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
· 본문: 이사야 40:15
· 강사: 이요셉 작가 (백석대학교 교수 / 럽앤포토 대표 / 다큐멘터리 작가)
□ 저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정말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요셉 작가입니다. 다니엘 기도회 섭외 전화를 받고, 처음에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에 설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까? 조금 더 몰입도 있고 다이나믹한 분이 서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낯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요셉이잖아요? 어렸을 때 교회에서 연극 같은 걸 맡으면 연극에서 제가 맡았던 배역이 요셉 같은 주인공이 아니라 돌이나 나무 역할이었습니다. 앞에 서는 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한 20년 전쯤 어느 방송 토크 프로그램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방송에 나가기 전 방송작가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할지 미리 사전 인터뷰를 했습니다. 본 방송을 하는데, 제가 방송작가와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나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녹화가 끝나고, 방송작가가 달려와 ‘작가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 겁니다. 제가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면, ‘이 이야기를 하면 내 자랑이 되지 않을까? 이 얘기를 하면 내 의가 되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 며칠 뒤 네팔에 촬영하러 가는 그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의 자랑이 될까 봐, 너의 의가 될까 봐 말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내가 너와 보내는 수많은 시간들이 가려진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울면서, “하나님, 내 기질은 앞에 서는 게 너무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서야 할 때, 이야기해야 할 때 내가 이야기할게요.” 그런 순종들이 이어져서 또 이 자리에 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서서 대단하고 멋진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을 할 것 같습니다.
□ 세상은 하나님과 별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 저는 예수님을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면서 길을 가다가도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쓰레기들을 주었겠지?’ 하면서 쓰레기를 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쓰레기를 주어도 길의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저 앞에서 또 누군가는 버리고 있고,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가 아무리 믿음으로 반응하려고 해도 내가 노력한 만큼만 결과가 나오는 게 세상이잖아요. 예수님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다면 이 산을 들리어 저 바다에 던져질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겨자씨만 한 믿음을 아무리 가져도 시험 성적은 내가 공부한 만큼만 나오죠.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지만, 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세상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그것을 ‘이식론’이라고 합니다.
-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지만,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냥 태엽 돌아가듯이 그냥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저는 두려운 거예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나님이 내 인생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살피지 않는다면,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그러다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어떤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면 안정적이고 또 보람도 있고 방학도 있어서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더 이상 두렵지가 않은 거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두려움들은 우리가 기도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두려움은 찬양을 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두려움은 그것보다 큰 것으로 밀어내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돈은 많지 않지만, 여러분들에게 다 1억 원씩 나눠드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그 돈만큼 여러분들의 두려움을 살 수가 있어요. 대출금이라든지, 진로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여러 가지 두려움들을 그 돈만큼은 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은 얼마의 재화를 살 수 있는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차라리 돈 10만 원이 더 실제적일 때가 있지 않나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두려움’은 ‘선생님이 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밀어낸 거죠. 그래서 저의 학창 시절은 별로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되면 되니까요.
- 그리고 첫 번째 수능 시험을 쳤는데, 외국어 영역 5번 문제부터 끝번 문제까지 답안지를 다 밀려 쓴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원했던 선생님이 되지 못했고, 원하지 않았던 대학과 원하지 않았던 학과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이대로는 평생 후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은 기간을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를 해서 교육대학교에 시험을 쳤습니다. 음악, 미술, 체육도 가르치기 때문에 교육대학교 면접에서는 음감검사도 하고, 신체검사도 하는데, 신체검사 중 제가 색약 색맹 검사에서 색약으로 걸린 겁니다. 저는 원래부터 색약이어서 숫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잘 좀 보지 그랬니?”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지 못했고, 다른 원하던 대학과 전공을 하면서, 군대에서도 여러 자격증을 공부했습니다.
□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지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군대에서 돌아와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두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저는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한 예로 제가 고등학교 때 학원에 갔거든요. 학원에 가니까 신입생 환영회라고 노래를 시켰는데, 그때 제가 불렀던 노래가 이성균의 ‘골목길’이라는 노래입니다. 노래 가사가 이런 가사예요. ‘한 걸음 두 걸음 골목길 걸을 때, 우리 주님 네온 십자가’ 신입생 왔다고 노래시켰더니, 막 십자가 나오고, 피 나오고, 보혈 나오고 해서 싫어했지만, 저는 그런 게 전혀 두렵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사랑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도서관에서 성경을 읽다가 처음으로 하나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전에 제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는 말을 앞으로도 자주 하게 될 것 같은데요. 하나님이 제 귀에다 대고, “요셉아!” 하면서 말씀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육성으로 서로 대화를 하지 않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의사소통이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저희 집에서 제 아내가 정리를 깨끗하게 꽤 잘하는 편이 편인데, 유일하게 정리되지 않은 곳이 제 방입니다. 아내가 제 방문을 열고 한숨을 쉬었다고 가정하면, 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오늘 아내가 방 좀 치우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마음이 저한테 부어지면 우리는 의사소통이 되어진 것처럼, 하나님이 내게 음성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었는데, 그들이 두려워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죠.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이 그 땅을 보고 와서는 이렇게 얘기해요. “그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땅은 거인의 전투력이 너무너무 셉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떼 같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들이 말한 게 맞습니다. 그들이 본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서로 시각이 달랐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전력이 어떠한지, 지금 세계정세가 어떠한지, 이런 것들을 다 판단하고 분석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이 장면들을 하나님이 이 시간에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일상 속에서 만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 성경에서는 첫 장부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땅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나무를 만드시고, 우리와 우리 자녀를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까 읽었던 본문 이사야 40장 15절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말씀처럼 우리가 두려웠던 이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는 통의 한 방울의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으신 분이 아니시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만고만한 소원 들어주는 그만한 신이 아니시구나.’라는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 저는 또 기도했어요.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크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을 내 일상 속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기도했었냐면, 저도 청년 때 교회 임원 생활도 했었고, 친구들과 함께 손을 들고 찬양을 하기도 하고,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간증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셨어.’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함께 예배드렸던 누군가는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고요. 함께 임원 생활을 했었던 친구는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컨퍼런스에서만, 주일에서만, 다니엘기도회에서만 만나고,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하나님은 내게 너무 무관심하신 분, 내게 무능력하신 분이 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하나님을 내 일상 속에서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일상 속에 하나님 말씀을 두면,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 만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물론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들어주시겠죠. 이런 관계적인 이유들 다 빼고, 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을 내 일상 속에다 올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주시게 됩니다.
- 제가 청년부 시절에 뜨겁게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뭔가 말씀하실 것 같은 느낌이 오면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 나한테 순종한다고 했지? 지금 저 앞에 있는 자매랑 일주일 뒤에 결혼해라. 한 달 뒤에 바로 입대해라.’ 이런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충분히 순종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믿음을 좀 더 기르고 난 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내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 저는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고, 우리가 거기에 반응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응할 만한 마음도 허락하시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허락하세요.
- 저는 딸이 있는데 제 딸이 초등학교 때, 외국에서 선물 받은 팔찌를 많이 아꼈습니다. 그런데 그 팔찌를 짝꿍 남자아이가 끊어먹었어요. 끊어먹고 자기도 놀랬던지 막 귀에다 대고, ‘너 때려버릴 테야.’ 여러 가지 험한 말들을 했습니다. 제 딸은 너무너무 속상해서 펑펑 울다가 집에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와서 제가 좀 달래주고 위로를 해주다가 약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제가 딸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많이 속상했지?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아빠랑 봤던 성경 말씀들에 우리는 순종해야 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라든지, 또는 주기도문에 ‘내가 누군가를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세요.’ 이런 말씀들을 우리가 지켜야 하기 때문에 용서해야 한단다. 온유야, 용서는 너를 힘들게 한 그 친구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는 게 용서가 아니야. 또 네가 내일 학교에 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너를 용서할게’ 안아주는 것도 용서가 아니야. 지금 어지러운 너의 마음, 복잡한 마음, 해결되지 않은 여러 마음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용서의 시작이야.”
- 말씀에 있는 것을 지금 당장 우리가 눈앞에 다 적용하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해.’ 또는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너희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 줘.’라고 했을 때 당장 우리는 거기에 반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멀리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 말씀하셨지만 간과하고 있는 많은 것들, 너무나 우습게 여기는 것들, ‘이거 순종해서 뭐해?’라고 여기는 그것들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 우리가 때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사야 66장 말씀을 읽을 때마다 되게 두렵고 또 마음이 되게 부끄러워져요. 이사야 66장 1-2절에 ‘하나님은 하늘이 그의 보좌이고, 이 땅이 그의 발판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지었다.’고 하시면서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라고 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가지신 그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뭐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 어떤 말씀들이 있냐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라고 하십니다.
- 여러분들은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들이 있지 않으세요? 저는 종종 있거든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시간들도 있어요. 그런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을 때, 저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집 지어드릴 수는 없지만, 심령이 가난한 이 마음은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일상에 올려놓는 것은 너무 멀리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의 수많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들을, 우리의 발걸음들을, 우리의 일상들을 올려놓을 때,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 작은 자를 섬기라는 말씀을 내 일상 속에 두었더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저는 선생님이 되지 못해서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색약 핸디캡을 가진 눈으로 사진작가가 되었다는 게 참 역설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구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태복음 25장 40절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어떤 계산법과 우리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실제로 살인을 해야 살인한 자인데,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마다 살인한 자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누군가에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과 똑같이 생각하실 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거리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애썼어요. 집 앞에 있는 노숙인들하고 같이 빵을 나누고 음료를 나누고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추운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 신림역에서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따뜻한 음료를 가져다 드리면서 “할머니, 많이 추우시죠? 할머니는 누구랑 사세요?”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저는 하나님과 살아요.”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이런 말들이 너무나 나를 놀랍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때는 시각장애인 목사님이 다니는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거기서 여름에 홍천 수련회에 가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 그중에 ‘두환’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두환이는 13년 동안 노숙을 하며 구걸을 했습니다. 두환이가 저를 되게 많이 따랐어요. 항상 손을 잡고 다니기도 했었는데, 이 아이는 항상 잠실역에서 잠을 잤었거든요. 여름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겨울은 춥잖아요. 그래서 겨울을 보낼 곳이 없을까 생각하며 저희 집에서 몇 번 재워보기도 했지만, 이 아이가 잘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찾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어요. 그래서 막 보도블록에 앉아서 울기도 하고요. 두환이는 저한테 “형, 미안해” 그러면 “야, 너가 미안할 게 뭐 있냐?” 이런 얘기들도 했습니다. 그러다 서울대입구역 앞의 한 고시원에서 두환이를 받아줬어요. 그 이후로 두환이가 노숙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잘살고 있습니다. 아마 이 영상도 보게 될 것 같은데,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어요. 그때 일들은 다 잊고 지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때 일을 생각나게 하시는 거예요. “요셉아, 참 고맙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목하는 것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찢었던 한 장면을 들어 말씀하시는 거예요. 수많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우리의 일상을 올려놓으면, 하나님이 관념적으로 계신 분이 아니라, 실체적이시고 구체적이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2007년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신기하게 채워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 2007년은 저한테 참 특별했었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낙도 선교 갔다가 섬에서 전화 한 통화를 받았어요. 출판 관련 일을 주려는 분이, 한 달에 한 번 인터뷰 촬영을 하고, 12번 촬영을 하면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곰팡이가 있고 비가 막 새는 집에 살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 가라고 하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거절을 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끊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이 한 해 동안에 하실 일들이 참 많으시고, 저를 통해서 하실 일들이 참 많을 텐데요, 하나님이 가자고 하시는데, 이날은 일하러 가야 해서 못 간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 이제 비웠으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면 다 데리고 다니세요.”라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생계를 이어 가야 했기 때문에, 일당 몇만 원짜리 중고장터에 있는 사진 찍는 일들을 계속했었습니다. 너무 쉽게 벌 수 있는 큰돈을 믿음으로 거절한다고 해서 그만한 어떤 대가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끊임없이 우리는 믿음과 현실 속에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그런데 2007년에는 제가 살고 있던 집에서 정말 많은 기도가 있었어요. 정말 큰 교회 중보기도팀들이 어떻게 알고 저희 집을 노크해서 항상 왔었습니다. ‘똑똑’해서 “누구세요?” 그러면 “어느 교회 중보기도팀입니다.” 그러면서 저희 집에 들어와 막 기도를 해주시고 갔습니다. 저희 집에 정말 긴 시간 동안 엄청난 기도가 있었어요. 그리고 2007년도에 굿네이버스에서 아프리카에 같이 갈 작가로 제가 같이 갔었거든요. 제가 갔다 오고 난 뒤에 지금은 많은 사진작가들이 NGO 단체들과 떠나지만, 그 당시에는 굿네이버스에서 처음으로 작가와 동행했었던 그런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러시아, 일본, 미국을 가기도 하고, 수많은 발걸음들을 걷게 되었어요. 제가 큰돈이 되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수많은 어떤 흔적들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한 외국의 잠자리에서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요셉아, 내가 너한테 뭘 해 줄까?”라고 해서 저는 “제가 주님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 2007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뜨거웠던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비가 새고 곰팡이가 가득한 그 집에서도 저는 정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보냈었거든요. 집을 보러 가서 제가 더 꼼꼼하게 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이삿짐을 다 가지고 왔는데 벽이 곰팡이로 다 물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한 첫날에 짐도 못 옮기고, 짐을 한 곳에 다 그냥 세워놓고, 곰팡이 가득한 검은색 벽지를 그냥 계속 뜯었던 것 같아요. 다시 벽지를 교체했는데, 집이 지하라서 장마 때 침수가 되었어요. 그때 제가 다니던 청년부에서 수해 복구도 해줬어요. 여름에 장판 다 걷어내고 시멘트 바닥에 보일러 켜놓고 잠을 자기도 하고, 그렇게 또 몇 개월이 지나니 다시 한쪽 벽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저는 이 집에서 정말 감사하면서 보냈어요. 왜냐하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곰팡이가 가득한 집이지만, 이 곰팡이가 가득한 집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또 한쪽 벽이 이렇게 물드는 것을 보면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에 살고 싶어요.” 한 2분 지나서 “하나님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정말 괜찮거든요.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저는 충분하니까, 다른 사람들 기도 응답해 주세요.” 그러다가 또 한 5분 정도 지났어요. 다시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잘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내 아빠인데 저는 괜찮은데 제가 이 집에서 힘들면 아버지가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진짜 괜찮은데, 내가 힘들면 아빠도 힘들 것 같으니까 아빠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서 서로 모르는 3명의 사람이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의대 교수로 있던 선배가 전화가 왔어요. 본인이 기도하는데, 자꾸 너한테 이 말을 전해주라는 마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어떤 마음이냐면 ‘하나님이 너 빨리 이사 가라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로 이사 가면 되냐고 물었더니, 그 선배가 ‘하늘 아래 바람 부는 곳으로 빨리 이사 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되게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이사 가라 하시니까 집 보러 가야지 하면서 집을 보러 갔습니다. 집을 보러 가는 길에 또 그 선배한테 문자가 왔어요. 문자 내용이 뭐냐면, ‘설날 전에, 4층 빌라, 전원주택’이라는 단어예요. 서로 합이 맞지 않는 단어잖아요. 4층 빌라인데 어떻게 전원주택이 되겠어요? 설날은 일주일 정도 남았던 것 같아요. 어느 집에 갔는데, 이 집이 마음에 들어서 부동산 아저씨한테 “아저씨, 저, 이 집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돈은 없어요.” 하고 집에 왔어요. 그런데 한 3일 정도 지나서 부동산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 집주인이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저씨, 그럼 그 집이 빈집이 되었겠네요? 그 집에 제가 들어가면 안 될까요? 그런데 돈은 없어요.”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일단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공사를 하고 나서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으로 초인종 있는 집에 살게 되어 혼자 초인종을 누르면서 기뻐했습니다. 방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고, 한강대교가 내려다보이는 4층 빌라였습니다. 그때 기도했던 그 선배가 이사 선물을 좀 보내줄 테니, 집 주소 좀 불러보라고 해서 불러줬더니, 웃으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자기가 기도할 때 녹색을 봤대요. 그래서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라는 줄 알았는데, 주소가 동작구 본동 그린빌라였던 겁니다.
- 그런데 제가 그 집에서 기도를 하면 좀 달랐습니다. 프린트가 고장 나서 “하나님 프린트가 고장 났어요.” 하면 CBS 작가에게 전화가 와서 “작가님, 혹시 복합기 필요하세요?” 하구요. “하나님, 교회에 가야 하는데, 거리가 좀 멀어졌어요. 새벽에 기도하러 가고 싶어요.” 하면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내가 급히 오토바이를 맡겨야 하는데, 니가 이 오토바이 좀 써줄 수 있겠니?” 처음에 준 오토바이는 친환경 일본 오토바이인데, 최고 시속이 40km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40km는 너무 느린 것 같아요.” 기도하니까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와서, “미안해, 그 오토바이는 내가 써야 할 것 같고, 대신 이 오토바이를 써.” 하면서 야마하 오토바이를 주었습니다. 필요했던 노트북, 카메라, 침대, 전자레인지, 이런 것들이 다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한 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 놀라지 않았느냐면, 그냥 실제적이시고 구체적이신 그분이 내 아빠라는 생각 때문에 놀라지 않았어요.
□ 하나님을 자동판매기로 만들면 안 됩니다.
- 제가 이런 얘기들을 조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러분들에게도 여러 기도 제목이 있잖아요? “내 오랜 기도 제목은 어떻게 되었나요? 저 사람은 응답해 주셨잖아요. 저 사람은 사랑하고 나는 사랑하지 않는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저는 “비가 새고 곰팡이가 가득한 집에서 기뻐하고 감사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 주셨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얘기 못 할 것 같아요. “쇠도끼를 우물에 빠뜨렸더니 금도끼를 받았어요.” 저는 이렇게 얘기하지 못할 것 같아요. 또 이것은 하나님을 자동판매기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찬양이나 어떤 기도의 동전 몇 개를 넣었더니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딱 꺼내야 하는 그런 하나님은 아닌 거죠.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때 왜 내게 그렇게 하셨나요?’에 대한 답을 저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그 뒤의 이야기 ‘하나님이 저 사람을 사랑하시고, 나는 사랑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은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비가 새고 곰팡이가 가득한 집에서도 내가 정말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고맙긴 고마운데, 이쪽 호주머니에 넣고 나머지 호주머니를 보여주면서, “하나님, 아직 저는 아쉬워요. 저는 부족해요. 하나님이 날 요만큼 사랑하시는 건 알겠는데, 이걸로는 부족해요.”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한 이야기 맞아요.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보면요.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 이게 내 사랑이라고 했는데, “아니, 그거 아직 부족해요, 난 잘 모르겠어요.” 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싶은 거죠.
□ 내가 걷는 길을 이해하는 아내를 만났습니다.
- 저는 아까 두려움은 두려움보다 큰 것으로 밀려난다고 했잖아요. ‘하나님은 이렇게 실제적이신 분이시구나. 하나님은 내 아빠구나.’라는 생각들 때문에 두려움들이 점점 밀려났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건 결혼하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제가 중국의 한 지하에서 이렇게 기도드렸던 것 같아요. “하나님, 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아빠 되시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는 게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못 할 것 같아요. 결혼은 너무 두려워요. 왜냐하면 결혼하게 되면 나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을까요? 만일에 사랑하는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한다면, 그 아내는 나를 이해해 줄지 모르겠지만, 사랑해서 낳은 내 자녀들이 배고파하고 힘들어하면 나는 자책할 것 같아요. 하나님, 나 때문에 이 아이들이 아프면 나는 어떡해요? 그래서 나는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아요.”
- 그런데 1년 정도 지나서 하나님께서 내가 드렸던 그 기도를 생각나게 하시는 거예요. “너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두렵지 않다고 했지? “내가 너의 아빠 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는 게 두렵지 않다고 했지? 그러나 너가 결혼하면 나는 너 개인의 아버지에서 네 가정의 아버지가 된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만 돌보고 우리 가족들은 책임지지 않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돌본 것처럼 나의 가정을 돌본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했고, 그래서 지금 한 16년 정도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나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어요. “우리는 결핍이 있어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한계가 많아서, 결핍이 많아서,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지 않은가요?
- 제가 아내랑 산책하다가 이런 말을 했었어요. “여보, 올해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제가 왜 이 말을 했었냐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내 일상을 올려놓으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내가 너를 먹이고 기르고 입힐게.”라고 했는데, 그 해는 쉽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돈이 들어올 곳도 뻔하고요. 어떡하지 싶은 거죠. 그래서 아내에게 마음의 다짐을 하건, 긴축 재정을 하건 하라는 뜻으로 제가 진지하게 용기를 내서 얘기한 건데, 아내가 뭐라고 얘기를 했냐면 웃으면서 “오빠, 뭘 걱정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있지? 그 집을 반으로 딱 쪼개. 그러면 집이 작아지고 돈이 생기지. 그러면 그 돈으로 살아가는 거야. 그러다가 이 돈을 다 썼어. 그럼 아직 집이 있네. 집을 또 쪼개. 그러면 또 집이 작아지고 돈이 생기잖아? 또 막 살다가 돈을 다 쓰면, 또 쪼개. 쪼개다가 없어지면 우리 양가의 부모님 계시지? 부모님께 좀 기대어서 살다가 부모님이 이제 너희 나가서 살아라. 그러면 그때 고민하면 되는 거야.”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이 친구랑 함께라면 나는 걷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우리가 믿음의 길을 잘 걷다가, 가던 길을 멈추거나 또는 뒤돌아갈 때가 많죠? 그것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갈 수도 있고, 또 가던 길을 멈추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우물 하나 만들고 싶다고 기도했더니, 50개를 주셨습니다.
- 저는 세계 많은 나라들을 다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나라가 많이 기억에 남는데, ‘차드’라는 나라예요. 아프리카라고 해서 다 가난한 나라는 아니에요. 제가 전시회 했었던 나라는 마사이족이 막 스마트폰 하고 있는 사진도 있고, 높은 빌딩도 있어요. 그런데 차드는 참 많이 가난한 나라였어요.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은 되게 서정적이지만, 저기 강물을 아이들이 마시고, 배수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은 우물물을 마셔서 수인성 질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이 사진은 실제로 제가 촬영했던 ‘유누스 이삭’이라는 아이인데, 정말 힘들게 죽어가던 아이였어요. 차마 실제 사진을 가져오지 못하고,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보다 더 참혹하게 아이가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의료진들에게 “제가 계속해서 의료 지원을 할 테니까, 이 아이를 어떻게든 살려주세요!”라고 했는데 결국 이 아이는 죽게 되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어요. “하나님, 우물 하나만 만들어 주고 싶어요. 우물 하나 만드는 데 얼마 드는지 모르겠지만, 아픈 사람을 살리는 데 들어가는 돈보다 차라리 싼 편입니다. 우물 하나를 만들면 그 마을과 인근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텐데, 내가 그러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제가 돈을 모으고, 일을 해서 우물 하나 만들 만한 돈을 모았어요. 그 당시에 한 400만 원에서 450만 원 정도 비용이었는데, 우물 하나 만들 만한 비용이 만들어졌을 때, 집에 큰일이 터졌습니다.
- 아내가 출산하기 전까지 다녔던 그 회사가 건설회사였는데, 건설회사는 관례상 미분양된 집 을 직원들한테 계약을 맺게 해서 대출금으로 회사 자금을 사용하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내일 그 회사가 부도가 난다는 거죠. 회사가 부도나면 그 빚을 우리가 다 짊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2억 원, 어떤 사람은 4억 원,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의 진원지였던 포항에 내려갔습니다. 회사에 가보니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을 만나는 거죠. 막 재떨이가 날아다녔어요. 저는 이런 모든 문제를 주민센터에서 해결하는 줄 알았어요. 너무 세상을 몰랐던 거죠. 그날 뉴스에 1차 부도가 났다고 떴어요. 다음 날 아이를 안고 갔는데, 우리가 언제 포항에 오겠냐면서 바닷가 산책을 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오늘까지 400만 원에서 45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있으면 그 억대의 빚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저한테 그 돈이 없는 거죠. 그래서 아는 사람들한테 전화했다가 말을 못 하고, “잘 지냈어? 우리 언제 밥 먹자.” 이러고 끊고, 부모님께 전화했다가 부모님이 놀라서 우시니까, 장난 전화였다고 끊고, 그런데 제 계좌에 딱 그만큼의 돈이 있는 있잖아요. ‘이 돈을 지금 당장 써서 해결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그 돈은 다시 모으면 되는 거야.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야.’ 하면서, “하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아니야!”하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 아닙니까?”라고 물었더니, “너희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그 한 사람이 내게는 돈 2억 원보다 더 값진 사람이야.”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신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값을 매기죠. 스포츠 스타 누군가는 몇천억 원, 누군가는 연봉 1억 원, 누군가는 연봉 5천만 원, 누군가는 일당 몇만 원, 이 사람은 있어도 되는 사람, 이 사람은 없어도 되는 사람, 이 사람은 필요 없는 사람,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려서 이 사람은 얼마짜리, 이 사람은 얼마짜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두려움이 되게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선택들 속에서 두렵지가 않은 거예요. ‘내가 왜 두렵지 않지?’라고 들여다봤더니, 우리 인생의 목표가 ‘자아 성취’가 되면 이런 선택들은 우리 인생의 실패인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목적이 자아 성취가 아니라 예수님과 이어져 있으면, 순종은 하나의 과정인 거예요. 내가 두렵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가 뭐냐면, 사람들은 그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데 걸림돌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또 인생의 성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성공 하나를 정의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과 나중에 면대면으로 만나겠죠? 그런데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안으시면서, “내가 다 알아. 내가 너의 시간을 다 알아. 잘했어.” 그러면 그것은 우리 인생의 성공인 거예요. “저는 우물 하나만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었잖아요? 그런데 작년까지 우물이 50개 만들어졌습니다. 올해도 니제르에 진행하고 있고요. 수용자 자녀들을 돕고 있는 ‘세움’과 수많은 NGO들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 이런 나를 사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용할 수 있다면 한번 사용해 보세요.
-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여러 상들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나눔 봉사 대상에서 기업 외에 개인으로는 저 혼자 금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국민추천포상 등 많은 상들을 타고, 또 책을 쓰기도 하고, 그 책으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저 사람은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책도 내고, 강의도 하고,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네.’ 그런데 저는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 제가 대학교 때, 학교까지 오가는 길에 있던 고시원에서 생활했습니다. 고시원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에 정말 작은 교회가 있었어요. 장의자 3개를 놓으면 꽉 차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매일 오갈 때마다 기도했어요. 1시간 정도를 기도했었는데, 제가 뭐라고 기도를 했었냐면 “하나님, 이런 저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저를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해 보세요.” 그런데 이 기도는 “하나님 제가 여기 있으니,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아니에요. “하나님, 내가 나를 봤더니 나는 쓸데가 없어요. 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이라면 이런 날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날 사용할 수 있다면 한번 사용해 보세요.”라는 푸념이고 원망이고 한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기도조차도 들으신다는 거예요.
- 사도바울은 “내게 가시가 있는데 그것을 좀 제하여 주십시오.” 세 번이나 기도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세요. “왜냐하면 너에게 연약함이 있다면 너의 연약함 안에 내 능력이 거하게 할 거니까.” 수많은 유튜브와 자기계발 책에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연약한 문제를 지워내서 없애버리십시오. 최대한 가리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이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죠. 하지만 우리가 가진 연약함들, 우리가 가진 부족함들은 그저 부끄러워해야 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가진 수많은 연약함들, 그런 수많은 환난들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성경에서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고 얘기해요. 수많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우리가 가진 그 연약함들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하나님은 “너희가 연약하다면, 너희의 연약함을 통해 나는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들 거야. 너희가 가난하다면, 너희의 가난함을 통해 나는 부한 자를 부끄럽게 만들 거야.” 우리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다르다는 겁니다. 다니엘기도회에 우리는 각자의 여러 기도 제목을 가지고 왔어요. 우리 각자의 기도 제목에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하나님, 사랑을 주세요! 하나님, 저 인내를 주세요!”라고 하면 사랑이라는 캡슐이 우리에게 똑 떨어질까요? 인내라는 캡슐이 우리에게 똑 떨어져서 우리가 인내를 가진 사람이 될까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사자가 용기를 구합니다. “용기를 갖고 싶어요.” 그런데 그 용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냐면, 그 용기를 낼 수 있을 만한 수많은 상황과 여건을 통해서 사자가 용기를 갖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들을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에게도 그 비슷한 어떤 시간들을 허락하실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그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반응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내가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때로는 내 심령이 가난합니다. 심령이 통회하고 마음이 가난합니다. 하지만 이 통회하고 가난한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떨겠습니다. 하나님 이런 나를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나를 사용할 수 있다면 한번 사용해 보세요.” 이 기도를 우리 하나님이 들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신을 볼 때, 하나님 빛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어두움이 가득한데, 우리의 힘으로는 어둠을 밀어낼 수도 없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빛이 있으라 하신 그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어린 빛을, 우리 마음 가운데 비추었다고 하신 그 말씀이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온전히 이루어져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 성취되어, 아주 작은 빛이라도 그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이 떠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결어 및 기도
1) 할렐루야!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이란 제목의 말씀과 간증을 들으면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는 삶의 지혜, 그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그런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그런 문제들을 만나게 되고, 수많은 두려움이 우리 가운데 몰려올 때가 참 많죠? 그럴 때 우리는 문제를 보지 말고, 가장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하나님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생갹해야 합니다. 참 마음에 와닿았던 게 뭐냐 하면 큰 것이 작은 것을 물리친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밀려오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크신 사랑이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시죠? 또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오늘 일상의 삶에 올려놓으라.’ 이것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너무나 잘 가르쳐줍니다. 그냥 우리는 무심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일상의 삶에 올려놓고 그 말씀 앞에 반응하고 묻고 순종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된다는 거죠. 제가 두 가지 기도의 제목을 드렸어요.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먼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게 해달라는 기도, 금번 다니엘기도회 기간에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내 일상의 삶에 올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또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여 나아가라는 거죠. 세 번째 기도의 제목은 결국 감사가 기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작가님은 곰팡이가 피고, 또 비가 내려 침수가 되는 습한 지하에 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평과 원망이 앞설 때가 많잖아요? 여러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작가님에게 그런 놀라운 은혜와 또 축복을 허락해 주시고, 리얼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인생 가운데도 그렇게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2) 우리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작가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산다는 게 참 쉽지 않지만, 실타래처럼 엮여 있는 인생의 문제도 있고,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도 있고, 예기치 않은 그런 사건과 사고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럴 때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하나님이 나의 아빠이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리 앞에 있는 문제를 더 묵상하고, 고난만을 생각하고, 비교하고, 그래서 좌절할 때가 많잖아요? 여러분 안에 있는 두려움은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면 떠나갈 것입니다. 빛 대신 주님이 임하면 어둠은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시고 묵상합시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삶,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 일상의 삶에 그 말씀을 올려놓으시길 바랍니다. 매일매일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묻고 순종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오늘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렵다고, 상황이 어렵다고, 환경이 어렵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비가 새고, 곰팡이가 끼어 있는 그 집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았잖아요? 그랬더니 색맹이라고 하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시대의 사진작가로 세우시고, 또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불평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게 하시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날, 이 땅을 떠나고 난 이후에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네가 그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여러분, 이러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공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주신 말씀 붙들고 우리 ‘주여’ 한번 외치고 기도합시다.3)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오늘을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작가님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깨닫게 하시고, 또 그 말씀 앞에 찔림도 받게 하시고, 도전도 받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무미건조하게 살아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오늘의 일상에 올려놓고, 매일매일 그 순간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도와주셔서, 말씀대로 이끄시고 말씀대로 붙드시고 말씀대로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에 인생의 문제 앞에서 기도의 문이 막혀서 기도조차 못 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니 크고 작은 인생의 두려움 때문에 지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크신 하나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여 주십시오. 내 인생의 문제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역사해 주셔서, 그 문제 앞에 두려워 떠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문제를 이겨내게 하시고, 돌파해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파도처럼 우리 안에,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안에 몰려오게 하여 주옵소서. 그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우리 안의 두려움이 떠나가게 도와주십시오. 그 사랑으로 인하여 두려움이 떠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그 날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 이름을 부르시면서 ‘고맙다, 고맙다!’ 이런 말을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 오륜 교회 김상정 안수집사님이 수고하셨습니다.
'다니엘 기도회 > 2024년 다니엘 기도회 간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요한복음 9:1-3)-정민교 목사(11월 9일) (11) | 2024.11.21 |
---|---|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교 (사도행전 20:24) - 전 던 선교사 (11월 8일) (8) | 2024.11.19 |
우리 꼰대가 변했어요(사도행전 9:15) - 남경필 집사(11월 6일) (24) | 2024.11.17 |
세상을 바꾸는 크리스천들의 도전 (마태복음 25:40) - 임정택 대표 (11월 5일) (20) | 2024.11.15 |
걸음이 빚어지다 (잠언 16:9) - 이현용 목사 (11월 4일) (10) | 2024.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