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8 한 주간의 말씀 요약
https://youtu.be/z81YrrRnfqM
ㅇ기다림의 시간 앞에서
사람이 못하는 것 중에 하나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국의 배달 서비스와 그 속도만 봐도 '기다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믿음의 또다른 말은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기다림은 단짝입니다. 믿음은 오직 기다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기다림의 시간은 사람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ㅇ 새로운 이름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시점이 되자,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리기를 포기합니다. 그렇게 하갈을 통해 이스라엘을 낳았습니다. 기다림의 한계에 다다른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허락하실까요? 기다림은 믿음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고, 자아가 무너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철저한 무능력속에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의 시간을 맞추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창세기 16장 16절'과, 바로 다음 장 '창세기 17장 1절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13년'입니다. 1절 사이에 13년이 흘러간 것입니다. 어느덧 아브람은 99세가 되었고, 이스마엘은 13살이 되었으며,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24년이 흘렀습니다. 성경은
13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이스마엘을 키우며 의미있는 일, 행복한 일, 중요한 일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시간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은 바람에 날아가는 시간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만이 의미있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새로운 이름을 알려 주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아브람이 99세 때, 13년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13년 만에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그 이름은 '엘 샤다이'입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God Almighty)'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오셔서 아브람의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아브람의 신앙 여정은 그러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1)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처음 부르실 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여호와'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언약을 맺으시고 성취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처음 약속을 주시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임을 아브람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아브람이 인생의 안전지대였던 갈대아 우르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 그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2) 전쟁의 큰 승리 이후에, 엘 엘리온의 하나님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창14:19) 아브람이 북방 연합군과의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엘 엘리온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엘 엘리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즉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엘 엘리온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때, 여호와 이레 하나님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22:14)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만난 하나님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또는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보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특별한 이름으로 다가오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엘 샤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셨습니다. 13년간의 영적인 암흑기 이후에 하나님께서 소개하신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인 것입니다. 아브람의 영적 암흑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이 기다리지 못한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b) 우리가 어떻게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말씀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 믿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영어성경(NASB)에서는 "내 앞에서 걸으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함께'가 아닌 '내 앞에서'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우리 뒤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뒤에 든든하게 서 계신 '엘 샤다이'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자마다, 완전한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아브람과 사래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17:5) 새로운 이름으로 아브람과 사래에게 다가오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도 새롭게 바꿔주셨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에 대한 인식도 변화됩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롭게 바꿔주신 이름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래'는 '나의 공주라는 뜻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새롭게 바꿔주신 이름 '사라'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전능한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현재를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부르심을 따라 새로운 믿음의 출발을 하게 됩니다.
ㅇ 우리의 새로운 이름: 그리스도인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 또한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름과 동시에, 우리 뒤에서 든든하게 서 계신 '엘 샤다이'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여 새롭게 믿음의 출발을 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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