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4. 요한복음 묵상노트

요한복음 11장 28 – 37 주님의 사랑에 대한 두 반응

smile 주 2024. 5. 22. 06:3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2)

28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다> 마르다는 이 말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르다가 마리아를 따로 불러 내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 오셔서 너를 찾으셔.”

29 마리아는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30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오지 않으시고, 그때까지 줄곧 마르다를 만났던 곳에 계셨습니다.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마리아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마리아가 일어나 황급히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의 뒤를 따라 나오면서,마리아가 통곡하러 무덤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2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자, 그의 발아래 엎드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저의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33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리아의 뒤를 따라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격한 감정이 들면서 몹시 아프셨습니다.

3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주님.”

35 그러자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36 그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보아라.”

37 그러나 그들 중에는 앞 못 보는 사람의 눈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가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친히 오셔서 부르시는 예수님

마르다는 돌아가서 그녀의 자매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부르신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서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그 발에 엎드렸습니다. 마리아 또한 마르다처럼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지만, 부활과 생명의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죽음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주님께로 나아가면 부활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이신 주님의 부르심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지금 나에게 죽음과 같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보시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앞에 슬퍼하는 인간을 보시며 비통해하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비참한 죽음을 보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죽음을 아파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예수님의 사랑을 오해한 적은 언제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능력이 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도 우리에게 공감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즘 인생을 살아가는데 공감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삭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올리고 좋아요와 같은 다른 사람의 공감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공감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해 주거나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성경은 우리 삶을 완전히 공감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공감은 세상에서 말하는 공감을 넘어서서 사랑까지 이어집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공감하셨는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공감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나사로의 죽음을 바라보며 공감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어려움까지도 공감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에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이르시자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으면 자신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다른 사람들도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통해했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은 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공감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동일한 슬픔으로 공감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시고 눈물 지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슬픔은 무엇인가요? 그 슬픔과 아픔이 아무리 클지라도 예수님께서 공감하시며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편 30 1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에게 공감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의 슬픔을 아뢰고 의지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이 기쁨이 되게 하시며 기쁨으로 띠 띠우도록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우리의 슬픔에 공감하시는 예수님을 믿으셔서 예수님의 공감과 위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은 공감을 넘어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고 우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33절입니다.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나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입니다.

왜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은 인간적인 슬픔뿐 아니라, 사망 권세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들을 눈물을 닦아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나요? 바로 예수님의 공감은 세상의 위로와 공감을 넘어서 우리 고난과 슬픔의 근원까지도 해결하신다는 것입니다. , 죽음의 권세에 매여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시며 우리에게 공감하시고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 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 가운데 겪는 고난을 해결하시는 아니라, 고난의 원인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진정한 위로와 공감은 타인의 아픔과 필요를 공감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에 공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감은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십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에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신 일이 있으실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세요. 그러면 나사로의 죽음도 해결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공감하시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실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그 믿음 가지고 예수님 바라보셔서 오늘 우리 삶에 예수님의 공감과 문제해결의 역사가 가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 삶에 공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근원까지도 해결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혹여나 우리가 그 사람을 잊고 세상의 공감과 위로만 구했다면 용서해 주세요. 오늘 하루 우리에게 공감하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 믿고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행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x7S9ST6VHMU?si=FA49TqoaOr6zIf_P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일곱 개 표적의 마지막 것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기사의 전개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을 때 그곳에는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께서 그곳에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사람들은 예수께서 질병을 낫게 하실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사람들의 애곡함을 보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찍 오셨다면 나사로를 고쳐 주실 것은 믿었지만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경우 믿음이 있다고 하여도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우리가 경험한 한계 안에 믿음의 힘을 머물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같이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심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죽음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슬픔에 공감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허락하시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영안을 열어주셔서 주님이 예비하고 계신 것 들을 볼 수 있게 하시어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풍성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