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주경훈 담임목사 주일설교/2024 년 주일 설교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도행전 23:1~11 ) 2024.12.22

smile 주 2024. 12. 30. 10:00

2024-12-22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Xjqz35W3GNQ

 

ㅇ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

 1.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라

 

“바울이 공의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3:1) 바울은 공의회를 "주목하여"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하다"는 표현은 "당당하게 말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당당함의 근거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 것'에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첫 번째 비결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원문을 보면 '양심'이라는 단어를 '좋은', '착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아가도스)가 수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착한 양심, '깨끗한 양심'이라는 뜻이 됩니다. 바울의 양심은 '착한 양심, '깨끗한 양심' 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성경은 '더러운 양심', '화인 맞은 양심'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15-16) 양심이 더러운 사람은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이런 양심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한 것이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1-2)

더러운 양심은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압니다. 하지만 화인 맞은 양심은 거룩한 척 외식하고, 이를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양심은 '들키지 말라' 11번째 계명을 스스로 만들어 지키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섬겼노라'라는 헬라어가 '시민'을 뜻하는 단어를 어원으로 두고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이는 시민으로 부끄러워할 합당하게 행하다, '어떤 원리나 규칙대로 살다'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함이라." (딤전3:16)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비방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따라 살 때, 바울이 법정 앞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이라는 법정 앞에서 우리 또한 당당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더러운 양심, 화인 맞은 양심을 먹잇감 삼아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에게 먹잇감을 주지 말고, 착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김으로, 세상 앞에서 당당한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2. 혼자가 아님을 확신하라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의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23:6) 바울은 산헤드린 공의회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으로 구성된 것을 알고, 공의회의 의견을 갈라놓기 위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천사도 없다고 믿었던 반면, 바리새인은 부활과 천사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정치인들과 친한 종교적 기득권층이었고, 바리새인은 과도한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인해 심문을 받는다고 말하자, 바리새인들은 바울이 죄가 없다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두 세력간 큰 다툼이 생기고, 바울은 신변 확보를 위해 다시 영내로 옮겨집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23:11)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당당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바울은 이 순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함을 얻습니다. 11절의 곁에' 라는 단어는 '옆에서 말하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파라클레오)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혼자라고 생각들 때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날 밤, 위로가 필요한 그 때, 도움이 절실한 그 때,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찾아오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바울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담대하라!" 이처럼 주님은 우리 마음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 속에, 감옥에 갇힌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세상에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뿐인 것만 같은 상황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3:11b) 주님의 위로는 단순히 감정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명을 주시며 위로하십니다. 목적과 방향이 없는 감정적인 위로는 궁극적인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이는 곧 또 다른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님의 위로는 사명을 새롭게 하는 위로입니다.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주님은 바울에게 로마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곳에서는 안전할 것을 알려주십니다. 사명이 회복될 때,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사명이 회복될 때 어려움은 오히려 낭만이자 추억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ㅇ당당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먼저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더럽고 화인 맞은 양심이 아닌, 착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혼자가 아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께서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착하고 깨끗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당당한 성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