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선한 목자 되신 주님
· 본문: 시편 23:1-6
· 강사: 김윤진 전도사 (달라스 세미한교회 예배인도자 / 전) 한성교회 예배인도자 / 한성 라이브워십 「예배하는 이에게」 정규 1집 앨범 발매)
□ 주님은 나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시편 23:1-6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다니엘기도회 찬양사역자로 참여하다가, 오늘은 간증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 이 행복한 밤에 우리가 함께 기도하며, 또 주님을 찬양할 수 있음이, 제 삶에 또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과 은혜인 줄 믿습니다. 먼저 찬양을 하고 여러분과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잘 모르시는 곡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사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그 사랑을 함께 묵상하며 찬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 예배하는 이에게)
(찬양 :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저는 달라스 세미한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윤진 전도사라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 2020년 처음으로 이 다니엘기도회 찬양을 섬기게 되었는데요, 그 후 매년 섬겼던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이사 가게 되면서, ‘다니엘기도회는 앞으로 함께하기 어렵겠구나’ 했는데, 오늘은 저를 간증자로 세워주셔서, 올해도 어김없이 이 은혜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너무 감사드리고 큰 영광입니다.
- 저희 가정은 지난 8월에 미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지 이제 92일째입니다. 그전에는 서울 신정동의 제 모교회 한성교회에서 10년간 예배 인도자로 사역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결혼하실 때 할머니께서 그 교회에 다니라며, 한성교회 옆에 작은 방을 얻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쭉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한 막내딸입니다.
- 저는 딸만 셋인 집의 늦둥이 막내딸입니다. 제가 태어날 때는 정부 산아제한 정책으로 둘만 낳아 잘 기르는 것이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획하지 않은 아기가 생긴 것입니다. 부모님은 경제 상황도 많이 어렵고 해서, 낳을지를 엄청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여성들이 보건소에 수술을 신청하는 제도가 있었답니다.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 신청하면 임신할 수 없도록 수술을 해주고, 임신한 여성이 신청하면 낙태 수술과 함께 다시는 임신할 수 없도록 수술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고민하시다가 수술을 신청하셨답니다. 수술 날짜가 되어 어머니가 준비하고 집을 나서는데, 동네에 ‘미애 엄마’라는 분이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시더랍니다. 어머니가 민망해서 거짓말을 하려다 못하고,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수술하러 가는 중이라고 말씀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런 일은 기도 받고 가야 한다고 부모님을 교회로 인도하신 겁니다. 부모님은 ‘기도 받고 가면 좋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따라갔다고 합니다. ‘미애 엄마’는 구세군교회에 다니셨는데, 그 교회의 전도사님과 미애 엄마, 그리고 저희 엄마가 함께 기도하게 되신 겁니다. 그때 어머니는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답니다. 열심히 기도한 후에 어머니가 가시려고 하는데, 전도사님이 저희 어머니에게, “어머니, 제가 기도해 보니 하나님께서 이 아이가 나중에 큰일을 할 거라고 하십니다.”라고 하시며 어머니를 설득하셨답니다. 어머니가 그 말씀에 흔들리신 겁니다. 그래서 보건소에 가지 않고 집으로 가셨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난 후 도저히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보건소에 수술을 신청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게 가려고 하는데, 또 미애 엄마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처음에는 대충 둘러대다가 결국은 솔직하게 보건소에 가는 중이라고 말했는데, 미애 엄마가 또 기도 받고 가라고 해서, 한사코 거부하다가 또 따라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구세군 교회 전도사님, 미애 엄마, 저희 엄마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이번에는 전도사님이 뭐라고 하셨을까요? 전도사님이 말씀하시길 “어머니, 기도해 보니 하나님께서 이 아이가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저희가 딸만 둘이잖아요. 은근히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소망에 갑자기 불이 붙어서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가신 겁니다.
- 아들이라고 생각한 그 뱃속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태어났는데, 제가 나온 겁니다.^^ 부모님께서 과거 제가 태어날 때의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너를 지키고 보호하신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어머니는 그 당시 ‘미애 엄마’를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시는데, 혹시 이 간증을 보게 되신다면 꼭 만나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학창시절 경제적으로 빈곤했고,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견뎌야 했습니다.
-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떤 남학생과 좀 다투고 관계가 멀어진 일이 있었는데요, 그 아이는 인기가 많아서 추종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반에서 왕따 아닌 왕따가 되었는데, 4학년, 5학년,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학년 왕따에서 전교 왕따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인사하거나, 아는 체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겁니다. 혼자인 거는 괜찮은데, 괴롭힘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저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는 겁니다. 수업을 하려고 책상 속의 소지품을 꺼내려고 하면 소지품이 없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교실에 들어가 보니, 제 책상과 의자가 없는 겁니다. 아이들이 학교 창고에다 버린 겁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등교 시간을 앞당겨 7시 반에 등교하니까, 아무도 없어서 괴롭힘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괴롭히는 친구들도 저보다 더 일찍 와서 제가 신발을 갈아신는 사이에 제 머리에 돌과 모래를 쏟아붓는 장난을 쳤습니다. 괴롭힘이 가장 심한 시간이 점심시간인데, 그 시간에는 아예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양호실로 도망가서 피해 있었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은 게 열 번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락은 집에 가면서 하수구에 버렸습니다.
- 어려운 초등학교 시기를 지나고 중학교에 갔는데,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은 사라지고 또다시 괴롭힘이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에도 저를 알아보는 친구들이 많았고 더 심한 폭언과 폭행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저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저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폭언과 폭행을 했습니다. 그때 수십 명의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지나가시기만을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IMF가 터지고 아버지께서는 실직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끌어모아 작은 트럭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 전국을 다니면서 열심히 일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아주 오랫동안 볼 수 없었고,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너무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너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의지할 곳은 교회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난해도, 못생겨도, 심지어 죄를 지어도,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전도사님, 목사님,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 겁니다. 꾸역꾸역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6년이라는 시간을 버텼습니다.
□ 고등학교에 가서 친구의 사랑을 얻었지만, 하나님과 멀어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고등학생이 될 나이가 되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서 기술을 빨리 배워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실업고등학교 상업계열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는 여러 번 차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먼 곳에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보니, 너무 감사하게도 아무도 저를 모르는 겁니다. 처음으로 저에게 친구가 생겼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얼음 공주’라고 불렀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친구들이 생기니 너무 좋았습니다. 처음으로 급식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하굣길에 빵, 떡볶이 등을 사 먹고 노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었습니다. 친구들과 더 친해지면 예수님을 전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더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주일날 예배시간과 겹치기 시작하면서 제가 예배에 늦거나 빠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더 친해지기 전에 제가 주일 성수를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처음으로 예배에 지각할 때는 너무 무서웠는데, 점점 무뎌지면서 하나님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르느니라’ 제가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죄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 집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언니 둘과 엄마 그리고 제가 누우면 딱 맞는 단칸방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평생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저희 셋을 키우셨습니다. 그런데 IMF가 되니, 사람들이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단칸방 월세도 못 내서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회장님댁 같은 곳에 입주해 숙식을 하는 가사도우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이런 곳이 있는 데, 같이 갈 건지 물었습니다. 거기 가면 먹는 것도 좋고, 자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엄마 혼자 보내기도 그래서 저도 함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엄마 말씀대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침대, 화장실, 욕실 모두 반짝반짝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엄마의 강도 높은 노동의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하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대하는 비인격적인 태도들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제 안에 원망과 분노가 터지기 시작했고, 하나님에게 원망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기도해도 소용이 없구나. 어린 시절에 난 왜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고 살았을까? 속상하고, 화가 나고, 상처가 된 일들을 되씹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갔습니다. 교회도 중단하게 되었고, 학교도 잘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업 일수가 모자라 조금만 더 있으면 퇴학이라는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잘 가지 않았습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정서가 너무 불안했습니다. 어쩌다 가는 학교에 술을 가지고 가서 먹고 엎드려 자기도 했습니다.
- 한번은 친구들과 저녁에 술을 마시고, 남자들과 큰 시비가 붙어 몸싸움까지 갔습니다. 서로 싸우다가 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제 친구들 중 제가 제일 먼저 조사를 받고 풀려나와 경찰서 2층 로비로 나왔는데, 창가 쪽에 소파가 있었습니다. 술이 덜 깨서, 소파에 주저앉아 창문을 보고 있는데, 밤이 아니라 아침이 된 것입니다. 학교 가는 여학생들이 웃으며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어떤 사람이 통화하면서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도 보이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선 사람 등, 일상적인 아침 풍경들이 보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18살 고등학생이 화장을 하고, 헝클어진 머리에, 술 냄새를 풍기며 밖을 쳐다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생수 대신 소금물을 마신 제 모습이었습니다.
□ 죽음의 순간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전에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저를 채우시고, 저를 붙드실 때는 제가 견딜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친구도 있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데도, 행복하지 않고, 돌아가고 싶지만, 너무 멀리 왔고, 내 삶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난 가망이 없고, 엉망진창인 존재라는 생각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모든 걸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제 마음에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 바늘 같은 빛이 들어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떡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게 뭐지?’ 하면서 있는데, 다시 한번 들려왔습니다. “윤진아, 그럼 나는 어떡하니?” “윤진아,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네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니?”
(찬양 : 그 사랑)
-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이 음성이 들리고 난 후에 제 머릿속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죽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다짐을 하고 교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금요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상처와 죄책감으로 인해 예배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픔을, 내 죄악을 아시면서도 나를 사랑하실까?’ 예배 중에 저의 죄를 고백하면서 ‘이런 저를 용서해 주실까요?’ 하며 막 울었습니다. 저를 보살펴주던 전도사님이 제 손을 꼭 붙들고,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오랫동안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윤진아, 죄에는 크고 작음이 없단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덮지 못할 죄가 없단다.” 하신 말씀이 너무 위로가 되고, 죄책감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준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양 : 예수 사랑하심은)
□ 찬양사역자의 꿈을 꾸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 한동안 대중목욕탕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자해했던 부분들이 목욕탕 안의 온도 차로 빨갛게 변해서 보기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은 저를 살려주시고 숨 쉬게 하셨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졌습니다. 전 세계 다니면서 찬양하고 싶다는 기도를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CCM 사역팀을 만나 1년에 여러 차례 해외로 찬양 집회를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결혼 전에 엄마와 세 딸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공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올 수 있도록 어머니와 제가 오랫동안 기도를 했는데, 드디어 13년 만에 아버지가 오실 수 있는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20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CCM 사역팀을 내려놓고 찬양사역자를 꿈꾸었는데, 모교인 한성교회에서 받아주셔서 예배 인도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찬양 사역을 그만두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좌절했습니다.
- 2016년경 목에 불편감이 있어서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고, 거기서도 더 큰 병원을 추천해 주셔서 그곳에 가서 정밀검진을 했습니다. 검진 결과 원장님께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근육경련장애의 일종인데 ‘연축성 발성장애’라고 합니다. 뇌에서 성대를 움직여주는 근육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서, 성대 근육 일부가 저절로 움직이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게 진행되면 음정을 맞추기 어려워질 수 있고, 목소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노래하는 직업은 당장 그만둬야 하고, 치료해도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 교회 사역을 잠시 멈추고 약물과 재활 치료를 했는데,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경련이 지속되고 있고, 이제는 쓸 수 있는 약물도 없다고 했습니다. 남아있는 목소리라도 지키려면 경련을 일으키는 근육을 주사로 없애 버려야 하는데, 그러면 노래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저는 주사 치료를 하지 않고, 대신 일주일에 한 번만 찬양하고 일주일은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나빠지는 속도가 더뎌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주님은 선하시며,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 처음 발병했을 때는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설거지하다 울고, 옷을 입다가도 울었습니다. 하나님께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삶이 이미 하나님 속에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울고만 있는데, 주님이 이런 마음을 주십니다. “윤진아, 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내게 영원히 노래하는 사람이야. 너는 삶으로 노래할 수 있잖아.” 내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고, 예배인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 노래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억울하고 속상해서 기도가 안 될 때도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는 내려놓지 못하고 하나님이 고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쳐주겠다는 응답을 안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 ‘주님이 목숨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무엇이 아까우실까? 주님은 선하시고, 내 목자 되시고, 내 삶이 그분 안에 있으니, 이 일 또한 선하게 될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하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를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를 믿든지, 안 믿든지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의 이유를 끝까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선하시다는 것, 내 목자라는 것, 내가 그분의 양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시나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견고하고 아름다운 으리으리한 건축물과 같은 삶도 좋겠지만, 삶의 걸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추억이, 사진앨범에 끼워진 사진처럼 담겨져 있다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그 사진을 지켜본 주위 다른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가진 사람, 삶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삶의 어려운 문제와 고민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으로 인해 두렵지 않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찬양) 주님은 나의 산성
□ 어떤 고난 속에서도 삶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 본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 판단 기준이 아닌,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자로, 주님만 예배하는 자로,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자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훗날 주님의 품에 안기는 저와 여러분이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주님 이름 부르며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결어 및 기도
1) 김윤진 전도사님에게 이런 상처와 아픔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참 어린 시절부터 인생의 광야를 거닐었어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수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지만, 오늘 우리 가운데 이렇게 드러내어 간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한 목자 되신 주님 안에서 이제는 그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보배롭고 존귀한 그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시기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간증하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죠.특별히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 참 많잖아요? 우리 청소년들을 만나보게 되면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참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들어하고,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어하고, 그런 자녀들이 참 많은데, 여러분 다시 한 번 그 자녀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2)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광야를 허락하실까요? 만일 우리 인생에 광야가 없다면 누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소망하겠어요? 오늘 우리에게 이 광야가 없다고 한다면 누가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어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 손 놓고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곳이 광야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광야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아니, 오늘 간증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광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광야의 인생길이 힘들고 어렵지만 절대로 여러분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는 이 광야의 인생길을 거닐면서 내가 주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도와주시고,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실 그 하나님, 선하신 주님과 함께 이 광야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 전도사님의 간증처럼 왕따를 당하고 힘들어하고, 그래서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자녀가 있습니까? 여러분, 기도의 줄을 놓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데, 나 자신이 나를 포기하고, 부모인 우리가 내 자녀를 포기한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근심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자녀들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면서, 그 자녀를 위해서 여러분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주여’ 한 번 부르고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3)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는 왕따를 당하고 학교생활에 적응도 잘 못 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어둠 가운데, 긴 터널 가운데 있는 그런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많은 시간 눈물 흘리고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 우리 자녀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다시 한 번 그 자녀의 영혼을 마음에 품고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 원합니다. 주님 찾아가 주셔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 주십시오. 하나님, 빛으로 임하여 주셔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이 사라지게 도와주시고, 절망이 사라지고 소망을 찾게 하시고, 다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갖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요셉처럼 꿈꾸는 자가 되게 도와주시고,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인생을 살아가게 도와주셔서 오늘 우리 전도사님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인생의 광야를 통과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이런 고난을 주셨냐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광야의 인생길에서 낙심하지 말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광야를 허락하신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아니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려고,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이 광야를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이 광야의 인생길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광야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 오륜 교회 김상정 안수집사님이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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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찬송하리라(누가복음 24:13-17)-박신일 목사(11월 11일) (6) | 2024.11.24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8:31-32)]-김효진 사모(11월 10일) (12) | 2024.11.23 |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요한복음 9:1-3)-정민교 목사(11월 9일) (11) | 2024.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