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김은호 설립목사 주일설교/2022년 주일 설교

당신의 생각을 지키라 (창세기 3:6, 고린도후서 10:5) 2022.02.20

smile 주 2023. 4. 16. 21:20

2022.02.20 한주간의 말씀 요약 - 씀리뷰 3회   https://youtu.be/vN7aikTIu9g

 

당신의 생각을 지키라    창세기 3:6, 고린도후서 10:5

 

여자가 나무를 본 즉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6) 여기서 여자는 하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습니다. 이 말은 에덴동산에 거하는 아담과 하와가 매일 볼 수 있는 곳에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전에는 한 번도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갑자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그렇게 보였을까요? 하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탄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들음이 중요하다.

이것을 보면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와는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며 의심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2: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뱀을 통하여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5)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불신하게 하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하게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유혹하였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사탄의 이 유혹의 말을 듣고 난 다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들음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의 믿음도 들음에서 나고 그 들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10:17)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교육할 때 이스라엘아 들으라"(6:4a)는 말씀에 기초하여 쉐마교육을 합니다. 쉐마라는 단어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할 때 '듣다'라는 히브리어를 말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고 들려주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들은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행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도 하나님이 "사무엘아 사무엘아"라며 자신을 부르실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b)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반복하여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위로를 받습니다. 아론이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의 일행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들음은 들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와를 보십시오. 유혹하는 사탄의 음성을 듣고 나니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눈을 들어 그 나무를 보았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 시선을 그 나무에게로 돌렸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 이미 그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바라보니 선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가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선악과가 갑자기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와의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열매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생각은 행동을 가져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지키라

그러므로 생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영적전쟁을 이야기 하면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10:5b)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영은 거듭났지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부패한 생각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 속에 파고들어 역사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마귀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 것입니다.(13:2)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릴 때 내 사고부터 점령합니다. 사탄은 오늘도 부정적인 생각, 교만한 생각, 음란한 생각, 게으름과 미움의 생각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사로잡아"라는 말과 복종'이라는 말이 다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 음란한 생각, 악함과 게으름의 생각, 미움과 분노의 생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자 하는 생각이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말고 전쟁터에서 적군을 사로잡듯이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생각을 지킨 사람, 생각을 지키지 못한 사람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7:276)라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7:28)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의 그 믿음을 보시고 귀신 들린 그 딸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나아만장군 역시 엘리사 선지자가 자신은 나아보지도 않고 종만 내보내어 그것도 더러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때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내려놓고 말씀에 복종하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음란한 생각을 물리치지 못하여 인생의 말년에 두 눈이 뽑힘을 당하고 마침내 비참하게 인생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하와 역시 생각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뱀을 통한 유혹의 소리를 들었을 때 하와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며 물리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류 역사에 이런 비극이 오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생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사로잡아 말씀에 복종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단의 열매를 따서 먹었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을 지키면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기적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