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 창세기 묵상노트

창세기 31장 43 – 55 갈르엣 기념비 앞에서 맺은 화해의 언약

smile 주 2025. 3. 29. 06:38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야곱과 라반의 언약

43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맺음>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이 딸들은 내 딸이요, 이 아이들은 내 손자들이요, 가축들도 내 가축이네. 자네 앞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일세. 하지만 내가 지금 와서 내 딸들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내 딸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44 , 우리 언약을 맺고 돌무더기를 쌓아 그것이 나와 자네 사이에 증거가 되도록 하세.”

45 그래서 야곱은 돌 한 개를 가져와서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46 야곱이 자기 친척들에게 돌을 모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돌들을 주워 와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돌무더기 옆에 앉아 음식을 먹었습니다.

47 라반이 그 곳의 이름을 자기 나라 말로 여갈사하두다 라고 지었습니다. 야곱도 똑같은 이름을 히브리 말로 갈르엣이라고 지어 불렀습니다.

48 라반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이 돌무더기는 우리가 맺은 언약의 증거일세.” 사람들이 그 곳의 이름을 갈르엣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49 또한 그 곳은 미스바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르는 까닭은 라반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헤어져 있는 동안,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기를 바라네.

50 만약 자네가 내 딸들을 못살게 굴거나 내 딸들을 놔 두고 다른 아내를 또 얻으면, 비록 증인된 사람은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네와 나 사이에 증인이 되실 것이네.”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자네와 나 사이에 쌓은 이 돌무더기를 보게. 또 내가 세운 이 돌 기둥을 보게.

52 이 돌무더기와 이 돌 기둥은 우리들의 언약의 증거일세. 나는 절대로 이 돌무더기를 지나서 자네를 해치지 않을 걸세. 그리고 자네도 절대로 이 돌무더기를 지나서 나를 해치지 말아야 하네.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분들 조상의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에 재판관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네.” 그리하여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54 그리고 야곱은 짐승 한 마리를 잡아 산에서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야곱은 친척들을 불러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은 뒤, 그들은 산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55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라반은 손자 손녀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복을 빌어 준 다음,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https://youtu.be/g7szLr4I3Fc?si=30mcSfk52eaXUZDQ

 

철학자 칸트는 그의 저서 영구평화론에서 국가 간의 전쟁과 분쟁을 막기 위한 여러 조항들을 제시합니다. 그 중에 흥미로운 대목은 영원한 평화를 보증해주는 것은 위대한 예술가인 자연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칸트는 인간의 불화와 전쟁의 과정에도 결국 화합과 평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자연의 체제이자 섭리라고 설명합니다. 자연 자체가 평화를 원하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정말 자연의 상태가 결국엔 인간을 평화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땅은 죄로 인해 이미 평화가 깨어졌습니다. 많이 소유해야 불안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 평안을 쟁취해야 한다고 믿기에 전쟁과 다툼과 불화는 이 세상에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평화를 간절히 원하지만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함께 본문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만이 참된 평화의 주인이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라반과 야곱 사이에 오랜 세월동안 쌓인 갈등이 극에 달하여 있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모든 소유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팽팽한 긴장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의 편을 들어주시며고 중재해 주셨기에 라반은 결국 한 발 물러나 언약을 세우기로 합니다. 이 둘은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쌓으며,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웁니다.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라고 부르고,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이라고 부른 이 곳은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웠으니 평화로운 조약이 맺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반의 심중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닌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와 일하심을 신뢰하기에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갈등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50절 말씀에 만일 네가 내 딸을 박해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이라고 말하고 있고, 52절 말씀에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말하면서 이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두려움의 요소들이 있으십니까? 무엇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까?

 

이 모든 방해 요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 제거해내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의존하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언약을 체결했습니까? 야곱은 라반과는 달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맹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을 추격해왔던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언약을 확인하였고, 함께 잠을 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이러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평안이 그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럴싸한 언약을 잘 맺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자신의 안위가 보장되고, 평화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은 누군가 깨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참된 평화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믿고, 하나님께 평화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그 때 비로소 온전한 평화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람은 평화의 은혜를 맛보는 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평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가운데 놀라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20년 전, 혈혈단신으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던 야곱의 삶은 더 이상 빈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평안하지 않았던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과 안정감이 그에게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라반은 자신이 이루고자 한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화의 은혜를 받아 누리며 다시 귀향길에 오르게 됩니다. 벧엘에서 평안히 아버지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했던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평안이 야곱의 삶을 붙들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결국 평화의 은혜를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임재하시고, 친히 일하시고,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실 때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은혜로 오늘 하루도 넉넉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죄인이었던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릴 방법은 오직 평강의 왕이신 우리 주님 밖에 없음을 믿습니다. 세상의 다른 것들로 평화를 얻으려는 무모한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평강을 구하고, 그 은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그럼에도 화목하라

라반은 야곱을 더 이상 추궁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에게 화친 조약을 제안합니다. 야곱과 라반 서로가 화평하기로 한 약속이었습니다. 사실상 라반에게는 자신의 안위 외에는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야곱은 라반의 요구에 응답하여 언약을 맺기로 합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과 사이 좋게 지내야 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괴롭혔던 원수와도 화평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어 그 사랑을 전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화목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세상에서 원수로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세상과 화목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시기를 기대합니까?

 

악을 경계하는 망대를 세우라

라반과 야곱이 언약을 맺으며 쌓은 돌무더기는 서로를 해하지않겠다는 경계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돌무더기에 각각 이름을 붙였는데, 야곱은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의 '갈르엣'이라는 이름과 '망대'라는 뜻의 '미스바'라는 이름도 붙입니다. 이후 야곱은 밧단아람에서의 연단의 시간을 화평으로 갈무리하고 사명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성도는 세상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보다 우선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불의한 자들과 교제할 때 악이 침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경계를 짓고 망대를 세워 악이 넘어오지 않게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청산해야 할 과거는 무엇입니까?

내가 사명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악이 침범할 위험이 있는 연약한 영역은 어디입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

이 본문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가족 간의 재산 분쟁과 갈등, 그리고 신에 대한 맹세와 언약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갈르엣 산지는 야곱과 라반이 화해의 증거로 돌무더기를 쌓고 언약을 맺은 장소입니다.

 

(오늘 본문 요약)

창세기 31장 43-55 절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43-47절: 라반은 야곱과의 갈등 상황 속에서 자신의 딸들과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서로 해치지 않기로 언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야곱은 이에 동의하고, 돌무더기를 쌓아 언약의 증거로 삼습니다.
  • 48-53절: 라반과 야곱은 쌓은 돌무더기를 '여갈사하두다'(아람어)와 '갈르엣'(히브리어)으로 각각 부르며, 이 돌무더기가 둘 사이의 증거가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또한,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하나님께 이 언약의 증인이 되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54-55절: 야곱은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언약을 기념합니다. 다음 날 아침, 라반은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고 축복한 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오늘 말씀은 긴 갈등의 끝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화해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갈등과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증인 삼아 평화의 돌무더기를 세운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화해의 뜻을 따라야 함을 교훈합니다.

 

(오늘의 기도)

모든 관계의 중재자이시며 화해를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갈등과 억울함 속에서도 공의로 개입하시고, 화해와 회복의 길을 여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삶 가운데 갈등과 다툼이 있을 때, 오늘 야곱과 라반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돌무더기 앞에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세움 받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더 깊은 묵상을 위하여 : 여갈사하두다= 갈르엣=미스바)

라반은 그 돌무더기를 그가 썼던 아람식으로 여갈사하두다라고 부르고 야곱은 그곳을 갈르엣이라고 불렀습니다.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말이 또 붙었다. 바로 미스바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돌더미 위에 세 가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여갈사하두다=갈르엣=증거의 돌무더기(the heap of witness)=미스바 מִצְפָה-> 하나님께서 살피고 계신다! 미스바 מִצְפָה 츠파(차파-지켜보다)는 사랑과 우애의 서약을 지키는지 하나님께서 다 살펴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미스바는 훗날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인도 하에 모여서 금식하며 통회와 자복을 했던 바로 그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