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3. 누가복음 묵상노트

누가복음 15장 25- 32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자

smile 주 2023. 10. 26. 10:0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집을 나간 아들

25 그때,큰아들은 밭에 있었다. 그가 돌아와 집 가까이 다가왔을 때, 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는 종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았다.

27 종이아우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무사히 건강하게 아우님이 돌아왔기 때문에 주인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하고 대답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큰아들을 달랬다.

29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수년 동안, 아버지를 섬겨 왔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저를 위해서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었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다 써 버린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께서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했다. ‘아들아,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 아니냐?

32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화가 난 맏아들

맏아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아버지의 잔치를 거절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하고 돌아온 죄인 같은 둘째를 환영하는 잔치가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맏아들에게 아버지의 잔치는 부당하고 섭섭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맏아들은 길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진심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죄인일 뿐인 동생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맏아들은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사랑 없이 책임과 의무로 함께했을 것입니다. 사랑 없이 의무로 섬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것은 화해와 화목보다 분노와 분열을 쉽게 가져옵니다.

오늘의 만나
맏아들과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수 있습니까?


맏아들을 다독이는 아버지

아버지는 맏아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자신의 것이 항상 함께하는 맏아들의 것이니 서운해할 이유가 없다고 다독였습니다. 더불어 동생은 죄인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며, 자신의 아들이자, 함께할 가족임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질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우리의 이야기와 주장을 경청하신 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세세하게 지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겸손한 경청과 부드러운 가르침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정직하게 아뢸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만나 
경청해 주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자주 나의 이야기를 합니까?
하나님께 진솔하게 토로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의 본문 말씀은 탕자의 비유 [시즌 2]입니다.

이전까지 탕자를 클로즈업하던 성경 기자의 렌즈는 이제 그의 형을 향합니다.

집을 나간 동생이 탕자였는데, 알고보니 집 안에 있는 형도 탕자였습니다.

집을 나간 탕자와 집 안에 있는 탕자가 둘인 것입니다2명의 탕자는 예수님이 계셨을 당시 특정 계층을 지칭합니다.

우선, 집을 나간 탕자는 세리와 죄인들이며, 집에 있던 탕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바라기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 집 안에 있는 탕자의 모습을 살펴보고 나의 모습을 또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로, 집 안에 있던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에 무지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25절 말씀에서 밭에 있던 큰아들이 집에 가까이 왔을 때 풍악과 춤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미 잔치가 한창입니다. 큰 아들이 종을 불러 무슨 일인지 묻습니다. 본문에 쓰인 물은대라는 표현은 헬라어 미완료 시제입니다. 한 번 물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물었다는 의미입니다. 28절 상반절 말씀에서 그는 급기야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질 않습니다. 28절에서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역시 미완료 시제입니다. 들어가자고 권하는 아버지와 이를 거절하는 큰 아들 사이에 실랑이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큰 아들에게 문제였을까요? 29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큰 아들은 아버지와 늘 함께했지만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무지했습니다. 그는 조건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아닌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고 계신가요? 혹시 내 눈에 보이는 조건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존재인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인생의 조건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둘째로, 큰 아들은 자기 의에 빠져있었습니다. 사실 큰 아들은 동생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동생을 받아준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28절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이라는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란, 율법을 뜻합니다. 큰 아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율법을 목숨처럼 지킨 바리새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당시 바리새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한때 이런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빌립보서 3 5, 6절 말씀입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하지만 그는 다메색 도상에서 빛으로 임하신 주님을 만나고, 거듭납니다. 그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 3 9절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아멘! 사도 바울의 깨달음은 로마서 1 17절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났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덧입혀 주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결국,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신 의를 자기 힘으로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오직 믿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믿음 이외에 어떠한 것도 나를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집착하는 나의 율법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 회개하십시오. 오직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문]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속의 큰 아들의 모습이 나에게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으로 판단했습니다.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고 남을 정죄했습니다. 오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다시금 말씀으로 회복하는 복된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요약)

오늘 본문은 탕자의 비유의 후반부로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잔치를 열어 기쁨을 나누길 원합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아버지의 잔치를 거절하였습니다. 맏아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아버지는 아버지의 것이 모두 맏아들의 것이라고 설득하며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기에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계속해서 돌아온 탕자 비유를 통해 잃은 영혼에 대한 말씀은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회개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십니다. 둘째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와도 아버지가 받아 주지 않으면 그의 회개는 효력이 없는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회개와 회복의 효력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무한히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가 행복하고 안전한 곳은 하나님의 은혜 안입니다. 그곳에 머물 때입니다. 둘째 아들과 같은 자리에 떨어질 때에는 회개의 길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혹시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있다면 지금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잃어버렸던 자녀 중의 한 사람을 찾으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들도 이 기쁨에 참여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 말씀 속의 큰 아들의 모습이 나에게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고 남을 정죄했습니다. 우리가 맏아들처럼 행동했던, 탕자처럼 행동했던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잔치 안으로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이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 하는 기쁨을 누리며 오늘 하루도 아버지의 잔치에서 아들로서 누리는 기쁨이 풍성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