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예수님의 기도
1 <예수님의 기도>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이르렀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되게 해 주십시오.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겠습니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려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3 영생은 곧 한 분이신 참 하나님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되게 하였고,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전히 행하였습니다.
5 그러므로 아버지, 이제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제가 아버지와 함께 가지고 있던 그 영광으로써 저를 영광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십자가의 길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설교를 마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때가 이르렀으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또한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가까이 왔으며, 이를 통해 자신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인 이유는 그 일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시는 일이자 맡겨진 사명을 완전하게 이루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오늘의 만나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담대히 감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
예수님이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영생을 얻습니다. 앞서 선지자 호세아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라고 촉구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명철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렙 9:24).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앎이 아닌 체험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은 언제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요한복음 17장 말씀은 ‘대제사장의 기도’라는 부제를 가집니다.
이 대제사장의 기도는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이 대제사장의 기도는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하루 전 날 하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성경기자는 다른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중에 하신 중보기도를 의도적으로 기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기도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가 잘 아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극한의 고통인 십자가 앞에 선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에 초점을 둡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절규를 3번이나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의 끝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결국 예수님의 기도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위대한 기도로 끝이 납니다. 그 과정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찢고 내려놓는 고통의 과정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 말씀은 초점이 다릅니다. 13장부터 16장까지 이어진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고별설교가 끝이 나고, 17장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에게 초점을 둡니다. 온 인류의 구원자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진하시는 예수님의 행보가 기술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십자가 사명의 성취와 승리를 확신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인간적으로 느낄 두려움은 의도적으로 덜어냅니다. 그리고 메시야요 중보자로서 십자가의 완전한 승리를 이루사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선포하실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드려 모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 승리 승천하신 예수님만 바라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자가의 사명을 완전하게 성취하시고 죽음까지 정복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떠한 두려움과 아픔도 능히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한 가지 내용을 반복적으로 기도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멘!
4절 말씀에도 보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멘! 예수님은 1절 말씀에서 하나님께 때가 이르렀다고 고백하십니다. 여기서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 한 가지를 간구합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하나님이시며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죄인의 형틀에 매달려 죽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죽기까지 낮춘 아들을 지극히 높이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구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시죠.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자신의 독생자까지 주사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세상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는 복된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오늘 큐티 말씀을 통해 나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덜어내고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드러내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사명의 목적은 오직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국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https://youtu.be/5lVWnL4XByc?si=E-p4PHUKKl90swua
(오늘 본문 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고별설교를 마치신 후 이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중 가장 긴 기도가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해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밝히고 아들의 사역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이 기도는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복음서들에 기록된 겟세마네 기도와는 별개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중 1~5절은 예수님께서 자신과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이며, 6~19절은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이며, 20~26절은 미래의 모든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예수님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간구는 인생에서 가장 영화로운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영화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인간 구원을 위해 드리는 것이 가장 큰 영화로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화로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 알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앞서 가진 참된 영화로움을 추구하며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참된 영화로움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영원부터 영원까지 영화롭게 존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기도하신 것처럼, 나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살면서 그리스도의 권세를 맛보는 복된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함으로 우리의 기도가 은혜의 수단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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