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시각 장애인을 고치시다
1 <나면서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을 고쳐 주심>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때, 나면서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이렇게 앞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 때문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4 우리는 낮이 계속되는 동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땅에 침을 뱉어 그것으로 진흙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 발랐습니다.
7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샘에 가서 씻어라.”(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샘으로 가서 씻었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습니다.
8 그 사람의 이웃이나, 전에 이 사람이 구걸하던 것을 본 적이 있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9 “맞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아니야, 이 사람은 전에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야. 단지 그와 비슷한 사람일 뿐이야”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0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11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분이 진흙을 만들어 그것을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 샘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소?” 그 남자는 “나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고난의 원인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이 질문에는 선천적인 질병이 누군가의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뿐만 아니라 현시대의 기독교인 역시 사고나 질병 등의 불행에 처하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고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죄이지만, 죄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에 일어난 불행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고난당할 때 섣부르게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고난당할 때 정죄를 당하면 어떤 기분입니까?
다른 사람이 고난당할 때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의 도구
예수님은 그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유가 누군가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장애인을 기이한 방법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이전부터 시각 장애인이 구걸하던 모습을 보았던 이웃들은 그가 도대체 어떻게 치유를 받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고침받은 이는 예수님이 고쳐 주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신의 병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냈습니다. 우리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고난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고난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고난을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고난을 통해 하실 일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도 주만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755년에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리스본 인구의 오분의 일이 목숨을 잃었고 건축물의 85퍼센트가 붕괴되었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끔찍한 자연재해 앞에서 망연자실했는데 그들의 마음이 더욱 힘들던 이유는 지진이 일어난 날이 하필이면 가톨릭교회의 축제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많은 신자들이 성당에 모여 있었는데 지진으로 성당이 무너지면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신앙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도대체 왜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찾아온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리스본 지진 이후에 고난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돌보신다고 말씀하는데,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비극과 고난이 난무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들은 답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를 신학적인 용어로 ‘신정론’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단답형으로 정리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여러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 중 한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고난에 대한 두 가지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고난의 원인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 사람이 시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는 고난의 원인이 무조건 죄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 비극적인 고난을 당할 때 무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죠. 틀린 생각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원인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고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죄입니다. 하지만 죄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우리의 예상을 깨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시각장애를 가진 이유가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시각장애인이 고난을 당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이 시각장애인이 고침을 받은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그 이유가 우리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기 위해서 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할 때 그 원인을 단정 짓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 그 뜻을 물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고난을 통해 참 빛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을 고치시기 직전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셨습니다. 5절입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진흙을 만들어 그의 눈에 바르신 뒤 실로암이라는 연못에 가서 씻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생 세상은 물론이고 자신의 모습조차 보지 못했던 사람이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게 되는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의 육적인 눈과 영적인 눈 모두를 고쳐 주셨어요.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라는 큰 고난을 겪어야 했던 사람은 그 고난 덕분에 참 빛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어두움을 통해서 참 빛이신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이 밝으면 위로부터 내려오는 빛이 잘 보이지 않지만 주변이 깜깜해지는 고난의 시간이 찾아오면 하늘의 빛은 더욱 선명해집니다.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날 때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기회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셔서 고난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영적인 시야가 넓어지는 축복을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을 당할 때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주셔서 고난 가운데 심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고난의 시기를 겪을 때 빛이신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영적인 시야가 넓어지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FmbtA0aumyw?si=DMuiI-RPqLGgRncy
(오늘 본문 요약)
요한복음은 일곱 가지 표적(물이 포도주로 변함 2:1-11,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지체장애인을 고치심 5:1-18, 오천 명을 먹이심 6:1-14, 물 위를 걸으심 6:16-21, 시각장애인을 고치심 9:1-12. 나사로를 살리심 11:1-46)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 합니다.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을 고치신 여섯 번째 표적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자를 만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가 소경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앞을 보지 못하는 자 앞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가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수님께서는 진흙을 이겨 시각장애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시각장애인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합니다. 오늘 성경에 언급된 시각장애인은 자신의 상식과 생각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하고 순종했습니다. 행동의 기준을 오직 예수님께 맞추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눈을 뜨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순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오직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동일한 기적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기적을 일상으로 사는 복을 누리게 됨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기도)
정죄와 외면 속에서 어두운 인생을 살았던, 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이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도하는 거룩한 도구로 삼아주셨습니다. 그가 눈을 뜨게 된 것이 예수님의 침으로 범벅된 진흙이나 실로암 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빛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맹인이 순종했을 때였음을 기억합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를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는 시각, 청각 장애인과 같은 내 삶에도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해 주실 때,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게 하시며, 명령에 따라 행함으로 순종하는 자 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게 하시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복된 하루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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