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교회 김은호 설립목사 주일설교/2022년 주일 설교

모든 수치에서 벗어나라 ( 2022.03.06) 창세기 3:7,여호수아 5:9

smile 주 2023. 5. 20. 11:20

2022.03.06  한 주간의 말씀 요약 - 씀 리뷰 5회 모든 수치에서 벗어나라  https://youtu.be/SKWSKoUkKYo 

 

모든 수치에서 벗어나라 창세기 37 여호수아 5:9

 

선악과를 먹고 난 그 이후

첫째로, 눈이 밝아지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7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에도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채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 그대로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고 난 이후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라는 뱀의 말처럼 눈이 밝아졌습니다.

 

둘째, 자신들의 수치를 보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눈이 밝아졌는데 어떻게 눈이 밝아졌습니까? 뱀의 말처럼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수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선은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수치와 부끄러움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영의 눈이 어두워져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선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범죄한 이후 최초로 경험하는 감정이 바로 수치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는 수치입니다.

 

모든 죄인은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죄인은 죄로 인한 수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인 된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에 대한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수치만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에 대한 수치, 화력에 대한 수치, 무지와 가난에 대한 수치, 누군가로 받았던 그 상처에 대한 수치, 배신에 대한 수치 등 많은 수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든 인간은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의 수치를 숨기고자 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숨기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음으로, 권세를 잡음으로, 남보다 더 많이 배움으로 선을 행함으로 부를 쌓음으로 자기 내면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치장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어느 정도 육적인 수치를 가려줄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영적인 수치와 도덕적인 수치는 가려줄 수 없습니다. 무화과 나무 잎이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릴 수 없었던 것처럼 인간의 죄와 허물로 말미암는 수치는 무화과나무 잎으로는 완전히 가릴 수 없습니다.

 

애굽의 수치가 떠나간 사람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와 길갈에 진을 쳤을 때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9) 애굽의 수치란 430년 동안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말합니다. 또 애굽의 수치란 애굽을 떠나가나 안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면서 이방 백성들에게 당한 조롱과 비웃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 길갈에서 그들은 언약의 백성으로서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할례를 받게 하고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였습니까? 자신들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되새기며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길갈에서 애굽의 모든 수치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떠나갔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선포의 말씀과 함께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종으로서 받았던 수치와 조롱과 부끄러움이 다 벗어졌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방인들과 애굽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모든 수치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애굽의 수치가 떠나갔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예수를 믿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역시 애굽의 모든 수치가 떠나갔습니다. 오늘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를 믿고 영접하였다면 그 사람은 애굽의 모든 수치가 떠나간 사람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죄를 사함 받고 예수를 믿음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사람들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사람입니다. 죄 많은 인간이 죄로 인한 그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수치가 떠나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천 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로 인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친히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처럼 온갖 희롱을 받으시고 심지어 침 뱉음까지 당하셨습니다. 벌거벗김을 당한 채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26:67)

그러면 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조롱과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값이 바로 수치와 부끄러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받으신 그 수치와 부끄러움을 통해 죄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수치와 부끄러움을 해결하셨습니다아무리 우리가 선하게 살고 의롭게 산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자신의 수치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의해서만 우리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수치와 부끄러움이 없이 담대하게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히 4:16)

 

왜 애굽의 수치가 떠나가야 하는가?

첫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자라야 가나안의 원주민을 몰아내는 영적 전쟁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또 내 안에 죄로 인한 수치심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어떻게 사탄의 참소를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반드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자는 예수님께서 내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담당하셨으므로 내 모든 수치가 떠나갔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아무리 나의 상처를 가지고 나를 참소하고 공격해도 우리는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가나안 땅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굽의 수치가 벗어진 자라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죄의 수치심에서 벗어난 자가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인데 죄에 대한 수치심을 갖고 있으면 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의 수치심에서 해방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