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나 아침 묵상/신약5. 사도행전 묵상노트

사도행전 24장 14 – 27 복음이 복음되게 하라

smile 주 2024. 10. 16. 07:07

오늘의 본문 (쉬운 성경)

바울의 변론과 전도

14 그러나 저는 각하께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소위 이단이라고 말하는 예수의 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책에 적힌 것도 다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15 저는 이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든 불의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다시 부활하리라는 소망입니다.

16 그래서 저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저의 깨끗한 양심을 간직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17 저는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있다가, 저희 민족에게 구제금을 전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려고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18 그들이 저를 본 것은 제가 성전 뜰에서 정결 예식을 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소동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제 주위에 군중들이 모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19 그 자리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저를 고소할 일이 있었다면 그들이 직접 각하 앞에 와서 저를 고소했을 것입니다.

20 그렇지 않으면, 제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공의회 앞에 섰을 때에 이들이 제게서 무슨 잘못을 찾아 냈는지, 여기 서 있는 이 사람들에게 말해 보라고 하십시오.

21 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한 말은 오직 하나,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재판 받는 것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한 것 때문이다라고 외친 것뿐입니다.”

22 당시에 벨릭스는, 이미 예수의 에 관한 것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여러분들이 제기한 고소 문제를 처리하겠소라고 말하고서 재판을 연기하였습니다.

23 벨릭스는 백부장에게 명령하여 바울을 잘 지키되, 어느 정도 자유를 주고 친지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24 <벨릭스와 그의 아내를 전도하는 바울> 며칠 뒤에 벨릭스는 유대인인 자기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내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에 관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25 그러나 바울이 정의와 절제하는 일과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자 벨릭스는 두려워하며 지금은 그만하고 가시오. 시간이 나면 다시 그대를 부르겠소라고 말했습니다.

26 그러면서도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바울을 자주 불러 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7 두 해가 지난 후에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바울을 그대로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주만나 큐티)

복음을 확신있게 드러내라

바울은 총독 앞에 자신이 믿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고백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그 도를 따라 구약을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총독 앞에서 자신이 믿고 따르는 복음을 거침없이 드러냈고,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었지만 전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과 감격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복음을 드러낼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만나

많은 성도가 전도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의 장애물을 버리라

바울은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총독 벨릭스는 판결을 보류하고, 바울에게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하되 구금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는 어렴풋이 알고있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며, 자신의 입지를 위해 유대인들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에게 뇌물을 바란 것입니다. 그는 복음에 반응했지만, 회심까지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의 욕심은 복음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방해합니다. 복음이 내 안에 자리를 잡는 데 방해하는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오늘의 만나

복음 중심의 삶을 사는 데 방해되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와 함께  큐티를 보다  영상강해

오늘의 본문 말씀은 치열한 법정 공방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변호사 더둘로가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로 고발합니다. 이에 바울은 자초지종을 차분하게 낱낱이 설명합니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을 로마 총독 벨릭스가 듣습니다이 때, 성경기자가 벨릭스에 대해 한줄평을 합니다. 오늘의 본문 22절 상반절 말씀에 보니까,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본 구절에서 [자세히]라는 표현은 헬라어 원어상 [정확하게] 입니다. 벨릭스가 대제사장 아나니아 그리고 변호사 더둘로보다 바울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기자의 한줄 평은 바울의 판정승 선언입니다. 코너에 몰린 바울은 빠져나올 기회를 얻습니다. 바울을 바라보며 노심초사하던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반전의 기운을 느낍니다. “아 이제 벨릭스가 바울을 신원해주겠구나! 거짓으로 치닫던 법정이 결국 진실을 규명하겠구나!” 하지만 오늘의 본문 22절 하반절 말씀은 우리의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누가 들어도 무죄 판결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합니다. 그는 천부장이 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하겠다고 합니다. 벨릭스 총독은 어떠한 결정도 없이 판단을 유보합니다. 사실상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입니다. 그렇다면, 왜 벨릭스는 왜 바울이 무죄임을 알면서도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첫째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본문 27절 말씀입니다.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이유는 간단합니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들어 알고 있지만 바울의 무죄를 선포하면 자신의 정치 생명에 어려움이 찾아올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물질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26절 말씀입니다.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오늘의 본문 17절에서 바울은 민족을 구제할 돈을 가지고 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벨릭스 총독은 바울을 2년간 잡아놓음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인정을 받고, 그 기간 동안 바울에게는 비교적 많은 자유를 주고 뇌물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벨릭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공과 물질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성공과 물질에 매몰된 그는 진리를 외면합니다.

 

2022년 미국 애리조나의 문화연구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기독교 가정의 4%만 기독교세계관으로 자녀를 양육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96%는 혼합주의적 세계관으로 신앙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성공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부모는 자녀에게 결코 신앙을 온전히 전해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바울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수차례 복음을 들었지만 벨릭스는 결코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벨릭스는 회심할 뻔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말씀의 부족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지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돈과 성공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복음을 오직 믿음으로 반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오늘 큐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직접 전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8PRwS7HpfK8?si=9P8DgnLsgjus7OWF

 

 

(오늘 본문의 배경)

사도행전 24 14절에서 27절은 바울이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입니다. 이 시기는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로마 제국의 법정 심판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때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체포된 후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벨릭스는 유대 지방의 총독으로 바울의 사건에 관심을 가졌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재판을 미루고 바울을 가둔 채로 두었습니다. 벨릭스는 한편으로는 바울에게서 뇌물을 기대했으나, 결국 정의를 행하지 못하고 2년간 바울을 구류 상태로 방치했습니다. 이 본문은 정치와 신앙이 얽힌 복잡한 상황에서 바울이 믿음을 지키며 진리를 증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요약)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변호사 더둘로의 거짓 고발에 맞서 자신은 로마 법을 어긴 것이 없으며, 단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을 뿐이라고 변호합니다. 이후 벨릭스 총독은 바울의 재판을 미루고, 그의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의 말에 잠시 감동하지만,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판결을 내리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깨우침)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신앙심에 근거하여 바른 것을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고 그 이후의 문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철저하게 맡기는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바울사도는 지금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 총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알았기에 그는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담대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속해져 있음을 철저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인정하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기도)

공의로우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복음을 증언하는 바울,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봅니다. 고소하는 자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복음전하는 바울을 봅니다. 저도 그런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에 꺼리낌이 없이 살았다 고백하는 그 고백이 나의 고백이게 하시옵소서. 바울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리를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지키고자 한 것처럼, 저희도 주님의 말씀 앞에서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Ø  더 깊은 묵상을 위해

(더둘로의 고발에 대한 바울의 변론 내용)

바울은 침착하게 더둘로가 제기한 고발 내용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변론하였습니다.
첫 번째, 먼저, 소요죄로 고발당한 내용에 대해서는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12일밖에 되지 않았고, 이 시간은 유대인들을 선동할 충분한 시간이 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간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고, 바울을 고발한 그 누구도 바울이 무리를 소동케 한 일을 본 적이 없기에 제시할 그 어떤 증거도 없을 것이라 변론했습니다.

두 번째,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고발당한 내용에 대해서는 바울 자신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그 하나님에 대한 소망은 자신을 고발한 바로 그 사람들도 동일하게 고대하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자신은 정치적으로 불순한 자가 아닐뿐더러, 또한 이단도 아님을 반론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성전을 더럽히려 한다는 내용으로 고발당한 것에 대해서는 바울은 자신을 고발한 자들은 자신이 성전에서 절차에 따라 정결 예식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 뿐,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목격자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발했음이 마땅했을 텐데 그렇지 않음이 바로 그들의 고발이 거짓임을 반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