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16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다. 이는 누구든지 그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17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18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판결 내용은 이렇다. 빛이 세상에 와 있지만 사람들은 빛보다는 어두움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20 악을 행하는 사람마다 빛을 미워하며, 또한 빛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행위가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빛을 향해 나오지 않는다.
21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행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을 통하여 행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빛을 향해 나온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유일한 구원의 길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기를 끝까지 거부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하나님의 독생자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행실도, 심지어 율법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세상의 정의와 도덕이 하나님의 의에 다다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어둠보다 빛을 사랑하는 성도
예수님은 어둠이 가득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빛으로 나아오길 거부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분명하게 빛이 비쳤음에도, 여전히 어둠 가운데 머물며 악을 즐거워합니다. 빛과 어둠은 결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만이 빛으로 나아옵니다.빛에 속했다고 말하면서 어둠을 즐거워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신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을 기뻐하며 빛이신 예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참된 성도가 악한 일을 즐거워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앙을 고백해도 여전히 악을 향해 기웃거리는 모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은 참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신앙의 유무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 또 이렇게 정의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가장 따듯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이다.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이자 마음의 움직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따뜻하고 바람직한 마음이라는 것이죠.
우리 모두는 사랑받을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 받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서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관계에 목말라합니다. 그런데 그런 관계를 찾기가 쉽지는 않죠. 서로 사랑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온전한 사랑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희생과 헌신과 기쁨을 포함한 아주 고결한 사랑이에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정상적인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합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죠. 그리고 자식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이 사랑은 교육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사랑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우리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 하반 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아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에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그냥 지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이 말은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성품과 지혜가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그 중에 사랑이 있는 거예요.
물론 죄로 인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어그러졌습니다.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요.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도 죄로 인해 왜곡되었어요. 우리의 사랑은 온전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그나마 가장 고결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왜곡이 되었음에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이렇게 크다면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얼마나 그 사랑이 풍성하고 깊었을까요? 엄청났을 것에요.
그러면 그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깊을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랑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16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너무 유명한 구절이죠.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고 전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자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실 만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자식이죠. 부모가 다른 사람을 아무리 많이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 자식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자식을 죽일 만큼 사랑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자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인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훨씬 더 사랑하셨습니다. 한 번도 미워하신 적이 없고 서로 떨어지신 적도 없으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것도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죄인인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크기는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에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넓고 높은 것인지 깨닫고 그로 인해 크게 기뻐하고 감사한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실 만큼 나를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그 사랑을 희미하게 지워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확신하기 원합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넓고 높은 것인지 깨닫기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고 감사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Z4BkHNJbLPI?si=_Ddya4Q3TyZhT-kT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구원의 진리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죄악으로 타락하여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지만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도리를 잘 설명하여 줍니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정죄와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죄의 내용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진리를 계시하셨지만, 악인들은 그 빛으로 인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예수를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행을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진리를 좇는 자는 빛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참 목적은 우리를 심판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고 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가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대신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온전케 하시고자 하였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도 없고 멸망도 없지만 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심판 가운데 있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음을 참으로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세상에 보냄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서 힘겨운 그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결코 두려워 말게 하시고, 오히려 기뻐하며 담대함으로 진리를 따르는 자 되어, 우리들의 모든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우리 삶의 모습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해지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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