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F3p3CsNpfDk?si=DarVWFEbbJR9GByS
부활, 닫힌 문들이 열리다. 요한복음 20:18~29
ㅇ닫힌 문과 두려워하는 제자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오륜교회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기둥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륜교회도, 오륜교회 성도의 삶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경험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은 함께 모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두려워하고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부활과 관하여 말씀하셨고,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마리아의 증언도 있었으나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들을 다 닫고 숨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모든 문을 닫았지만, 예수님께서 그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우리 인생에 닫힌 모든 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활짝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하면 두려움에 싸여 모든 문들을 닫고 살아가게 됩니다.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인데, 믿지 못하면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인생의 모든 문들이 열리길 축복합니다. 부활은 모든 닫힌 문을 여는 능력입니다. 부활 앞에 모든 닫힌 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ㅇ닫힌 문을 여신 부활의 주
1.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b)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 버린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어야 닫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불안합니다. 우리의 내면은 더욱 복잡합니다. 작은 일 하나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고, 생각과 마음은 꼬여있어 풀어지지 않습니다. 실패한 과거, 답답한 현재, 불안정한 미래를 생각하면 갇혀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닫힌 문을 뚫고 들어오셔서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평안 그 자체입니다. 구약 성경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9:6) 또한 그 분이 태어나실 때는 천사들이 평화의 합창을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2:14) 사역하시는 동안에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부활하신 이후에도 가장 먼저 평안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평안은 조건적입니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넓은 집과 좋은 연봉과 노후가 확실히 준비되어야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평안은 '절대적인 평안'입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의 조건과 상관없는 평안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안이고,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갖는 평안입니다
2.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행20:25)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자랑하듯 흥분해서 말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찾아오신 그 현장에 도마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도마를 의심 많은 도마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도마만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의심이 많습니다. 더욱이 도마는 제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믿지만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도마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역시 믿지만 다 믿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도마의 믿음도 무시하지 않고 용납해 주십니다. 그리고 도마를 위해 다시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행20:27) 예수님은 도마의 기질을 인정하시고 도마가 믿을 만한 방법으로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만져 보아야 믿겠다면 모든 것을 다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의심과 불신의 문에서 나와 믿음 있는 자가 될 것을 요청하십니다. 이에 도마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행20:28) 도마는 이후, 사도중에서 가장 먼 곳인 인도까지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힌두교 사제들의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도마는 보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 믿음의 스펙트럼이 확장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다른 차원의 믿음이 될 것입니다. 도마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다른 제자들은 모두 죽고, 요한만 살아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없을 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2024년 부활절 예배를 드린 우리 중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눈보다 믿음의 눈이 더욱 선명하고 확실함을 믿습니다.
ㅇ인생의 닫힌 문을 여는 부활의 능력
눈으로 보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문을 닫고 있지 않고, 세상 가운데서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전도자 무디(D. L. Moody)는 죽음이 다가오자 밝은 얼굴로 "이 땅이 멀어지고 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부르고 계신다. 이는 축복이요 영광이구나!"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무디의 딸이 "하나님! 아버지가 기운을 차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딸의 기도를 듣고 있던 무디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지금 나를 부르고 계신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아니?" 무디는 눈으로 보지는 않았으나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부활! 우리 인생의 모든 닫힌 문들이 열리길 소망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염려했던 염리의 돌문을 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두려움의 문을 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의 의심의 문을 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 인생의 모든 닫힌 문들이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 앞에 막힌 문은 없습니다.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닫힌 문들이 열리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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