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4. 요한복음 묵상노트(완료)

요한복음 8장 48 – 59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

smile 주 2024. 5. 10. 06:36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아브라함보다 크신 예수님

48 <예수님과 아브라함>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사마리아 사람이고, 귀신이 들린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틀렸습니까?”

4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지만 너희는 내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50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나를 위하여 영광을 구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심판자이시다.

51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52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귀신 들린 것을 알겠소. 아브라함과 예언자들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든지 나의 말을 지키면, 그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53 당신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영광되게 한다면, 그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되게 하는 분은 나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너희가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만일 내가 그분을 모른다고 한다면, 나도 너희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볼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였다. 그는 그 날을 보았고 기뻐하였다.”

57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존재한다.”

59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께 돌을 집어던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몸을 피해 성전 뜰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부정하기 위해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며 귀신이 들린 자라고 모욕합니다. 예수님은 맡겨진 구원 사역을 충실히 행하시며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무시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49).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육신에 있었습니다. 이 땅의 것을 얻고 누리는 데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영생의 말씀을 듣고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아브라함보다도 크신 이가 자신들 앞에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세상을 추구하는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가장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가 잃는 것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성취될 약속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도하신 분입니다. 비록 육신을 입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아브라함보다 크신 분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고대했고, 드디어 약속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유대인들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부인하며 구원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2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1:11). 우리 역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오늘의 만나

바쁜 현실의 삶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약속은 무엇입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 하루도 말씀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루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이천여 년 전에 태어나셨고 위대한 삶을 사셨다는 것은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4대 성인 중 한명인 것이죠. 인도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이끌었던 간디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탄복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존재와 가르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우리 믿는 자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의 구원자 즉,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탁월한 지도자나 선생님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는 영적인 양식으로 받아들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회 개혁이나 윤리적 지침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영적인 눈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영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려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닫혀 있으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땅의 수준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그러했어요. 영적인 눈이 닫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육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다 보니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요, 이를 통해 두 가지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영생을 기대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무지와 잘못을 지적하신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이거나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아주 모욕적인 말이었어요. 예수님은 독설을 퍼부은 유대인들에게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영생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51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말씀하신 것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육적인 수준으로 이해했습니다.

 

영생을 육신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공격했어요. 52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그토록 훌륭했던 아브라함이나 선지자들도 다 죽었는데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냐고 따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이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영생을 설명하신 것인데

영적인 눈이 가려진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생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영생을 기대해야 돼요. 우리 믿는 자들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관문이자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어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할 것을 기대하며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믿음의 눈으로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한 혈통의 뿌리로 생각하는 아브라함을 언급하셨습니다. 56절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때를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도 육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어이없어했습니다.예수님이 태어나기 이 천여 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보았을 리 없기 때문이죠. 57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예수님이 당시 30대 초반 이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말은 아주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았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봤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야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브라함 당시에도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은 실제이기도 했어요.

 

우리 역시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오실 주님을 바라봤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과 믿음의 눈 맞춤을 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영생을 기대하기 원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관문이자 시작임을 믿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뻐하기 원합니다.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예수님과 믿음의 눈 맞춤을 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Uag-TKfhIhA?si=DD353OO3omTVbTUI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을 거론하며 갑론을박하다가 그 아브라함보다도 먼저 계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어이 유대인들의 분노가 터져 주님을 돌로 치려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께 사마리아 사람이나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 말하며 경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화를 내지 않으시고 자신의 말을 믿고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예수께 나이가 50세도 안 된 자가 아브라함보다 큰 자라고 말하고 있느냐면서 더욱 의문을 제기하며 비난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그들이 돌을 던지려 하자 예수께서 피하여 밖으로 나가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하냐고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한 그들은 단지 눈에 보이는 육신의 나이로 예수님을 판단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는 말에 그들은 돌을 들어서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분명히 말했음에도 그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눈앞에 두고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로 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받은 복이 얼마나 큰지 보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은혜임을 깨닫고 평생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영적인 예수님의 가르침을 나의 이익에 따라 각색하여 육체의 기회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오직 진리의 말씀과 기도의 무릎으로 악한 사탄의 궤계를 능히 이기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손에 들린 교만의 돌을 내려놓고, 예수님만 높이고 나는 낮아지는 겸손의 자리가 나의 자리임을 깨닫고, 나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섬기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백성답게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