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25. 예레미야애가 묵상노트(완료)

예레미야애가 3장 55 – 66 악인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

smile 주 2024. 1. 8. 07:06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55 여호와여, 제가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56 “제가 도움을 청할 때에 귀를 막지 마시고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때 주께서 들어주셨습니다.

57 제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58 주님, 주께서 제 사정을 살펴 주셨고, 제 목숨을 구해 주셨습니다.

59 여호와여, 주께서는 제가 억울한 일에 처한 것을 보셨으니 제게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60 주께서는 제 원수들이 제게 복수한 것과 저를 해칠 음모를 꾸민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61 여호와여, 주께서는 그들이 저를 향해하는 욕과 저를 치려고 꾸민 음모를 다 들으셨습니다.

62 제 원수들의 말과 생각은 종일토록 저를 해치려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63 주여, 보십시오. 그들은 앉으나 서나 항상 저를 놀려 댑니다.

64 여호와여, 그들이 저지른 대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며 그들이 한 대로 갚아 주십시오.

65 그들의 마음을 처량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주의 저주를 내리십시오.

66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시고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그들을 없애 주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깊은 구덩이에서도 기도하라

예레미야가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라고 말합니다(55). 여기서 깊은 구덩이는 남유다가 처한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탄식을 듣고 계셨으며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응답하십니다. 평소 자기 신앙의 수준을 자부하던 사람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큰 절망에 빠지면 기도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으로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과 기도 소리를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권세나 절망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8:38-39).

 

오늘의 만나

극한의 상황에도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때보다 기도해야 할 상황인데도 기도를 포기한 일은 무엇입니까?

 

의의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예레미야는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을 보셨으니 이제 그 원통함을 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악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한 마음과 행실을 모두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은 악인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며 이들을 향한 영원한 심판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며 인내한 자에게는 구원과 회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내면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의 마음은 어떤 모습입니까?

회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행동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도 감사와 찬송이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은 66절로 되어 있지요.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개 곱하기 3입니다.

첫 번째 글자로 시작하는 구절이 세 개, 두 번째 글자로 시작하는 구절이 세 개, 이런 식으로 스물두 개의 알파벳이 세 개씩 이어집니다. 오늘은 마지막 글자 네 개가 세 번씩 쓰였네요. 끄르쉬쓰입니다. 우리말그러셨어와 발음이 유사하네요.

끄르쉬스 그러셨어. 구덩이에 빠져 머리가 터진 새가 되어 기도하는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그러셨어. 들으셨어. 갚으셨어.” 심연에 가까운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하나님밖에 부를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들으셨네요. 그분의 개입이 있습니다. 도움이 있습니다.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마라.” 아멘. 헌신이 헛수고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본인이 이렇게 망할까 같아서, 시온 딸이 그렇게 망하나 싶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마라.” 아멘.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울 때 그분도 우셨고, 내가 돌에 맞을 때 그분도 맞으셨으며, 함정과 감옥, 깊은 구덩이에서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에게도 허물이 있지만, 진심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그분의 전지전능이 와닿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동의할 수 없어도, 그분 말씀 대로만 전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요.

대적들은 복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보다 복수(復讎)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 의가 중요하고 자신의 명예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비방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비방이라 할지라도, 비방으로 예레미야를 끌어내리면, 자신들이 올라갈 거라 여깁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까요?

종일토록 예레미야를 비방합니다. 할 일도 없나 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만큼 자신이 중요한 것이겠죠.

감옥이든, 함정이든, 구덩이든,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예레미야와 대조됩니다.

그들은 궁궐에, 호텔에, 높은 자리에, 넉넉함에 앉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에 등장하는 백인들만의 교회 교인들이 생각납니다.

멀리 해외로는 선교헌금도 보내면서, 정작 가까이 사는 흑인들에 대해서는 멸시와 조소를 보내고, 거짓과 불공평을 일삼는 이들입니다반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조정을 기대합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악인들의 위선을 하나님께서 벗기실 것입니다.

그분의 때에, 그분의 능력으로, 그분의 선하신 목적에 맞게 그분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들 위에 있습니다.

하늘 심판입니다. 예레미야의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경험하고, 회개와 간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구로 이어집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 주님을 불러 아룁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기에, 배웠기에, 경험했기에, 신뢰하며 아룁니다.

그분은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분의 의를 위해 일하십니다.

내 의는 없습니다. 내 자존심은 상해도 좋습니다.

그분의 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 그분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제가 머무는 이곳에 이뤄지기를 간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Bg8x07AbVYw?si=a-OCsaeJ0fRN6M1U

 

(오늘 본문 요약)

예레미야는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더욱이 ‘두려워 말라’는 위로의 말씀까지 듣습니다. ‘생명을 속량 하셨나이다’에서 ‘속량’의 명사형은 ‘고엘’입니다. 고엘은 룻기에서 등장하는 ‘기업 무를 자’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포로 된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원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실 ‘기업 무를 자’ 임을 강조하며, 예레미야는 구속자이시고 변호사이신 여호와께서 억울함을 감찰하시고 잘못된 판결을 바르게 잡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더는 실의와 좌절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향한 신뢰에 근거해 적극적으로 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레미야는 범죄 한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필연적이듯, 심판의 도구로서 그 위치를 망각한 대적들도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자기 백성을 향해서도 심판의 손을 드셨지만, 이제 회개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원수(바벨론)에게 저주를 내려 그들이 천하에서 설 자리가 없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레미야는 자신을 모함하고 자신을 웅덩이에 빠뜨려서 죽이려고 하는 상황을 말하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감찰하여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자신을 위한 간구가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해하는 이방 나라들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아 달라고 하는 기도를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비록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유다이지만 하나님의 긍휼 하심과 자비하심이 분명히 용서하시고 회복하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신음소리까지도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의 고난과 슬픔을 들으시고 보시고 아시며 말씀하신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울리기를 간구합니다 또한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않고, 하나님의 귀가 듣지 못하는 곳은 없음을 기억하며, 어떠한 절망과 역경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의 끈을 놓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어둡고 깊어 빠져나올 수 없고 진창 속에 빠진 웅덩이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과 손을 들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옵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