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0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7VIxHa3m1P4?si=w4OBtzrC9BxTRwHa
다시 부흥을 사모합니다. 사도행전 5:12-18,40-42
ㅇ부흥과 저항의 역사
초대교회의 역사는 부흥의 역사였고 그 이민에는 저항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부흥과 저항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부흥의 시기는 또한 위기의 시기일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현장에는 사탄충만의 역사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부흥에 취해 본질을 잃어버리고 예수 이름 외에 다른 것을 붙잡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저항이 양력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더 넓게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전과 다른 부흥의 변곡점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부흥을 맞이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흥이 우리의 부흥이 되길 축복합니다.
ㅇ초대교회가 맞이한 차원이 다른 부흥
1. 예수 이름으로 전인적인 치유가 일어나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행5:12) 다시 부흥을 맞이한 초대교회 부흥의 첫 번째 특징은 치유였습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사도들의 손을 통한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이 일어날 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 현장에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고통의 원인은 다양하고 증상도 다양합니다. 많은 발전을 이룬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있는 병보다는 고치지 못하는 병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다시 부흥을 경험한 초대교회는 모든 병에 대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도 치유를 경험하였습니다. 즉, 전인적인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부흥의 성경적 의미는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ⅱ)" (호6:2) 그러므로 부흥에는 반드시 치유가 일어납니다. 생기를 잃어버린 곳에 다시금 생기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으로 생기를 잃은 곳에 생기가 들어가 치유를 경험합니다. 귀신 들리 괴로운 영혼에 다시금 성령의 생기가 들어가 사탄이 떠나가게 됩니다. 모든 외로움이 극복되고, 분노가 조절되고, 죄의 욕망이 사라지고, 중독에서 해방되고, 부부 관계, 부모-자녀 관계, 가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행5:15) 중요한 것은 부흥에 대한 사모함, 치유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예루살렘을 넘어 예루살렘 부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는 '심지어'라고 표현합니다. 부흥에 대한 갈급함, 치유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심지어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예수 이름의 능력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상황에서 복음을 담대히 전하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행5:17-18) 부흥의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상황 속에서 복음을 담대히 전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혔던 솔로몬 행각에서 다시금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과거에 분명히 법정에서 금지령을 내리고 위협을 가했는데 자신들의 말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대중들이 사도들에게 몰려가는 것을 보고 시기심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전에는 베드로와 요한만 갇혔는데 이제는 12 사도가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기적을 경험합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행5:19)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닫힌 문들을 열어 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다 보면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곤 합니다. 사업·건강·재정·관계·미래의 문이 닫혀 있는 것만 같이 느끼질 수 있습니다. 이때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닫힌 문을 이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든 닫힌 문을 열어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과 물리적 법칙을 뛰어넘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삶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감옥에서 구원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행5:20-21) 사도들의 닫힌 문을 열어 주신 이유는 도망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새벽부터 성전에 가서 예수를 전합니다. 사도들은 풀(full) 메시지, 예수에 대한 완전하고 완벽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 역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전체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체입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경험한 풀 스토리입니다. 이들은 증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5:32)
3. 차원이 다른 기쁨을 느끼다.
부흥을 경험한 세 번째 특징은 차원이 다른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의회는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겨서 사도들을 놓아줍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채찍을 때리고 놓아줍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행5:40)이 채찍은 그냥 채찍이 아니라 사십에 한 번을 감하는 채찍, 즉 39번의 채찍질입니다. 채찍의 끝에 날카로운 조각을 붙여 맞을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당하는 채찍입니다. 예수님이 맞았던 채찍을 사도들 역시 맞은 것입니다. 그냥 매 안 맞고 풀려나도록 해주시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아직 완전한 곳이 아니기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때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흥을 경험한 사람은 그 고난의 때를 다음과 같이 여깁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5:41) 사도들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또한 기뻤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습니다. 이전에 사도들은 그 채찍이 무서워 도망쳤습니다. 고통은 피했지만 수치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습니다. 채찍에 맞아 아프지만 한없이 기뻤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가득한 상태, 그것이 바로 부흥의 상태입니다.
ㅇ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초대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바로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기쁨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다시 부흥을 소망합니다. 우리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다시 부흥을 허락하여 주소서! 모든 질병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하게 하소서! 주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하게 하소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소서!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는 오륜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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