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기도회/2023년 다니엘 기도회 간증

길에서 만난 하나님(신명기8:2) - 이재훈 선교사(11월 15일)

smile 주 2024. 1. 31. 10:26

 

 

□ 5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가짜 믿음이었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마다가스카르 의료선교사 이재훈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광야를 건너온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제가 선교사가 된 지 딱 20년째입니다. 아직 광야를 다 건넌 건 아닌 것 같지만, 그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먼저 제가 어떻게 의료선교사가 되었는지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선교사가 된다는 사람들은 믿음이 되게 좋고 훌륭해서 그렇게 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5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교회에서 전도하면 주는 성구가 적혀 있는 책갈피를 모으는 게 취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학년이 될 때마다 우리 반 친구들은 저의 책갈피 수집을 위해서 한 번씩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런 친구들 가운데 5학년 때 온 집안이 불교 가정인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서 거의 6개월을 매주 그 집에 찾아갔습니다. 나중에는 그 친구 어머니가 “야, 재훈이 불쌍하니까 교회 한번 가줘라.” 그렇게 해서 그 친구가 교회를 나왔고, 저는 책갈피 하나를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누가 먼저 가족을 전도하는지 내기를 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제가 이길 줄 알았는데, 제가 졌습니다. 그 친구는 모두 불교신자였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두 형, 여동생 하나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저는 유일하게 우리 집에서 말을 꺼냈던 동생이 ‘형 같은 사람이 교회 다니면, 나는 평생 교회 안 간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집에서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 중학교 1학년 때 성경책을 읽다가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 예수를 믿는데, 왜 우리 집은 구원을 못 받습니까?”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의 믿음이 가짜니까 그렇다.” “제가 왜 가짜예요? 이렇게 전도도 열심히 하고 이렇게 성경도 열심히 읽고 그러는데 왜 가짜예요?” 그런데 제가 가짜라고 따질 때부터 제가 진짜로 가짜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잘한 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 잘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잘했습니다. 내 내면에는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가식과 위선과 그런 것들이 확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짜 가짜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짜인 걸 알게 되니까 겁이 덜컥 났습니다. 가족 구원을 못하는 거는 고사하고, 나 자신이 지옥에 갈까 봐 너무나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판사판 하나님께로 한 번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 베드로처럼 물로 먼저 뛰어들면,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생깁니다. 

  

― 성경책에 보면,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과 노를 저을 때 풍랑 가운데서 예수님이 무리를 향해 걸어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나도 물 위를 걸어서 주님께 가게 해주세요.” 하고 바다에 내려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 제가 했던 결단과 좀 비슷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판사판 물 위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물 위로 뛰어들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물 속에 빠져서 캄캄하고, 바다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길도 보이지 않는 곳에 가라앉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이 길이 잘 되는 길이다. 저 길이 잘 되는 길이다.’ 이야기하는데,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 크리스천은 길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물에 빠지면 길이 나옵니다. 그래서 길이 손을 잡아줍니다.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기만 하면 안전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 제가 어떻게 물에 빠질 결단을 했을까요?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될 테니까 나를 진짜로 여겨 주세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아프리카에는 식인종이 있고, 각종 맹수들과 뱀과 심지어 식물까지도 사람을 잡아먹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 것은 거의 제 전 인생을 걸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단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싹 변해서 아주 좋은 크리스천이 될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십시오. 제 인생을 보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성질머리 그대로 쓰실 수 없었습니다. 

― 우리가 성경에 보면 법궤를 만드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 아카시아 나무라고 합니다. 씨틱나무라고도 하는데, 그 나무는 굉장히 꼬불꼬불하고, 목재로 쓰기 아주 어려운 나무 같습니다. 그걸로 성배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만 있으면 안 되고, 정금으로 그걸 감쌉니다. 정금으로 싸는 이유는 아마 그 구부러지고 휘는 것들을 막기 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금으로 싼다는 말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로 옷 입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로 옷을 입는다.’라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 인생을 돌아볼 때 예수께서 옷 입혀주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 인생의 경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예수로 옷 입는다.’인 것 같습니다. 

  

□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아카시아 나무를 감싼 정금과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 내가 선교사가 되면 진짜로 여겨주실지, 안 여겨주실지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내가 약속을 지킨다는 표시를 해야 될 것 같은데, 그 당시에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선교사가 될까 하다가 의료선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의 안암동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오고 나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어느 교회를 가야 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듣기로 어렸을 때 주일학교 전도사님이었던 분이 인천 백운역에 교회를 개척하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철을 타고 백운역에 갔는데, 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나는 바쁜 의대생이니 여기에 절대 안 오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하겠다는 놈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개척교회 섬기는 것도 못하는 게 맞냐?’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애 셋 낳을 때까지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형 같은 사람이 교회 다니면 나는 평생 교회 안간다.’고 했던 동생도 교회의 멤버가 됐습니다. 

― 동생이 교회 멤버가 된 이유가 있는데, 제가 동생 대학 시험장에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을 때입니다. 데려다 주기 전날 밤, 동생이 왜 나한테 원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다가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어렸을 때 먹을 것을 선택할 때 눈속임으로 속인 것, 또 하나는 동생하고 싸우면 부모님이 형한테 덤빈다고 동생을 매번 혼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동생을 집적대서 덤비게 한 다음에 패준 적이 있습니다. 아마 두 번째 때문에 한이 맺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집에 와서 동생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여주고, 잠자기 전에 사과를 했습니다. ‘재권아, 형은 너를 참 사랑한다. 형이 너한테 어렸을 때 잘못한 거 용서해 줘.’ 그랬더니 동생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용서를 안 해줬습니다. 합격자 발표날이 되어, 동생을 데리고 신촌에 있는 학교로 갔습니다. 동생이 자기 이름을 못 보고 가슴이 덜컥 해서 고개를 떨구는 겁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동생 이름이 너무 잘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재권아, 축하해. 합격했다!’ 하고 안아줬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동생이 “형, 내일 교회 어디 가?” 그래서 “교회가 좀 멀긴 한데, 나랑 같이 가자.” 그리고 동생이 같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늦게 예수 믿은 것이 억울해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을 부전공으로 했습니다. 방위로 군생활을 하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앉혀 놓고 성경을 가르치면서 부모님을 전도했습니다. 형은 유학을 가서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 저는 개척교회를 다니면서 21살의 청년 집사가 되었습니다. 청년 집사가 되니까 수요 예배도 나가고 토요일 청년부 예배도 나가고, 주일학교도 하고, 성가대도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방학 때는 인형극을 배워 전도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감동 깊게 개척교회를 섬겼던 기억은 목사님과 사모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 두 분이 여전히 자립하지 못한 그 개척교회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기도하는지, 얼마나 말씀 준비를 철저히 하는지, 그 말씀대로 본인들이 살아내시려고 하는지, 한 영혼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런 것들을 너무 가까이 볼 수 있었습니다. 교인 수가 없다 보니까, 가까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억이 제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그런 모델로 그분들이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카시아나무 같은 저를 감싸고 있는 정금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의대를 다니는 동안에 평생 동지들를 만났습니다. 처음에 의대에 입학하니까 꿈을 묻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의료선교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희망하지만, 의료 선교사 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저희 학년에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한 15명 정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 140명쯤 됐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조사를 해봤습니다. 모든 학년에 다 10명 이상 의료선교사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전 세계에 한국 의사로서 선교사가 된 사람은 열 손가락에 뽑을 정도밖에 안 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쉽지 않은 선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의료 선교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지켜주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캠퍼스 찬양도 하고,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1일 찻집도 하고, 그룹 과외도 했습니다. 그룹 과외를 친구들끼리 나누어서 파트별로 가르쳤는데,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 수입으로 선교사님들한테 차도 사드리고, 오토바이도 사드리고, 선교비도 많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두 가지 원칙을 내세우고 회원을 모집했습니다. 첫째는 교회에 십일조를 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이 모임에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 때문인지 회원이 잘 모집되지 않았지만, 소수정예의 회원들이 남아서 지금도 저희를 후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 평생의 귀중한 동지이자, 저를 사지로 내모는 아내를 만났습니다. 

  

― 제게 굉장히 귀중한 동지를 만났는데, 바로 저의 아내입니다. 제가 그 동안 예쁘고 지혜로운 자매들을 여럿 만났는데, 제가 자매들에게 아프리카에 같이 가자고 하면, 모두가 잘 다녀오라고 하며, 만남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가고 싶은데 결혼을 하고 가는 게 좋을까요? 안하고 가는 게 좋을까요?”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답을 주시지 않고 책을 주셨습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지하 운동>이라는 책인데, 범브란트 목사님이 공산 치하에 있던 루마니아 교회에서 감옥에 간 간증을 쓴 책입니다. 그 목사님이 감옥에 간 이유는 사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루마니아가 공산화가 되니까, 공산당이 지명한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짓 복음을 전하니까 사모님이 목사님 옆구리를 툭 쳐서 “당신이 가서 예수님 얼굴에 있는 모욕을 씻어 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뚜벅뚜벅 강대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 안에 있던 비밀경찰들한테 그 자리에서 잡혀 감옥에 간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프리카의 선교사 아내가 되려면 적어도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내는 결혼의 유일한 조건이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남자였습니다. ‘남편을 사지로 보낼 수 있는 여자라면 선교사 아내 될 자격이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 우리 아내가 실제로 사지에 남편을 잘 보냅니다. 저희가 마다가스카르에 처음 갔을 때, ‘노엘리’라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노엘리가 성탄절날 태어나서 이름이 노엘리입니다. 이 친구가 ‘성서 유니온’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노엘리가 선교사들한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나님, 내일이 당신 예수님과 나의 생일인데, 나한테 생일 선물을 주려면 저 무당 좀 치료해 주세요.’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남아공에 있는 어떤 선교사가 보고 저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닥터리, 내가 어젯밤에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는데, 니가 가서 고쳐 주래.”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 팀 리더한테 상의를 했습니다. “가야 될까요? 저 선교사가 저렇게 말하는데 저 말을 믿어도 될까요?” 우리 팀 리더가 우기라 비가 너무 많이 오고, 길이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내는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갔습니다.갔는데 길이 비에 쓸려나가서 도로가 패이고, 절벽이 됐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빠지지 않고 돌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내리막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그만 수로에 빠져버렸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차를 빼지 못해서 밤새 차 속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비가 그치긴 했는데 여전히 길은 미끄러워서 차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니 그 무당을 치료해 주러 가야 하는데, 차가 이렇게 꼼짝을 안 하고 있으니, 어떻게 치료해 주러 갑니까?” 기도하고 시동을 걸었더니 차가 빠져서, 그 무당을 만나러 갔습니다. 무당은 다리에 궤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체성 궤양이라고 그러죠? 정맥 우혈성 궤양 같은 겁니다. 제가 해준 거는 별로 없습니다. 탄력붕대로 잘 감아줬습니다. 그런데 나았습니다. 

― 몇 주 후 노엘리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무당이 치료가 되어, 자기 성경공부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저한테 조금씩 믿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또 같이 기도했던 동지들은 아카시아 나무 같은 저를 정금같이 싸는 정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신실하고 용감한 남성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신실한 아내를 맞이하실 때, 각오가 좀 있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도 제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은 오랫동안 인내를 가지고 훈련시키시는 분입니다.  

  

― 제가 처음 의사가 되어서, 경북 예천군 호랑이가 운다는 뜻을 가진 호명면에서 공중보건의를 했습니다. 아주 환자가 얼마 안 오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아침에 면사무소 있는 데로 차가 나오면 밤에 들어갈 때까지 차가 한 번 있기 때문에 바쁘신 농부들께서 시간이 없어 보건지소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동 진료를 했습니다. 각 리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씩 계획을 짜고 찾아가서 환자들을 봤습니다. 한 번 갈 때마다 수백 명씩 환자를 봤습니다. 환자를 보고 나서 보건지소에 오면 제가 치료한 게 맞았나 의심을 했습니다. 제가 환자를 치료할 때는 굉장히 능력 있는 의사인 척하고 약을 줬지만,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잘못 처방한 거는 다음에 가서 다른 약으로 바꿔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수원 가족교육협회로 임지를 옮겼습니다. 수원 가족계획협회에서는 경기도 내에 있는 모든 직업 여성들의 성병 관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성병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해서 돈이 없는 산모들의 출산을 돕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동 진료할 때 성병 환자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미리 저를 그렇게 준비시켰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이동 진료도 이미 경험한 바가 있어 너무 쉬웠습니다. 그리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와 펠로우를 했습니다. 그 때는 일주일에 14시간 잔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고단하게 일을 한 경험이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동 진료할 때, 환자들이 끊임없이 와도 일할 수 있는 끈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 세브란스 외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저를 아프리카 보내신다고 위장관, 대장항문, 간담도, 유방 갑상선, 소아외과 파트에서 펠로우를 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과정은 위장 위암 전문의, 대장암 전문의 훈련을 받는 건데, 저를 위해서는 이 모든 파트를 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응급의학과에서 외상 환자를 다룰 수 있었고, 차병원에서 산부인과 수술을 배웠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해야 하고, 배워야 하는지 잘 몰랐는데 마다가스카르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 만나는 환자들이 그때 그렇게 배우지 않았으면 치료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준비시켜 주시고 훈련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막 힘들다고 하니까, 신속히 구원해 주시는 게 아니라, 한 아기가 태어나게 하시고,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애를 갈대상자에 구해주고, 그 애가 40살 때까지 살았는데 도망가서 또 40년을 더 있다가 이제 구원하는 인도자 모세로 오게 합니다.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지만, 그렇게 철저히 준비시켜 일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제가 깨달았습니다. 

  

□ 하나님은 극적인 일들을 만드셔서 직접 선교를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선교를 직접 하십니다. 요나 이야기를 보면, 요나는 정말 선교사들이 꼭 배워야 되는 성경입이다.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도망갔잖아요? 안 도망갔으면 어떨 것 같아요? 앗시리아와 그 당시 유대를 비교해 보면, 앗시리아는 미국이고 유대는 작은 나라입니다. 꽤 격차가 나는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앗시리아 사람들한테, “너네 회개해라, 너네 멸망한다.” 이런 말하면 듣겠습니까? 안 듣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니느웨 해변가에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나왔는데, 무엇인가를 싹 토해 놓고 갑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람이 나와서 “너네들 멸망한다!”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쇼킹하고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의 선교 방법은 이런 식입니다. 내가 거역해도, 잘못해도, 내가 실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뭔가 극적인 어떤 것을 만드셔서 선교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나눌 이야기들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제가 잘나서 한 것은 하나도 없고, 많은 동역자들을 보내시기도 하고, 또 내가 한 작은 일을 엄청나게 부풀려서 사람들이 정말 놀라게 만드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 예수의 옷을 입고 주인공처럼 최선을 다해 연기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서 개척교회를 섬기고, 공중보건의로, 인턴으로, 외과 레지던트로, 펠로우로 바쁘고 피곤할 때, 그 힘든 시간을 지나게 하신 이유는 또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여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보려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우리 후배들이나, 우리 애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빠가 경험해 보니까 그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지금 너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 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너한테 어떤 일이 닥쳐도 최선을 다해서 해라.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더 좋아. 그러면 너가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하는 위대한 일은 또 그 후에 올 미래의 준비가 됩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닥치고 있는 이 순간 그리고 우리에게 벌어진 이 모든 환경, 그 환경이 혹시 다른 사람들보다 너무 나쁘다고 생각되면 더 좋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런 무대라고 생각하시고,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해서 주인공처럼 연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 예수로 옷 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체를 보여주면 너무나 부끄러워서 보여줄 게 하나도 없는데, 연기는 할 수 있잖아요? 예수로 옷 입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여주는 게 아니고, 옷 입은 예수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 다니던 남양주 교회에서 마다가스카르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 저는 학생 때 과천에서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장인 장모님이 계신 반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쉽게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펠로우 때는 장인 장로님이 멀리 남양주로 이사를 가셔서 우리가 남양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과천, 반포 그러면 여러분들, 뭐 생각나는 거 없으세요? 아주 비싼 아파트 맞습니다. 문제는 저희가 이사간 다음에 값이 올랐다는 겁니다.남양주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아파트 값이 겸손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남양주로 이사를 가니까 애들 셋을 데리고 인천에 있는 교회까지 가기가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바쁜 외과의사 생활을 하는데, 아내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다녀야 하기도 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제가 오랫동안 다니던 개척교회를 사임하고, 교적을 남양주에 있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구역모임을 하는데, 인도자께서 내가 병원에서 끝나고 늦게 오니까, 구역 모임을 10시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펠로우를 마치고 선교사로 나간다고 했을 때, 그때가 마침 그 교회 건축 50주년이 된 때입니다. 저희를 50주년 기념 파송 선교사로 전액을 후원해서 보내주셨습니다. 만약에 그 교회가 없었으면 저희는 선교사로 첫 발을 내딛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의사니까 의사 친구들 후원을 받아서 잘 갈 것이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전화 걸 시간도 없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후원해 주셔서, 저희가 선교사가 되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마다가스카르에 가야 하는데, 제가 외과의사니까, 수술도 하고, 치료도 해야 되니까 도구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저랑 모임을 하고 있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산부인과를 정리하시면서 그 병원에서 쓰던 모든 수술 도구와 재료를 저희한테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무엇가 하실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그 도구를 가지고 마다가스카르에서 15년이 넘게 이동 진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없었으면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고 다녔겠습니까? 또 물품을 공급해 주시는 NGO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단체에서는 직접 오셔서 저와 함께 환자를 봐주시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시기도 하고, 마다가스카르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있으면 그 단체에서 환자를 초청해서 한국에서 치료도 해주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왜 만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이런 분들을 모이게 해주시고, 엮어주셔서 함께 일하게 해 주셨습니다. 

  

□ 저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영험한 무당으로 소문났습니다. 

  

― 마다가스카르에는 의사가 굉장히 부족합니다. 인구는 3천만 명 정도 되고, 땅은 우리나라 남한의 6배 정도 됩니다. 의학 교육의 인프라도 굉장히 부족하고 국가 재정도 부족합니다. 의사들 대부분은 돈을 벌 수 있는 도시에만 있고, 인구의 80%가 살고 있는 시골 지역에는 의사 만나기가 아주 힘듭니다. 2006년부터 마프라고 하는 ‘미션 에비에이션 펠로우십’ 그것을 ‘비행 선교단’이라는 단체와 ‘하버웨이드’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하버웨이드’는 수륙 양용 보트인 ‘하버크라프트’라는 수륙 양용 보트를 타고 복음을 전하는 그런 단체입니다. 그 단체와 제가 속해 있던 ‘아프리카 오지선교회’라는 세 단체가 연합해서 ‘마다가스카르 메디칼 사팔’이라고 하는 공동 선교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비행선교단은 우리를 오지에 데려다 줍니다. 오지에 가면 활주로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 풀밭에 경비행기가 내립니다. 하버에이드는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해주고, 우리를 그곳에서 필요한 곳으로 이렇게 하버크라프트를 타고 옮겨주는 일을 했습니다. 저희는 약품과 수술 도구와 이런 것들을 챙기고 가서 환자를 치료해 주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한 사역을 116번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그 사역을 시작한 것은 마다가스카르 남서부의 ‘망국’이라고 하는 커다란 강이 있는 ‘베르루아’라는 곳에서 였습니다. 

― 하루는 하버크라프트를 타고 어느 마을에 갔는데 하버크라프트가 모래를 지나서 모래톱에 정박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혼비백산이 되어 다 도망갔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그 마을의 촌장 어른께서 젊은 청년들을 잔뜩 데리고 왔는데, 청년들이 창하고 도끼하고 칼 이런 거를 차고 왔습니다. 그분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여기에 뭐 하러 왔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제가 “나는 의사여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러 왔다.” 동네 사람들 전체를 봐도 한 300명, 400명 정도밖에 안 될 텐데, 이 사람들이 평생 한 번도 의사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의사가 뭐 하는 직업인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한참을 설명했더니,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운비아싸’ 그러는 거예요. ‘운비아싸’가 뭐냐 하면 ‘움비’는 ‘소’라는 뜻이고, ‘아싸’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소 잡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백정이 아니고요. 거기에서는 소 잡는 일을 굉장히 신성하게 합니다. 피를 뿌리고 옛날로 치면 제사장 역할을 하는데, 무당입니다. 그들은 아프면 100% 무당을 찾아갑니다. 제가 그날부터 외국에서 온 무당이 되었습니다. 

― 촌장이 우리를 환영하면서, 자기 집에 머물게 해주어서, 소를 잡을 때 쓰는 신성한 나무 곁에 진료대를 설치하고, 환자를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옵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이 가지도 않아요. 우리들이 뭐 하는지 구경거리가 났어요. 그냥 쳐다보고 있고 우리가 가지고 온 그 어떤 것도 다 이 사람들한테는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며, 뭐 이런 것들은 이 사람들한테 정말 신기한 거였습니다. 한참 후에 청년들이 혼수상태에 빠진 청년을 들것에 실어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가 그 청년에게 말라리아 테스트를 하니까 두 줄이 쫙 나왔습니다. 말라리아로 이렇게 혼수상태면 한 80~90% 죽습니다. 저희가 수액을 주고 말라리아 약을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온 환자는 한 4살~5살 정도 된 남자아이인데, 설사를 너무 해서 거의 쇼크에 빠진 상태로 쭉 늘어져서 왔습니다. 그 마을에서 설사가 그 정도이면 하루 이틀 만에 죽습니다. 설사한 아이에게 먼저 수액을 주고 항생제를 주고 해열제를 주고 좀 있었더니, 조금 지나서 마당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와서 진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병을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거기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환자를 보고 있는데, 혼수 상태였던 그 말라리아 환자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그들은 평생 한 번도 약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준 말라리아 약에 너무나 잘 반응을 한 겁니다. 그래서 현대 의약품 때문에 제가 그곳에서 아주 영험한 무당이 되었습니다.^^ 

  

□ 소 강도 환자를 치료하면서 교회를 세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 마다가스카르 베르루아 지역은 바라 족속이라는 부족이 대부분입니다. 이분들은 목동들입니다. 이곳에는 소년이 장가 가려면 풍습이 있는데, 소를 훔치는 것입니다. 소를 성공적으로 훔치면, 그날 맥주 3병 그리고 젊은 아가씨 한 명을 주면서, ‘너는 어른이다.’라고 인정하는 풍습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떤 사람들이 소를 현금을 주고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서로 소를 훔쳐서 팔다가 점점 규모가 커져서 떼강도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소 강도들이 한 수십 명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소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과 소를 훔치려고 하는 사람들끼리 총으로, 칼로, 창으로, 도끼로 이렇게 싸워서 상처가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으러 진료소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중환자부터 치료했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치료를 하고 있는데, 한 반절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라진 사람들은 소를 잃어버린 피해 마을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소 강도들을 치료해 주니까 외국에서 온 무당이 강도 편이구나 생각해서 다 도망갔던 겁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 다음 날 그 사라졌던 환자들이 있는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찾아온 걸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친 환자들을 다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마을은 우리하고 가장 협조적인 주민들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크리스천이 한 명도 없었던 베르루아 지역에 교회가 5개가 생기고, 특별히 이 소 강도 당했던 그 동네에 처음으로 교회가 생겼습니다. 10명 중에 3명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 임신하는 약을 달라고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 베르루아 지역에서 남자들은 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은 애를 많이 낳으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통 애를 한 13살, 14살, 15살 때부터 애를 낳습니다. 남편이 없어도 애가 많으면 매우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애를 많이 낳은 미혼모는 아주 부자한테 시집을 잘 갑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자기가 소도 많고 지켜야 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애를 많이 낳은 여인이 애를 데리고 시집을 오면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리고 얘를 많이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들 여러 명이 모여서 저한테 왔습니다. 저한테 와서  우리도 애기를 좀 낳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무당이 ‘너는 평생 아기를 못 낳을 거다.’라고 했던 여인이 우리한테 치료를 받고 나서 임신을 했다는 겁니다.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성병에 걸렸었는데, 우리가 항생제를 주고 치료한 여인 몇 명이 임신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떼로 몰려와서 애 낳는 약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 마을 무당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독살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 우리가 그렇게 현대 의약품으로 영엄한 치료를 하기 시작하니까, 원래 있던 무당들이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저희가 베이스 캠프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는데, 치료한 다음에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났습니다. 외국에서 온 무당이 아이의 눈을 빼가고, 어떤 사람의 간을 빼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알고 보니, 언청이 아이를 수술하는데 얘가 마취를 하려니까 무서워서 벌떡 일어난 거예요. 얼굴을 천으로 감쌌는데 왼쪽 눈이 천으로 가려져 있었던 겁니다. 동네 사람들이 삥 둘러서 보고 있다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었습니다. 아마 그걸 보고 눈을 빼갔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왼쪽 옆구리에 주먹만한 고름 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걸 도려내고 검정 쓰레기 봉지에 제가 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간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때 무당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회복하는 기회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 마을에 오면 독살시키겠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 저희와 일을 하는 독일 사람 제이콥이라는 디렉터가 있었는데, 무당의 이야기를 듣고 독살당할 위험이 있다며 안 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이콥한테 난 선교사이기 때문에 죽어도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조건을 걸었습니다. 너가 가서 그곳의 헌병대장, 경찰, 도지사, 시장, 마을 어른들한테, ‘너희 팀이 오면 보호해 주겠다.’는 사인을 받아가지고 와라. 그 사인을 받아오면 가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는 혼자서 그 사인을 받으러 베르루아에 다시 내려갔습니다. 각 단체장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겠다는 사인을 받았습니다. 동네에 갔더니, 동네 어른들은 글을 몰라 사인이 없어서 손을 잡아 같이 동그라미를 그려서 표시 했습니다. 베이스 캠프에 돌아오니까 어떤 한 어른이 아이 환자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 환자는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고름이 가득 찬 그런 아이였습니다. 제가 오늘은 우리가 약을 안 가져왔으니, 다음 달에 아이를 데려오면 치료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른이 “아니, 너네가 기도해 주면 되잖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천이인지를 물어봤어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냐고 물으니, 당신들이 기도로도 치료하지 않냐고 말하는 겁니다. 의료팀이 치료할 때, 선교팀이 환자들 한 명씩 한 명씩 놓고 기도를 해주니까, 기도로 치료한다고 소문이 났던 겁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얘가 낳을까 생각했지만, 선교사니까 안 해줄 수도 없고,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기도가 딱 끝나고 제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주머니에 물에 타먹는 항생제가 한 병 있는 거예요. 이 항생제가 왜 여기 들어있지? 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나중에 생각이 났는데, 공항에 한인 식당이 있습니다. 그 집 아저씨가 자기네 막내딸의 편도선이 부어서 많이 아프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공항 가는 길에  약을 주고 가려고 했는데, 깜박 잊고 약을 못 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약을 물에 타서 먹이고 보냈습니다. 사실 고름이 그 정도면 그런 약을 한 14병쯤 먹어야 낫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그 다음 달에 저희가 의료팀을 꾸려서 이번에는 비행기로 안 가고, 차로 갔습니다. 그래서 베르루아 들어가는 강을 건너기 전, 판자카나라고 하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도착해서 갑자기 누가 우리 차를 세우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를 독살하려는 위험이 없어졌는지 몰랐기 때문에 저희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무도 차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데 어떡합니까? 제가 대표니까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이 남자가 뭐라고 하는데, 저도 겁이 나서 하늘이 하얗게 느껴지는 걸 느꼈습니다.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이 남자가 어떤 아이를 부르더니 옷을 막 벗기는 겁니다. 그 아이를 보니까 한 달 전에 고름피부병 때문에 온 아이인데, 그 피부병이 깨끗이 나아버린 겁니다. 문제는 제가 항생제를 안 주었으면, 진짜로 기도로 치료한 영험한 선교사가 되는 건데, 항생제를 줘서 이게 기도 때문에 나았는지, 항생제 때문에 나았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나의 기도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을 아시고, 항생제를 좀 더해주신 것 같습니다. 

― 저희가 어떤 마을을 찾아갔더니, 그 마을의 촌장이 “니가 그 피부병 걸린 아이를 치료한 의사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를 동네 중앙에 데리고 가서,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의자들을 쫙 놓고, 상을 놓고, 동네 여자들이 모여서 전통 춤을 막 추고 환영식을 한 다음에, 닭과 쌀을 가져와서 진수성찬으로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 마을에 갔는데도, 여전히 “당신이 그 피부병 아이를 치료한 의사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저희에게 그 지역에서 뽑은 ‘레아씨’라는 스텝이 있었는데 그 스텝이 그러는 겁니다. 이 아이가 피부병에 걸린 지 3년이 됐는데 베르루아의 온 무당이라는 무당은 다 찾아가서 치료를 해봤지만 안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하고 난 다음 날부터 낫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나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닥터리’가 아주 영험해서, 이 동네 무당들은 우리를 독살하기로 했다가 저 사람에게 잘못했다가는 자기가 저주를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우리를 감히 독살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 무당들의 대장을 전도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 어느 날, 그 베르루아 지역에서 가장 센 무당이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왕족의 묘에서 무당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예를 표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탈장이 되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무당님 보호자분이 어디 계시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꼬마 여자애가 나오는 겁니다. 아니, 너 말고 할머니 오시라고 하니까, 이 여자가 정색을 하고 저한테 자기가 부인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놀래서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어떻게 된 거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이 12살 여자애가 귀신이 들렸는데, 무당이 귀신을 쫓아낸 다음에 이 여자의 부모한테 소 두 마리를 주고 부인을 삼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고, 수술을 했습니다. 국소마취로 수술을 하니까 따끔거리고 아프기도 할 텐데, 이 무당은 수술이 끝날 동안 정말 꿈쩍도 안 했습니다. 약간 경외심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희가 수술받은 환자에게는 성경을 주고, 일반 진료받은 사람에게는 사영리 같은 쪽지를 줍니다. 무당도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책을 주었는데, 무당이 성경책을 받더니 손을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렇게 의연하던 사람이 왜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지 물어보았더니, 이 무당이 갑자기 “내가 지금부터는 우디가씨로 약을 만들지 않겠다.” 보통 무당은 사람들이 아프면 약을 주잖아요. 그 약을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물어보는데, 자기가 정기적으로 그 마을에 제사를 지내는데, 자기가 그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선교사인데 제사를 지내라고 할 수도 없고, 저렇게 부탁을 하는데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던 상황에, 같이 갔던 전도팀의 말라가시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지 않냐?” “예, 있습니다.” “당신이 이 여인을 사랑하는데, 이 여인이 당신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 어떻겠느냐?” 무당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이 창조주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면 어떻겠느냐?” 그러니까 무당이 한참 있다가, “알겠습니다!” 하고 일어나서 아내의 손을 잡고 갔습니다. 가기 전에 저희한테 “우리 마을에 꼭 와주십시오.” 그랬습니다. 우리는 속으로 ‘혹시 독살하려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치료를 받았으니까 아마 융성한 대접을 해주겠지?’ 생각하면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가려고 할 때마다 비가 오고 해서 못 갔습니다. 그 마을까지는 걸어서 하루 반을 가야 됩니다.  

― 몇 년 후, 오랜만에 제가 베르루아에 다시 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그러는 겁니다. “닥터 리, 무당이 닥터 리 엄청 찾아다녔어.” “왜?” 저는 무당이 또 재발해서 화가 나 저를 찾는 줄 알고 물었더니, “무당이 성경책 있으면, 좀 더 달래.” 그래서 성경책 20권 한 박스를 구해서 전달했습니다.  

  

□ 판다하라 마을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 저희가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특별한 훈련을 받게 하신 이유는, 그 환자들의 기도와 고통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이, 그 환자들과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만나게 해서, 치료받게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 제가 의료 선교를 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난했습니다. “닥터 리가 하는 것은 선교가 아니고, 봉사활동이야. 복음을 전해야지.”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저한테 복음을 전하라고 하면 저를 목사로 만드시지, 왜 의사를 만들었겠냐고 저는 반박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 부족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 마다가스카르 남서부에는 지금도 나무를 비벼서 불을 피우는 부족이 있습니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미케아 부족’인데, 그 미케아 부족은 미케아라고 하는 숲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미케아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누르’라고 하는 말라가시 선교사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미케아 부족은 다른 사람이 숲에 들어오는 걸 무척 경계하고, 만나는 것도 싫어합니다. 누가 들어가면 다 숨어버리거나 자기들끼리 특별한 리듬의 신호를 보내서 경계를 합니다. 그래서 이 주누르 목사가 미케아 숲 속에서 한 7km 떨어진 마시구리 족속이 있는 마을에 살면서 접촉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시구리 족속들이 외부에서 온 주누르 목사와 그 동료들을 싫어했습니다. 주누르 목사가 아내와 또 한 선생님과 조그마한 학교를 했습니다. 자기 아들 3명, 그리고 동네 애들 4명 해서 7명 있는 학교를 했는데, 어느 날 그 선생님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리고 주누르의 막내아들이 마당에서 막 거품을 물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프 비행선교단이 주누르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주누르에게 햄 무전기를 주어서 주누르가 sos를 보냈습니다. 마프가 주누르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닥터 리가 같이 가서 그들이 건강한지 안 건강한지 좀 살펴봐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제가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 이 가족을 수도 타나로 데리고 와서 저희 집에 며칠 머물게 했습니다. 주누르는 제가 외과의사이고, 선교사라는 걸 알고 자기 사역을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마시구리 마을에 갔습니다. 

― 저희가 가서 치료를 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말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많은 무당들이 주누르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칸드레’라고 하는 미케아 숲속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느 날 미케아 족장 중의 한 사람인 ‘판다하라’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주누르한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유엔 단체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자금을 줬는데, 이 사람들이 정부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화전민들 숲에 불 지르는 사람들을 다 내쫓는 정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판다하라 부족도 화전민으로 여겨져서 쫓겨날 판이었습니다. 이때 주누르가 그 관리들 앞에서 “이 판다하라 부족은 숲을 사랑하는 부족이고 불도 안 가지고 다닌다. 나무로 비벼서 불을 피는 사람들이지, 불 지르는 뭘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변호를 해주어서 이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숲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아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주누르가 저한테 숲에 들어가서 진료를 해달라고 해서, 제가 가서 진료를 해주니까 또 난리가 났습니다. 이들이 해열제 먹고 위에서부터 발끝으로 신이 내려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볼 때는 얼마나 영험해요? 문제는 이 판다하라랑 같이 살고 있는 무당이 괴로워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의 이름이 ‘뚠뚠이 알라’라는 신이거든요. 번역하면 ‘숲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숲의 주인이 화가 나서 너희를 떠났기 때문에 나도 떠난다고 하며 이 무당이 떠나버렸습니다. 무당은 몇 주 후에 바닷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가 그곳에서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데, 어떤 아이가 왔습니다.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완전 나쁜데, 그 아이도 영양 상태가 너무 나빠서 탈장이 있었는데, 장이 탈장으로 다 빠져나왔습니다. 저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잖아요? 그냥 저한테 맡기는 겁니다. 저희가 마취를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가 전신마취를 하면 이 아이는 잠이 들 것이다. 잠을 자고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수술을 하고 잠시 후 깨어날 것이다.” 이렇게 설명했더니 엄마가 깜짝 놀라서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 거예요. 엄마는 아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걸로 생각한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아이가 살아서 돌아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막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어요. 그리고 이제 진료가 끝나고 우리가 막 돌아가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저한테 한 마디 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요한복음 3장과 1장의 말씀을 합쳐서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해서 그의 아들을 보냈는데, 그 아들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다는 말을 했더니, 판다하라 추장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는 겁니다. 노래가 다 끝나고 하는 얘기가 “오늘 닥터 리가 이야기한 그 신이 우리 숲에 왔다. 그리고 닥터 리는 지금부터 내 아들이다.” 그래서 제가 미케아 족속의 한 멤버로 편입이 됐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아무 때나 숲에 가도 아무도 경계를 하지 않고, 또 이 사람들도 언제든지 저한테 와서 뭘 달라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 미케아 부족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 판다하라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진료팀을 꾸려서 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판다하라가 죽었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판다하라 부족의 한 반절은 숲으로 가 있고, 자녀들과 동생들, 부인들, 이렇게 직계 자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판다하라 무덤 곁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가 부활한 이야기를 이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판다하라가 숲속에서 닥터 리가 전했던 그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 중에는 판다하라가 노래하고 춤출 때 보았던 증인들도 있어서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씩 “당신들은 판다하라가 말한 그 신을 믿겠느냐?”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다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새로운 신을 무당이 없어서 어떻게 섬기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판다하라 가족을 위한 사경회를 했습니다. 주누르 목사와 제가 일주일간 가르치고, 안자베트룽구에 있는 교회에서 매주 예배가 끝나면 이 미케아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성경을 가르쳐주기로 했습니다. 그 교회 사람들이 이 미케아 교인들한테 안자베트룽구 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리면 어떠냐고 권유했는데, 낯선 사람들을 꺼려 해서 안 갔습니다. 그래서 미케아 부족을 위한 교회를 짓기로 했습니다.  

― 코로나가 시작된 지 1년 반이 지나고 저희가 한국에 왔는데, 구리에 있는 한 교회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은 인도에 교회를 지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인도에 교회 지을 길이 막혀서 마다가스카르에 교회를 하나 짓고 싶다며, 가능하겠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미케아 마을에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300명의 의사와 300명의 선교사를 세우고 있습니다. 

  

― 마다가스카르 대학병원을 위해서도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코로나 대응 사업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을 만나서 제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자기도 마다가스카르 오지의 이동 진료를 통해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사람을 300명 키우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고, 대통령은 바로 비서실장한테 연락하여 대학 학장님, 의과대학 학장님, 보건부 장관님을 불러서 닥터 리가 말한 프로젝트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는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서 저와 같은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 개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육과정 개발 사업이 끝나면, 양성 사업을 해서 마다가스카르 114개 지역에 약 300명의 의사들을 양육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이런 일들을 더 잘하기 위해서 플랫폼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300명의 의사 제자를 키우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300명을 키울 수 있는 선교사 300명을 섬기는 게 훨씬 더 이득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동원해서 선교사들이나 단기 봉사자들이나 중장기 봉사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정금 같이 감싸는 옷을 입고 일단 나아가십시오.  

  

― 정리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에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너의 믿음은 가짜야.’라고 시작한 저의 인생이 하나님께서 일일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베드로처럼 투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투신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우리에게 오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우리를 정금 같이 감싸는 옷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예수 그리스도라 생각하시고, 여러분들이 일하시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 결어 및 기도  

  

1)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기 위해서 선교사님이 되셨다고 하는데, 우리도 정말 진짜가 되기 위해서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된다면,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 많은 것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내일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라는 사실을 깨닫고, 낙심하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2) 우리 한 번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는 길이 뭔지 아세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많은 것들을 준비시켜 주십시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뒤돌아보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한 연단의 기간이었고 또 하나님이 나를 위한 준비의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는 실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새 일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여정 속에 새 일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의사로서 충분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기에 그렇게 인생을 바쳤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풍성하게 그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하면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많은 것들을 준비시키시고, 훈련시키시고, 우리의 인생 여정 속에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는 분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주여, 내가 이렇게 살아가기 원합니다.’ 결단하며, 주여 한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3)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선교사님의 간증을 통해서 귀한 깨달음과 도전을 받게 해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무리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게 도와주시고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게 도와주시고,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그렇게 결단하며 나아갈 때,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개입하시면, 하나님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내일을 위하여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매일매일 경험하게 도와주십시오. 지금 내가 만나는 그 관계가, 지금 내가 경험한 사건과 고난과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다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이 곧 내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받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임을 깨닫고 낙심하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결단하며 나아갈 때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우리를 다듬어 가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마침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우리를 세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