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압살롬의 최후
16 그러고 나서 요압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대들은 압살롬의 군사들을 뒤쫓는 일을 멈추었습니다.
17 그 후에 요압의 부하들이 압살롬의 시체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은 그 시체를 숲 속의 커다란 구덩이에 던져 넣고 나서 구덩이를 수많은 돌로 메워 버렸습니다. 압살롬을 따르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18 압살롬은 죽기 전에 ‘왕의 골짜기’에 한 기둥을 세워 자기를 스스로 기념한 일이 있습니다. 압살롬은 “내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는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따서 그 기둥을 세웠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기둥은 ‘압살롬의 기념비’라고 부릅니다.
19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말했습니다. “달려가서 다윗 왕에게 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원수를 무찔러 주셨다고 왕에게 전하겠습니다.”
20 요압이 아히마아스에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 오늘은 이 소식을 전하지 마라. 다른 날에도 이 소식은 전할 수 있으니 네가 오늘 이 소식을 전하지 마라. 왜냐하면 왕자가 죽었기 때문이다.”
21 그러고 나서 요압은 어떤 구스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가거라. 가서 왕에게 네가 본 대로 말씀드려라.” 구스 사람은 요압에게 절을 하고 다윗에게 달려갔습니다.
22 그러나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요압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제발 저도 저 구스 사람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요압이 말했습니다. “얘야, 어찌하여 이 소식을 그렇게 전하고 싶어 하느냐?이 소식을 가지고 간다고 해서 상을 받을 것도 아닌데.”
23 아히마아스가 대답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저는 가겠습니다.” 할 수 없이 요압은 아히마아스에게 “가거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아히마아스는 요단 강 골짜기 길을 달려서 구스 사람을 앞질러 갔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스스로 높인 자의 최후
압살롬의 시체 위에 돌무더기가 쌓입니다. 이는 죽은 자가 저주받은 자임을 나타내기 위한 매장 방식이었습니다(참고 수 7:26. 8:29). 많은 이의 환영을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압살롬은 끝내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앞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울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을 높이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참고 삼상 15:12). 자신을 높였던 이들은 끝내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스스로 높이는 자는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잘못된 열심
압살롬의 죽음으로 다윗의 군대가 승리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이 승전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이를 만류합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결코 다윗 왕이 기뻐할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압은 구스 사람을 대신 보냈지만, 아히마아스는 재차 요구하며 들길로 달려 구스 사람을 앞지릅니다. 아히마아스는 죽은 압살롬이 다윗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히마아스는 잘못된 의욕을 가지고
다윗에게 달려갑니다. 혹시 우리도 욕망에 눈이 가려져 잘못된 열심을 내고 있진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일에 열심을 내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주만나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매 순간 겸손한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사무엘하 13장부터 스토리의 빌런은 압살롬입니다. 그는 다윗과의 갈등을 촉발시키고 오늘의 본문 말씀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스토리 라인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빌런은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은 압살롬이 아닌 하나님이시죠.
아니 66권의 성경 그리고 우리가 호흡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강조합니다.
압살롬이 죽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오늘의 본문 16절 말씀에서 나팔을 불어 전쟁의 종료와 함께 승리를 선포합니다.
성경기자는 압살롬의 시체가 웅덩이에 던져지고 그 위에 큰 돌무덤을 쌓았다고 기록합니다. 특별히, 시체를 묻고 그 위에 돌무덤을 쌓은 것은 수치스러운 죽음을 뜻합니다.
압살롬의 돌무덤을 비추던 성경기자의 렌즈는 오늘의 본문 18절 말씀에서 한 비석을 향합니다. 이 비석은 압살롬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세웠던 비석입니다.
성경기자는 압살롬의 돌무덤과 그의 비석을 의도적으로 대조합니다. 이제 그 누구도 압살롬의 비석을 보고 그를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의 비석은 도리어 그의 비참한 최후를 부가시킬 뿐입니다.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압살롬이었지만 그는 이제 한 줌의 흙이 되었습니다. 비석에 가득한 그의 화려한 프로필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마침표는 오직 하나님께서 찍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침표는 교만한 자에게 빨리 찍힙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며 겸손해야 합니다. 만약 압살롬이 하나님 앞에 겸손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화려한 프로필은[금상첨화] 일 것입니다.
바라기는 내 인생의 마침표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며 더욱 겸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본문 19절 말씀에서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전하길 간청합니다. 하지만 요압은 압살롬의 사망 소식 때문에 이를 만류합니다. 대신에 구스 사람을 보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여 승전보를 전하는 그를 미워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히마아스는 뜻을 굽히지 않고, 그는 뒤늦게 다윗에게 출발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아히마아스의 충성심은 자신의 불이익마저 감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힘든 여러 이유가 존재합니다.
조건을 따지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때, 조건을 뛰어넘습니다. 나의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더 소중할 때, 나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간절히 갈망할 때, 우리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을 극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비록 나에게 어려움이 일어난다 할 찌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명을 향해 전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할 때, 내 앞에 놓인 인생의 허들을 뛰어넘고 비상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할 줄로 믿습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마침표는 오직 하나님이 찍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매 순간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령 안에 깨어 있길 소망합니다. 또한, 나의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jBGCEVDHETg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압살롬의 시체 위에 돌무더기가 쌓입니다. 압살롬은 앞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다윗의 군대가 승리합니다. 아히마아스는 이 승전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이 이를 만류합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결코 다윗 왕이 기뻐할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압은 구스 사람을 대신 보냈지만, 아히마아스는 재차 요구하며 들길로 달려 구스 사람을 앞지릅니다. 아히마아스는 죽은 압살롬이 다윗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망각했습니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 자신감과 교만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나의 모습 중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겸손하게 낮춰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 요즘 내가 의욕을 갖고 열심을 다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 내가 열심을 다해야 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많은 이의 환영을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던 압살롬은 끝내 비참하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앞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울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신을 높이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자신을 높였던 이들은 끝내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스스로 높이는 자는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압살롬의 마지막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한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결말과 수치로 끝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말씀을 따라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잘 돌아보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 땅의 것에 매인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언약에 매여, 복음에 연합된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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