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김은호 설립목사 주일설교/2023년 주일 설교

당신 안에 평안이 있는가? (요한복음 20:19-21) 2023.01.08

smile 주 2023. 4. 10. 23:03

 

2023.01.08  한주간의 말씀 요약 - 씀리뷰 44회  https://youtu.be/T5LGVZ00jfk

 

당신 안에 평안이 있는가?  요한복음 20:19-21

 

두려워 떠는 제자들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19). 그러면 제자들은 지금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첫째로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잡아 죽인 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될 것이고 그러면 예수를 잡아 죽인 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자기들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방안의 문들을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는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러면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b)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바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을 갔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비난과 책망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비난과 책망이 아니라 평강이었습니다. 21 절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다음, 또다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1a)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하여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의 관심이 바로 평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그렇다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할 때 이 평안은 어떤 평안입니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14:27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고 보혜사 성령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일까요? 그것은 이 평안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보혜사 성령님에 관하여 말씀하신 다음 곧이어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평안은 세상은 줄 수 없고 오직 보혜사 성령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평안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으심과 부활의 열매로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 이 평강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평강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평강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 안에 이 평안이 있습니까? 아니 당신은 지금 평안을 누리고 계십니까?

 

왜 파송받는 자들에게 평강을 말씀하셨는가?

 

첫째로, 현실적으로 지금 평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찾아 죽이려하기 때문에 모인 곳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제자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평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평강입니다. 아무리 사업에 성공을 하고 좋은 대학을 다니고 좋은 직장엘 다녀도 아무리 좋은 환경 가운데 살아도 지금 내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 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평안을 가진 자만이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평안을 가진 자만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가진 자만이 가서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 15절에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평안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나아가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우선 자신이 이 평안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내 안에 평안이 없는데 어떻게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내 안에 평안이 없고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데 누가 두려움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사로 나아가는 우리에게는 이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나아가 평안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자는 아니 선교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내일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안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가 주님이 약속하신 그 평안을 세상 속에서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에 근심하며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16:33a)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구걸이 아니라 누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세상 속에 살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세상 속에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보냄을 받은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동시에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