 시는 사울에게 쫓기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한 시로 보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사정에 대하여 침묵하심에 대하여 간절함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닥친 어려움을 보면서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이 어리석은 것처럼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줄을 믿었습니다. 그는 10절에서 고백하기를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맡긴 바 되었고 자신이 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통과 환란도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변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가 당한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간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이 외쳤던 절규와 예수님의 동일한 외침을 묵상하며, 나의 생애 가운데 이런 외침의 절규가 있을 때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주님 안에 머물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깊은 섭리의 한가운데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열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받아야 할 그 고통, 죄악의 징계를 대신 감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해 신실하게 응답하신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철저하게 배우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심으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확인하는 복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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