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2. 열왕기하 묵상노트(완료)

열왕기하 16장 15 – 20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smile 주 2023. 11. 30. 06:34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유다 왕 아하스의 죽음

1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했습니다. “아침 번제물과 저녁의 곡식 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곡식 제물과 이 땅의 모든 백성의 번제물과 그들의 곡식 제물과 그들의 전제물을 이 큰 제단 위에서 바치도록 하시오. 그리고 모든 번제물의 피와 희생 제물의 피를 이 제단 위에 뿌리시오. 그러나 놋제단은 내가 여호와의 뜻을 여쭈어 볼 때만 쓰겠소.”

16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가 명령한 대로 했습니다.

17 그 뒤에 아하스 왕은 물을 운반할 수 있는 놋받침대에서 옆에 있던 널빤지를 떼어 내고, 위에 있던 놋대야도 뜯어 냈습니다. 그는 놋황소 위에 놓여 있던 바다라고 불리는 커다란 대야를 떼어 내서 돌받침 위에 놓았습니다.

18 또 아하스는 안식일에 사용하는 성전 뜰의 현관과, 왕이 밖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현관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한 까닭은 앗시리아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 아하스가 행한, 다른 모든 일은 유다 왕들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 아하스는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신본주의 신앙으로 살라

아하스는 임의로 제사 기구와 방법을 바꿉니다. 그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번제물과 소제물, 전제물을 모두 새로 만든 큰 제단 위에서 불사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오직 왕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에만 놋 제단을 사용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없이 성물이 자기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아하스와 같이 하나님을 자기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인본주의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온전한 순종을 드리는 신본주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경외하라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모든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우리야는 하나님보다 왕을 더 두려워하여 왕의 명령을 따릅니다. 성전 기물들을 왕의 명령대로 배치하고 안식일에 사용하기 위해 건축한 낭실을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제사장이 사람을 두려워하며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권세 있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불의를 행하는 것이 융통성 있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죄의 덫에 걸리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는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29:25),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할 때 존귀한 자로 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여러분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늘 우리 삶의 방해요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어서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고민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갑니다.

두려움 때문에 어떠한 일들에 신중을 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갖되 올바로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려움의 배후에는 사탄의 간섭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통해 우리 삶을 실패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갖되 올바른 대상에게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지는 두려움은 세상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긍정적인 두려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하시나요?

바라기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셔서 여러분의 삶의 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뀔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반응을 의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려움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는 아하스 왕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아하스 왕의 두려움이 대상을 바꾸어가며 반복된다는 것인데요.

본문 18절입니다.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아하스 왕은 지금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만든 우상의 제단을 성전에 두고 율법에 명한 놋 제단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세상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경히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두려움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바로 본문 앞부분에서 아람과 이스라엘 군대가 유다를 공격했을 때 하나님 대신 앗수르 왕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대신 자신과 유다를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던 앗수르가 오히려 이제는 아하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앗수르왕의 반응과 눈치를 보며 아하스왕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여러분 하나님 대신 세상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면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반복됩니다. 돈을 의지하면 돈이 없어질까 늘 두려워합니다.

건강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면 건강을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면 우리는 평안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9 1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반응을 의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반응만을 의식할 때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갈 때 부모님이 자신과 함께라면 그 길을 두려움 없이 걷는 어린아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두려운 길도 거침없이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누구를 두려워하고 계시나요? 바라기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반응을 의식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반응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우리의 기도에 기쁘게 반응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여나 지금까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두려워했다면 용서해주시고 내 삶에 평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두려움이 몰려올 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y6277NLHqQA?si=8YjQ85MlpXi_EJ4f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아하스는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으로 갔다가 그곳 제단 양식을 모방해 여호와의 성전 앞에 그 모습 그대로 제단을 만듭니다. 예루살렘 성전 중앙에 우상의 제단을 놓은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아하스는 치워진 여호와의 놋제단을 자기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묻는 용도로만 사용하겠다고 말합니다(15).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과 놋바다를 지탱하는 놋소 등, 성전에 있는 놋 기구들을 뗐습니다(17). 이것은 앗수르에 조공으로 바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옆판이 뜯겨나간 물두멍은 치워버렸습니다. 물두멍은 제사장이 씻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이처럼 물두멍이 치워진 것은 회개 없는 예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안식일에 많은 직무를 행하는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해 세운 낭실을 옮겼고, 왕이 성전에 가기에 쉽도록 만든 낭실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습니다(18). 그는 앗수르 왕의 눈을 의식하여, 하나님의 전에 드나드는 것조차 부끄러워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아하스의 행위는 비굴하였고 아첨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묵상과 적용을 위한 질문)

- 기도의 응답을 내가 원하는 식으로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내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해야 하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 제사장 우리야의 행동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했습니까?
-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적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아하스왕이 앗수르에 가서 잘못된 일을 시킨다고 그대로 하고 있는 제사장 우리야의 모습은 힘 앞에 굴복하고 있는 비굴한 한 제사장의 모습을 보여 주기에 적합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어떻게 제사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면서도 바른말을 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여론이나 세상 풍조에 밀려서 하나님의 예배를 경히 여기는 일에 결코 동조하거나 협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죄의 덫에 걸리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는 안전하다고 말합니다(잠 29:25),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할 때 존귀한 자로 설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앗수르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우상의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는 것도 부족해서 성전의 모형도 임의로 바꾸어 버리는 아하스 왕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배의 자리가 훼손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드려 지는,참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직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만 예배하며 경배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