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1. 열왕기상 묵상노트(완료)

열왕기상 22장 1 – 14 악인들을 두려워 말라

smile 주 2023. 10. 15. 06:43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아람을 침공하려는 아합과 여호사밧

1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삼 년 동안, 평화가 있었습니다.

2 삼 년째 되는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을 찾아왔습니다.

3 그때,아합이 자기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람의 왕이 길르앗 라못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을 잊었소? 어찌하여 그대들은 그 땅을 다시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소?”

4 아합이 여호사밧 왕에게 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에 있는 아람의 군대와 싸우지 않겠습니까?” 여호사밧이 대답했습니다. “왕과 함께 가겠습니다. 내 군대와 말들은 당신의 군대와 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5 그러나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싸우러 가기 전에 먼저 여호와께 여쭈어 봅시다.”

6 아합이 예언자들을 불렀습니다. 모인 예언자는 사백 명 가량 되었습니다. 아합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길르앗 라못에 있는 아람의 군대와 싸우러 나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예언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싸우러 가십시오. 주께서 그들을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7 여호사밧이 물었습니다. “여호와께 여쭤 볼 다른 예언자는 없습니까?”

8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여쭤 볼 다른 예언자가 있기는 합니다. 그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인데, 나는 그를 미워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좋은 예언을 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쁜 말만 합니다.” 여호사밧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9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 신하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당장 미가야를 데려오라고 말했습니다.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왕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성문 앞마당에 보좌를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왕들 앞에 서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11 그 예언자들 가운데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있었는데, 그는 쇠뿔을 만들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합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뿔들을 가지고 아람 사람과 싸워라. 너는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12 다른 예언자들도 다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길르앗 라못을 치십시오. 그러면 이기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람 사람을 왕에게 넘겨주실 것입니다.”

13 미가야를 데리러 갔던 사람이 미가야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왕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소. 당신도 같은 말을 하시오. 왕에게 좋은 말을 해 주시오.”

14 그러나 미가야가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오직 여호와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만을 전할 뿐이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신의 없는 악인들의 연합

아랍 왕 벤하닷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아합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빼앗은 영토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왕상 20:13-14).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합은 본래 이스라엘의 영토였던 길르앗 라못을 아람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이 평화 조약을 체결한 지 불과 삼 년 만에 갈등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의 신의는 무너졌고 연합은 깨졌습니다. 악인들은 서로의 유익을 위해 쉽게 연합하지만 신의가 없기 때문에 그 연합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악인들의 연합에 동참하거나 부러워하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과 연합해야 합니다

 

유일한 참 선지자 미가야

북이스라엘 왕 아합은 남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함께 아람을 치자고 제안합니다. 아합 가문과 인척 관계를 맺은 여호사밧은 아합의 비위를 맞추면서(대하 18:1),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에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을 모아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 모인 선지자들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예언은 아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거짓이었습니다. 무려 사백 명이나 되는 선지자가 하나님이 아닌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미가야만 하나님의 편에선 참 선지자였습니다. 우리는 권력과 돈 앞에서 신앙과 양심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무슨 일이든 반드시 옳은 이치를 따라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열왕기상 16장 이후부터 기록된 아합왕의 폭주에 우리는 눈살을 찌푸립니다. 이대로 가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은 심판을 예고만 하시고, 가만히 계실까? 이러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던 중, 우리는 갑작스런 아합의 최후를 마주합니다.

그게 바로, 열왕기상 22장의 말씀입니다. 사필귀정입니다.

일이 어그러지고, 잘못될 것만 같아도, 하나님의 오른 손이 역사와 인생을 주관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사필귀정의 은혜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아합은 스스로 무덤을 팝니다아합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된 사건은 과연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2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입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왕이고, 여호사밧은 남유다의 왕입니다.

이 둘은 물과 기름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 4절 말씀에서 이 둘은 한 마음이 됩니다.

아람의 손에서 길르앗 라못을 다시 찾자는 아합의 제안을 여호사밧이 전격 수용합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길 원합니다.

이에 아합은 400명의 선지자를 모아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갈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왕의 귀에 듣기 좋은 말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를 구합니다.

그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다수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현대사회는 다수를 지지합니다. 다수의 판단이 소수의 판단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주요 의사결정방식은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다양한 문제를 쉽고 빠르게 해결하는 장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를 항상 보장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선택으로 잘못된 정책이 실시되기도 합니다. 다수의 선택으로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수의 잘못된 판단은 비합리적인 군중심리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수가 되길 원합니다. 왜 그럴까요?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인간은 왜 다수에 복종하는가? 그들이 더 옳기 때문인가?

아니다. 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말처럼 다수는 입니다.

다수는 권력입니다. 다수가 동의하면, ‘지식상식이 됩니다.

이러한 다수와 소수의 지배구조는 사도행전 6장 말씀에도 잘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은 힘으로 스데반을 탄압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 기적을 행하자 유대인들은 논쟁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성령충만한 스데반의 지혜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거짓 증인을 매수합니다. 그리고 스데반을 신성모독죄로 고발합니다.

스데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인의 신분이 됩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설교했다가 이단으로 정죄됩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다수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급기야 스데반은 예루살렘 밖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데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닙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무기력함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헛스윙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이제 곧 시작될 부흥의 서막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복음의 불모지에 새롭게 피어날 새 생명의 요람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이후 초대교회는 놀랍게 부흥합니다. 그 부흥의 스토리로 사도행전 전체가 가득 채워집니다. 저는 오늘 큐티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수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다수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반드시 사필귀정의 역사를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사필귀정의 은혜를 사모하며 다수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다수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0bCe4HnU8EE?si=cTCxoo5GTH8HFs21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아벳 전투 후 이스라엘과 아람간에는 3년 동안 전쟁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아람이 이스라엘에게서 오래전에 탈취했던 길르앗라못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아람과의 결전을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아합은 자기에게 찾아 온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어 함께 싸울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흔쾌히 승낙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아람과 싸우기 전에 여호와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에게 이러한 자신의 뜻을 전하자 아합은 400명의 여호와 선지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아합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그릇된 예언만을 하는 변절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신실한 선지자를 다시 요구했습니다. 이에 아합은 진실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엘리야처럼 당시에 신실한 선지자들 중에 하나인 미가야 선지자를 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 악인들의 연합이 반드시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확인이 연합을 제안하는 의중을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권력에 아부하는 것이 무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이번 주 세상의 유익을 누리기보다 당당히 선포할 진리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오늘 선지자 400명 모두 아합이 전쟁에서 이길 것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정치와 연합하고 자신의 이득을 쫓는 선지자가 많았음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기 일보다 왕의 인정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은 가졌지만 거짓된 말로 선지자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말하는가 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성도는 참된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권력과 돈 앞에서 신앙과 양심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됩시다.

 

(오늘의 기도)  

무엇을 결정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음성 듣는 삶을 살고 있는 남유다 여호사밧왕을 닮게 하시옵소서. 때와 장소와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들은 대로 말하고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는 미가야 선지자를 닮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도 만남의 축복을 주시어, 신앙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귀한 믿음의 백성들과 동역하며 교제하게 하옵소서. 부디 미가야 같이 상황과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대언하는 진정한 사역자들이 이 땅가운데에도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