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주경훈 담임목사 주일설교/2025년 주일 설교

십자가와 무덤은 텅 비어있다(누가복음 24:13~20 ) 2025.6.1

smile 주 2025. 6. 8. 22:02

2025-6-1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6YCtCj2qHEY

 

ㅇ존재와 근원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습니다. 길이가 514km에 달하는 서울의 한강의 근원은 태백시의 '검룡소'입니다. 연간 30톤 가량의 물이 한강으로 유입되는데 근원이 되는 검룡소의 크기는 지름이 2-3m입니다.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는 높이가 83m, 지름이 11m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나무의 근원이 되는 씨앗은 4-5mm입니다.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근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존재하는 과거에 존재했던,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사람의 인생을 연결하면 근원이 되는 두 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인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ㅇ 사람의 두 가지 본질

1. 사람은 다 죄인이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의 좌소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죄는 '행동의 문제로서 '피해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죄는 생각과 마음의 문제입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도 모두 죄가 됩니다. 만약 우리의 모든 생각이 스크린에 송출되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다면,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인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2. 사람은 다 죽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6:23) 두 번째 사람의 근원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죄에도 값이 있습니다. 죄를 지었다면 그 값은 죽음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 죄가 크든 작든, 행동으로 옮겼든 그렇지 않든 죄는 모두 죽음이라는 값을 요구합니다. 혹시 죽지 않는 사람을 본 적 있으십니까? 이집트 제12대 파라오인 '투탕카멘(Tutankhamun)은 영원히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미라로 만들었습니다. 죽음 이후 영원불멸의 신으로 부활할 것이라 믿었기에 '황금 마스크'도 만들었습니다. 그 무게가 11kg입니다. 그것을 담은 관은 110kg의 순금입니다. 투탕카멘은 이 마스크를 통해 신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살기를 바라던 투탕카멘은 19세의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했고, 그의 미라와 황금 마스크는 밀수꾼들에 의해 도굴을 당했습니다. 현대에도 죽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존재합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48년생으로, 현재 77세입니다. 그는 2030년이 되면 인간은 영생에 도달할 것이라 예측하고, 그때까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약 250개의 영양제와 약물을 섭취합니다. 이에 드는 비용만 한화로 연간 약 13억 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인간에게 이것만큼 분명한 사실은 없습니다. 너무나 명확한 죽음 앞에 우리가 모르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
둘째,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셋째,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 죽음이란 분명한 사실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노력입니다. 죽음은 피할 문제가 아니라 마주해야 할 문제입니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당연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십자가'와 '빈 무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인생을 빈 십자가와 빈 무덤 사이에 세우시길 축복합니다. 빈 십자가와 빈 무덤은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이 땅의 모든 지식이 다 사라져도, 이 진리만은 반드시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부활과 승리'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누구도 그분을 죽음 안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본문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말해주는 본문입니다. 본문으로부터 3일 전,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제자들은 극심한 공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일,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붓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었고, 그곳에서 천사를 만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눅24:11)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에, 두 명의 제자들이 엠마오로 내려갑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눅24:13) 엠마오는 '따뜻한 우물'이란 뜻입니다. '25리'는
'10km 정도의 거리입니다. 걸어가면 2-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이들은 내려가면서 금요일과 주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제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혀 믿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인생에 대한 상처, 실패, 실망을 안고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왜 그곳으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냥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발길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 안에 거하지 못했고, 영적인 눈이 감긴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눅24:15) 어느 순간에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찾아와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24:31)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설명해 주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

3. 십자가와 빈 무덤 : 죄와 죽음의 해결

십자가는 우리 죄에 대한 대속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 상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빈 무덤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음을 확증하는 것이 빈 무덤입니다. 빈 십자가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말하고, 빈 무덤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빈 십자가와 빈 무덤은 그 죄의 값이 완료되었음을 증명하는 영수증이 되는 것입니다.

ㅇ우리의 마지막 인사

십자가와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인사는 '굿바이(good-bye)'가 아닌 '씨유레이터'(see you later)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향한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면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이 완료되었다는 영수증, 그 선물은 받아들이면 선물이지만, 거부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 이 진리를 믿으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