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5. 사도행전 묵상노트

사도행전 9장 10 – 19 은혜받은 자답게 살라

smile 주 2024. 8. 11. 06:27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아나니아와 사울의 만남

10 다마스커스에 아나니아라는 어떤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고 하는 거리로 가거라. 그리고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가 지금 거기서 기도하고 있다.

12 그가 환상 속에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손을 얹어서 그의 시력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제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에 관한 소문을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14 그리고 그 사람은 대제사장들에게서 주님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잡아갈 수 있는 권한을 받아 가지고 이 곳에 왔다고 합니다.”

15 그러나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그는 이방 사람들과 여러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나의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된 나의 도구이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할지를 내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아나니아는 그 곳을 떠나 사울이 있는 집으로 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여, 그대가 이리로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주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그대의 시력을 다시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사울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19 그는 음식을 먹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커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신 전적인 은혜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셔서 사울을 만나 안수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앞장서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사울을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고 있습니까?

 

품기 어려운 지체도 품는 성도

아나니아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사울이 머무는 곳에 가서 그를 "형제 사울"이라고 부르며 안수했습니다. 사울의 지금까지의 행위를 알고 있음에도 그를 하나님 안의 한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고, 사울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도 아나니아와 같은 성도가 필요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주님이 택하신 사람이라면 그를 내 가족처럼 여기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모든 사람을 품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믿음의 지체들 중 품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을 품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노력은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먼저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일평생 죄에 종노릇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처지였어요.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이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 즉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죠.

 

이러한 신분의 변화 말고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입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거예요. 환경은 그대로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이 바뀝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 육신의 안목이 점점 사라지고 성경적인 안목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내 생각의 틀이 성경적인 틀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인 것이죠. 성경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사울을 만나는 장면인데요, 아나니아는 사울과의 만남을 통해 생각의 지경이 넓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두 가지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사울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큰 충격에 빠져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이 때 주님은 다메섹에 거주하는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에게 환상을 통해 한 가지를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사울을 만나 안수해 주라는 것이었어요. 아나니아는 사울이 앞장서서 성도들을 박해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사울이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주님의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울이 주님께 택함을 받은 것은 그가 구약 율법에 능통했기 때문도 아니고 선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훗날 이렇게 고백했죠.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9,10)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자격 조건이 있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나의 어떠함 때문에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내 모습에 따라 나를 바라보는 주님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최악의 상태였을 때 부르셨다는 거예요. 이 부르심은 내 존재와 내 모습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방적이고 영원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르심과 사랑에 확신을 갖고 감격과 감사의 신앙생활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품기 어려운 지체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나니아는 예수님의 명령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순종했습니다. 그는 사울이 머무는 곳에 가서 그에게 안수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나니아가 사울을 부르는 호칭에 주목해야 합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아나니아는 단순히 사울의 이름만 부르지 않고 형제를 붙여서 형제 사울아라고 불렀습니다. 사울이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저지른 악행을 알고도 그를 주 안에서 한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그리고 아니니아는 사울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앞을 보지 못했던 사울이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 공동체에서 아니니아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지체들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이해했기 때문에 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품으셨기 때문에 나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주님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주님의 자녀요 주님의 동역자로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평생에 이 고백을 멈추지 않기 원합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날마다 되새기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품기 어려운 지체를 품을 수 있기 원합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sxx6NpL8cX8?si=iHtHgni74lWS3SK2

 

 

(오늘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울이 삼 일 동안 보지 못하다가 아나니아에 의해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그 이후 사울의 삶에 대 반전이 일어난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사울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나 시력을 잃었습니다. 아나니아는 다메섹에 살던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사울이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사울이 복음 전파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약)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님께서 환상 중에 그를 부르시며 사울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박해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했지만, 주님은 그를 선택된 도구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에게 가서 안수했고, 사울은 성령을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며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이후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사울의 회심은 단순한 개인의 변화를 넘어,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입니다. 사울은 이후 바울이 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헌신하며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의 회심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죄인을 용서하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도록 합니다. 또한 아나니아의 순종은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그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에게 나아갔고, 이는 사울의 회심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두려움과 의심을 넘어 순종을 요구하시며, 우리의 순종을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나니아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충성된 일꾼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때론 굽은 길을 걸어갈 때 가장 곱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의 눈에서도 모든 교만과 음란과 탐심과 죄악의 비늘들이 벗겨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 증거하며 살아가는 복음의 도구로, 축복의 통로로 일평생 살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아나니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속에 참여하는 복된 시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