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8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UG5jt5YQbBg
ㅇ 하나님이 찾으시는 삶의 태도
이 세상에서 어떤 일에 쓰임받길 원한다면 그에 맞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기 원하는데, 세상의 기준에 맞춰 준비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께 "수동적으로 이끌림 받는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줄여서 능동적 수동성'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동성'은 열정과 기대 없이 끌려가듯 사는 인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한계 안에서 열정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인생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인생을 살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능동적 수동성'의 태도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십니다.
ㅇ 능동성과 수동성의 아름다운 조화
본문의 안디옥 교회에 나타난 '능동적 수동성에 대해 살펴보길 원합니다. 사도행전 13장부터는 이야기의 중심이 12사도에서 사울로,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집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 새로운 사람에 의해 복음의 역사가 진행됩니다. 이들은 주님께 이끌림 받는 수동적인 인생을 살아가되, 주님께서 이끄신 그 장소에서 능동적으로 열정을 다하여 살아갔습니다.
1. 말씀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13:1)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기 위한 능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특별히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을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5명의 리더가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입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위로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 출신이었습니다. 기오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으로서 잘 알려진 바가 없는 무명의 사람입니다.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의 수양 형제로서 세례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심문했던 헤롯 왕실의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의 친일파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당시 기독교인들을 향해 피바람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이 5명의 리더는 출신 배경, 인종, 사회적 지위 등 모든 것이 다른 말 그대로 하나 되기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었을까요? 말씀 안에서 '능동적 수동성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능동적 수동성'을 지닌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달랐으나, 모두 말씀에 헌신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에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있지만, 모두 한 말씀을 향해 마음과 생각을 모을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능동적 수동성'을 지녀야 합니다. 말씀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그 안에 인생을 가두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사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2. 예배와 기도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2)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예배와 기도에 대한 능동적 수동상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모두 인정적으로 예배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예배와 기도안에 가두는 능동적 수동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신교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습니다. 예배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예배하기 위해 봄부림치자, 그들이 밟는 땅마다 교회를 만들었고, 예배자가 모였고, 그들과 함께 예배하다 보니 그 모습이 선교하는 모습이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또한 기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의 응답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소리를 내자면 교회가 시끄러워질 수 있는데, 그들이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함께 나누자 그들은 온전한 하나 됨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들의 기도는 금식하는 기도였습니다. 예배와 금식은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의 것을 모두 태위, 빈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행위입니다. 금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것을 태워 빈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채우는 행위가 금식입니다. 예배와 금식을 통하여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예배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를 불러 시키실 일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예배와 금식에 대해 '능동적 수동성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예배와 금식 안에 수동적으로 가두었지만, 예배와 금식을 능동적이고 열정적으로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반드시 사용하실 것입니다.
3. 순종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순종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입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3:3)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은 순종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교회의 두 기둥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을 보낸다면 1-2년 밖에 되지 않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순종하길 원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도 알겠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아는 것 까지만 순종하면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입장에서 지금 순종할 것은 '보내는 것뿐입니다. 어디로 보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발을 떼면 알게 될 것입니다. '아는 것까지'만 순종하는 것, 그것이 순종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입니다. 온 힘을 다하여 아는 데까지 가는 것입니다. 순종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순종하면 보이게 됩니다. 순종하기 이전에 없던 길이 순종하게 되면 열리는 것입니다. 발을 내디뎌야 요단강이 멈추고, 외쳐야 마른 뼈가 살아나고, 실로암까지 가야 눈이 떠지는 것이고, 돌을 치워야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할 순종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할 순종은 오늘 끝내야 합니다. 그러면 내일 할 순종이 또 다가오게 됩니다. 순종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 순종하기 위한 그 몸부림이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ㅇ 능동적 수동성이 만들어 내는 기적
우리는 말씀, 예배와 기도, 순종에 대한 '능동적 수동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 안에 우리를 가뭄과 동시에 능동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말씀을 통해 날마다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 예배와 기도를 통해 사명을 깨닫게 되며,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기적을 경험하는 오륜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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