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25. 예레미야애가 묵상노트(완료)

예레미야애가 1장 12 - 22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

smile 주 2024. 1. 2. 06:47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예루살렘의 탄식

12 “길 가는 사람들아, 이 일이 너희에게는 상관이 없느냐? 와서 내 모습을 보아라. 내게 닥친 고통만 한 것이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께서 크게 진노하신 날에 내게 고통을 내리셨다.”

13 “주님께서는 높은 곳에서 불을 내리셔서 내 뼛속으로 들어가게 하셨고, 내 발에 그물을 치셔서 나를 뒤로 물러가게 하셨다. 또한 나를 슬프고 외롭게 만드셔서 하루 종일 힘없게 하셨다.”

14 “주께서 내 죄를 묶어 그 손으로 멍에를 만드셨고, 그것을 내 목에 얽어매어 내가 힘을 쓸 수 없게 만드셨다. 주께서 나보다 강한 사람의 손에 나를 넘기셨다.”

15 “주님은 내 성벽 안에 있는 용사들을 다 없애시고 내 젊은이들을 무찌르게 하셨다. 주께서 포도를 술틀 안에 넣고 마구 짓밟듯이 처녀 딸 유다를 짓밟으셨다.”

16 “내가 이 일로 우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가까이에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없고, 내게 다시 힘을 북돋워 줄 사람이 없다. 원수가 우리를 이기니, 내 자녀들이 슬픔과 외로움에 잠긴다.”

17 시온이 손을 뻗었으나 아무도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원수들을 보내셔서 야곱 백성을 치게 하셨다. 예루살렘이 주변 백성들처럼 더럽고 추하게 되었다.

18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시나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너희 모든 백성아, 들어라. 내 당하는 고통을 보아라. 내게 속한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사로잡혀 갔다.”

19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등을 돌려 버렸다. 내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목숨을 유지하려고 먹을 것을 찾다가 힘이 다해 성 안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20 “여호와여, 저를 살펴 주십시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제가 주를 배반했으므로 심히 괴로워합니다. 거리에서는 사람이 칼에 맞아 죽고 집 안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21 “사람들이 제 신음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도 저를 위로해 주지 않습니다. 저의 모든 원수들이 제가 재앙을 당했다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 일을 하신 줄 알고 즐거워합니다. 주께서 선포하신 날이 이르게 하심으로 제 원수들도 저같이 되게 하십시오.”

22 “여호와여, 그들이 저지른 모든 악을 보십시오. 제 모든 죄 때문에 저에게 하신 일을 그들에게도 하십시오. 제 신음 소리가 끝이 없고 제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모두에게 임할 최후 심판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의인화되어 화자로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비탄에 빠졌습니다. 죄와 심판의 문제는 예루살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화자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의 길을 걷는다면 반드시 심판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2).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본 주변 나라들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될 후대의 사람들에게 죄의 위험성을 전달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들에게도 임한 재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얼마나 엄중할 것인지 경고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만나

예루살렘에 임한 심판이 현세대에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죄를 경계하라고 내가 권면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간구하는 기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 세워지기를 간구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모든 죄에 대해 합당한 징계를 내리실 뿐만 아니라 겸손하게 회개하는 자에게 회복을 허락하십니다. 남유다가 엄중한 심판을 받았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 대적을 향한 심판의 날도 곧 임합니다. 한편 회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복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자를 낫게 하십니다( 6:1). 우리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를 바라며 드릴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도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예레미야 애가는 제목 그대로 슬픔의 노래입니다.
노래라는 것은 시편처럼 시적인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시에는 저자의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따라서 시를 잘 파악하려면 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시의 형식으로 기록된 예레미야 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애가를 읽을 때 예레미야의 심정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심정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본문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이 1인칭을 사용해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이 살아 있는 여인인 것처럼 등장해서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 여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면서 그 아픔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고백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처참하게 짓밟힌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드린 고백을 통해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나의 허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대적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뒤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은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예루살렘은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 다르게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냉정한 시선으로 보고 정죄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아픔을 토로했다가 더 큰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는지 잠잠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허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론 고난과 고통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아도 고통이 찾아올 수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고난에 직면할 때 다른데서 원인을 찾기보다 먼저 나의 들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한 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당하는 이유가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8절 상반 절입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자신이 그의 명령을 거역해서 고난에 처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허물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토로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아픔을 토로했습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까지 받아서 너무 힘들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도와주기는커녕 그녀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 역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예루살렘은 나의 아픔을 기뻐하는 그들도 나처럼 되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원수를 벌해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런데 이 기도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과 대치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앙금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진정한 용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이 원수를 갚겠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갚아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우리 역시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 다 아뢰어야 합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께 아뢰어 회복을 경험하시고 용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인생의 여정 가운데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을 때 나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거나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게 하소서. 먼저 내 자신의 허물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토로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 있게 하시고 나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625JH_VCwtw?si=uvTYD4q0Jb8bKOcb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의인화되어 화자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즉 주변 모든 나라들과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이 이같이 비천하게 전락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 즉 바벨론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겼고, 그 결과 이스라엘 영토 안에 청년, 처녀들의 씨가 마를 정도로 피폐하게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예레미야가 불의한 세상을 향해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절망 속에서 예레미야는 세상으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멸망을 기뻐하는 주변 국가들 역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처럼 멸망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21-22). 대신 예레미야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겪는 고통)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십니다. 죄로 물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겪는 고통을 네 가지 은유로 진술합니다.

첫째는 하늘에서 내려온 물에 자신의 가장 깊은 곳, 뼛속까지 타는 고통입니다.

둘째는 그물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고통입니다. 이는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무거운 죄악의 멍에에 목이 짓눌리는 고통입니다. 이는 결박당한 포로처럼 힘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는 술틀 안의 포도처럼 으깨지는 고통입니다. 바벨론 침공 때 유다의 군대는 무용지물이었고, 젊은이들을 무참히 희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겪는 고통은 처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주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악이 바로 하나님이 아닌 이웃 나라를 의지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를 눈물로 통회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을 들어 주님을 향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무릎을 꿇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슬픔과 유다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고자 하는 눈물의 선지자예레미야의 쏟아져 흘러내리는 눈물과 고통과 선지자의 중보하는 마음을 봅니다. 우리도 눈물의 중보 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되어, 먼저 내 자신의 허물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가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토로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 있게 하시고 나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