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3. 누가복음 묵상노트

누가복음 19장 41- 48 영혼을 위해 울라

smile 주 2023. 11. 8. 10:0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예루살렘을 위해 눈물을 흘리심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그 도시를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42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이것이 너에게 감춰져 있다.

43 네 원수들이 너를 향해 흙덩이를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방으로 포위할 때가 올 것이다.

44 그리고 너를 짓밟고, 너와 함께한 네 자녀들도 짓밟을 것이다. 또한 돌 위에 다른 돌 하나라도 남지 않게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찾아온 때를 네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하셨습니다.

46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47 예수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48 그러나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으므로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성도는 영혼을 위해 통곡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십니다.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온전한 평화를 이루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왔음에도 예루살렘 백성이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평화의 왕인 예수님을 거부한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에 멸망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부한 자들에게는 참혹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심판의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안타까

운 현장을 보며 통곡하셨듯이 우리는 죽어 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쳐야 합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잠24:11 a).오늘도 예수님의 심정으로 영혼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오늘의 만나

예수님이 통곡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품고 울며 기도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성도는 성전에서 기도한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전이 제 기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임에도 이스라엘은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우리 마음에 세속적인 것을 채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악한 것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성전은 오직 성령만이 운행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전의 본질적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해 단호히 행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부패한 우리 마음의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만나

성전의 본질적인 기능은 무엇입니까?

나의 마음의 성전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 몰아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 말씀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울고 계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랑하는 그 예수님께서 지금 눈물을 흘리고 계신 것입니다. 왜 일까요?

우리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울고 계시는 것이며, 성경은 왜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42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오셔서 그 성읍의 백성들을 보시니 너무나도 속상한 마음이 드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평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레네는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어 단어 샬롬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샬롬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탄식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샬롬의 길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해야 평안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았어야 하는데, 그걸 알지 못해서 고통받고 있구나.’

44절 말씀은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네가 보살핌을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평화와 보살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요, 우리의 주인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화를 주시는 분, 보살핌을 주시는 분인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고, 따르지 않았던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그 평안을 받아 누려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들은 이를 알지 못하여 여전히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우리를 향한 애통의 눈물이었습니다.

긍휼의 눈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9 36절은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목자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마치 목자가 없는 양들처럼 고생하며 기진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뜨거운 눈물은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온갖 장사치들이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서 제물을 팔고 있었고, 돈을 바꾸어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도 그런 수고와 물질의 지불을 감당해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잃어버린 평화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 편안함과 안락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긴밀한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평안, 참 된 평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여 그 평안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6절 말씀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기도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구해야 평안을 얻을 수 있는데, 강도처럼 인간적인 힘과 노력과 잘못된 방법으로 그것을 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릇된 생각과 오해를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른 말씀을 전해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47절 말씀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서기관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그러나 주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눈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유일하고 완전한 방법을 통해 진정한 평안을 얻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으로 은혜를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적인 방법에 시선을 빼앗겨 평안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눈물을 바라보며, 주님의 마음을 깨달았으니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믿으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애통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요약)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신 사건과 성전에 들어가 상인들을 내쫓고 거기서 가르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신 것은 곧 그 성이 파괴될 것을 예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성전에 들어가서는 불같이 분노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대로 기도하는 집을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강도들의 소굴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함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성도 된 우리도 흘려야 하는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심판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성도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몸 된 성전이 참된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족함이 있다면 예수님처럼 내 몸 된 성전을 정화하여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을 깨닫습니다.

 

(기도하는 집, 성전)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강도의 특징은 자기 자신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능력과 힘만을 믿고 인생을 세워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힘 위에 인생을 세워간다면 그 인생은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세워주실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기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가진 것과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진정한 참 성전되신 하나님 아버지! 장차 멸망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통곡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체휼 합니다.우리가 장차 무너지고, 사라지고 없어질 것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인생을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필요로 하시면 우리도 기꺼이 우리의 나귀를 내어놓을 줄 아는 믿음을 갖게 하시고, 또한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실 때, 기꺼이 주님을 태운 어린 나귀가 되게 하여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