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다니엘 기도회 간증

손양원 목사의 3가지 정신 (에베소서 4:32, 고린도전서 15:3) - 안경선 선교사(11월 5일)

smile 주 2023. 12. 2. 09:51

 

□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 중독자이십니다.  

  

- 다니엘기도회에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위로받고,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통하여서 위로받는 귀한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20세기에 대한민국이 낳은 사랑의 사도 손양원 목사님은 기독교계에서 있어서 세계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웃(나환자들)을, 나라와 겨레를,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느라 자신의 목숨도 바친 위대한 사랑과 믿음의 용장이셨습니다.(1968년 <사랑의 원자탄>의 저자 안용준에서 발췌) <사랑의 원자탄> 저자이신 안용준 목사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손양원 목사님의 생애를 더 이상의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서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명명하셨습니다. 손목사님의 삶을 지배해 온 근본적인 정신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손목사님의 장녀 손동희 권사님은 부친을 기억할 때마다 한 마디로 ‘예수 중독자’이시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말보다는 권사님이 항상 말씀해 주신 ‘예수 중독자’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21세기 한국교회가 예수 중독자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에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복된 삶을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많은 것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 중독’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손목사님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3가지 정신이 유기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저항 정신, 사랑과 용서의 정신, 일사각오의 정신입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손양원 목사의 정신 1) 저항 정신  

  

- 손목사님은 신사참배가 한창 몰아치던 1939년 7월 14일 애향교회에 부임하셨고, 치안유지법 제5조에 위배되어 광주지방법원에 기소되었습니다. 목사님은 3가지 이유로 신사참배를 반대하셨습니다. 첫째, ‘동방요배, 정오묵도, 신사참배’는 하나님이 금하신 계명이니 할 수 없다. 둘째, 우상에게 절하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법이다. 셋째, 국민된 의무로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1940년 9월 25일 연행되어 서대문구치소에 구금되었습니다. 1945 넌 8월 17일 해방되기까지 약 5년간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목사님은 전향하지 않는 악질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일본 천황에게 사형집행을 받았고, 광복절 3일 후인 8월 18일에 사형집행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광복이 되어 아슬아슬하게 사셨음을 믿습니다. 

-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손목사님은 1949년 5월 8일 서울 신수동 성결교회에서의 부흥회회 기간 동안 다음과 같은 일기를 쓰셨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주님을 만날 것인가?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주님을 만날 것인가? 인생은 과거 자랑하다 교만해지기 쉽고, 오늘 일 내일로 미루다가 일평생 속아 산다. 오늘만이 내 날이요, 주님 만날 준비 오늘뿐이다. 그러니 오늘 주님 부르신다면 주님 만날 준비되었는가? 범죄하지 말라.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라. 섬기고 헌신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 목사님은 오늘만이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로 생각하시고, 주님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사셨습니다. 자기 교인들이었던 한센 환우를 섬기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 우리는 지난 몇 년 코비드 19 팬데믹으로 인하여서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 앞에 무너진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주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성도님들이 너무 많고, 또한 예배의 자리를 떠나서 아직까지도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지 못한 성도님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편의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여러분, 오늘 주일날 어떤 마음으로 예배드렸습니까? 이 시간에 우리 모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한데 우리 모친은 토요일 이미 예복을 다 준비해 두셨어요. 여름이면 하얀 모시 적삼을 인두로 다 다려서 주일 의관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또 겨울에는 두루마기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해 두시고, 헌금하는 돈은 다리미로 다려서 지극 정성으로 챙긴 후 주일 새벽 한 3시 50분이면 먼저 교회로 가십니다. “어머니, 왜 그렇게 일찍 가십니까?” 그러면 제일 먼저 교회 가서 새벽종 치는 걸 남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먼저 가신답니다. 우리 모친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어르신들은 다 그렇게 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21세기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주일날 오셔서 예배를 드립니까? 너무나 좋은 환경에 너무나 훌륭한 목사님께 좋은 말씀으로 은혜받는 것으로만 만족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예배드리는 것이 ‘은혜받았다’로 다 끝날까요? 그것은 아닌 줄로 믿습니다. 

- 옛날 구약시대에는 받는 것보다 먼저 바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흠없고 정결한 재물을 아버지 앞에 받쳤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늘의 보좌 문이 열리고 불로써 그 예배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손목사님처럼 오늘 주님 앞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배드린다는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몸과 마음과 정성, 목숨을 다 바쳐서 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가장 기쁘시게 받으시고 흠향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저 대충 와 가지고 대충 시간 때우다가 은혜받고 가는 그런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 여러분, 21세기 한국교회는 저항 정신이 너무 뒤떨어졌습니다. 옛날 믿음의 선진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등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을 지키기 위해 그대로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 21세기 교회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다시 정립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정말로 시간과 정성과 목숨을 다 바쳐서, 하나님 앞에 오늘 드리는 예배가 나의 마지막 드리는 예배라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내가 살아납니다. 내 교회가 살아납니다. 내 민족이 살아납니다. ‘아버지여, 긍휼히 여겨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여러분의 간절한 마음, 애절한 마음, 애통한 마음, 겸손한 마음, 주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하셨던 몸부림치는 기도, 우리 예배 중에 그런 몸부림치는 기도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여러분, ‘은혜받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손양원 목사의 정신 2) 사랑과 용서의 정신 

  

- 그 다음에 사랑과 용서의 정신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가리켜서 ‘평화의 사도’라고 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가리켜서 ‘사랑의 사도’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지배해 온 근본 원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과거에도 있고, 현재에도 시행되고, 미래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나 나는 과거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의 종이 되고자 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믿습니까? 미래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복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요? 그러나 손 목사님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받은 사랑에 감격해서 나는 그 사랑의 종이 되고자 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나를 사랑하신 그 주님의 사랑에 종이 되고, 노예가 되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 당시 순천이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져 갈등과 대립 속에 있었을 때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사건이 일어나면서 10월 21일 두 형제는 좌익 활동원들에 의해 연행되었고, 순천 경찰서 뒷마당에서 총으로 피살 순교 당하셨습니다. 그때 동인이는 23세, 동신이는 1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 손목사님은 그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다. 그러한 손 목사님의 결단에 딸인 손동희 권사는 중학교 1학년이었던 당시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생각해 보세요. 용서했으면 용서했지, 아들을 삼겠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그놈을 아들로 삼으면 내게는 오빠가 될 텐데, 나더러 그 원수를 오빠라고 부르라는 말입니까? 그거는 안 될 말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어도 너무 유별나게 믿습니다.” 이 말에 목사님은 “동희야,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아라. 성경 말씀에는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은 그 학생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단 뜻이다. 원수를 사랑해라고 했으니, 사랑하기 위하여서 아들을 삼아야 하지 않겠니? 아브라함은 100살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 명령 한 마디로, 제단에서 칼로 찌르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 시험이 이 시험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으시고, 고려보통학교에 보내 전도사로 키워내는 그런 삶을 실천해 내셨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의 위대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제 아들이 이제 군대에 입대했어요. 그래서 해안 경비 초소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데, 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루는 동네에서 맞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 그 현장에 없었는데, 우리 어머니와 제 남동생이 우리 아들의 손을 붙잡고 어디로 갔겠습니까? 아들을 데리고 동네 태권도장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부모의 심정이 모두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어찌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2010년 8월 15일, 조선일보에 저에 대한 8.15특집기사가 나왔습니다. 제목은 ‘내 아버지는 성자의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애양원교회 담임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애양원교회 담임 이강희 목사입니다. 몇 월 며칠 수요일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설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고민하다가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애양원교회에 갔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는가, 나온 게 맞는가 번민할 때에 갑자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기도의 모습이 환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손목사님이 두 아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아버지 하나님, 큰아들은 지난주 성가대장으로 지휘를 했고, 둘째 아들은 주일학교 반사로 헌신을 했는데, 아버지, 어찌 된 일입니까? 죽음으로 제 앞에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혼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환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찬송이 하나 들렸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무덤 속에 누일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찬송가 147장)’ 난생처음 들어보는 찬송이었습니다. 이 찬송이 환청으로 들리는 그때, 갑자기 담임목사님이 소개하시는데,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이 목사가 되어서 우리 곁에 나타났습니다. 목사님 나오셔서 설교를 증거 하겠습니다.” 하시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섰는데 입이 안 떨어졌습니다. 제가 그 앞에서, 애양원 성도님들 앞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입이 안 떨어졌습니다. 2분이 흐르고, 3분이 흐르고 5분이 흐르고, 5분 동안 아무 말을 못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도들의 어깨가 들썩들썩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 한 분이 울기 시작하니까 다른 분들도 울기 시작하고, 모든 성도가 우시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는 못하고 다 같이 10분, 20분 울다가 끝났습니다. 여러분, 왜 울었을까요?  

- 두 아들이 순교하고, 손 목사님이 순교한지 60년이 되는 해에 제가 그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60년 동안 양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후손들은 예수 믿고 살았는지, 안 믿고 살았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여러분, 손목사님의 10가지 감사 기도 중에 여덟 번째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감사일까요? ‘내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믿으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60년 만에 양아들의 아들이 목사가 되어서 당신들 앞에 섰습니다. 손목사님의 여덟 번째 기도가 60년 만에 응답으로 자기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1년 기도하고 2년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됐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내 다음 생애에도 내 자손이 기도에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손목사님의 8가지 이 기도 때문에 수많은 교회가 개척되었어요. 애양원 교회의 이름으로 100 교회가 개척되었어요. 손양원 목사님 때문에 영향을 받은 목사님의 숫자는 셀 수가 없습니다.  

- 손목사님의 아들 동인, 동신이가 어찌 손 목사님의 아들이기만 할까요? 애양원 모든 사람들의 아들이요, 조카요, 동생입니다. 동인과 동신이 순교의 아픔이 어찌 손양원 목사님 가족의 아픔만 되겠어요? 애양원 온 교우들의 아픔이고 상처였습니다. 우리 세월호 사건이나 이태원 사건이 온 국민들의 아픔이잖아요. 애양원 교우들에게 아무런 소식 없이, 60년 만에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목사가 되어서 나타났으니, 울음바다가 될 수밖에 없었겠죠. 

- 우리 손목사님의 사랑의 위대함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 살인자의 한 영혼을 위해서 십자가 밑에서 몸부림치면서, 이 땅에서 위로받을 수 없으니 십자가 밑에서 무릎 꿇은 줄로 믿습니다. 이 땅의 절망이 찾아올 때 손 목사님은 십자가 밑으로 나아갔습니다. 시편 121편 1절, 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고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오리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 밑으로 나아갈 줄로 믿습니다. 

- 손양원 목사님은 이 땅에서 절망으로 사망으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이 땅의 그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말로는 위로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하늘의 보좌 문이 열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를 위로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위로의 말씀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참 하나님은 희한하게 위로하시죠? 상상을 초월한 위로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지만, 용서는 이 땅의 성품이 아닙니다. 하늘의 성품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은 죄인의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남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내 힘으로는, 내 믿음으로는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손목사님처럼 그 아픔을 이기기 위하여 견디다 못해 쓰러져 십자가 밑에서 울부짖을 때, 하늘의 보좌의 문이 열려서 위로가 찾아오는 줄 믿습니다. 

- 저와 여러분들도 이 땅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찾아올 때, 감당할 수 없는 미움이, 원망이, 절망이 찾아올 때, 저와 여러분들은 어디로 찾아가야 할까요? 여러분, 21일 다니엘기도회가 무엇 때문에 기도를 합니까? 우리 모두 십자가 밑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십자가 밑에 가게 하면 주님이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하늘의 보좌 문을 열어서 위로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 위로받지 못한 모든 사정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나아가서 몸부림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 저는 태어나 보니까 빨갱이 아들로 태어나 있었습니다. 한국 교인들이 사랑하는 여러 목사님들이 계시겠지만 대표적으로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근데 하필이면 저는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불공평한 하나님 같습니다. 저에게 부모님을 선택하라고 하면 이병철 아니면 정주영 아니면 김은호 목사님 아니면 조용기 목사님 아들 아니면 세계적인 지성자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지 누가 빨갱이의 아들 그것도 손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겠습니까? 저는 평생 그 사실과 싸웠습니다. 

- 손목사님이 48세에 순교하셨고, 저의 아버지도 48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3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주의 종이 되라고 해서 제가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갔을 때 아버지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습니다. 저는 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등교하기 전에 교회 강단 밑에서 저를 죽여달라고 1년 동안 떼를 쓰며 기도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때가 왔구나 생각하고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산 송장이 되어 2년간 고생을 했습니다. 눈을 떠보니 을지로에 있는 국립의료원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폐 절제 수술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의료 수준이 낮아서 갈비뼈 두 개를 뜯어내고 수술을 하여, 지금 갈비뼈가 없어 제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입니다.  

- 중환자실에 있는데, 어느 날 나무에 못 박힌 사람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저에게 “너희 부친은 동인, 동신이를 죽였지만, 너는 나를 죽인 죄인이니라.” 나는 그때까지 내가 주님을 죽인 줄 몰랐습니다. 2천 년 전 로마군인과 이스라엘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1982년에 네가 나를 죽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저의 부친을 이해하게 되었고, 저의 부친을 용서하게 되었고,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 여러분, 용서는 ‘내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용서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 중에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비로소 용서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용서는 나 믿음으로, 내 신앙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밑에 내 자신이 철저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내 자신이 완전히 없어질 때, 내가 주님을 죽인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용서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님을 죽인 죄인들입니다. 그 죄인이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를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 내가 손목사님의 용서를 통해서 깨닫는 1인칭 용서가 있고, 2인층의 용서는 가해자가 있으면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습니다. 가해자는 반드시 십자가 밑에서 자기의 잘못을 철저하게 뉘우치고 회개하고 통회, 자복하고 피해자에게 찾아가서 진심으로 자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때 피해자도 십자가 밑의 사랑으로, 주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 사랑을 의지해서 그 사랑 안에서 가해자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 여러분, 손목사님의 용서함은 그 가족들에게 일평생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끝난 아픔이 아니고 일평생의 커다란 상처였습니다. 정양순 사모님은 때로는 동인, 동신이가 보고 싶어서 애양원교회 앞에 있는 바다로 가서 뛰어들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사모님이 밀양에 있는 교회를 개척하다가 과로로 쓰러지셔서 부산 성심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기의 운명을 직감하고, 자기 아들(안재선목사)을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 같다는 소식을 급하게 듣고, 저희 부친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병원에서 만났는데, 사모님이 자기 아들 손을 꼭 붙잡고 ‘재선아, 나도 네 아버지처럼 너를 용서하니, 이제 제발 무거운 짐 벗어버리고 주님 앞에 편히 살아가기를 원한다. 편히 살아가라.’ 모자가 부여잡고 대성통곡하고 우셨습니다.   

딸인 손동희 권사님은 일평생 그 아픔이 너무 커서 실어증으로 살았고, 매일 밤마다 총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살았는데,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회복하여 사시다가, 저희 부친이 1978년 12월 16일날 소천하셨는데, 소천하시기 보름 전에 고모(손동희 권사)를 불러 만났습니다. “동희야, 내가 이제 너와 헤어지면 하늘나라 갈 텐데, 하늘나라 가면 동인, 동신이 앞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내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할게. 그러니 너도 나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평생을 한으로 살다가 마지막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하늘 문이 열려서 주의 사랑이 충만하게 감싸 안을 때, 두 사람은 2~3시간을 통곡하면서 우셨다고 해요. 그 만남 보름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 용서는 ‘내가 용서해 줄게’의 말처럼 그렇게 하루 아침에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 밑에서 그 사랑을 충만히 경험할 때, 내 죄 때문에 주님이 그 십자가 밑에서 ‘아버지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처절한 죽음의 사랑을 깨달을 때,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용서하기 어려운 게 3인칭의 용서입니다. 여러분,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잘못하면 그 사람은 그냥 매장되잖아요? 성경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 붙잡혀 주님 앞에 끌고 갔을 때, 그때 주님이 그랬잖아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할 때,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고 그 현장을 다 빠져나갔습니다. 우리 주님도 현장에 잡혀 있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다시는 이와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고 그를 용서해 주십니다. 

- 여러분, 우리 21세기 한국 사회는 너무 계층 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진영 간의 갈등이 너무 심해요. 교회 안에서도 우익이 있고, 좌익이 있고, 갈등이 너무 심해요. 신사참배가 끝나고 해방되었을 때,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안 한 사람, 신사참배를 한 사람으로 양측 간의 갈등이 심할 때, 우리 손목사님은 통합을 외쳤습니다. 손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는 공산당을 향하여 ‘당신도 예수님 믿고 천국 가라.’고 전도했습니다. 공산당이 그런 손목사님의 입을 개머리판으로 으깨어 버려서 손목사님 장례식 사진을 보면 솜으로 입이 가려져 있습니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아무리 갈등이 심하다 할지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손목사님이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셨어요. 한국 교회는 잃어버린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지만, 주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그 어떤 죄인도 우리도 다 같이 용서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손목사님처럼 내 권리를 십자가에 못 박아 내가 죽어질 때, 내 감정도 죽고 내 생각도 죽고, 주의 사랑으로 모든 갈등에서 치유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고, 우리 한국 교회가 되고, 내 나라 내 민족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손양원 목사의 정신  3) 일사각오의 정신 

  

- 제 사무실에는 손목사님 흉상이 있고, 그 옆에 피난선 배 모형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그 앞에서 ‘목사님! 할아버지 같으면 어떤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묻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손목사님도 625전쟁이 터지자, 애양원 성도 1200명이 피난선을 타고 남해나 부산으로 갔는데, 목사님도 마지막으로 배에 타려고 했는데, 목사님이 성경책 하나만 들고 배에서 뛰어내려 애양원에 들어가셨다가 공산군에 붙잡혔고, 그 배가 떠나고 보름 뒤에 순교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 같으면 피난선에 타서 다음 기회를 엿봐야 할까요? 아니면 순교해야 될까요? 그 결정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이 피 값을 흘려 세운 이 교회를 위해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땅끝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2010년에 조선일보 기사가 나오고, 2014년에 손목사님 일대기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KBS 성탄특집으로 상영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 손목사님 기념관이 고향인 함안군 칠원읍에 지어졌는데, 그곳에 ‘애양원 14호실’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한센인들이 들어가는 곳이 14호실입니다. 그곳에 들어갈 때는, 다른 사람은 손에 장갑을 끼고 비닐로 둘둘 싸고 들어가는데, 목사님은 그냥 들어가셨습니다. 들어가서 기도해 주고, 예배해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기념관에는 손목사님 성경책이 있는데, 제가 언젠가 기념관 설명을 하고 지쳐서 그 성경책을 보고 있는데, 예수님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안 목사, 저 성경책이 누구의 성경책인가?” “손 목사님이 보셨던 성경책입니다.” “그럼 너가 보는 성경 책하고 같은가, 틀린가?” 물으셔서, “같은 성경책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믿은 예수님은 손목사님이 믿는 예수님과 같은가, 틀린가?”를 물으셔서, 같은 주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손목사님의 삶과 너의 삶은 같으냐, 틀리냐?”를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손목사님의 삶은 동쪽에서 사셨던 삶이라면, 저는 서쪽에서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겠습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 손양원 손자로서, 손양원 기념관의 관장으로서 이제 남은 삶은 아버지 하나님,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울부짖었습니다. 

- 한센인은 전 세계에 4500만 명이 있는데, 아프리카에 2500만 명, 동남아시아에 2000만 명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완치되어 한센인이 없습니다. 격리된 한센인을 섬겼던 손목사님처럼 저도 해외에서 땅끝마을을 찾다 보니 아프리카 부룬디가 나왔습니다. 부룬디는 세계 빈곤 1위 국가입니다. GDP가 235달러밖에 안 됩니다. 저는 아프리카 부룬디에 있는 한센인들을 위해서 함안군에 정식 휴가 요청을 해서, 1년에 두 달, 구정 때 21일, 추석 때 21일, 정식 허가를 받아서 단기 선교를 다녀왔는데, 주님이 저한테 물었어요. “너는 그렇게 한세인 선교 갔다 오니까 기분이 좋니?” “네, 기분이 좋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계승받아서 한센인들을 후원하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너는 기분이 좋아도 나는 기분이 나쁘다.” 여러분, 누구의 기분이 좋은 게 좋을까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게 더 좋겠죠. 그래서 “주님,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의 기분이 좋아지겠습니까?” “안 목사! 윌슨 선교사, 손양원 목사는 한센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너도 남은 삶을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하시는 겁니다. 이사야 40장 1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 백성을 위로하리라’는 말씀을 하나님은 그 백성의 대상을 좁혀서 ‘한센인’으로 나에게 또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 2020년 손목사님 순교 70주년 때 외교부에 허락을 받고 손사랑 브릿지라는 NGO를 세웠습니다. 재정기획부에서 민간인 후원단체로 지정받은 후 애양원교회에서 한센인선교사로 파송받아 정식으로 2020년 10월에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한센인 후원 활동을 하려면 30만 불을 내야 한답니다. 그때 보사부 장관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져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미국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센인을 도왔고, 우리는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에 이제 우리도 한국 교회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돕겠다고 했더니, 정식으로 부룬디 한센인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세계적인 대형 NGO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누구도 한센인들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함께 후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결어 및 기도  

  

1) 손양호 목사님의 세 가지 정신이 있는데, 첫째로는 저항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정말 저항 정신이 필요합니다.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그런 세력들과도 싸워야 하고, 대세를 따르지 않고 진리를 따라야 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이 저항 정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랑과 용서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손양호 목사님의 100분의 1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아니 어떻게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어려운데, 자신의 양자로 삼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만일 복수를 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랑하고 용서했기 때문에, 아들로 삼았기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의 그 고백처럼 이렇게 그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나오고, 그래서 이렇게 많은 천국 백성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일사각오의 신앙입니다. 

2)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용사로서의 저항 정신을 주십시오. 대세를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게 도와주시고,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을 수 있는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두 번째 기도 제목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입술로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짐이 되고 부담이 될 때가 참 많습니다. 용서는 실천하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근데 누가 실천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한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님, 날마다 날마다 십자가의 그늘 아래 거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에 쏟아주신 주님의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게 도와주셔서 나도 그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로 누군가를 사랑하며 용서하는 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을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를 보내시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버림받은 영혼들,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해 주옵소서. 이 세 가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우리 부르짖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한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가졌던 그 저항의 정신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지금 일제 식민치하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싸워야 될 대상들이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세력들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도와주십시오. 우리 중에 누구도 대세를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게 도와주시고 날마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하나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양자로 삼고 용서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했고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그 믿음을 주십시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나를 용서해 주는 사람도 용서해 주지 못하는 그런 연약한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 십자가의 그 용서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도와주셔서, 내가 받은 그 용서로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내가 받은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최고의 간증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런 사랑과 용서가 금번 다니엘기도회 최고의 간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직까지도 용서하지 못하여 죄악의 결박에 묶여 있는 자들이 있다면 금번 다니엘기도회 끝나기 전에 성령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용서를 선포하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가 용서하게 도와주셔서, 그 용서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묶임들이 풀어지게 하시고, 그 용서와 함께 우리 안의 불안과 근심과 염려와 공황장애가 사라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늘의 문이 열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하심이, 저항의 정신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깨닫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며, 끝까지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머리 머리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