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구약16. 느헤미야 묵상노트

느헤미야 7장 39 – 60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

smile 주 2024. 3. 17. 07:20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포로로 돌아온 사람들(2)

39 제사장은 이러합니다. 예수아 집안 여다야의 자손이 구백칠십삼 명,

40 임멜의 자손이 천오십이 명,

41 바스훌의 자손이 천이백사십칠 명,

42 하림의 자손이 천십칠 명입니다.

43 레위 사람은 이러합니다. 호드야 의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의 자손이 칠십사 명입니다.

44 노래하는 사람은 이러합니다. 아삽의 자손이 백사십팔 명입니다.

45 문지기는 이러합니다. 살룸과 아델과 달몬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의 자손이 백삼십팔 명입니다.

46 성전 종들은 이러합니다. 그들은 시하와 하수바와 답바옷과

47 게로스와 시아 와 바돈과

48 르바나와 하가바와 살매와

49 하난과 깃델과 가할과

50 르아야와 르신과 느고다와

51 갓삼과 웃사와 바세아와

52 베새와 므우님과 느비스심 과

53 박북과 하그바와 할훌과

54 바슬릿 과 므히다와 하르사와

55 바르고스와 시스라와 데마와

56 느시야와 하디바의 자손입니다.

57 솔로몬 종들의 자손은 이러합니다. 그들은 소대와 소베렛과 브리다 와

58 야알라와 다르곤과 깃델과

59 스바댜와 핫딜과 보게렛하스바임과 아몬 의 자손입니다.

60 성전 종들과 솔로몬 종들의 자손은 모두 삼백구십이 명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하나님 앞에 중요한 사역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은 총 4,289명으로, 이는 전체 포로 귀환민의 약 1/10에 해당하는 숫자로 매우 많았습니다. 반면에 제사장을 도와 성전에서 일할 레위 사람들의 숫자는 74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인도할 제사장의 숫자는 많은데 제사장을 도와 여러 수고스러운 일들을 감당해야 할 레위인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눈에 띄는 사역에는 사람들이 몰리지만 수고스러운 일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적게 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역을 똑같이 중요하게 보십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묵묵히 섬기고 있는 지체들에게 감사하며 내가 맡은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내가 마음속으로 기피하였던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할 사역은 무엇입니까?

 

자부심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 중에는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들은 솔로몬을 위해 일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이 솔로몬을 섬겼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의 소유나 현재의 모습과 관련 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합니다.

 

오늘의 만나

성도는 어떠한 자부심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권세를 누립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되었으나, 정작 하나님의 백성은 성 안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을 기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척박하고 황폐한 예루살렘 성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생명처럼 지켜야 할 성전 중심의 삶을 포기합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다수의 의견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흑암 속에서 느헤미야의 가슴은 뛰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되어 스룹바벨이 인솔한 1차 포로귀환자들의 이름을 놓고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1차 포로귀환자 명단의 일부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이름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겠죠.

 

그들에게 성전 중심의 삶을 회복하길 강력하게 권면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강력한 부르짖음과 희생과 헌신은 잠든 이스라엘을 깨우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치, 도미노 하나가 넘어지자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도미노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회복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오늘의 말씀 뒤에 있는 느헤미야 8 1절 상반절 말씀에 잘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본 구절에서 수문 앞 광장은 예루살렘 성전의 동편 문과 성벽의 수문 사이에 있는 넓은 공간입니다.

 

성경기자는 신이 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모든 백성은 일반 백성부터 시작해서, 제사장, 레위 사람, 문지기 등등의 이스라엘의 모든 그룹을 포함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반성문에 인봉하지 않았던 남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사람들이 느헤미야 8 1절 하반절 말씀에 보니까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한, 두 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 두 지파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 4만명에서 5만명 사이로 추산합니다. 약5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인구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결단합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이 언제 일어납니까?  느헤미야 한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느헤미야 한 사람이 5만 명을 변화시킵니다. 0.002%가 나머지 99.99%의 이스라엘을 변화시킵니다. 느헤미야는 다수를 살리는 창조적 소수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하나 됨을 너무나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 5절 말씀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아멘!

 

믿는 자들의 모임을 뜻하는 헬라어 에끌레시아그리스도의 몸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0.002% 99.99%를 변화시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허락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감동이 있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이는 비전이 있습니까? 가족들도 안될 거라고 하고, 주변의 동역자들도 안된다고 합니까? 그렇다면, 그 비전을 내게 주신 하나님께 더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살리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다수를 살리는 창조적 소수가 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느헤미야의 삶을 통하여 우리를 도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느헤미야처럼 다수를 주님 품으로 인도하는 창조적 소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통해 나의 가정과 직장과 공동체가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9XEPaL9UVhw?si=JSLISpszZ3IHP4u6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은 총 4,289명으로, 이는 전체 포로 귀환민의 약 1/10에 해당하는 숫자로 매우 많았습니다. 반면에 제사장을 도와 성전에서 일할 레위 사람들의 숫자는 74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인도할 제사장의 숫자는 많은데 제사장을 도와 여러 수고스러운 일들을 감당해야 할 레위인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사람들의 명단 중에는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들은 솔로몬을 위해 일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이 솔로몬을 섬겼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이스라엘 백성이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담당하고 예루살렘 성에서 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는 영적 전투를 잘 담당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거하는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 사단의 방해가 많이 있더라도 실망치 말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붙잡았던 포로로 잡혀 갖다가 다시 돌아온 이 보배로운 사람들처럼 우리도 예루살렘과 유다로 갈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더 귀하게 여기며, 우리가 가야 할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끝까지 잃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아름답게 서게 하시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인 성전으로 지어져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