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김은호 설립목사 주일설교/2023년 주일 설교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 21-23) 2023.01.22

smile 주 2023. 4. 16. 22:00

2023.01.22  한주간의 말씀요약 - 씀리뷰 46https://youtu.be/hjFSfLfYgfU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 21-23

 

성령을 받으라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고 다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주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십니다(22). 그런데 이 말씀은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것은 받아도 되고 안되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우리는 계속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5:18)고 했습니다. 이 말씀 역시 권면이 아닌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것,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고 간음죄를 짓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면서도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성령을 받지 않는 것,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성령의 충만이란 성령께서 나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 곧 내 삶의 전체를 지배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 감정과 욕망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곧 내 감정과 생각과 의지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과 지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1)라고 말씀하신 다음 곧 이어 "성령을 받으라" (2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남보다 더 좋은 환경 가운데서 산다고 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해서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나의 느낌과 감정과는 상관없이 기뻐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내 감정과 의지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나의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시기 때문에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된 삶을 살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24:49) 무슨 말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고 말씀하셨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나가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본문도 보면 주님은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신 다음 곧이어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23)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지고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담당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값이 지불되어지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설득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b)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부활의 증인된 삶, 즉 복음을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역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어떤 사역의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일은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인생의 경험이 많다 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최첨단의 전자제품을 구입했어도 전원이 공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듯이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삼손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신, 성령이 함께 하실 때에는 나귀 턱뼈를 가지고 일천 명의 훈련된 블레셋 군사들을 물리쳤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주님이 잡히시던 날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아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그들은 사명을 버리고 갈릴리 바닷가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다음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다시 사신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능욕 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며 기뻐했습니다(5:41).

 

성령은 생명을 살리는 영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실 때도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2:7).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도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22)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어적 의미로 보면 여기서 숨과 성령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냥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의 코에 숨(생기)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명을 주셨던 것처럼,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영적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재창조의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령은 곧 생명을 살리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생명을 살리는 영입니다. 반면 악한 영은 죽이는 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10:10a)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이 역사하는 곳에는 언제나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도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올 때 살아나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47장을 보면 생명의 물이 나오는데 이 생명의 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각처에 모든 것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반드시 그곳에는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은혜가 강물처럼 임하면 아무리 메마르고 강퍅한 심령도 다시 살아나고 소생케 됩니다. 우리가 "절대 안돼"하면서 포기해 버린 사람도 성령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