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다니엘 기도회 간증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요한복음15:4-6) - 유기성 목사(11월 18일)

smile 주 2024. 2. 3. 10:45

 

□ 여러분, 우리 안에 자녀에게 물려줄 믿음이 진짜 있기나 합니까?  

  

― 유기성 목사입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한국교회 안에 지금 여기에 계신 분들 말고도 전국에 있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한 말씀으로 은혜받는 일은 저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데, 다니엘기도회를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까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 이 밤에 우리의 이 예배와 또 기도를 통하여 한국교회 안에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해 주시기를 정말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안의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분명히 뜨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획하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 한 번은 목사님들끼리 모여서 ‘다음세대에게 우리 신앙을 어떻게 물려주면 좋을까?’ 그런 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그런 토의를 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죠. 지금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큰 위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어른들 세대의 믿음을 우리 자녀들에게, 이 시대에, 우리 청년 학생들에게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었어요. 그런데 그때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우리 어른들 세대에 자녀들에게 물려줄 신앙이 있기는 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때 많은 목사님들이 정말 아무 말씀을 못 하셨어요. 우리에게 진짜 고민은 자녀들에게, 우리 다음세대에게 우리의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어른들 세대가 이미 신앙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다음 세대들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어른들 세대의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 우리 안에 진짜 믿음이 있다면, 자녀의 믿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있다면 사실은 고민할 문제가 별로 없는 것이 믿음은 전염력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진짜 믿음은 ‘저 사람이 하나님을 정말 믿어, 저 사람은 진짜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야.’ 그러면 전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건 몰래 믿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고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의 지금 현재 신앙생활은 이 말씀대로입니까?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고,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그렇게 거하고 계셔서 여러분의 삶에 열매를 많이 맺습니까?  

  

□ 한국교회는 어느 순간 율법주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 우리에게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믿음이 있는 겁니까? 예수님 안에 내가 거하고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는 그런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주님이 아세요, 우리의 믿음을, 부모의 믿음을. 그리고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게 되어 있어요. 실제로 한국교회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율법주의적인 종교가 되어버린 거예요. 율법주의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말은 우리들끼리는 익숙한데 외부 사람이 볼 때는 하나도 매력이 없는 겁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 시설에 들어가 보면, ‘그냥 여기는 그 사람들끼리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하는 곳이구나.’ 그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좋은 느낌이 안 들잖아요? 우리의 자녀들, 또 불신자들이 어느 순간에 교회를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는 거예요. 

― 제가 처음 전도사 때 우리 감리교회 지방의회에 참석했다가 엄청 울었습니다. 은혜받아서 운 게 아니고 엄청 싸우셔서 그랬어요. 목사님, 장로님들이 대표이신데 왜 싸울 일이 있을까 싶어요. 무슨 사정이 있으셨겠죠. 언성을 높이고 마이크를 뺏고, 그렇게 회의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예배 순서가 됐어요. 회의를 하다가, 돌아가신 장로님의 추도 예배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이제는 갑자기 예배를 같이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는 웃으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그때 그렇게 눈물이 나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게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인가? 하나님은 그냥 우리가 예배 시간에 찬송 부르자 그러고 기도하자고 그러면 그냥 다 받으시는 하나님이신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끝나고 다시 싸우는 거예요. 율법주의적인 종교가 되어버린 겁니다. 싸우는 것도 열심이 있어야 싸워요. 열심은 대단해요. 뭔가 지키는 데는 정말 목숨을 걸어요. 그런데 평안도 기쁨도 감사도 사랑도 없었습니다.  

― 목사님들만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고 믿잖아요. 그죠? 주님은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라고 그렇게 고백하시잖아요. 그런데 왜 집에서는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왜 부부 싸움은 그렇게 오래 해요? 아니,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주님 내 안에 계신 것을 진짜 믿으면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 거죠.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할 일이 있고, 못할 일이 있는 거잖아요.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거예요.  

― 한국교회의 위기는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 ‘다음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 엄밀히 말하면 그것이 아니에요. 지금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이 그냥 ‘종교생활화’ 되어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주일이면 교회 나오는 거, 십일조 드리는 거, 또 기도회에 참석하는 거, 교회 봉사하는 것, 이런 것들로 우리의 믿음을 겨우 지키고 있는 나는 그래도 예수님을 믿어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위안 삼는 거죠. 겉으로 종교 생활하는 것은 다른 종교들도 얼마든지 열심히 대단해요. 우리보다 더 철저하게 지키는 대단한 종교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이단들도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 안에 주님이 살아계셔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도 평안하고, 어떤 상황에도 기쁘고, 감사하고, 은밀한 죄는 다 끝났고, 이제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 목사이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한 적이 있습니다. 

  

― 우리는 예수 믿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주님으로부터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어서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살았는데, 교회에서 보았던 가장 많은 이미지가 포도송이에요. 포도송이는 어린이 예배실에 항상 걸려 있었어요. 그래서 그 포도알 하나를 전도해 오면 받고 암송해 오면 받고 예배 시간에 안 떠들면 받아서 포도송이에 붙이고, 포도송이가 다 차면 공책 하나 받고 연필 하나 받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포도나무, 내가 가지라는 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았어요.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니, 그건 정말 믿어지지 않았어요. 현실이 아니었습니다. 

― 저는 목사의 아들로 목사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큰아들이라고 부모님이 낳자마자 하나님께 바쳐 버리셨어요. 저하고는 아무 의논도 없이 당신들이 다 결정하신 거죠.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목사가 되든지, 무지 매 맞고 목사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안 되는 겁니다. 어린 나이에도 매 맞고 목사 되는 것보다 그냥 고등학교 졸업하고 신학교 가야겠다는 결론이 너무 확실하게 왔어요. 그러나 제 마음속에 정말 아무런 기쁨이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잘하는, 겉으로 보이는 모범생이었죠. 저는 그 정도도 믿음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빗나가지 않고, 그저 부모님과 어른들 시키는 대로 다 하면 그게 믿음 좋은 거잖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목 훈련받다가 고관절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장애인이 될 거라는 판정을 받았어요.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찾아지더라고요. 수원에서 목회하시는 아버님에게 어떻게든지 연락을 드려서 저를 좀 큰 병원, 더 좋은 병원에서 제대로 수술을 받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저를 위해서 아버님에게 연락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은 이제 수술을 받기 위해 준비실에 들어갔는데 그때서야 하나님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러고는 큰 소리로 ‘하나님!’ 하고 세 번이나 불렀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제가 믿는다고 생각했던 하나님, 목사인데 당연히 그렇잖아요? 제가 아무런 응답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실제가 아니셨어요. 그때 엄청 울었어요. 장애인이 되는 게 너무 두려워서가 아니었어요. 그건 아무것도 문제가 안 됐어요. 과연 나는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하나님도 안 믿는 목사, 그게 너무 비참했어요. 그게 제 회심의 시작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안 믿으면서도 믿는 줄로 알았던 거, 예수님은 나의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예수님의 가지인 줄로 알았는데 실제가 아닌 것, 지금 한국교회가 그런 위기에 있습니다. 

  

□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계신데, 왜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처럼 못 사는 걸까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신다는 것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말은 그렇게 들었는데, 예수님이 진짜 내 안에 계신가? 그러면 내가 이렇게 살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 안에 계세요. 여러분,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오신 것, 또 영상으로 이 다니엘기도회에 참여하시는 것만 봐도 주님이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을 사모하는 그 마음을 누가 주신 거죠? 주님이 주신 거예요. 우리 안에 주님의 역사는 분명합니다. 

  

□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 그런데 왜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답게 못 사는 거죠?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 전에, 먼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겠다고 하셔서, 우리가 먼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생각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면 왜 역사 안 해주시는 거야? 그렇게 주님께 답답하게 외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낙심하고 시험 들고 영적으로 메마른 것은 사람 잘못 만나서 그런 거 아닙니다. 환경이 어려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속으면 안 돼요.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왜 우리가 메마르고 시험 들고 영적으로 그렇게 어려움 겪는 그런 삶을 사는가? 요한복음 15장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딱 하나예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예수님 모시고 사는 사람답게 못 사는 거예요. 

  

□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의 열쇠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먼저 거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 안에 계세요. 한국교회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한국교회를 떠나셨다면 이런 다니엘기도회가 있을 수도 없어요. 이미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세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무너지고, 지치고, 메말라 있어요. 자신이 주님 안에 거하는 거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걸까요? 아주 간단해요. 정말 주님 안에 내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거예요. 여러분, 기차 안에 거하면 그냥 기차에 다 맡기고 자리에 가만 앉아 있는 거예요. 기차 안에 타서 빨리 가려고 뛰어가는 사람이 있나요? 그냥 자리에 앉아 있으면 기차가 부산으로 저 광주로 데려다줘요. 비행기 안에 거하면 어떻게 되죠? 빨리 가려고 막 열심히 날개짓을 하나요? 그런 사람 없어요. 비행기를 탔으면, 그냥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비행기가 저 제주도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데려다주는 거죠.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 안에 거하라’ 똑같아요. 이제는 내 삶을 예수님께 완전히 맡기는 거예요. 내 판단과 생각과 계획, 감정, 싫고 좋은 거 모든 것을 이제는 주님께 다 맡겨요. 주님 마음대로예요. 주님 마음대로 사는 거,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거예요. 요한복음 15장 4절-5절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놓고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어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똑같이 언급하고 있어요.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하시고, 사도바울은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오’, 이게 같은 뜻이라는 거예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거 아닙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이 고백이 명확한 사람, ‘이제는 예수님이 내 생명이시고 나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이 되는 것이,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는 것,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입니다.  

―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정말 죽는 거 힘들어요. 죽어야 하긴 하겠는데, 죽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렇게 고백해요. 완전히 속는 거예요. 죽는 게 힘든 게 아니에요. 안 죽으니까 힘든 거지, 죽으면 너무 쉬워요. 삶이 문제가 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죽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가 돼요? 안 죽은 상태에서 주님 말씀대로 살려니까, 용서도 힘들고, 사랑도 힘들고, 기쁨도 안 되고, 감사도 안 되고, 능력도 없고, 매일 시험만 들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 예수님은 더럽고 죄가 많은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고 계십니다.  

  

―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제가 차 안에서 듣고 큰 은혜를 받았어요. 사무엘하 6장 웃사가 여호와의 법궤를 수레로 싣고 가다가 그만 그 수레가 흔들리고 법궤가 땅바닥에 떨어질 상황이 되어 급히 그 법궤를 붙잡고 죽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함 그 자체인 여호와의 법궤가 지금 땅바닥에 떨어지려고 하고, 그 땅바닥은 동물 오물 배설물 뭐 온갖 더러운 것으로 더럽혀져 있는 그 흙바닥에 여호와의 법궤가 떨어져서 나뒹굴지 않게 하려고 그 법궤를 붙잡았는데, 아니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이세요. 도대체 웃사가 뭘 잘못했냐 말이에요. 아니 여호와의 법궤가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 법궤를 붙들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했던 게 왜 그렇게 죽어야 할 죄냐 말이에요. 그 목사님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그 오물투성이인 흙바닥보다 사람이 더 더럽다는 거예요. 만물보다도 더럽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아니 동물 배설물이 천지인 흙바닥은 엄밀히 말하면 더럽고 깨끗하고 평가할 게 안 돼요.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런데 사람은 얼마나 악하고 더러운데, 어떻게 감히 사람이 법궤에 손을 댄다 말인가? 그냥 나뒹굴면 어때?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법궤에 손을 댄다는 말인가? 웃사는 그가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기보다는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죄 많은 존재인지를 몰라서 죽은 것입니다.  

― 우리 마음을 놓고 보면, 오물투성인 흙바닥이 차라리 깨끗한 것입니다. 웃사는 그걸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선지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들으면서 진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 뜻으로 보면 목사인 저는 죽어도 벌써 여러 번 죽었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직을 맡아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제가 사실 정말 벌써 죽을 사람인 것입니다.  

  

□ 내가 죽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아니 천지의 주재이신, 만왕의 왕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와 계세요. 여러분은 죽어도 벌써 여러 번 죽었을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있어요.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시고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전적인 은혜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을 뿐이에요.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죽는 게 뭐가 어려우냐 말이에요. 아니 죽어도 벌써 여러 번 죽었을 사람, 이제는 죽고 말고가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이미 우리는 죽은 자, 이걸 하나님이 정하셨어요. 이제 앞으로 죽을 게 아니고 이미 죽은 자,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나는 죽었다고 믿기만 하는 거, 그게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겁니다. 

― 시험이 생길 때, 문제가 생길 때, 부부 싸움이 일어날 때, 자녀들 때문에 어려울 때, 교회 안에서 교우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세상에 나가서 별의별 어려운 핍박 환란을 당할 때,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나는 거할 뿐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역사가 그때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가 진짜 해야 될 일은, 예수님 안에 정말 거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주님이 저에게 깨우쳐주신 것은, 예수님이 항상 마음에 계신 것을 진짜 믿고 주님을 계속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것을 정말 믿으시나요? 그러면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처음 예수님 생각부터 하셨나요?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잖아요? 누가 여러분 방에서 같이 잠을 잤다면 아침에 눈을 떠서 처음 만났을 때 인사도 하시죠? 잘 주무셨나요?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니까 아침에 눈을 뜰 때 나에게 가장 먼저 예수님이 의식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랑 같이 있을 때도 항상 의식의 대상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항상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계속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목회자는 설교했으면 그대로 살아야 하고, 그대로 산 것만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제가 2007년 10월에 맹장 수술을 시작으로 한 달 동안 병원살이를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수술이 겹쳤어요. 그때 10월 일정표 속에는 하루도 빼지 않고 제가 설교를 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져 있었습니다. 한숨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 일정을 10월에 어떻게 감당하나?’ 그러나 한 번도 설교를 못했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뭔가 저를 다루심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병실에 혼자 있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그게 통곡이 되고,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방언으로 한참을 울면서 기도했어요. 그렇게 기도한 끝자락에 주님이 제 마음에 너무나 선명하게 깨우쳐 주셨어요.‘너는 설교 못해서 답답해하니? 하지만 진짜 문제는 네가 설교하는 것과 실제로 사는 것 사이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는 것을 작게 여기는 것이다.’ 저는 그 말씀이 그렇게 두렵더라고요. 목사인 제가 알죠. 내가 말씀을 전하지만, 그 말씀대로 100% 내가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말씀이 그렇다면 전해야지, 뭐.’ 그런 생각으로 말씀을 전하는 저의 그 속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걸 절대로 작은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설교했으면 그대로 살아야 하고, 그대로 산 것만 설교하라는 거예요. 저는 그러면 설교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인데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어떻게 100% 그렇게 살면서 설교할 수 있나요? 여러분들은 목사도 설교한 대로는 다 못 산다는 것을 이해하시나요? 여러분들, 목사님이 설교한 그대로 안 사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목회자가 설교한 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 실제로 그걸 작게 여긴 바람에, 많은 목회자들의 스캔들과 여러 가지 실족하는 일들로 인해서 한국교회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게 이해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특히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특히 마귀는 아주 작정을 하고 그걸 가지고 복음의 진정성을 흔들고, 기독교가 참 복음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무서운 의심을 심어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낙심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 나를 지켜보는 증인들과 예수님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저에게 아주 놀라운 눈을 열어주시는 계기가 있었어요. 2010년에 천안에 있는 유관순 기념관 체육관에서 연합집회가 열렸는데, 제가 설교 부탁을 받았어요. 그래서 말씀을 전하러 갔더니, 체육관에 사람이 꽉 찼습니다. 여기도 사람이 많이 모이긴 했습니다만, 하여튼 삥 둘러 사람이 꽉 찼어요. 그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찬송 부르고 기도하는데 용광로 같았어요. 강단에 올라가 보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저만 쳐다보고, 카메라 몇 대가 저를 비추고 있어요. 서 있는 것 자체가 정말 너무너무 부담이 되었어요. 옆에는 마시라고 이렇게 물컵이 하나 있었는데 이 물컵을 들고 못 마시겠는 거예요. 이 물컵은 목마르면 마시라고 둔 건데 제가 이렇게 물을 마시면 다들 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목마른가 봐.’ 정말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더워서 제가 이렇게 땀을 닦으려고 하면, ‘더운가 봐.’ 할 거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지켜보는 앞에 있다는 그 느낌이 무언가 하나님이 저에게 보여주시려고, 경험하게 하시려고 그 자리에 세우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히브리서 12장 1절 말씀이 딱 생각이 났습니다.(히12:1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는 이런 연합집회에서 설교하는 목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어떤 사람도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요. 우리보다 먼저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간 허다하게 많은 증인들이 여러분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것을 진짜 알게 되면 죄 지으려고 해도 죄 짓지 못해요. 

― 히브리서 12장 1절 하반절에 보면 ‘모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당연히 이렇게 살게 되어 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어요. 만약에 우리가 어려워도, 힘들어도, 혼자 있어도, 하나님을 정말 온전히 신실하게 의지하고 주님 기뻐하는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면, 막 박수소리가 들리고, 잘한다고 하시며,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아무도 안 본다고 엉뚱한 죄, 은밀한 죄, 혈기를 부리고, 서로 싸우고, 욕심을 부리고, 세상을 기웃거리고 그러면, 탄식이 들리는 겁니다. ‘너,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여러분, 그 소리가 들리시나요? 이제는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육신의 귀로 보고 듣는 것만 전부가 아니에요.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말씀대로 안 살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죄 지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예수동행운동’을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 다음 절이에요.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람들의 눈은 겉으로만 잘하면 돼요. 겉으로만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잘하면 돼요. 그런데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계세요. 내 마음과 생각도 다 알고 계세요. 내 마음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을 나도 계속 바라보는 그때, 비로소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어떻게 예수 믿는 우리가 더이상 죄에 기웃거리지 않고, 유혹 앞에 넘어지지 않고, 온전할 수 있는지를 주님, 이제는 알겠습니다.’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렸던 그 집회 때 은혜의 말씀을 전하려고 갔었지만, 사실 제가 가장 은혜를 받았어요. 눈이 완전히 열렸어요. 그리고 시작한 게 ‘예수동행운동’입니다. 주님을 계속 바라보고 살자. 일기를 써가면서 매일 점검하고 살자. 그렇게 살아보기를, 한 달을 살아보고, 1년을 살아보고, 10년을 살아보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되는지 안 되는지,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그때 가서 보라는 말입니다. 

  

□ 저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이 믿어질 때, 비로소 죄를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저는 제 속에 있는 내면의 은밀한 죄와의 싸움이 정말 무섭고 치열했어요. 목사가 될 사람이었고, 또 목사이고. 그런데 제 속은 말할 수 없이 더러워요. 저는 교인들을 정말 속이고 살았어요. 생긴 게 착하게 생겨서, 우리 교인들은 제가 착한 줄로 알아요. 저는 그게 너무 두려워요. 사람이 진짜 착한 거와 착하게 생긴 거와는 완전히 딴 거잖아요. 여러분 사기꾼이 괜히 사기꾼이 아니에요. 겉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말은 또 진실하게 하는데, 속은 진짜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교인들을 평생 속이고만 사는데, 이게 너무너무 두려운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때 제게 주신 말씀이, 내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죄와의 싸움에서 늘 질 수밖에 없었던 거, 늘 죄책감 가지고 자책하고, ‘나는 더럽고 악해’ 이렇게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 스스로가 어떻든지 그 내면의 죄를 이겨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 되는 일이거든요. 아니, 사람이 자기 내면의 죄까지 이길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왜 돌아가셨겠어요? 우리 스스로가 그걸 이기려고, 이미 안 되는 일을 저 스스로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제 성실과 열심과 결심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 말씀이 저에게는 정말 복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의 말할 수 없이 추하고 더러운 제 내면을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고백했어요. ‘하나님, 저는 늘 죄에 넘어지는 자입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너무 큰 실패자입니다. 그런데 그냥 주님 안에 거하라 하시니까 저는 주님 안에 거할 겁니다. 그냥 주님 안에 앉아 있겠습니다. 저를 다시 죄에 넘어지지 않고 저를 죄에서 승리하게 하실 분은 제가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제 안에 거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믿어지게 될 때, 저는 죄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했어요.  

―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 심정과 같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올 때 그가 한 게 뭐예요? 그냥 아버지께 다 맡긴 거잖아요. 새 옷을 입혀줄 분도 아버지고, 씻겨주실 분도 아버지고, 잔치 차려줄 분도 아버지고, 당장 할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참 놀랍게도 그때부터 죄에서 이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이길 수 없었던 죄가, 마음과 생각이 주님께 딱 붙잡혀지기 시작하니까 상황의 여건에 상관없이 기쁨을 누리게 되고, 감사를 알게 되고, 용서를 하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고, 죄보다도 주님과의 교제가 더 기쁘고, 죄의 유혹보다 주님이 내게 더 실제가 되시고, 그렇게 되는 일이 저에게 있어서 너무 놀라운 일이었어요. 이런 영적 각성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해요. 한국교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에 눈이 뜨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한국교회 전체가 그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 내년 9월, 제4차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열립니다. 

  

― 2024년 9월, 이제 한 10개월 남았습니다. 엄청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요. 전 세계 220개 국가 5000명이 넘는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 목회자들, 선교사님들, 평신도 지도자들, 청년들이 한국으로 옵니다. 그냥 세계 교회 대표, 그 정도가 아니에요.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이에요.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주임을 믿고, 선교의 가장 먼저 우선 과제는 전도라는 사실, 영혼 구원이라는 사실을 붙잡고, ‘이 사회의 책임도 우리가 분명하게 지자. 사회도 변화시키자. 나라도 변화시키자, 환경 문제도 우리가 책임지자.’ 이런 분명한 의식이 있는 세계 복음주의권의 지도자들 5000명이 한국에 옵니다. 영적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아요. 이 엄청난 일이 이제 10개월 뒤에 우리 한국에서 일어납니다. 제4차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열립니다. 

― 여러분, 제4차 로잔대회는 예수님이 다시 재림에 오실 때까지 한 족속, 한 민족에게라도 복음이 전해지고, 한 사람에게라도 더 영혼이 구원되는 역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위하여 교회와 성도들이 쓰임받는 그 일을 위하여 전략을 짜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변화되는 환경에 대해서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간구하는 너무나 중요한 선교 대회입니다. 근데 이런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되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에 없을까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하나님이 아무 생각 없이 ‘그래, 한국에서 한 번 열어봐.’ 이러실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한국에서 제4차 로잔대회가 열리게 했다는 뜻은, 이 한국교회 안에 똑같은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하시려고 그 일을 하신 거죠. 이 4차 로잔대회의 주제가 뭐냐면, ‘교회여, 다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가 다 함께 그리스도가 이 땅을 통치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선교의 과제입니다. 목표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그리 되어야 하는 거죠. 우리는 결혼식을 열심히 주관하는 결혼업체처럼, 그렇게 행사로만 우리가 이 로잔대회를 치를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일이 돼야 하는 거죠. 하나님 앞에 그 일을 위해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믿어져요. 그래서 이미 한국교회 안에 이 로잔대회를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각성되도록, 벌써부터 1년 동안의 중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다니엘기도회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도, 다 이 일을 위해서 같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그런데 10개월 남았는데,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여러분, 그게 가능할까요? 그동안 한국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했는데 아직까지도 한국교회가 뚜렷한 영적 각성의 어떤 변화가 잘 안 보이는데, 과연 남은 10개월 안에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인도를 정확하게 받기 시작하면 반드시 한국교회는 변화되고, 10개월도 너무나 긴 기간이에요. 열쇠는 우리가 주님의 인도함을 정확히 받느냐 하는 거예요. 노량진교회 원로목사이신 리민식 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그 목사님이 어릴 때 할아버지가 목사님이셨습니다. 일제시대였는데, 그 할아버님이 매일 하여튼 볼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하나님, 한국교회가 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또 하나는 ‘하나님,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독립하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그때 어린 나이지만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거는 태풍이 부는데 촛불을 켜는 것과 같고 계란으로 바위를 던져서 깨뜨리려고 하는 거와 같이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한국교회는 정말 존재 자체가 미약할 정도로 그렇게 작은 공동체였는데, ‘민족을 이끌어가다니 이게 말이 안 돼. 지금 한국교회가 자기도 지금 존립이 안 될 정도로 어려운데,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이건 정말 현실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독립되고, 세계에서 제2위의 선교대국이 되는 것을 보고 이민식 목사님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시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그 일을 하나님이 이루시는구나.’ 지금 우리 안에 주님이 계세요. 아니 그게 부흥이잖아요. 우리 안에 주님이 계세요. 제 안에,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시다면 무엇을 우리가 더 바랄 수 있겠어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딱 하나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내 안에 계신 것을 진짜 믿는 거예요. 정말 믿는 것입니다.  

  

□ 영적 각성은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 여러분 진짜 부흥은 이 자리에서 또 모니터에서 보는 지금 이 집회 자리에서가 아니고 끝나고 주차장에서요. 여러분이 집에 돌아갔을 때예요. 그때도 여전히 이 분위기면 부흥이 일어난 거예요.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계세요. 이런 집회 때 계신 게 아니에요. 여러분 안에 계신 거예요. 그 예수님 모시고, 지금 이 집회 끝나면 집으로 가는 거예요.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이 진짜 믿어지고 의식이 되면 집에 돌아가서 내일 주일 예배 각 교회에서 드리고 월요일부터 또 여러분의 일터에 나갔을 때 어디서든지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게 진짜 믿어지면, 한국교회는 영적 각성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 일이 1년 뒤에 가서 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이런 역사가 10년 뒤에 가서 이루어질 이유가 뭐가 있냐 말이에요. 주님이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신데, 아니 오늘 당장 여기 계신 여러분들만이라도 다니엘기도회에 참여하는 성도들만이라도 ‘맞아, 예수님이 나와 늘 같이 계셨어. 이 사실을 이제 내가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분은 나의 왕이셔. 내게 명령하시는 분이셔.’ 그 사실을 여러분이 정말 명심하고, 주님의 명령대로 살기 시작하면 그러면 한국교회는 뒤집어집니다. 

  

□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이 진짜로 항상 믿어지는 것이 부흥입니다.  

  

― 저는 신학교 다닐 때 한국교회 부흥 역사로 도서관에서 레포트를 쓰다가 도서관 바닥에 무릎 꿇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목사 되기 싫은데, 억지로 신학교 갔어요. 그런데 그날, 한국교회 초창기 부흥의 역사 때 일어났던 간증들, 놀라운 일들을 읽으면서, ‘하나님, 이런 일이 제가 목회하는 동안에 일어날 수 있다면 하나님! 저, 목회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저의 소원이고, 갈망이었어요. 그런데 올해 4월, 제가 은퇴를 했어요. 이제는 저에게 있어서 부흥은 더 이상 경험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부흥에 대한 개념을 많이 바꿔 주셨어요. 처음에는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교회로 몰려드는 거, 그런 걸 부흥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이적이 문제가 아니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주님이 마음에 계신 것이 믿어지는 게 부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여러분, 기사와 이적이 커요? 예수님이 커요? 예수님이 훨씬 크죠! 그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 안에 계시잖아요. 이 사실이 진짜 믿어지는, 항상 믿어지는, 항상 의식이 되는 거, 그게 부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동행운동’을 시작했지만, 너무 아쉬워요. 이렇게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한 번은 기도를 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요. 은퇴하고 이제는 제가 후임 목사님에게 교회 목회를 다 넘겨드리고 사실 마음에 뭔지 모르는 허탈감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미 부흥은 네 안에 있잖아.’ 깜짝 놀랐어요. 그걸 몰랐어요.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가 아니었어요. 

― 여러분, 사도행전 시대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금 한국에 와보면 다 기절할 거예요.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을 수 있어?’ 그 초대교회 당시 때 예수 믿으면 그냥 순교해야 되고, 쫓겨나야 되고, 그러던 시절 예수 믿는 사람 찾아보는 게 얼마나 어려웠어요. 지금 보세요. 이렇게 많아요. 모세 아브라함 다윗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 그러나 그들 시대에 이 지구상에 여호와 하나님을 진짜 참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은 유대 민족, 그들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온 세상 열방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잖아요. 천국에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은요, 우리를 보고 너희들이 부럽다고 할 거예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예요. 우리 안에 지금 부흥의 엄청난 강이 흐르고 있어요.  

  

□ 여러분과 한국교회가 예수님과 동행하면 무엇이 어떻게 바뀔까요?  

  

―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여러분이 주님을 대면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든 무거운 짐 다 벗겨질 거예요. 불평, 원망 다 사라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칠 거예요. 주님을 만났는데, 모든 고난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을 거예요. 은밀한 죄, 이제 끝났어요. 예수님 만나면 그렇게 된다니까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시다니까요. 우리 안에 여러분 안에 계시다니까요. 여러분, 진짜 믿읍시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나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사람! 하나님, 제가 이제는 그렇게 살겠습니다.  

― 여기 계신 여러분들만이라도, 정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예수님 그분을 알고, 그분을 정말 사랑하고,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고,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주님과만 동행하고 싶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기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애통하고, 그렇게 평생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 오늘 여기 계신 다니엘기도회에 참여한 여러분들만이라도 지금부터 그렇게 살면, 저는 오늘부터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 순종은 하나님이 도와줄 문제가 아니고, 내 믿음의 문제입니다.  

  

― 한 번은 제가 주님 앞에 그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오늘은 죄에서 이기고, 제 마음을 지키고, 주님께 순종하며 살게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주님이 그건 도와줄 문제가 아니고 니가 믿을 문제라는 겁니다. 제가 그때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동안은 계속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가 죄를 이기고, 늘 마음을 지키고, 늘 주님이 기뻐하는 길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건 믿음의 문제예요. 그래서 즉시 기도를 바꿨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계시니 감사합니다. 제 왕이 되시고, 제 생명이 되시고, 늘 저와 동행해 주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그날은 완전히 다른 날처럼 느껴졌어요. 뭘 도와달라 말라 할 것도 없어요. 이미 주님이 이루신 일, 내 안에 오셨고, 내 생명이 되시고, 나의 왕이 되셨는데, 이 일을 내일로 미루시겠어요? 내년으로 미루시겠어요? 10년 뒤로 미루시겠어요? 이미 여러분에게 다 허락된 은혜인데, 오늘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기도할 때, 이제는 정말 주님을 주목하세요. 주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 이 땅에 거룩한 영적 각성이 일어나고, 세계에서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그때, 한국 교회는 이미 영적으로 완전히 달라져 있게 해주세요. 그들이 한국교회를 보면서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그들의 눈으로 생생히 목격하게 해주시옵소서. 

―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또 찬양합니다. 하나님, 정말 가슴이 터질 안타까운 마음으로 섰습니다. 하나님, 이 땅 한국교회를 주님이 너무나 사랑하시고 다시 영적으로 우리를 일깨우길 원하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주님이 행하실 그 일을 행하소서. 하나님, 이 자리에 세워주셔서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영상으로 이 집회에 함께 참여하는 성도들, 앞으로 영상을 볼 성도들까지 주 예수님을 주목하게 하소서. 이미 은혜 안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이 왕 되심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 제4차 로잔대회가 이제 10개월 뒤에 이 땅에서 열립니다. 그때 한국교회가 살아난 것을 증거하게 하소서. 이 땅에 새 역사가, 새 부흥이 일어났음을 전 세계 모든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이 다 듣고 목격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도 살고 이 나라도 살고, 세계 열방도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결어 및 기도  

  

1)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오늘 이후로 우리 안에 영적인 대각성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정말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주님, 그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그 주님이 바로 지금 내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나의 왕이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날마다 그 주님을 의식하고 나는 죽고 예수와 동행하는 그런 삶을 살기를 소망하면서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2)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장 큰 기적이 뭐죠? 바로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 그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내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주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의 상황과 문제만을 보고 두려워 떨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인생의 고난과 문제보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훨씬 크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주님을 의식하고 내가 그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관념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것, 날마다 그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이기게 하시고, 감당케 하시고,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 우리 안에있는 죄성을 이길 수 있나요? 여러분의 힘과 여러분의 지혜와 열심으로 다가오는 세상의 수많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나요?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뭘까요?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성경을 보게 되면 다윗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하나님,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입니까? 지금 나가서 싸워야 합니까?’ 묻습니다. 적군의 상황에 대해서 물은 적이 없어요.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면, 하나님께서 지금 나가서 싸우라고 말씀하신다면,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기 때문이죠. 여러분, 우리도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이후로 주님! 영적인 대각성이 내 안에 시작되게 하시고 우리 한국교회 안에 영적인 대각성이 일어나게 도와주셔서, 날마다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과 동행하고 끊임없이 주님께 물으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도와주시고,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기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3) 주님 한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내 인생 최고의 기적은 내가 예수를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내 인생 최고의 은혜는 주님이 바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 마귀를 멸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나의 왕으로, 내 인생의 선한 목자로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관념이 아닌,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믿음으로 믿게 하시고, 이제 날마다 그 주님을 의식하고 그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주님, 오늘 이 밤에 그 피 묻은 손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안수해 주셔서, 정욕과 탐욕과 위선의 비늘이 벗겨지게 하시고, 오늘 이 밤에 나의 눈을 열어서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신 그 주님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치게 도와주시고,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십시오. 내 인생에 참 많은 어려움과 아픔과 고난이 있지만, 이제는 그 고난에 집중하기보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께 집중하게 도와주십시오. 내가 당면한 인생의 고난보다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주님이 나보다 앞서 행하시며 나를 위하여 싸워주시면, 우리 인생의 길도 열리고 광야에 길이 만들어지고 사막에 강도 만들어내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인생의 문제들만을 보지 말게 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나의 모든 연약함과 질병과 저주를 담당하신 주님, 그 주님을 보게 도와주십시오. 오늘 그 주님이 살아 역사하시면 반드시 우리 인생 가운데 길이 열리고, 우리 안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주님 나를 통치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러분, 이것은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음이 죄라는 사실이죠.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과거의 충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초대교회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아니 되고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 말씀처럼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벌떡벌떡 뛰고 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내 감정과 내 의지와 내 생각과 내 입술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감사할 수가 있고, 어려운 상황과 인생의 밤 가운데서도 찬송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른 기도하지 말고 주님, 주님이 내 안에 이미 계시는데 하나님의 영으로 나를 충만하게 도와주셔서 성령님의 지배를 받게 도와주십시오. 옛사람의 욕망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타락한 내 인생의 본성이, 내 인간의 본성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내 감정과 욕망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나를 지배하시고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길 원합니다. 주여! 내가 복음을 위하여 살기 원하오니, 하나님이 나에게 합당한 은사를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영어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시간에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면서 우리 같이 주여 한 번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5)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우리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합니다. 이미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지만,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기름부어 주십시오. 내 힘과 능력으로는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옛사람의 그 타락한 본성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 우리 각 사람에게 불로 임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가 이 시간에 주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주님, 이 시간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성령님, 기름 부어주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도와주시고,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 더 강력하게 불로 임하여 주셔서 우리가 끊어버리지 못했던 옛사람의 습성들, 오늘 이 시간에 끊어지게 도와주시고, 성령님이 강력하게 빛으로 임하여 주셔서, 우리를 묶고 있는 흉악의 결박들이 풀어지게 도와주시고, 어둠이 사라지게 도와주시고, 우리 안에 있는 미움과 분노와 쓴소리들이 성령의 불로 녹아지게 도와주십시오. 성령님, 이 시간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그 현장 속에, 사모하는 심령 속에 역사하여 주십시오. 성령님을 초청합니다. 성령님을 환영합니다. 성령님, 기름부어 주옵소서. 그래서 성령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도와주십시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빛 되신 주님! 빛 되신 주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심으로 지금 우리 안의 어둠이 떠나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불안과 근심과 공포와 두려움이 떠나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제, 성도들의 삶 속에 생각 속에 역사해서 기도할 때마다 잡념을 가져다주고,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그 불면증, 잡념, 두려움, 불안, 초조는 끊어질지어다! 사라질지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지어다! 주님,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만이 나의 왕이십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