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0. 사무엘하 묵상노트(완료)

사무엘하 18장 24 – 33 죄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smile 주 2023. 7. 18. 06:47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24 그때에 다윗은 성의 안쪽 문과 바깥쪽 문 사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파수꾼이 망대에 올라가서 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25 파수꾼이 이 사실을 다윗 왕에게 큰 소리로 알려 주었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혼자서 온다면 아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지.” 그 사람은 점점 성으로 가까이 왔습니다.

26 그 때에 파수꾼은 또 다른 사람이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수꾼이 문지기에게 외쳤습니다. “보라! 또 다른 사람이 달려오고 있다!” 왕이 말했습니다. “그 사람도 좋은 소식을 가져오겠지.”

27 파수꾼이 말했습니다.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 같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좋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오는 소식은 반드시 좋은 소식일 것이다.”

28 아히마아스가 왕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얼굴을 땅에 대고 왕에게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 왕에게 대적하는 사람들을 물리치셨습니다.”

29 왕이 물었습니다. “어린 압살롬은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가 재치 있게 대답했습니다. “요압이 저를 보낼 때에 압살롬이 있는 곳에 큰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30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물러나 있어라.” 아히마아스는 옆으로 물러나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31 그 때에 구스 사람이 이르러서 말했습니다. “내 주 왕이시여!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왕께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어린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왕의 원수들과 왕을 해치려 하는 사람들은 다 그 압살롬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33 그제서야 왕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왕은 성문 위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서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어야 되는 건데!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울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말의 무게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승전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압살롬의 소식부터 물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아히마아스는 요압이 승전 소식을 전하러 가는 것을 반대한 이유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결국 큰 상심을 겪을 다윗 왕을 걱정한 그는 압살롬의 소식을 모른다고 거짓말합니다. 승전 소식을 전하려던 그의 마음은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전하는 말의 무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의 힘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3:1-12). 하나님의 사람은 상대방을 깊이 헤아리고 사랑으로 위로하는 말을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죄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다윗은 마하나임 성의 두 문 사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윗이 전쟁의 소식을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다윗 역시 압살롬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심히 통곡합니다. 자신에게 반역한 압살롬이었음에도 애타게 이름을 부르며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합니 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생명을 초월한 부모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큐티를 보다를 통해 내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시길 축복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소식에 전전긍긍합니다.

성경기자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오늘의 본문 24절 상반절 말씀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아 있더라.] 여기서 [두 문 사이]라는 표현은 성의 외문과 내문을 뜻합니다. 다윗은 자기 집의 거실이나 집무실이 아니라 성문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초조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아버지와 많이 닮았습니다. 유산을 미리 상속받은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그 날부터 마을 어귀에 나가 기다렸던 탕자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다윗은 이토록 압살롬의 생사 여부를 애타게 기다렸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책망했던 나단 선지자의 예언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2 10절 말씀입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다윗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가정과 가문 가운데 죽음이 있을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는 혹여나 압살롬이 죽을까봐 노심초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 속에서 연약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죄를 반복합니다. 죄악에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후회하고 좌절하는 게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죄를 지었다는 정죄감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심판받을까 두려워하는 게 우리 인생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성경에서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와 관련됩니다.

창세기 3 10절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그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고 기록합니다. 성경기자는 죄와 두려움의 인과관계를 분명히 합니다죄를 지었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은 죄악의 결과입니다.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내 영혼의 상태입니다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기지 못할 때,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과 비슷합니다이처럼 두려움은 내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나타내는 내 영혼의 바로미터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두려움은 존재합니다.

조그마한 일이 내게 주어져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실수 하나로 모든 일을 그르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관적이고, 상황이 안 좋아도 담대할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왜 그럴까요? 저는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우리의 마음은 평안합니다. 담대합니다. 하지만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존재할 때,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 근심에 휩싸입니다. 혹시,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 영혼의 적색경보가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내 영혼의 시스템이 바이러스로 오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내 영혼의 리셋 버튼을 어서 빨리 눌러야 합니다. 내 영혼의 리셋버튼은 하나님 앞에 납작이 엎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내 안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넘쳐나게 줄로 믿습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늘 죄 가운데 허덕이는 연약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죄책감에 정죄감에 아파하는 내게 오늘도 찾아오셔서 십자가의 못자국 난 손으로 안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오직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yWLSJ0ACLgU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초조하게 전쟁 소식을 기다립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승전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압살롬의 소식부터 물었습니다. 결국 큰 상심을 겪을 다윗 왕을 걱정한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의 소식을 모른다고 거짓말합니다. 승전 소식을 전하려던 그의 마음은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도 동일하게 다윗에게 승전 소식을 알립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압살롬의 안부가 더 중요했기에 승리의 치하도 없이 바로 압살롬의 안부를 묻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은 압살롬을 '왕의 원수'라고 부르면서, “왕을 해치려고 들고일어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젊은이와 같게 되기를 빕니다."(32)라며 압살롬의 죽음을 기쁘게 알립니다. 다윗은 그 소식에 마음이 아파 차라리 자기가 죽었으면 좋았겠다며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아!" 하면서 통곡합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꽃과 같은 아들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기에, 다윗은 더욱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적은 언제입니까?

- 사람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방법으로 느끼고 있습니까?

-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다윗은 비록 자신의 목숨을 노린 반역자이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왕의 원수인 압살롬이었지만 그를 위해 자신이 대신하여 죽지 못했음을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이전에 그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다윗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한량없으신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비록 압살롬만큼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성문 앞에서 기다리던 다윗처럼, 하늘에 계신 만군의 주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안위를 염려하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다윗의 모습을 보며, 말씀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욕망을 따른 범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게 됩니다. 또한 아들 압살롬의 죽음에 반응하는 다윗의 통곡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한량없는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가 진정한 정의와 사랑을 용기 있게 실천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용서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늘에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