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25. 예레미야애가 묵상노트(완료)

예레미야애가 1장 1 - 11 은혜는 당연하지 않다

smile 주 2024. 1. 1. 08:4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파괴된 예루살렘

1 <예루살렘의 멸망> 예전에는 예루살렘에 그렇게 사람이 많더니 이제는 쓸쓸한 성으로 변했구나. 예전에는 나라들 중에서 큰 성이더니 이제는 과부처럼 되었구나. 예전에는 모든 성 가운데서 여왕이더니 이제는 노예가 되었구나.

2 예루살렘이 밤에 목놓아 우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아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다. 사랑하던 사람들도 다 가고 없으며, 친구들은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다.

3 유다가 사로잡혀 고통당하고 고된 일에 시달린다. 뭇 나라에 흩어진 채 쉴 곳을 찾지 못하며 뒤쫓던 사람들이 재앙에 빠진 유다를 붙잡는다.

4 시온으로 가는 길이 슬픔에 잠겼다. 명절이 되어도 오는 사람이 없고, 문마다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젊은 여자들은 슬퍼한다. 예루살렘이 끔찍한 고통에 처한다.

5 그 원수들이 우두머리가 되었고 적들은 제멋대로 하였다. 죄가 많은 예루살렘을 여호와께서 벌하셨다. 그 자녀들은 원수에게 사로잡혀 낯선 땅으로 끌려갔다.

6 딸 시온의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렸다. 그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하는 사슴처럼 되어 뒤쫓는 사람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다.

7 예루살렘이 고통을 당하며 떠도는 중에 지난날 있었던 모든 소중한 일을 떠올린다. 백성이 원수의 손에 붙잡혀도 돕는 사람이 없고, 적이 그의 망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

8 예루살렘이 무서운 죄를 지어 더러운 몸이 되었다. 그를 떠받들던 사람들도 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업신여기니, 예루살렘 자신도 탄식하며 몸을 뒤로 돌린다.

9 예루살렘의 더러움이 제 치마 속에 있으나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멸망이 놀라울지라도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다. “여호와여, 원수가 이겼으니 제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10 적이 그가 갖고 있는 것을 강제로 다 빼앗아 갔다. 주님께서는 다른 나라 사람이 주의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셨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성소에 쳐들어오는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다.

11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이 먹을 것을 찾아 탄식하고 목숨을 잇기 위해 소중한 것을 팔아먹을 것을 산다. “여호와여, 이 비참한 모습을 살펴 주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하나님께 예배하는 특권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남유다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과거 예루살렘이 누리던 존귀와 영화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남유다는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과부처럼 이어받을 유산 하나 없는 빈궁한 처지에 놓입니다. 조공을 받던 나라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결과입니다. 남유다 백성은 그동안 참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경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당연시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이 주신 평강도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축복과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선 안 됩니다.

 

오늘의 만나

남유다가 멸망하기까지 가벼이 여긴 특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이 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화목의 은총을 떠난 남유다

남유다는 바벨론의 위협에 대응하고자 주변 나라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2절에 기록된 사랑하던 자들친구들은 바로 이 동맹국들을 의미합니다. 남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아닌 동맹국을 신뢰하고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이 파괴되어 멸망할 때 그 어떤 나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 나라 중에서 에돔 족속은 오히려 남유다를 배신 하여 약탈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면 참된 평강을 잃게 됩니다. 사람의 환심을 얻으려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원수와도 화목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16:7).

 

오늘의 만나

남유다가 주변 나라들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환심을 얻고자 하나님을 떠나는 시도가 무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2024년에도 말씀 묵상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때 슬픔을 느낍니다. 이것을 상실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좋았던 인간관계가 깨질 때 상실의 고통이 찾아옵니다.

무엇보다 내 곁에 항상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사라질 때 상실의 고통은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내 곁에 항상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무엇일까요?

우선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가족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족 이외에 내 곁에 항상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마다 다를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족처럼 꼭 있어야 했던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침공으로 남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대적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실의 고통을 기록한 책이 바로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애가의 첫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화려한 건물이 훼손된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전의 파괴가 곧 하나님의 부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적들에 의해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한 존재이시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크게 슬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다윗의 후손들이 영원히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이 언약에 근거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면서도 성전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성전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하나님도 늘 함께하실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화려함을 자랑하고 사람들로 붐볐던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임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예배당이 화려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시는 예배당은 일반 장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고 전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사셔서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본서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마치 감정을 가진 사람처럼 대하고 있어요.

본문 2절입니다.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예루살렘 성전은 적들에 의해 짓밟힌 이후 밤에 슬피 울었습니다. 눈물이 뺨에 흘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예루살렘을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이 배반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적들에게 공격당한 것도 슬픈데 친구들마저 자신을 떠났다는 것이죠.

부귀와 영화를 누릴 때에는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는데 위기가 닥쳐오자 의지했던 친구들이 떠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친구들 중에는 배반하여 적들의 편에 선 자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친구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이외에 의지했던 이집트와 에돔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쳐들어왔을 때 도와주겠다던 이집트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형제 나라였던 에돔은 도리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적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이외에 의지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 2024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매일 매 순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ulu6f3WjREc?si=QwR1PdD6T17wC1CH

 

(예레미야애가를 시작하며)

‘예레미야 애가’는 유다 왕국의 멸망을 눈물로 읊은 다섯 개의 시를 모은 ‘슬픈 노래(哀歌)’입니다.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66절로 구성된 3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이 모두 22절로 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5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의 22절은 히브리 알파벳 22자의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가 이같이 균형 잡힌 시의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은 기억과 암송을 용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크게 다섯 개의 기념일이 있고, 그 기념일마다 읽는 책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공식 절기에 읽혀지던 다섯 개의 책을 “두루마리(五軸)”를 의미하는 “메길로트(Megillot)”라고 합니다.  유대교 예배에서는 아브월(7, 8월) 9일에 주전 586년 성전파괴 사건과 주후 70년 로마제국에 제2성전이 파괴된 사건을 기념하면서 예레미야 애가를 읽습니다. 성전 파괴는 이스라엘에게 치욕적인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이 날을 기념하여 특별히 예레미야 애가를 읽는 이유는 과거에 왜 예루살렘 성전이 처참하게 파괴되었는지를 잊지 않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섯 개의 책 : ⑴ 유월절 : 아가서 ⑵ 칠칠절 : 룻기 ⑶ 초막절 : 전도서 ⑷ 부림절 : 에스더서 ⑸ 예루살렘 멸망일 : 예레미야 애가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남유다 백성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과거 예루살렘이 누리던 존귀와 영화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의 몰락을 보면서 슬퍼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과부와 같이 처량한 신세가 되게 하셨고 이방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때 아무로 위로해 줄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유일한 위로자이신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그들은 위로를 받을 어떤 친구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애굽을 의지하여 바벨론의 침입을 막아 보려 했지만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었으므로 애굽이 바벨론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하는 고난은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바벨론 제국이 그와 같이 강하여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보응하시려고 바벨론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진멸시키게 하심으로 열방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한때 열방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예루살렘의 영광이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오늘 성경은 예루살렘이 이전 영광을 잃어버리고 적막한 성으로 변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결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 영광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 때에 참된 영광과 복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를 하나님 안에서 누리며 사는 종들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기도)  

새해 첫날! 하나님,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향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통함이 이 나라와 교회를 보시는 하나님 마음이심을 느낍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의 거룩함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없는 형통은 쉽게 무너지고, 하나님을 잊은 기쁨은 이내 탄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망해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안타까워, 마음 아파하시는 그 마음을 봅니다. 예레미야처럼 죄에 물든 이 나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기도하는 마음이 내게 있는지요? 새해에는 나의 성공과 유익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노력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에서 머무르지 않고 늘 깨어있길 기도합니다. 시대의 아픔과 참상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바로 세우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세상과 나는 변해도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며 복된 새해를 맞이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