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베냐민이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다
1 <요셉이 꾀를 내다> 그후에 요셉이 자기 집의 관리인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 사람들의 자루에 곡식을 넣을 수 있는 대로 넣어라. 그리고 그 곡식 자루 속에 돈도 넣어 주어라.
2 그리고 내 은잔을 저 막내 동생의 자루에 넣어라. 그리고 그 자루에 돈도 넣어라.” 관리인은 요셉이 말한 대로 했습니다.
3 새벽이 되어 형들은 나귀를 끌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4 그들이 성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요셉이 자기 집의 관리인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뒤쫓아라. 그 사람들을 붙잡게 되면 ‘왜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너희들이 훔친 잔은 내 주인이 술을 마실 때 쓰시는 것이다. 그리고 꿈을 해몽하실 때도 그 잔을 쓰신다. 너희는 너무나 몹쓸 짓을 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리하여 관리인은 요셉의 형들을 뒤쫓아가서 요셉이 하라고 한 말을 그들에게 했습니다.
7 그러나 요셉의 형들이 관리인에게 말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는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8 우리는 우리 자루 속에 있던 돈도 당신에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돈을 가나안 땅에서 다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우리가 당신 주인의 집에서 은이나 금을 훔칠 리가 있겠습니까?
9 만약 그 은잔이 우리들 중에 누군가의 자루에서 나온다면, 그 사람을 죽여도 좋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10 관리인이 말했습니다. “당신들 말대로 하겠소. 하지만 은잔을 훔친 사람만 내 종으로 삼을 것이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가도 좋소.”
11 그리하여 모든 형제들이 서둘러 자루를 내려서 풀었습니다.
12 관리인이 맏형에서 막내 동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씩 자루를 살펴보았습니다. 관리인은 베냐민의 자루 속에서 은잔을 찾아 냈습니다.
13 형들은 너무나 슬퍼서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그들은 자루를 나귀에 다시 실은 뒤에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https://youtu.be/UaLMvrtZNOY?si=-35708nlkPMTsfXm
물리학에서 평형상태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물체가 원래의 상태를 변함없이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의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컵에 들어 있는 물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그것을 평형상태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평형상태는 겉으로 보기에만 변화가 없는 것이지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령, 컵에 들어 있는 물이 겉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기화현상과 공기 중의 수분이 물로 변화는 액화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속도와 수증기가 물로 변하는 속도가 같아서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만약 주변 온도를 높이거나 물을 끓이면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져서 용기 안에 담긴 물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평형상태가 깨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영적인 상태도 이와 같은데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전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합니다.
첫번째로, 우리는 영적인 퇴보가 아닌 성장과 성숙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우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육의 사람이 죽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과 육의 사람이 살고 영적으로 퇴보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요. 다르게 말하면, 우리 안에서 성령님의 살리시는 역사와 사탄의 죽이는 역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마귀 모두 우리의 영적 평형 상태를 깨드리기를 원하는데 그 목적과 방향이 다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살아나는 방향으로 영적 평형 상태가 깨지길 원하시고 마귀는 우리가 영적으로 퇴보하고 죽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퇴보가 아닌 성장과 성숙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 성숙은 비록 가는 길이 좁고 협착하다 할지라도 그 끝은 생명과 영광입니다. 반면에 영적인 퇴보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가는 길이 넓고 쉽지만 그 끝은 죽음과 수치입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욕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생명의 길, 영광의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려서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고 성숙시키려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형들이 예전 육신의 모습을 점점 벗어버리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후하게 대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그들의 고향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청지기를 시켜서 그들 몰래 베냐민의 자루에 곡식 값과 자신의 은잔을 넣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멀리 가지 못했을 때 청지기로 쫓아가게 해서 그 은잔을 찾아낸 뒤에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이냐고 말하게 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요셉이 이런 일을 꾸민 이유는 형제들의 우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형들이 위기의 순간에 베냐민을 버리고 떠날 것인지 지켜본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려서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고 성숙시키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구원의 길, 성장의 길로 이끄세요. 그러므로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 때 원망이 아닌 감사와 인내로 견뎌내어 영광과 칭찬의 면류관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은잔을 훔친 적이 없기 때문에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만약 누구에게서든 은잔이 발견되면 그는 죽을 것이고 자신들은 종이 되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옷을 찢고 가던 길을 돌이켜 요셉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본문 12절과 13절입니다. “그(청지기)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 중 아무도 베냐민을 꾸짖거나 탓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았고 모두 베냐민과 함께 했습니다. 예전에 요셉을 팔아넘겼던 모습이 아니죠.
요셉의 형들은 영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성숙의 길로 이끄셨고 그들은 거기에 순응했어요. 여러분, 우리 역시 부족한 모습이 있을지라도 날마다 성장과 성숙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기뻐하시고 함께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마귀가 이끄는 육의 길, 파멸의 길이 아니라 성령님이 이끄시는 영의 길,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를 성숙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원합니다. 쉽고 편한 육의 길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성장과 성숙의 길, 영의 길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해가 지날수록 영적으로 더욱 성숙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기쁨이 되게 하시고 칭찬의 면류관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요셉은 형들을 한번 더 시험하고자 베냐민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웁니다. 그 이유는 형들이 위기의 순간에 베냐민을 지켜주는지, 얼마나 우애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선택하신 언약 백성으로서 얼마나 성숙해져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이유도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맞닥뜨릴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우리가 능히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마귀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시험을 받고, 믿음으로 이겨 낸 적은 언제입니까?
어제보다 성숙해져 가는 성도
청지기가 주인의 호의를 배신한 것에 대해 추궁하자,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은 은잔을 훔친 적이 없다고 하며 결백에 대한 확신을 단호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은 참담한 마음으로 옷을 찢고 가던 길을 돌이켜 요셉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누구도 베냐민을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이 일에 책임을 지고 요셉에게 갔습니다. 예전과 같으면 그들은 베냐민을 버려두고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을 성숙하게 하셨듯이, 우리도 성장하게 하십니다. 비록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시험 가운데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오늘의 만나
지금 나의 모습을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얼마나 성숙한 것 같습니까?
영적인 성숙을 이루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은 야곱의 가족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온 후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이미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을 시험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전 단계에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 지역인 애굽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창 15:13-14)의 예언대로 야곱의 후손이 잠시 이방 땅에서 고난을 받는 과정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가족의 구원과 화해를 준비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요약)
창세기 44장 1-13절은 요셉이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형들을 시험하는 내용입니다.
- 1-2절: 요셉은 청지기에게 형제들의 자루에 돈을 넣고, 베냐민의 자루에는 은잔도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 3-6절: 아침에 형제들이 출발하자, 요셉은 청지기로 하여금 그들을 쫓아가 은잔 도둑질을 추궁하게 합니다.
- 7-10절: 형제들은 결백을 주장하며, 은잔이 발견되면 그 사람은 죽고 나머지는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 11-12절: 자루를 조사한 결과,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됩니다.
- 13절: 형제들은 옷을 찢고 슬퍼하며, 모두 성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우리의 믿음과 성숙함을 시험하십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시험한 것은 복수심이 아니라 형제들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시험을 통해 진정한 회개와 책임감을 보여준 유다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리더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분별하고 성숙한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섭리 가운데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요셉의 시험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시고, 회개와 변화를 이끄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시련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신뢰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과 연관된 성경 구절)
① 시편 66편 10절 :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해 믿음을 단련하신다는 시인의 고백으로, 요셉이 형제들을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방식과 일치합니다.
② 히브리서 4장 13절 :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이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요셉의 시험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시며, 은밀한 죄도 다 드러나게 하시는 분임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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