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6. 여호수아 묵상노트

여호수아 5장 1 - 9 길갈의 사람입니까?

smile 주 2023. 6. 24. 09:51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이스라엘 사람들이 할례를 받다

1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까지 요단 강을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때,요단 강 서쪽에 사는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또 지중해 가까이에 사는 가나안 왕들도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몹시 두려워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너무나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2 그때,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여라.”

3 그래서 여호수아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기브앗 하아라롯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4 여호수아가 남자들에게 할례를 베푼 이유는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떠난 이후, 군대에서 일할만큼 나이가 든 남자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5 이집트에서 나온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으나 광야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6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을 옮겨 다녔고이집트에서 나온 사람 가운데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던 땅이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7 마침내 그들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으나, 광야에서 태어난 자손들 중에는 할례를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8 할례를 받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그들의 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9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으면서 부끄러움을 당했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그 부끄러움을 없애 버리겠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곳의 이름을 길갈이라고 불렀고, 지금까지도 길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길갈에서 행한 할례

하나님은 여리고와의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광야의 노정(路程) 중에 태어난 출애굽 2세대가 할례를 받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출애굽 2세대에게 할례를 행하였고, 할례의 장소를 가리켜 '길갈'이라고 불렀습니다. 길갈은 '굴리다'라는 뜻으로, 할례를 통해 과거 애굽 노예 시절의 수치와 광야 시절의 불신앙을 모두 굴려 버렸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머물러야 할 곳은 길갈입니다. 과거의 죄와 불신앙을 보혈로 끊어 내고, 모든 죄의 수치를 굴려 버려야 합니다. 묵은 죄와 불신앙을 회개하는 자만이 소망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나는 영적 할례를 받은 자입니까?

내가 길갈에서 끊어 버린 죄와 수치는 무엇입니까?

 

위험 속에서 받은 할례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은 가나안 일대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가나안의 모든 왕과 백성의 이목이 이스라엘에 집중되었고, 이스라엘의 일거수일투족은 초미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할례를 받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누워 있는 것은 무모하고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이스라엘을 해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일대에 요단강 도하의 기적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퍼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할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조성해 놓으셨습니다.

 

오늘의 만나

나는 이웃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앞으로 무엇을 통해 이웃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소망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입니다.

주만나 영상큐티를 통해 말씀에 사로잡혀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요단강을 건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단 서쪽에는 아모리 사람들이 있었고 해변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즉 사방에 적군들이 즐비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하십니다. 바로할례를 행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할례를 명한 것이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세 가지로 살펴보고 그 안에 서려 있는 믿음의 본질에 대해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할례는 군사력의 손실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 사방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삼켜버리려는 적군들도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할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종교적 행위였습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를 행하라고 명합니다.

날카로운 칼이 아닌 부싯돌로 할례를 행했다면 부작용이 더 심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즉 할례를 통해 군사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믿음입니다. 믿음은 약할 때 강함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군사력 손실은 곧 하나님의 군사적 능력의 강함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할례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본문 8절 말씀입니다.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이때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남자들은 자기들이 왜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시했을 것입니다. 5절에 언급된 것처럼 지금 할례를 받는 사람들은 광야 길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할례의 의미도 잘 모르고 너무 아픈 나머지 불평, 불만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할례 받은 사람들이 못 움직여서 진중 각 처소에서 낫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적군이 얻었다면 아마도 적군은 바로 공격을 감행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은 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나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기다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셋째, 할례는 언약 자손의 표징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갑자기 할례를 명해서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적군의 공격에 취약한 무리로 만들었을까요? 본문 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넌 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할례를 명하신 것입니다. 믿음에는 늘 표징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구약의 신자들은 할례라는 외부적 표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약의 신자들은

마음의 할례라는 내부적 표징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증거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적군 앞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로 할례를 행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하심을 통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참된 언약 백성의 표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오늘 본문의 요약)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자,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말리시고 건너게 하심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하여 공포와 긴장감이 감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할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애굽에서 나온 후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행한 곳은 '굴리다'라는 뜻을 가진 길갈로 요단 강을 건너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이 지명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도착해 노예로서의 모든 수치를 완전히 굴려 버렸음을 강조합니다.

 

(길갈의 은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요단을 건너 길갈에서 열두 돌의 승리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거점지역이 되었으며 승리의 장소입니다. '길갈'이란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는 뜻으로 길갈에서의 할례는 다음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길갈에서 할례를 다시 시작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격이 주어집니다.(창 17:9-14)둘째는, 길갈에서 할례는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한 수치는 노예로서 조롱, 멸시, 부끄러움이었으며 이 모든 수치를 물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기적 속에서 건넌 후에, 할례를 명하심으로써 믿음의 징표를 가지고 거룩하게 구별하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의 할례를 거쳐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의 일상가운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시고, 목이 곧은 패역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운데 살아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