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새 무덤에 예수님을 두다
31 이 날은 예비일이었고, 다음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을 십자가에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시신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첫 번째 사람의 다리와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습니다.
33 그러나 군인들이 예수님께 갔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고는 그분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34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바로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35 이것을 본 사람이 증언한 것이니, 그의 증언은 참됩니다. 그는 자기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여러분들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36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쓰인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37 또 다른 성경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볼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38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이 일이 일어난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감춰왔습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요셉이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습니다.
39 니고데모도 요셉과 함께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일찍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몰약과 알로에를 섞어 만든 향료를 약 33킬로그램 정도 가져왔습니다.
40 이 두 사람은 유대인들의 장례 풍습에 따라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향료와 함께 고운 베로 쌌습니다.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는 동산이 있었습니다. 그 동산에는 아직까지 한 사람도 그 안에 안치한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42 무덤도 가까이 있고 유대인들의 예비일이기도 해서,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을 그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세상 죄를 지신 유월절 어린양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시체를 치워 달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로 인함이 아니며, 대제사장들의 음모에 당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것은 성경 말씀을 완성시킨 것이라고 합니다(출 12:46: 민9:12: 시 34:20). 이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백성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의 죄를 위함이었습니다. 친히 유월절 양이 되어 죄를 담당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이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게 됨으로써 나타난 사실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어떻게 증언하겠습니까?
십자가 구원의 영향력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이를 숨긴 사람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나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일찍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동산에 새 무덤이 있었고, 예수의 시체를 거기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숨기거나, 확신이 없었던 이들의 삶이 분명한 고백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십자가 믿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세상 가운데 담대하게 드러내는 변화를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신앙을 드러내기 어려운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내 삶에서 십자가 믿음으로 결단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자동차에는 N 이라고 적혀있는 기어가 있습니다. 중립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중립기어라는 말이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정보가 불충분할 때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어떤 기사를 보고 욕을 하다가, 또 다른 기사를 통해 내용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38절 말씀을 통해 어떤 느낌의 사람인지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한은 요셉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그가 예수님의 제자이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주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제자인 것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이유를 그가 유대인을 두려워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인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명성, 권세, 부귀를 잃어버릴까 봐 무서워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국회의원 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마태는 그를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있던 요셉은 어느 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고백하고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요한의 평가를 앞세워 그가 비겁한 제자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했냐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인지 누가복음에서는 그에 대한 평가가 요한복음과 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50절과 51절 말씀입니다.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누가는 요셉을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을 때 반대 의견을 낼 만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을 때 담대하게 빌라도 앞에 나아가 시신양도를 요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요셉을 용기 있는 주님의 제자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했을 때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비겁한 사람입니까?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요셉에 대해서 딱 부러지게 이런 사람이었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두 가지 모습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다 이런 양면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신앙의 모습을 보고, 또는 나 자신을 평가하며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고 규정짓기 보다 중립, 균형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기 힘들 때, 우리는 요셉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서 손가락질하지 않고 그의 상황과 환경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헌신에 있어서 방법의 차이를 정도의 차이로 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습이 때로는 연약해 보입니다. 때로는 담대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게 하옵소서. 방법은 달라도 목적은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목적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7NES18UIIVc?si=wFaIYtG_b9sWJ5Wv
(오늘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그의 시신을 안장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의 안식일과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시체를 십자가에 그대로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갈등과 예수님의 시신을 돌보는 두 사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그의 백성을 향한 깊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요약)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십자가에 시체가 남아있는 것을 꺼려 빌라도에게 다리를 꺾어 시체를 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31절). 군인들은 다른 두 사람의 다리를 꺾지만 이미 숨을 거둔 예수님은 그럴 필요가 없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확인합니다 (33-34절). 예수님의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선언합니다 (34절). 아리마대 출신의 명망 있는 산헤드린 의원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허락을 받고 니고데모와 함께 향료를 준비하여 예수님을 안장합니다 (38-39절). 그들은 예수님을 새 무덤에 안장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습니다 (40-42절).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수님의 죽음의 현장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 함께 한 자들은 숨은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그들에게 유익함이 있을 때 함께 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복음의 자리에는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고난과 헌신의 자리에는 제자들과 같이 자신을 숨깁니다. 우리는 복음의 참된 목적은 잃어버리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어떤 무리들과 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과 헌신의 자리에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이 풍성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를 믿는 사람 누구든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하시옵소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이때를 위하여 나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충성된 종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없는 은혜를 누리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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