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주경훈 담임목사 주일설교/2024 년 주일 설교

임계점을 넘어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라. (사도행전 10:33-48) 2024.06.16

smile 주 2024. 8. 23. 10:00

2024-06-16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Dwy3t5XRy0I?si=aPr6NCv0GZIh9ked

 

임계점을 넘어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라.  사도행전 10:33-48

 

ㅇ변화를 만들어내는 지점, 임계점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되어야 합니다. 1도만 모자라도 액체는 기체가 되지 못합니다. 이처럼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다른 상태로 바꾸는 온도와 압력을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1도의 차이가 전체 변화를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1도가 100도일 수 있습니다. 1이 전부일 수 있습니다. 물이 얼음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의 온도가 1도에서 0도로 떨어져야 얼음이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1도의 차이는 단지 1도가 아니라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이 바로 '임계점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지점입니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완전히 다른 존재, 다른 성질이 됩니다. 이는 영적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완전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영적 임계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영적 임계점을 넘어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는 그 한 가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ㅇ영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임계점,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의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순종하는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삶을 하나님이 내 앞에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코람데오(Coram Deo)'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넬료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원에 99도까지 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도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거의 구원받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선행과 모범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종교를 믿는 사람 가운데 인품이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단을 믿는 사람 가운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만 본다면 선한 사람처럼 보이고, 누군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99도 일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1도가 부족합니다. 1도가 부족하면, 다시 말해 임계점을 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넬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삶을 보면 100% 구원받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구원에 99도 다가간 사람으로서, 여전히 1도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1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은 구원을 위한 조건 중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전부를 결정짓습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구제를 많이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아무리 토라를 암송하고, 구약 성경을 원어로 보고, 구제와 경건의 삶을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영적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ㅇ 전부를 결정하는 한 가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모든 사람을 다 받아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한 가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한 가지는 전부를 결정하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넬료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는 순간 하나님이 왜 고넬료를 만나게 하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오직 예수님만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0:38)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었고, 가는 곳곳마다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출진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모든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담아 죽었으나." (10:39) 다음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진합니다.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10:40) 고넬료 역시 십자가에 달린 예수에 대해서 듣고 알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빌라도처럼, 예수라는 청년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빙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10:42) 이제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이심을 듣게 됩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 되셨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자가 예수님입니다. 고넬료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0:43) 이어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예수를 힘입어 얻게 되는 죄 사함을 전합니다. 고넬료는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진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을 들으며 그의 내면을 도끼로 내려치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직 이 분명한 진리를 모르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고넬료와 같은 깨어짐을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깨어지고 깨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인생의 영원을 결정하는 임계점입니다. 이 진리를 확신하면 우리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결핍투성이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예수 이름을 가져야 합니다. 그 한 가지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4) 베드로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 그리고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은 오순절에 다락방에서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과 똑같이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이 유대인의 오순절이라면, 오늘 본문의 사건을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0:45-46) 이러한 현상을 보고 베드로와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성령이 내려서 놀란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놀란 이유는 성령이 이방인에게도 내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유대인들은 이방인에게는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유대인에게만 성령이 임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ㅇ영적 임계점을 넘어 완전한 변화로

 

고넬료는 그렇게 영적 임계점을 넘어 완전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예수로 채워져 완전한 변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1도 차이로 액체가 기체가 되듯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고넬료는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갈망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져야 할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예수님을 더 알기 원하는 욕심일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 이름 하나에 우리 인생 전부를 거는 사랑하는 오륜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