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늘 찬송하니라
· 본문: 누가복음 24:13-17
· 강사: 박신일 목사 (밴쿠버 그레이스한인교회 담임목사 / Come 미션 캐나다 대표 / B2B MINISTRY 대표)
□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에게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냐?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진짜냐? 하나님은 전능하시냐? 하나님은 선하시냐?” 등 공격적으로 질문합니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기독교를 공격하고 돌을 던집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이 우리랑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믿는 척이 아니라 진짜 믿는 자리에 서기 바랍니다.
□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 말씀의 가치를 모르면,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을 진짜로 믿는 참된 믿음을 가지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믿음의 정확한 출처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느낌을 따라서 믿으면 기복이 심해집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 약속의 말씀을 깨닫고 믿어야만 그 믿음은 구체적인 것이 되고, 실제적인 것이 되고, 역사하는 믿음이 될 줄 믿습니다. 만일 천만 원짜리 수표를 한 살 된 아이에게 주면 어떻게 할까요? 갖고 놀다가 찢어버리겠죠? 그러나 저에게 누군가 준다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소중한 곳에 두거나, 아니면 비밀 금고에 넣어서 관리하겠죠? 왜 똑같은 천만 원인데, 아이와 어른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입니까? 왜 아이는 찢어버리는 걸까요? 아이는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을 들어도 가치를 모르면, 어린아이와 같은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믿지 않으면 종교인, 종교 기술자가 되는 것입니다.
□ 예수는 믿는데 기쁘지 않으면, 주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 참된 믿음을 가지기 위한 두 번째 질문은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정말 기쁘십니까?’ 사실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안 기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뜨겁다 차갑다 하는 감정적인 신앙을 가진 것도 싫어하지만, 가장 위험하게 여기는 사람은 영적 기쁨 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쁨은 이유와 실체가 있어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집값이 오르고, 주식이 올라서 기쁜 것은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 기쁘지 않은 사람은 이유가 뭘까요? 주님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실체를 안다면 안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주님을 놀라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을 경외한다면 매일 놀라야 합니다. 여러분, 그분이 누구를 지었냐면, 바로 우리를 지은 겁니다. 아침에 거울 보실 때마다 보고 놀라시기 바랍니다. 나 같이 기가 막힌 존재를 주님이 만드셨다는 것에 놀라시기 바랍니다.
- 교회에 10년을 다녔지만, 돈에는 모든 감각이 살아있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감동이 없고, 영적 감각이 죽어 있는 채로 10년을 다니고 있다면, 저는 제발 교회를 떠나 달라고 부탁합니다. 나중에 주님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 다시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바로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년 된 사람들은 제외하고, 10년 이상 된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그냥 떠나지 말고, 1년 동안 미친 듯이 기도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반드시 만납니다. 주님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퍼렇게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 CS 루이스는 ‘이 세상은 그림자 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모든 것들 안에는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손주들을 보면 기쁘시죠? 그러나 손주도 언제가 세상을 떠납니다. 슬픔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기쁨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끝이 온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야 진짜입니다.
- 참된 믿음을 가지기 위한 세 번째 질문입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가슴 속에는 두 개의 문장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우리 모두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섭섭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키가 작아서 섭섭하고, 눈이 작아서 섭섭하고, 부잣집에 태어나지 못해서 섭섭하고, 수많은 섭섭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와 섭섭함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 영성입니다.
- 기독교 신앙은 대박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 명 중 한 명에게 일어나는 기적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통이라는 광야를 걸어가는 게 보통의 인생입니다. 신앙은 산책하는 것처럼 기쁜 일만 있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만나러 가는 광야의 순례길입니다. 마라톤과 같은 길을 가면서,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것이며, 주님이 함께 걸어가 주시기 때문에 넉넉하게 이길 줄 믿습니다.
- 신앙은 매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내 기도대로 응답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거기서 섭섭함이 생깁니다. 만일 기독교 신앙이 내 뜻대로 된다면 우상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신앙은 내가 건강해도, 병들어도, 부해도, 가난해도, 주님 말씀하신 대로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 로마서에서 바울은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임종을 앞두고 주님이 부르시면 더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주님이 부르시는구나’하고 천국으로 떠날 겁니다. 저는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 점을 강조하며, 천국 가자고 합니다.
□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 옥스퍼드 대학의 복음주의 신학자 엘리스터 맥클스는 ‘죽음이란, 하나님과 우리의 놀랍고 황홀한 만남에서, 그 만남을 가리고 있는 벽이 제거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무장할 수 없을까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세상의 마지막을 더 멋지게 완성하신 것입니다. 창조와 종말이라는 시간을 줄로 그으면 역사가 됩니다. 그 역사를 창조하신 목적이 뭔지 아시나요? 그것은 우리가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이 역사를 통해 주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번 다니엘기도회가 주님만이 영광 받으시는 집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 무덤에 계셨던 날은 토요일, 부활하신 날은 주일입니다.
-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제인가를 고민하면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한 가지만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기독교에는 수많은 상징이 있는데, 예수님의 마지막 3일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은 성 금요일입니다. 그리고 무덤에 계셨던 날은 토요일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날은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도망간 날은 토요일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전혀 없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주눅이 들었거나, 믿음이 발휘되지 않은 것입니다.
- 내 믿음이 분명히 있는데, 발휘되지 못하고 쓰러질 때가 있습니까? 그날이 토요일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를 종말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한 번의 토요일을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을 우울하게 토요일로 사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이제 성경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믿음이 발휘되지 못하면, 고난이 나를 흔듭니다.
-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일어난 소식입니다. 예루살렘에 갔다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이 걷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아는데, 부활하신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요일을 살고 있나요? 토요일로 살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는 부활하셨는데, 아직 토요일인 겁니다.
-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장 15절에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이 부활해서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데, 믿음의 눈이 가려지면, 고난이 나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수많은 고난 때문에, 상황 때문에 주님이 안 보이고, 믿음이 발휘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당신의 전능을 막았습니다.
- 요즘 젊은 세대들이 ‘목사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능하시다는 말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하실 수 있는 것을 안 하시는 것도 전능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전능하셨지만 전능을 통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끝까지 순종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구원의 완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내가 주인입니다. 내 뜻대로 안 해 주시면 전능하지 않다고 합니다. 섭섭해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설사 내가 망하는 일이 있어도 전능하십니다. 내가 병이 낫지 않아도 전능하십니다. 역사라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마침표(.)가 아니라 콤마(,)입니다. 내가 뭘 완성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린 모두 조연입니다. 주님만이 주인이십니다.
□ 예수님은 부활해서 동행하고 계신데,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엠마오로 걸어가면서 주님이 동행하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주님과 같이 가는 걸 모르니까 슬픈 동행입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예수님은 모두 아시면서 모르는 척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묻습니다. 18절에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글로바는 예수님이 죽은 걸 왜 모르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책망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주님이 동행하고 계신 걸 모르고, 슬픈 토요일을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만 보이고, 그 고난 속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 19-20절을 보겠습니다.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님이 또 모르는 것처럼 다시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제자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스토리를 이야기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어 무덤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토요일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 제자들은 기쁨 속에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좌절과 실망 속에 걷고 있습니까? 후자입니다. 주님이 동행한 것도 모르고 제자들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내 병이 낫지 않아서 주님은 없다고 소리치는 자리에도 주님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시편 139편 2절에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그리고 3절에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주님은 이런 분이시므로 매일 놀라셔야 합니다. 그 놀라우신 주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 25-27절에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주님은 죽었다가 다시 사신다고 선지자들이 이미 말씀했는데, 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 주님이 가려고 하시면 ‘주여’라고 부르짖어 붙드십시오.
- 28절에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주님은 유머가 있으십니다. 엠마오에 가까이 가서 주님은 이들의 눈을 열어주려고 오셨음에도 그냥 지나가시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때 주님을 붙드셔야 합니다. 그냥 가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밤에도 ‘주여’라고 부르면 주님은 바로 오십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성도를 못 지나치시는 분입니다.
□ 우리는 안 보여도, 약속의 말씀을 통해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 30-31절에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실 때에 제자들은 손의 못 자국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엠마오 과정을 주도하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다니엘기도회를 주도하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31절을 보면 그제야 주님을 알아보았지만, 주님은 사라지셨습니다.
-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그분이 안 계셔도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안 보여도 약속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 말씀은 믿는 자에게 곧 능력이 됩니다.
-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나오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면 죽은 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큰 자가 말씀하시기 때문에 죽음을 뚫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풀어주실 때 뜨거워졌다는 것은 말씀이 곧 불이며, 말씀 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믿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부활의 불을 가슴에 박고 제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갑니다.
□ 우리가 주님을 찬송할 때, 주님께서 임재하시고, 내가 일어서는 것입니다.
- 35-36절을 보겠습니다.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들이 주님을 보았다고 간증을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고, 동행한 사건을 증거하실 때에, 주님은 또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부활을 선포할 때에 주님이 임재하실 것입니다.
- 듀크대학에 ‘로렌 위너’라는 매우 유명한 유대인 여자 교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예수님을 만나, 너무 감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가 책을 쓴 것 중 ‘진흙으로 지은 집에서의 안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게 너무 기쁘다. 신혼여행처럼 너무너무 기쁘다.’ 그러나 유대교 전통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는 겁니다. 첫째는 유대교에서는 안식이 얼마나 중요하지 모른다면서, 안식은 모든 것을 멈추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너무 바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억하는 누림을 더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유대인의 장례 문화인데요. 어떤 집에 자녀가 세상을 떠나면, 처음 일주일은 매일 심방하여, 고통과 비극을 당한 집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편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때 슬픔에 있는 자는 같이 기도하는데, 노래는 같이 못 부른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주일에 한 번씩 가고, 그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1년 동안 그 집을 방문합니다. 매일 가다가,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가다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진답니다.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믿음에 동행하는 사람들이 찬송을 부를 때, 어느 날 비극에 있던 사람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같이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비록 내가 비극 속에, 병마 속에 있지만, 하나님을 찬송하고, 주님을 높이면, 비극 속에 있던 내가 일어서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여, 쓰러진 자들이, 토요일을 살던 자들이 일어나는 집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우리는 늘 성전에서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누가복음 마지막에 어떻게 끝나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능력이 임할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말씀하시고, 이들과 헤어집니다. 24장 50-53절에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축복하고 승천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육체는 이 땅에 없는 것입니다. 52절에 보면 예수님의 형체는 없지만, 그들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고,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나옵니다. 여러분이 찬송하는 이유는 그분의 형체는 없지만, 그분이 오늘도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낙심하고 쓰러져 있던 자들, 오늘 믿음으로 찬송의 자리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떠나셨지만, 우리는 그분이 영적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우리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여러분, 1년의 365일을 부활절로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이 부활절입니다. 하나님께 존귀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길 원합니다.
□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십니다.
- 신앙이란 주님과의 영원한 동행입니다. 저는 부활 체질이라, 고난이 저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 주님은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전능하시고, 우리가 인생을 다 바쳐서 믿을 만한 분이시고, 역사의 마지막을 멋지게 완성하실 분이십니다.
- 요한계시록 5장 12-1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 오늘 우리 다 같이 한번 합심하여 기도하고 싶은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광야 길을 걸어가는데, 토요일처럼 우울과 절망 가운데 사는 자가 있습니까? 오늘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동행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어둠은 우리 가정에서 떠나갈지어다. 절망과 낙심이 떠나갈지어다. 믿음을 발휘하는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러분 가운데 토요일을 살던 사람이 있습니까? 쓰러져 있던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에 두 손 들고 기도하십시오. 주여, 나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이 자리에 와 주시옵소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시옵소서. 낙심에서 떠나게 하여 주시고,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에서 승리하신 주님이 나와 동행하십니다. 오늘부터 365일, 부활절로 살기를 선포합니다. 우리 다 같이 ‘주여’ 삼창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찬양 : 예수 나의 참 소망)
□ 결어 및 기도
1)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처럼 슬픈 동행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십니다. 토요일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축제 속에서 늘 찬송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우리 인생 가운데 고난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어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여전히 우리는 광야의 인생길을 걷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주님이 나와 지금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을 찬송하면서, 기뻐 뛰며 즐거워하며 부활의 축제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주셨던 말씀 중에 와닿는 게 있습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가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주님을 붙든다는 게 뭘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게 되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그리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은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그 시대에 크고 비밀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회복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크고 비밀한 일은 예루살렘의 회복이었듯이,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중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에게 가장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2) 정말 여러분이 부활하여 주님을 영접했다면,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가 여러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되어지고, 그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간다면, 주님은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주님은 영으로 지금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제자들의 첫 모습처럼 슬픈 동행을 할 때가 참 많아요.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고, 내 곁에 계시지만, 우리는 주님을 돌아가신 그 주님처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 이번 다니엘기도회 기간에 나의 눈을 열어주십시오. 내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광야의 인생길, 하루하루의 삶이 참 힘들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주님이 내 곁에 함께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런데 여러분, 단순히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죠. 그 주님을 유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그게 바로 뭘까요?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환란을 당하셨나요?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우리 기도의 주된 목적은 나와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으니,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일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 놀라운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쉬시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부활 축제의 삶으로 살겠습니다. 늘 찬송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독수리가 날개 치는 것 같이 날마다 주님 안에서 비상하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성령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나를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우리 ‘주님’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3)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주님 그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 인생의 여정에 함께 동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주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구나.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나 봐.’ 하며 슬픈 동행을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오늘 귀한 종을 보내주셔서 이제는 슬픈 동행이 아니라 날마다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고, 늘 우리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며, 부활하신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그 새 힘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주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부활하신 주님, 오늘 우리 곁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심정 속에도 불이 나게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이 순간, 우리 심령에 불이 임하게 도와주셔서, 끊어버리지 못한 것들을 끊어버리게 도와주십시오. 이전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게 도와주시고,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준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그 길을 달려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작성자 : 오륜 교회 김상정 안수집사님이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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