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의 실제 나이는 만 31살이지만, 정신연령은 3-4세 수준입니다.
― 부족한 저희를 이렇게 귀한 다니엘기도회 간증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먼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보시다시피 연약하고 부족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임할 거라고 저는 믿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인사성이 밝은 우리 모세를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세는 올해 나이 만 31세가 되었습니다. 꼬마 신랑 같죠? 그런데 지적장애로 인해서 정신연령은 3~4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른쪽 편마비로 인해서 지체 장애가 있구요.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눈도 한쪽 눈으로만 자기가 보려고 하는 초점에서만 아주 조금 볼 수가 있습니다. 악보는 전혀 보지 못하고요. 모든 노래는 다 듣고 외워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 일상생활하는 데 있어서 먹는 거, 입는 거, 씹는 거, 또 신변처리까지 저의 도움이 다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모세의 전용 몸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모세가, 정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백석예술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렇게 초라하고 약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선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간증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으로 고백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결혼 전 불교 신자였던 제가 시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 이 땅의 모든 장애인분들과 또 그의 가족들이 오늘 부족한 저희의 모습을 통해서 위로가 되고 회복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간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저의 친정엄마는 저의 이름을 절에다 올려놓고, 매번 무슨 날만 되면 저를 데리고 가서 불상 앞에다 절을 시키곤 하셨습니다.
― 그런 제가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을 오면서, 나에게 교회에 나가는 거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남편을 통해서 시댁에 요청을 했어요.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저는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저희 시어머님 때문이었어요. 제가 결혼하기 전에 결혼을 먼저 한 친구들과 모이면, 헤어지는 시간까지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내곤 했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다가 와서 본 저의 시어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셨어요. 참으로 인자하시고, 온유하시고, 또 자상하시고, 당신의 입장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배려해 주시면서 사랑으로 감싸주는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늘 조용히 기도하시는 그런 모습을 제가 보게 되었어요. 나중에 제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난 후에 저희 어머님을 생각해 보니, 저희 어머니께서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님이 섬기는 그분이 궁금한 생각이 들 때, 저희 어머니께서 ‘예수 잘 섬기는 것이 곧 나에게 효도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 낯설고 어색했는데, 저희 어머니께서는 그런 저에게 믿음의 어머니로, 신앙의 멘토로 저를 이끌어 주셨어요.
□ 임신 중, 모세가 살아날 확률이 없다며, 낙태를 권유받았습니다.
―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할 때, 첫째아이로 예쁜 딸을 주셨습니다.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으고 내 동생 살려달라고 흐느끼던 그 아이는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요. 지금은 저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도해 주는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둘째아이 모세를 가졌을 때는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의사분께서 아들이라고 일러주시더라고요. 저는 그 아들이란 말을 듣자마자 왜 그리도 기뻤던지요? 저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저희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신 4개월말경, 초음파 검진을 통해서 아이의 머리 뒤쪽 부분에, 뼈가 형성되지 않아 탁구공만 하게 구멍이 생겼는데요, 지금도 그 구멍이 뒤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 구멍으로 안에 들어 있어야 할 뇌가 밖으로 다 흘러나와서 아기가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목사님께 심방을 요청했고, 저희 가족 모두는 그 보이지 않는 생명이 가여워서 눈물로 기도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주간 동안 기도하고 가서 다시 재검진을 받기로 했는데, 그때 저는 처음으로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그렇게 한 주간 기도하고 가서 다시 재검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사분께서는 낙태를 권유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분들 전체 회의에서 이러한 경우에는 도저히 아기가 살 수 없고, 산모도 위험할 수 있으니 낙태를 해야 한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통보를 해왔습니다. 그때는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서 낙태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환자복을 갈아입고 수술을 대기하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 위로차 심방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상 1장 12절에서 18절 말씀, 한나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예배를 드렸어요. 그 하반절 내용에 보면,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성경 말씀을 알지도 못했던 제가 그 말씀을 받는 순간,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아이의 미세한 태동을 느끼게 되었고요. 그 순간 인위적으로 이 생명을 해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낙태 수술을 포기하도록 이끌어 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그 당시에 낙태 수술을 포기하게 되었고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10개월을 채워서 1992년 8월 4일,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서 아이는 세상에 오게 되었습니다.
□ 출산 후 모세의 대뇌 70%, 소뇌 90%를 절제했고, 생존확률은 1% 이하였습니다.
― 아이를 낳고 신생아실로 향하던 간호사분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저희 보호자를 찾아 남편이 신생아실 앞으로 달려갔는데, 그곳으로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답니다. 머리만 한 뇌가 내막에 쌓인 채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습니다. 수술을 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는 의사분의 말에 저희 남편이 “정말로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물으니 의학적으로는 1%의 희망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아기가 수술을 해서 산다고 하면, 그러면 그것은 의학이 한 일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겠네요?”라고 물으니 맞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족 모두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맡기고 기도할 테니 의사분들께서는 최선을 다해서 수술을 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 밖으로 나온 뇌를 모두 절단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대뇌의 70%, 소뇌의 90% 이상을 절단해서 이제 아기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온몸에 장애가 너무 극심해서 얼마 살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수술 후에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기에게 온몸을 부르르 떠는 전신 경련과 함께 호흡 곤란이 찾아왔고, 병원 측에서는 예상했던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이때 아기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계셨던 저희 시어머니께서 마지막 순간이 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평소에 자주 다니시던 산으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산 비탈에 서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바로 알고 기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응답이 없이는 이 여종은 내려가지 않겠노라고 산비탈을 구르고 또 구르고, 나뭇가지를 붙잡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응답을 받으시고 교회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한 주간 동안 작정 철야 기도회에 들어가셨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지쳐서 강단 앞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늦은 시각에 기도하러 나오셨던 목사님께서 보시고 그때가 여름 휴가철이었는데, 전 교인에게 휴가 반납을 선포하시면서 온 교회가 깨어서 하루 두 번에 걸친 100일 특별기도회에 들어갔습니다. 며칠 후 아기는 평온해졌고요.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이때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당신의 편안함을 버리시고 저희와 고통을 함께 나누시겠다고 당신의 거처를 아예 교회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사람들은 남의 일은 3일이면 잊어버린단다. 내가 이곳에서 왔다 갔다 해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한 번이라도 더 모세를 기억하고 기도해 줄 게 아니냐고 하십니다. 목사님께 청해서 목사님이 내어주신 교육관 한 켠에서 25년이라는 세월을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저희 시어머님의 연세가 올해 98세가 되셨어요. 지금 많이 연로하셔서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항상 저희 시어머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다. 언제나 어디서든지 하나님만 자랑하게 기도로 늘 준비해라.” 그렇게 어머님의 눈물 어린 기도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중보기도해 주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저희는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오기는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는 주님 안 계신다고, 사실 주님한테 막 대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저의 등 뒤에 계시더라고요. 지금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등 뒤에서 우리가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새 힘으로 일으켜 세워주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지금 찬양할까 합니다. 모세가 자기 순서대인 줄 알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라는 찬양을 할 건데요, 우리 박수치면서 함께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퇴원 후 모세의 상태는 더 심각해져, 곧 숨이 끊어질 상황이 되었습니다.
― 퇴원을 해야 하는데, 몸무게가 미달이라는 이유로 퇴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퇴원 후에 아기에게 일어나는 일은 어떠한 것도 병원 측에 책임을 묻지 않겠노라는 각서를 쓰고서 아이를 퇴원시켰습니다. 퇴원 후에 저희는 바로 교회로 달려갔고요,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집으로 왔습니다. 33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아기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비참한 모습이었어요. 머리는 찌그러진 냄비 모양이었고, 몸은 뼈에 가죽만 비비 틀어져서 꽈배기처럼 꼬여 있었습니다. 정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었어요.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기적이었습니다. 우유 한 모금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어요. 아기는 눈만 뜨면 울어댔습니다. 배가 고파서 우는 건지, 어디가 아파서 우는 건지 아기는 마구 입을 벌려 울어댔는데 그 우는 아기의 입에서는 울음소리조차 나오질 않았습니다. 낮에 잠든 아기를 보면서 정말로 이 아기가 못 듣는 건가 싶어서 아기의 이름을 마구 목놓아 불러보았습니다. 방문을 세게 닫아보았지만, 정말로 아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반응도 없는 아기를 보면서 저는 기도했어요.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그저 살아서 내 곁에만 있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사랑을 다해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기에게 뇌를 잘라낸 합병증으로 인한 뇌수종이 찾아와, 뇌출혈을 일으켰습니다. 숨이 끊어졌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정신을 잃었고, 아기는 1분 간격으로 숨이 끊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했습니다. 응급으로 뇌출혈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있는 아기를 보러 갔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산소호흡기를 의존한 채 고통스러워 신음하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거, 살아만 달라고 한 것이 꼭 나의 욕심인 것만 같아서 아기에게 너무나도 미안했어요. 그래서 중환자실이 떠나가라고 통곡하며 울어댔습니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계셨던 저희 시어머니께서 “하나님의 선한 뜻이 분명히 있을 거다. 우리 믿고 기도하자.”고 해서 저는 어머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좇아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뇌수종 전문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는데, 돌아오는 대답 모두가 뇌를 잘라냈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놓고 저희는 기도했구요, 한 달 만에 하나님의 응답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서울 성모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 당시에 뇌수종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신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박사님께서 머리 위에 관을 박고, 그 관에 호스를 연결해서 지금도 이렇게 목을 지나 위 속에 인공적으로 뇌수가 흐르도록 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1년 뒤에 그 관이 막히면서 다시 뚫는 재수술을 해야만 했어요. 이렇게 해서 아기는 네 번의 뇌 수술과 뒤틀어진 다리를 교정하기 위한 두 번의 수술을 더해서 총 6번의 수술을 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기는 장하게도 잘 견디어 주었습니다.
□ 재정적으로도 너무 어려워, 하나님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 저희는 수술비로 인해서 참 많은 빚을 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하던 일이 잘못되면서 저희는 정말 큰 어려움에 닥치고 말았습니다. 어느 한 곳도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이 없었어요.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그때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무릎 꿇어 기도하게 하셨고, 아픈 아이를 보게 하시면서 새 힘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희 남편이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될, 우리가 지켜줘야 할 아픈 아이가 있잖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아 있어. 그러니 우리 조금만 힘내서 위로 올라갑시다.”라고 말했어요. 그때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고, 남편에게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욕탕 청소, 우유 배달, 커피 자판기, 음료수 자판기 관리 등등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했고, 제가 할 수 없는 부분들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데 너무나 힘들었어요. 여전히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때 정말 너무 힘든 나머지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 10개 중 없는 9개가 아닌, 가지고 있는 1개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습니다.
― 너무 힘들 때 제가 옆을 돌아다 봤는데, 이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려만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이 아이를 살려주셨는데, 내가 여기서 다른 것을 더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이고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 저는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환경은 달라진 게 없는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어요. 남들은 돈 주고 와야 목욕을 하는데 저는 돈을 벌면서 매일같이 사우나를 하고 있더라고요. 내 생각을 바꿨더니 이렇게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우리 사람들은 10개 중에 9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게 없는 그 한 가지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신 분들이 참 많이들 계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저에게 있는 그 한 가지에 감사하게 하시면서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기도에 응답도 해주시고 감사의 조건들을 날로날로 더해주시기 시작했어요.
□ 하나님은 모세의 기적을 보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보면서, ‘하나님, 이 아이가 그저 자기 혼자서 앉았다 누웠다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간절하게 했는데 어느 날 앉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서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했는데 서고 걷게까지 하셨어요. ‘하나님,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했는데 5살 때 말문이 트이면서 처음으로 쏟아낸 단어가 바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이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 아픈 아이를 데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생활, 예배 생활이었어요. 그때 듣지 못한다고 했던 아이의 한쪽 귀를 열어주셨고요, 암기할 수 있는 재능까지 허락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 아이가 그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외우고 있다가, 말문이 트였을 때, 자기의 신앙을 고백이라도 하듯이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줄줄이 쏟아내서 함께 예배드렸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할렐루야!
― 이때부터 아이는 각종 모든 소리를 다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아이의 별명이 앵무새였습니다. 그리고 먹지도 못하고 성장하는 아기를 보면서 ‘기도 먹고 자라는 아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어요. 그리고 너무나도 신기하고 감사한 일은 그렇게 모든 소리를 다 따라 하는 아이가 나쁜 소리는 또 싹 걸러 내요. “어, 저 소리 나쁜 소린데?”라고만 하지 지금까지도 이 입 밖으로 나쁜 소리를 한 번도 내어본 적이 없답니다. 이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인사성이 너무 밝아요. 박수칠 때마다 인사할 것 같으니까 박수는 적당히 알아서 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7살 때까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쪽 귀로 들리는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어요. 그때 저희 시어머니께서 또래 아이들의 소리만이라도 들으라고 선교원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선교원에서 재롱잔치 할 때 우리 모세에게도 무언가를 시키고 싶으셨던 시어머니께서 암기 능력이 있는 걸 아시고,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을 암송시켰고, 찬양도 곧잘 따라 불렀어요. 그래서 찬양을 한 곡 부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찬양이 끝나고 난 다음에 많은 분들의 반응을 보게 되었어요. 그 반응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희 부부에게 ‘그래,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다.’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노래를 들려주고, 또 들려주고, 시키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재롱잔치가 끝나고 난 다음에 한 자매가 저를 찾아와서는 ‘모세의 찬양 소리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으니, 찬양 소리를 매일같이 들을 수 있도록 녹음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교회의 자매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네 교회에 가서 오르간을 치면서 찬양을 몇 곡 녹음했어요. 이때를 대비해서 하나님이 미리 녹음을 시켜 놓았던 것 같습니다. 7살 때 불렀던 그 찬양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행복해요.’입니다.
□ 모세가 찬양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방송매체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 이때 따라만 하던 아이의 입에서 ‘자기 자신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자기의 삶’이라는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고백을 들은 저희 시어머니께서 저에게, 모세가 세상을 무대 삼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요. 하나님께서 정말로 모세의 그 순수한 고백을 들으셨던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방법을 통해서 아이를 세상 속에 알려 주셨습니다. 2013년도 1월 29일 평창 동계 스페셜 올림픽 개막식에서 생방송으로 애국가를 부르게 하고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세에게 ‘희망을 노래하는 기적의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주면서 힘찬 격려와 함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 아이는 각종 언론 방송, 휴먼다큐, 스타킹 등에도 출연을 하게 되었고. 실시간 검색어 화제의 인물 1위에도 오르게 되었습니다.
□ 모세와 함께 미국, 캐나다까지 가서 찬양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 먹고 살기 힘들어서 국내 여행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던 저희를 하나님께서 미국에 보내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장애인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께서 우간다에 장애인 학교를 건립하기 위해 기도하시던 중, 모세의 소식을 접하고 나서 ‘모세와 함께 이 일을 하면 너무나도 은혜로울 것 같다’라는 기도 응답을 받으시고, 저희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두 달여 동안 미국 12개 주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했습니다. 플러튼 시에서는 시장님께서 이렇게 연약한 몸을 가지고 이 먼 곳까지 와서 희망을 노래해 주어 고맙다면서 명예시민 증서까지 주었어요. 제가 이 아이를 데리고 12개 주를 다닌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시차 적응도 안 되고요,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정말 감사하면서도 힘이 들었어요. 그런데 모세는 마치 날개를 단 듯, 정말 힘차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올 날이 됐는데, 글쎄, 저보고 집에 혼자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선교사님이 ‘너는 왜 안 가냐?’라고 물으니까 자기는 미국 체질이래요. 그런데 모세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미국에 가자마자 하루가 멀다 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세는 미국이라는 곳은 찬양하는 곳인 줄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여기서 찬양할 테니 저보고 혼자 가라 해서, 데리고 올 때 애를 먹었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해 10월에 저희는 또다시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캐나다, 밴쿠버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장애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들과 또 장애아를 키우며 힘들고 지치신 부모님들과 그의 가족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뉴욕에서 있었는데, 저희를 그곳으로 또다시 보내주시고, 유엔 본부에서 모세의 입을 통해 하나님은 찬양으로 영광을 받으시고, 모세는 많은 분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족한 저희를 통해 일하시기 시작하시더니, 이번에는 또 공영방송을 예비해 두셨더라고요. 네, 보신 분들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그냥 좋은 추억이나 하나 만들자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던 kbs ‘노래가 좋아’라는 방송에서 저희가 최초 4연승 명예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저희는 정말 아침마당, 톡소다, 불후의 명곡 등 많은 방송을 출연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많은 분들에게까지 모세의 기적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정말 수많은 곳으로부터 초청을 받으며 지금 전국을 누비면서 오늘 이렇게 영광스러운 다니엘기도회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혹시 고난 속에 계신다면, 장차 하나님의 때에 축복의 도구가 되실 것이라 믿습니다.
― 모세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아시죠?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함께하는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적이라는 사실이에요.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이 평범한 일상이,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간절한 기도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일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상황은 다르겠지만, 지금 힘들고 어렵고 고난이라고 느끼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이라고 느끼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장차 주실 축복의 사인으로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시면서 믿음으로 기도하셔서 고난이 기쁨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하며 소망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라면서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면서 간증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모세가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고요. 그래서 찬양하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모세를 만나주셨으니 한 번만이라도 모세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면 그 기도에 힘입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 어디든지 달려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영광스러운 일에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명’ 부르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늘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결어 및 기도
1)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 짧은 간증이었지만,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장애인 자녀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시어머니 이미지는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간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세 형제가 이제 우리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 열방을 달리면서 우리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하고, 그래서 정말 모세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주께로 돌아오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찬양을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란 뭘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내가 건강하고 잘 되고 그런 걸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모세 형제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내가 건강하고 잘되고 출세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록 장애를 가졌을지라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은혜가 아니겠어요? 우리 모세 형제가 건강하게 태어나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지만,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줄 수 있고 더 선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잖아요. 사도바울도 육체의 가시가 하나님 앞에 제거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뭐였어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가시가 제거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은혜’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3)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불렀던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내가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거, 걸을 수 있는 것, 찬양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코 당연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의사는 모세에게 1%의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지만, 모세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잖아요? 그래서 이 시간 우리는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내 삶의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내가 오늘 걸을 수 있는 것, 내 가족이 있는 것, 내가 오늘 복음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강한 자로 살게 도와주십시오. 은혜 위에 은혜의 충만한 삶을 살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를지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불평이 아닌 감사의 삶을 살게 도와주십시오. 이번 다니엘기도회 기간에 내 안에 있는 불평과 원망이 온전히 사라지게 도와주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다 같이 주여 한 번 부르고 기도하십시다.
4)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 가운데 베풀어주신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은혜를 망각하고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늘 모세 형제를 보내주셔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시고, 도전과 찔림을 받게 하시고, 회개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걸을 수 있는 거, 말할 수 있는 거, 볼 수 있는 것,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것,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한순간도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속에 감사하게 도와주십시오. 오늘 우리의 인생 속에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은 다를지라도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금번 다니엘기도회 기간에 우리 안에 있는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게 도와주십시오. 감사하는 사람들로 세워지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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